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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 필립 K. 딕 단편집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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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을 완전히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선으로 이끌어 주는 작가가 있다. 그들은 예언자 혹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도 되는 양 남들이 보지도 생각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단번에 매료시킨다. 뛰어난 통찰력과 글 솜씨로 신선한 충격과 깨달음, 성찰, 숙고의 시간을 선물하는 작가의 힘은 그야말로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나는 그 대표적인 예로 <나무>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를 이야기 해 왔었다. 작가는 매 작품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보여줬고, 책이 끝나고 나서도 그 세계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었다. 그와 같은 작품, 작가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 펼쳐 든 책 한 권이 이러한 확신을 흩트려 놓았다. 바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필립K. 딕 작가였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로 만들어진 만큼 장편일거라 지레짐작하기 쉽지만 실상은 단편 작품집으로, 영화와 똑같이 범죄예측시스템을 소재로 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역시 그 속에 수록된 짧은 단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만 생각하고 책을 가져온 사람은 실망할 수 도 있지만, 그건 책을 읽음과 동시에 해결될 것이다.

 

이 책에는 총 8개의 작품이 들어있다. 즉 각각 다른 8개의 세계가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이다. 전문 수리공만이 다룰 수 있는 스위블에 의해 사상과 생활, 생명이 통제당하는 세계(<스위블>), 세 명의 예언자들에 의해 범죄가 일어날 미래를 예측해 예비 범죄자들을 통제하는 세계(<마이너리티 리포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세계(<물거미>). 그야말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세계가 연속해서 모습을 드러낸다.

 

게다가 그 속에는 불완전함으로 인해 지독한 환각증상에 시달리는 남자들(<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나이>), 끊임없이 인간성을 시험당하는 인간과 복제인가들(<우리라구요!>), 사랑을 위하는 외계인과 성공을 위하는 인간(<그래, 블로벨이 되는 거야!>) 등 우리와 같으면서도 다른,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들이 있다. 전부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 허구의 존재지만 책을 읽는 순간 모든 것이 실체를 가지고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이들에게 생명성을 부여하고,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사로잡힌다. 그만큼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는 선명하고 강렬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대단한 점은 작가가 단순히 창조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험 가득한 신비로운 세계를 자랑하듯 늘어놓는 대신 그는 그 속에 우리사회의 어둠과 과제를 은근하게 담아낸다. 현재를 통해 미래를 그려내고, 또 그 미래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게 만든다.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에 감탄하다가도 섬뜩함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특히 <우리라구요!><그래, 블로벨이 되는 거야!>는 예상 못한 전개에 놀람과 동시에 인간성과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든다.

 

호기심과 긴장감을 유발하는 구성, 훅 하고 빨려 들어가는 흐름,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들며 긴 여운과 생각의 꼬리를 남기는 마무리, 그리고 낯설면서도 매력적인 미지의 세계. 2002년에 나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집사재 출판사에서 나온 책 기준. 작가가 1982년에 사망한 것을 보아 이 작품이 실제로 만들어진 것은 훨씬 더 전의 일이다), 아니 오히려 시간을 초월했기 때문에 더욱 훌륭한 작품이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와 <나무>에 이어 필립K.딕 이라는 작가의 이름과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작품의 제목이 완벽하게 각인되는 기회였다. 작가지망생으로서, 독자로서 무한한 존경심을 느끼며, 앞으로 한 동안은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과 작가를 추천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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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먹는 나무
프랜시스 하딩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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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공포감을 느끼는 이유는 굉장히 다양하다. 귀신처럼 실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공포를 느끼기도 하고, 반대로 범죄자처럼 실체를 가지고 있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존재에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또는 어릴 적의 경험으로 인한 트라우마나 현재 겪고 있는 질병 등의 문제로 인해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공포도 있어 무엇에 의해 공포를 느끼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한 사람이 하나의 공포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과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다. 나 역시 무수히 많은 대상과 이유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라 끊임없이 떠들어댈 자신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지금 이 순간 가장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딱 하나, <거짓말을 먹는 나무> 속 인물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거짓말을 먹는 나무>14살 소녀인 페이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미스터리 판타지이다. 페이스의 가족이 외딴 섬 베인에 들어가 살게 되면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페이스가 나서서 범인을 찾는 이야기로, 주인공을 따라 추리하는 과정은 물론 그 중심에 있는 거짓말을 먹는 나무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렇게만 보면 모험으로 가득 찬 화려하고 신비한 이미지를 기대하게 되는데, 실상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음울하고 불편한, 어두운 이미지가 쭉 펼쳐진다.

