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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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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는 퍽 당황스러웠다. 전체적으로 음울한 기운을 띄는 자줏빛 표지에 희미하게 보이는 흑백 풍경, 그리고 배수아알타이라는 낯설기 짝이 없는 이름들까지. 어딘가 기묘한 느낌을 주는 책이라는 생각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몇 번을 흘끔거렸지만 결국 기간이 임박해서야 겨우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글 초기에 든 생각은 도도하다였다. 있는 힘껏 나는 너와 달라!’라고 외치는 듯 한 느낌. <귀향>이라는 책 한 권으로 인해 갈잔 치낙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고, 그 결과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땅 알타이로 날아간 작가의 모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작가가 보고 느끼고 이야기하는 것 역시 남달랐다. 냄새에 집중하고,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며, ‘지금 여기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그녀의 모습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혼자 걸어가고 있는데 거기에는 외로움이나 후회 같은 것은 일절 들어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글이 진행될수록 느껴지는 것이 또 달랐다. 제 길을 향해 나아가는 성인 여성의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꼭꼭 눌러 담아 작아진 몸을 한 고집 센 여자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전자의 경우 시니컬하고 날카로운 인상이었다면, 후자의 경우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한 채 자신이 보고 느낀 것에 대해서만 고저 없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늘어놓는 듯 한 인상이었다. 어딘가 서늘한 기운을 풍기지만, 호흡이 긴 문장이 그러한 기운을 완화시키는 듯 한 느낌. 어린여자아이가 채 숨기지 못한 열기를 나타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는 이야기보다는 감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기승전결, 혹은 뼈대를 갖거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건이 주를 이루는 이야기와 달리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감정이 주를 이루는 감상이 이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작가 자신을 알타이까지 이끌었던 갈잔에 대한 이야기도, 동행한 사람들과의 일화도, 풍경의 이야기도 거의 들어있지 않았다. 그 속에서 오롯이 존재했던 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은 객관성을 유지하려 드는 성인의 눈이 아니라 저 좋을 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었다.

 

처음에 그 모습을 도도함이라고 착각했던 만큼 지루하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작가의 생각과 감정이 나를 일깨우는 느낌이 들면서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탓에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작가의 상황에 부러움을 느끼면서 그와 같은 경험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그러한 노력은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바늘이 없는 나침반의 한가운데를 영원히 서성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서 그대로 원소가 되어 사라져버려도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나를 지켜보는 것은 오직 먼지와 햇빛, 바람, 그리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맹금류, 그것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음으로 특징지어지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익숙하며 어느 정도는 사랑스럽기까지 한 도시적 익명의 고독감과는 좀 다른 성질이었다.(98p)”는 부분에서 나는 그 상황 그 감정을 느끼기 위해 최대한 상상했지만 동의를 했을 뿐 공감하지 못했다. 과연 그 압도적인 느낌은 어떨까. 그 느낌을 느끼고 난 후는?

 

이곳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거의 절반쯤은 정말로 잊어버리고 있었음을. 그건 예상치 못하게 아주 행복한 기분이었다.(139p)”라는 부분에서 나는 그 느낌을 맛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를 놓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 한다. 한순간의 휩쓸림으로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잊을 수 있어 행복하다니. 그 순간 격렬한 질투를 느꼈음은 자명한 일이다. 그 모든 것들은 도시 안에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나로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니까.

 

물론 감상만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이따금 그 존재를 나타내는 이야기 속에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늑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밤 늑대 한 마리가 그의 덫에 걸렸어. 그런데 그 늑대는 밤새도록 덫에서 빠져나가려고 사투를 벌이다가 동이 터올 무렵 결국 덫에 걸린 자신의 발목을 스스로 물어뜯고 빠져나갔다고 한다. (생략) 그 늑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했어. 물론 그 늑대는 죽을 테지만, 그래도 자유롭게 죽을 것이고, 중요한 것은,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다는 점이니까.(225p)” 갈타이가 들려준 이 이야기는 작가가 기억하고 언급한 만큼 내게도 인상 깊게 남았다. 죽음 앞에서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그 모습이 굉장하다고 느꼈으며, 나 역시 그럴 수 있음을 바라게 되었다.

