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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고전을 읽는 새로운 방법
모린 코리건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개츠비라는 남자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위대한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미련한 인간이었다. 여자에 의해 파멸을 맞은 남자의 이야기는 이전에도 제법 많은 책에서 봐왔었고(특히 영웅이 많았던걸로 기억한다. 다들 제 힘으로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여자의 매력이 문제인지 남자의 순진함이 문제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혀를 찼을 뿐이었다. 개츠비 역시 별 다를 바 없어 나는 진짜 개츠비, 그러니까 피츠제럴드의 개츠비를 만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어린이용 만화책으로 끝을 맺었었다. 그게 <위대한 개츠비>와 나의 첫 만남이었고, 나는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나왔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개츠비를 만나보고자 마음먹었었다. 내가 존경하는 지인이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를, 명저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어릴 때의 기억이 워낙 크게 남아있던지라 원작을 읽을 정성까지는 없었고, 영화가 개봉한 김에 겸사겸사,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렇게 혼자 조조영화로 <위대한 개츠비>를 보았다. 결론은 대실패, 대실망이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내게는 화려하다, 라는 말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남지 않은 영화였다. 만화와 더불어 평하자면, 영웅담으로 치기엔 보잘 것 없었고, 성공담으로 보기엔 그 과정이 너무 빈약했다. 더 이상의 여지는 없다고 생각하며 피츠제럴드라는 사람 자체를 저 멀리 밀어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난 어느날. 나는 <위대한 개츠비>와 피츠제럴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숨만 나왔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변했다. ‘그래. 대체 어떤 점이 얼마나 좋은지 나도 좀 알자!’라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그리고 피츠제럴드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과 다시 한 번 마주했다. 아마 알라딘 신간평가단이 아니었으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만남이었다.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 말하자면, 나의 패배였다(패배라는 말이 좀 우습긴 하지만). 지금 당장 이 리뷰를 그만두고 서점에 가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구매 해 읽고 싶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개츠비에 담겨 있는 피츠제럴드의 이야기, 개츠비 속에 담겨 있는 상징, 피츠제럴드의 삶, 개츠비와 피츠제럴드의 위대함여기에 작가의 이야기까지 섞여 제법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책 자체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하자면 한 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하는 탓에 정신이 없고, 반복되는 이야기도 좀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들은 뿌리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은 개츠비에 대한 인상을 바꿔놓을 정도로 대단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삶이 주인공의 삶을, 주인공의 삶이 작가의 삶을 이해하고 느끼고 공감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닮은 듯 다른 두 존재는 한 명만 있었다면 주지 못할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함부로 불행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피츠제럴드의 삶과 개츠비의 삶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지금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을 그들이 위대한 이유를 몇 개 꼽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위대한 개츠비>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한 가득이다. 개츠비를, 피츠제럴드를 나 스스로 만나고 느끼고 알고 싶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리뷰가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라는 제목을 가진 책에 대한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이 책 덕분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에서 이 책은 제 할 일을 확실히 했다. 이처럼 분명하고 굉장한 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좀 더 깊이 있는, 제대로 된 만남을 원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피츠제럴드와 개츠비의 매력을 모르겠다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물론, 한편의 위대한 작품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해주는 멋진 책이 바로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이다. 그 덕을 톡톡히 본 한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이 책을 읽는 그 순간 피츠제럴드와 개츠비의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진정한 독자 한 사람을 만나는게 작가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그리고 하나의 작품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또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확실하게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나의 경우, 작가의 경우 모두!), 이 책 한 권으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것이다.

 

 

P.S-너무 긴 제목은 좋지 않아 "애정의 연쇄작용"으로 확 줄였지만, 진짜 제목은 "작품에서 작품으로, 인물에서 인물로, 독자에서 독자로 이어지는 애정의 연쇄작용"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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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살아보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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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세상에 겨울이 없었으면, 하고 생각 해 본적이 있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 나는 겨울이 힘들었는데, 몸 자체가 찬 편이어서 그 정도가 심했다. 특히 아무리 두꺼운 장갑과 양말, 신발을 신더라도 예방이 안 되는 수족냉증 때문에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면 손발의 감각이 사라져 걷는다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어색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실내로 돌아와 감각이 되살아나면 피부가 두드러기처럼 울긋불긋하게 변했다가 가렵고 따가운 상태를 지나 갈라져 생채기가 생겨났다. 나름대로 노력해봤지만 해결하지 못하고 몇 번이고 반복되니 겨울이 오는 것 자체가 두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 담담하게 겨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기억에 남은 특별한 계기 같은건 없지만 겨울이 가지고 있는 사랑스러움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서늘하면서도 청량한 공기가, 추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온기의 소중함이, 한 단계 다운된 삶의 리듬이 주는 잔잔함이 겨울을 의미 있게 만들었다. 물론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겨울은 추워야한다)는 엄마의 말에는 아직까지 동의할 수 없지만 겨울에게도 나름의 매력이 있음을 인정하는 바이다.