 

이외에도 내 마음을 울린 부분은 셀 수 없이 많다. 감상도 이야기도 모두 훌륭한 책이었다. 게다가 첫 느낌, 중간 느낌, 마지막 느낌이 제각각 다른 그 다양한 매력 역시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니 만약 겉표지만 보고 망설이고 있다면 도전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어떠한 의미로든 굉장히 매력적인 책이며, 마지막 장을 덮는 그 순간까지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책이 될 거라고. 오늘 저녁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을 만나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p.s -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여인'이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그 탓에 제목을 짓는데 꽤 고민을 했다. '그녀'라는 단어 역시 성숙미가 느껴지긴 하지만 여자아이 역시 그녀라고 할 수 있으니...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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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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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 정도 되면 그의 팬인 사람과 팬이 아닌 사람이 뚜렷하게 나눠지기 마련이다. 전자의 경우 그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두 팔 벌려 환영하며 작품 하나 하나를 탐닉하는 골수팬이고, 후자의 경우 그의 작품을 한두 권 읽어보고 한숨을 내쉬며 손길을 딱 끊어버린 매정한 독자일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김훈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그의 소설 <남한산성>을 통해서였다. 당시의 나는 역사소설을 읽어 앎의 정도를 넓혀야겠다는 의무감을 가졌었고, 제법 아기자기해 보이는 연분홍 표지에 호감을 얻었었다. 덕분에 주저 없이 서점에서 빼들고 와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었다. 하지만 채 한 장도 넘기지 못하고 나는 작가와 내가 잘 맞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한산성> 한 권을 다 읽기까지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정도로 나는 김훈 작가가 어려웠다.

 

잠시 딴소리를 하자면, 내 친한 언니 중 한 명은 김훈 작가를 굉장히 좋아한다. 내가 왜 김훈 작가를 좋아하냐, 고 묻자 언니는 그의 간결하면서도 굵직한 문체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훈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가 없었다. ‘이렇게 읽기가 어려운데?’ 그런 생각에 나는 <남한산성>을 다시 펼쳐들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김훈 작가의 이름이 붙은 책은 모조리 피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왔다. 알라딘 신간평가단 책으로 김훈 작가의 산문 <라면을 끓이며>가 선정된 것이었다.

 

책을 받아들고 한숨 한 번. 손에 쥐고 한숨 두 번. 첫 장을 넘기며 한숨 세 번. 그리고 이어지는 한숨 한숨 한숨. 몇 년 만에 만나는 김훈 작가의 작품이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내게 김훈 작가의 작품은 읽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저 어렵다 느끼기만 하고 끝났던 지난날과 달리 이번에는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대체 왜 김훈 작가의 글을 어렵게 느끼는가. 처음 김훈 작가는 간결한 문체를 가졌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곧장 반박했었다. 내 눈에 김훈 작가의 글은 굉장히 아름답게 꾸미는 것으로, 지나치게 늘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언니의 표정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을 떠올렸을 때 그러한 나의 눈은 어딘가 틀린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 책 <라면을 끓이며>를 보며 나는 내가 틀렸음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조금 미묘한 차이였다.

 

김훈 작가는 글을 꾸미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부풀리는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그의 글은 하나의 대상을 오래도록 관조한 끝에 얻은 깨달음이었다. 어느것 하나 쉽게 넘어가지 않고 끈질기고 섬세하며 우직하게 살펴본 끝에 내어놓은 글이 바로 김훈 작가의 글인 것이다. 그 사실이 <라면을 끓이며>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책 제목으로 쓰인 라면을 끓이는 것에 대한 오랜 연구(어느 누가 라면 끓이는 것에 대해 21페이지나 할애하겠는가!), 가오리와 가자미와 물곰국과 대게에 대한 세심한 관찰, ·남태평양 해양연구센터에서 머물며 행했던 깊은 관찰그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작가의 손을 빌려 하나 하나 또렷하게 그려진다. 그 그림은 그 모습을 직접 보지 않은 사람도 손쉽게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다. 이것이야말로 김훈 작가 특유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날의 나의 착각은 그의 섬세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신의 눈에 비친 모든 것을 눈에 박아 넣는 듯 한 그 느낌이 내겐 버겁게 느껴지고, 또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이번 책 <라면을 끓이며>를 읽으며 나는 이 착각을 바로 잡았으며 김훈 작가의 매력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김훈 작가를 찬양(!)하는 또 다른 친구에게 동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김훈 작가가 어렵다면, 배신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와놓고 웬 쉰 소리냐고 따지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후자에 속하며 김훈 작가의 작품을 애써 읽으려 들거나, 자연스럽게 읽지 않는다. 김훈 작가의 매력이 내게는 별로 통하지 않는 달까, 나와는 잘 맞지 않는 달까.

 

김훈 작가는 어렵다. 하지만 이 책 <라면을 끓이며>는 좀 특별하다. 김훈 작가의 매력이 톡톡히 발산되는 작품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결론이 좀 모순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저 김훈 작가의 매력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라는 말 밖에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 같다. 특히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나(거의 없겠지만) 그의 진정한 매력을 잘 모르겠다는 사람에겐 다른 작품들 보다도 이 책을 먼저 읽으라고 꼭 추천해주고 싶다. 그만큼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될거라 호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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