 

이처럼 제법 큰 인식의 변화를 겪었지만 내 몸은 여전한 만큼 겨울을 나기 힘든 것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매년 겨울,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 그 곳에서 살다온다는 작가의 이야기가 나를 이끌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라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온기란. 현재 온몸으로 겨울을 나고 있는 나로서는 대리만족이라도 하자는 심정에 절로 손이 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내가 기대했던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따뜻함에 대한 것이었다. 떠나있는 그 곳이 얼마나 따뜻한 곳이며 그 따뜻함을 바탕으로 무엇을 누리고 있는지, 어떤 것을 보고 느꼈는지 같은 것들. 추운 겨울이 이어지고 있는 이곳과는 다른 특별함을 생각했다.

 

그에 반해 책은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것들을 마주하며 겪는 일상도,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며 겪는 비일상도 아닌 다른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발리, 스리랑카, 태국, 라오스. 이 낯설고도 신비로운 나라들에서 보낸 시간을 말하는 것인데도 낯선 곳에 갔을 때 느끼곤 하는 긴장감이나 두근거림 대신 일상보다 더 차분하고 느린 리듬으로 보내는 하루하루가 그 속에 담겨 있었다. 새롭게 발견한 것들에 대해 흥분해서 떠들어대기보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감각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거기에는 우와!”하고 감탄하기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야말로 뒤표지에 있는 여행이 주는 긴장감은 덜고 일상이 주는 지루함은 벗어나 여행과 일상 사이에 머무를 수 없을까는 말이 그대로 실현된 책이었다.

 

특별한 한방이 없어 읽는 이에 따라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겨울의 리듬을 그대로 가지고 따뜻한 나라로 간 한 사람의 이야기가 가진 울림이 아름답게 느껴질 수 도 있을 것이다. 일상과 비일상 그 사이에서 시공간을 초월한 듯 한 무언가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 봤으면 좋겠다. 그 낯설고도 신비한 매력에 푹 빠져 새로운 겨울을 맞을지도 모른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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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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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살아가며 나는 매 순간마다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홀로 생각에 빠지다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책을 읽다가, 길을 걷다가, 글을 쓰다가, 불현 듯 깨닫고 마는 것이다. 나는 아직 멀었구나, 혹은 이미 글렀구나,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애써 예민해지려하지만 나는 사실 섬세함이 부족하다. 내게 주어진 감각들을 활용하지 못해 생과 생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친근함과 무례함 사이의 선을 알지 못해 관계 자체를 기피하기도 하며, 세상을 보는 눈과 사유가 무디기까지 하다. 스스로의 어설픔과 둔감함에는 이미 진절머리가 날 정도라 자신감은 물론 자존감도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들이 부럽다.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 깊고 따뜻한 눈과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면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사유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감탄하게 만든다. 그들은 나 같은 사람은 그저 흘려보내고 말았을 것들을 포착해내며 끊임없이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그들에게 있어 생은 찬란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충만하고 반짝거린다. 자신의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딱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의 두 사람, 박연준 작가와 장석주 작가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시드니라는 나라에서 그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담아낸 이 책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집합체 같았다. 눈앞에 그려내듯 섬세한 묘사와 톡톡 튀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문장이 빛나는 박연준 작가의 글. 지식과 지혜와 삶이 어우러져 날카롭게 와 닿는 장석주 작가의 글. 그리고 그 글 속에 담겨있는 아름다움이란. 만약 나였다면, 하는 가정 자체를 의미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특히 박연준 작가의 글은 그 섬세함이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책의 촉감이 좋다. 냄새가 좋다. 자물쇠 없이 열리고 닫히는 개방성이 좋다. 많은 문자 속에 감추고 있을 몇 가닥, 삶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이 좋다. 모르는 사람(저자)의 언어를 내 안에 담아보는 일이 좋다.(54p)”는 문장, “나무들이 이슬비처럼 서 있는 풍경을 본 적이 있다.(56p)”는 문장, “자기 아픔상처에 대해 치아가 다 보이도록, 입을 벌려 울부짖을 수 있는 나이! 아이는 이게 바로 내 상처고 내 아픔이에요. 난 지금 너무나 고통스럽다고요!“라고 동네 사람들을 향해 외친 것이다.(67p)”라는 문장, 그리고 어린아이의 몸과 그 속에 담긴 생동감에 대한 문장은 단박에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삶의 아름다움을 덕분에 하나씩 더 알아가는 기분이었다. 문장 하나, 글 하나로 누군가에게 충만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니! 존경심이 일 정도였다.

 

때로는 어느 하루를,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때로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대화를 풀어낸 글에는 저마다의 빛과 온기가 담겨있었다. 받은 것은 책 한 권뿐인데, 행복도 그와 함께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비록 다시 한 번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시간이었으며, 그로 인해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지만, 섬세한 감성과 깊은 통찰력이 돋보이는 좋은 책을 만났음에 만족스러웠다. 그들로 인해 나도 아주 조금이나마 깊어졌기를, 그리고 앞으로도 깊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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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의 시 이야기
황현산 지음 / 삼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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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시는 공부와 같다. 한국의 문학교육에 대해 비꼬는 말이 아닌 순수한 의미에서다. 시도 공부도 어렵지만 재미있어서 마주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다. 시집을 보고 있는 내게 친구들이 그게 재미있어?”하고 물을 때면 나는 제법 맑게 웃으며 어렵지만 재미있어라고 답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시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다. 특히 문학시간에 시에 대해 공부할 때면 나는 최대한 몸을 사렸다. 이 시에서 A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이 시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법은? 쏟아지는 질문들이 내게로 향할까 무서워 고개 숙였다. 어쩌다 잘못된 을 말하면 부끄러워 견딜 수 가 없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느끼면 안 되는 걸까. 압도되는 분위기가, 문장 속에 살아 숨 쉬는 감정이, 가슴까지 번지는 진심이 마음에 든다고, 꼭 내 마음 같아 좋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런 생각에 나는 더욱 시에 대한 해석이나 분석을 멀리했다. 그저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라 생각하며 시를 대했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생각에 변화를 준 것이 이 책 <우물에서 하늘 보기>이었다.

 

시는 어렵지만 재미있다. 하지만 시에 대한 해석은 어렵기만 하다. 제법 뿌리 깊게 박혀있는 생각에 처음엔 이 책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또 어떤 말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할까. 겁이 났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에야 이 책을 손에 들었지만 역시나였다. 무겁고 복잡한 말들의 향연. 쉽게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 처음부터 예상했던 만큼 나는 모르는 것은 일단 넘어가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해도 공감도 어려운 부분은 지나쳤다. 대신 내 눈을, 그리고 끝내는 마음까지 사로잡는 부분들에 집중했다. 그러자 그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보였다. 바로 시를 보는 눈. 자신의 지식과 지혜와 철학으로 시를 보는 그 눈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내게 전달되었다.

 

분명 그 자체만으로 내 가슴에 들어온 시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야니스 리초스도 작가의 연작시 <부재의 형태> 중 하나이다.

 

어린이놀이터에, 작은 요람 하나 비어 있다.

루나 파크에, 목마 하나 기수 없이 서 있다.

나무 아래, 꿈에 잠겨, 그림자 하나 앉아 있다.

빛 속에, 실현되지 않는, 먼 침묵 하나.

그리고 언제나, 목소리들 웃음소리들 한가운데, 간격 하나.

 

연못 위에서, 오리들이 잠시 멈춘다.

아이들의 어깨 위를, 나무들 저 너머를 바라본다.

한 아이가 말없이 지나간다, 보이지 않는다.

아이의 슬픈 발자국소리만 들린다. 아이는 오지 않는다.

 

(생략)

 

이 시만으로도 아이의 부재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남겨진 자리의 외로움과 서글픔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여기 이 자리에서 시를 읽는 내게도 전해졌다. 나는 그 느낌을 온전히 가슴에 새겼고, 이게 지금까지 내가 시를 대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길고 깊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명망 있는 작가의 지식과 섞여 어쩌면 시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단순히 어렵다 느끼며 지나쳐버릴 수 도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자꾸만 시선이 붙잡힌다. 오랜 세월 수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한 어른의 지혜와 철학 때문이다.

 

나 혼자서는 결코 노란 꽃에 대해 얘기하는 김수영 작가의 시 <꽃잎>에서 조선시대의 노비가 양반 상놈이 없는 세상을 본다면 그것은 벌써 착란이며, 나무 위에 허공이 있으니 그 나무가 꽃을 피워 올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벌써 투시자다. 허공은 모든 것이 가능한 자리이며, 다른 세상이란 저 허공과 같지 않은가. 꽃나무는 여기 있지만 꽃이 필 자리는 저 허공이 아닌가.(39p)”라는, 한 사람이 작가로 성장한다는 것은 한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바꾼다는 의미인 것이다.(41p)”라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시 갱피 훑는 여자의 노래에서 여자는 남자를 떠났다. 이 정황의 세부 서술이 여자를 적극적으로 변호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여자의 떠남이 어느 한 나절의 변덕이 아니라 거의 운명적 필연이었음을 말해준다. 이 세부는 절개 없는 여자를 불운한 여자로 바꿔줄 수도 있다.(57p)”라고, 문학이 저 하찮은 것들의 말이 아니라면 어디서 숭고한 말을 찾을 것인가(60p)”라고 생각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되는 그런 부분들. 작가의 눈은 시를 보다 주의 깊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책 한 권을 다 읽었지만 다 읽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솔직한 말로 나는 이 책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고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도 안 되는 그 부분들이 나와 시 사이를, 나아가 세상과의 사이를 깊게 만들어주었다. 내 가슴을 울리고 머리를 치고 심지어는 내 삶마저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진게 시였다면, 여기에 오늘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결코 한 번으로 끝낼 수 없는 책이자 곱씹고 되씹어서 오랫동안 함께해야 할 책을 만났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변했다. 여전히 나는 시를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이지만 또다른 누군가의 눈으로 시를 보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시만큼이나 멋진 책을 만난 이 기쁨을 당신과도 나누고 싶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지. 너무 많은 것을 느낀 내가 두서없이 떠들어댄 느낌이 강하지만 그만큼 이 느낌을 전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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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여행 에세이를 읽을 때 가끔 잘 짜여진 소설 한 편을 보는 듯 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뜻밖의 행운과 운명 같은 만남, 마음 따뜻해지는 여정, 당연한 수순처럼 찾아오는 이별.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들이 그 속에 펼쳐지며 낯선 세계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손미나 작가의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손미나 작가의 여행 에세이는 정말 행운과 행복의 연속이다. 소중한 인연과의 만남, 절대 잊지 못할 추억, 아쉬운 이별. 읽는 이로 하여금 감탄과 질투, 그리고 울렁임을 선사해주는 그녀의 글은 그녀가 여행자로서, 또 작가로서 얼마나 타고났는지를 알게 해준다.

 

그녀의 신작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역시 특별함으로 가득 차 있다. 10년 전 석사과정을 함께하고, 파리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을 끝으로 5년이 지난 친구 이야와의 사랑스러운 재회, 아마존 체험을 유쾌하게 만들어준 탐험대장 띠또와 푸에르토 말도나도 시에서의 여정을 책임져준 택시기사 오스카, 두 번의 만남 속에 한없이 고맙고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해준 쿠스코 가이드 그레고리와의 만남. 그 외에도 그녀에게 행복과 자연에서의 삶에 대한 자신들만의 철학을 이야기해준 사람들까지. 어떻게 그런 인연들을 가질 수 있는지. 읽는 내내 좋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진 것 같은 그녀가 한없이 부럽고 신기했다.

 

게다가 그녀의 여행이 특별한 것은 인연뿐만이 아니다. 그 지역에 사는 주민마저도 보기 힘들다는 콘도르를 두 번이나, 그것도 각각 다른 개체로 본 것, 감자 요리 전문점이라는 특이한 가게를 발견한 것, 바다사자들이 새끼를 낳는 그 경이로운 순간을 목격한 것, 거의 운명처럼 그레고리를 다시 만난 것, 먹구름 사이에서 무지개가 생겨나는 과정을 지켜본 것 등 셀 수 없이 많은 행운들이 그녀와 함께 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녀의 여행이야기가 전부 사실인지, 지어낸 얘기가 아닌지 의심스러워한다고 밝힐 정도라고 밝힐 정도로(248p) 대단했다. 운 나쁘게 계획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그 역시 어떠한 행운으로 돌아오는 과정들을 보고 있자니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이었다. 그게 너무 지나쳐서 나와 여행은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녀같이 타고난 사람만이 진정한 여행자이며 여행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 같은 사람은 그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울렁임을 느끼는 것만으로 만족하는게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슬플 정도였다.

 

그 정도로 완벽하고 멋진 이야기로 가득한 것이 바로 손미나 작가의 여행 에세이였다. 특히 이번 책은 한국 사람들에게 제법 낯선 곳 페루에 대한 것이다 보니 보다 놀랍고 신기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책 구성에서 적당한 양을 차지하고 있는 사진들이 적다고 느끼고, 심지어는 그녀의 사진 실력마저(!) 의심할 정도로 그녀의 글은 많은 것을 품고 있었다.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지금 당장 그곳에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완벽한 여행자, 손미나 작가. 그녀의 글에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즐거움을 주며 저마다 자신만의 여행을 꿈꾸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니 늘 그녀의 글이 기다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음은 또 어디의 이야기를 가지고 올지. 벌써부터 이렇게 기대되는걸 보니 나의 여행 앓이는 한동안 계속될듯 싶다.

 

 

 

 

 

 

*알라딘 공식 신간 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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