 

먼저 시공간적 배경이 빅토리아 시대, 19세기 영국이라는 것에서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19세기 영국은 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갈등이 일어났던 시기로, <거짓말을 먹는 나무>는 그 시기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불편함을 야기한다. 신앙에 대한 믿음과 과학에 대한 믿음이 부딪치며 격렬하게 다투는 신사들의 모습, 그 신사들에 의해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차별,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 학습된 여성들의 모습. 심지어 믿었던 인물들까지 그와 다르지 않음을 깨달을 때는 불편하다 못해 공포감이 느껴진다. 무시와 경멸, 억압으로 점철된 그들의 삶은 활자로 읽는 것만으로도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야기의 중심 소재인 거짓말을 먹는 나무 자체도 어둠을 부각시킨다. 햇빛을 양분으로 삼는 일반적인 식물들과 달리 이 나무는 빛을 받으면 그대로 타버리기 때문에 옷에 떨어진 나뭇잎 부스러기까지도 조심해야 한다. 오로지 빛이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곳에서만 살 수 있는 나무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이 나무가 양분으로 삼는 것은 사람의 거짓말이다. 나무에게 거짓말을 속삭이고 그것을 사람들이 믿게 만들면 거짓말의 정도와 사람들의 믿음의 정도에 따라 나무가 자라나 열매가 만들어지고, 이 열매를 먹는 사람은 숨겨진 비밀을 알 수 있게 된다. 거짓말만으로도 어딘가 불편한 느낌인데, 그런 거짓말을 먹고 자라나 오로지 열매를 먹은 사람만이 비밀을 알게 하는 나무라니. 만약 내가 이 나무를 눈앞에 목도하게 된다면 분명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고 얼어붙었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을 것이다. 그만큼 불길하고 음습한 나무라고 할 수 있다.

 

거북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장면을 떠올릴 때면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이미지뿐일 만큼 어두 칙칙한 배경, 세상과 완전히 연결되지도 단절되지도 않은 베인 섬의 모습, 모순과 이기심, 악의, 시대적 분위기가 묻어나는 인물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 하나하나, 주인공이 아버지에게 가지는 신앙에 가까운 맹목적인 믿음. 글을 읽고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에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로 그 모든 것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결말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기는 작가의 노련함이 아니었다면 책을 다 읽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주인공이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이끌려 끝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이 전부였던 책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가진 매력 때문이다. 어둡고 음울하며 공포심을 자극하는 다크 판타지로써의 매력, 독자를 안으로 끌어들여 주인공과 함께 하도록 만드는 미스터리로써의 매력, 부정적인 것부터 시작해 긍정적인 것까지 온갖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의 매력, 그리고 끝에 가서 사람의 머리를 탁, 하고 치는 깨달음의 매력까지. 이 모든 것을 담아낸 작가의 역량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렬한 작품이 바로 <거짓말을 먹는 나무>.

 

끝으로 이 책을 읽을 때는 범인이 누구인지 꼭 찾아봤으면 좋겠다. 만약 당신이 생각한 사람이 범인이 맞다면 나는 함몰되지 않은 당신의 깨어있음에 기꺼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지금까지 읽어본 책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유형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잡기를, 스스로가 학습된 무지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기를, 이 책 <거짓말을 먹는 나무>와 함께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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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그녀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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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편식 없이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선호하는 내용이 있는 것은 어쩔 수 가 없다. 장르 불문 내용 불문으로 손을 대려고 애를 쓰지만 나도 모르게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담긴 에세이, 내가 알고 싶은 지식이 담긴 사회과학서적,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소설을 더 자주 찾게 되는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선호하고 많이 찾게 되는 것은 바로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소설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따뜻함이 묻어 나올 것 같은 잔잔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흔들리면서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주인공과 그의 예민한 심리와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글을 만나면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공감하고 응원하고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다가 끝에는 먹먹한 가슴과 위안이 남게 되는 그런 글이 내가 좋아하는 글이자 쓰고 싶은 글이다. 책으로 꼽자면 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별>, 최시한 작가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아사이 료 작가의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가, 작가로 꼽자면 요시모토 바나나를 필두로 한 일본의 여류작가들이 내가 지향하는 모습이다. (물론 다른 쪽의 선호도 있다. 예를 들어 독특한 분위기와 상상력을 가진 김중혁 작가나 오츠이치 작가의 책이라던가.)

 

그런 의미에서 <4월이 되면 그녀는>은 읽는 것이 굉장히 즐거운 책이었다. 흔들리고 불안해하지만 안간힘을 쓰며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으려고 하는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심리와 일상을 유려하게 그려내는 문장들이 이 책에 모두 있었다. 짙고 풍부한 감성이 묻어나는 서정적인 이야기는 독자를 그 속에 끌어들여 매 순간을 함께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분명 '에. 그럼 지루하겠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다. 내가 이 책에 감탄한 것은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이야기는 자칫 지루하다는 감상을 낳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긴 하지만, 나 역시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이 책은 영화 제작자라는 작가의 이력답게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구조와 묘사와 대사의 적절한 배치 등을 이용해 독자들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이력은 또 다른 힘을 발휘하는데,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 속에 감각적으로 담아내며 공감을 일으키고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와 음악 같은 문화. 주인공들이 '영화'를 통해 시간을 공유하는 만큼 여러 가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직접적으로 제목을 언급하지 않은 작품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 그 영화'하고 생각하게 된다. 영화의 내용과 감상에 대해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반박하면서 주인공들의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 사랑과 결핍, 소통 등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그 모든 것들을 책 속에 담아낸다.

 

헤어진 지 9년 만에 볼리비아의 우유니에서 편지를 보내온 첫사랑. 그리고 그 편지를 시작으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사랑'에 대해,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고 깨닫게 되는 남자와 여자. "'연애가 사라진 세계'에서 사랑을 찾으려 발버둥 치는 남녀의 이야기가 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사랑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사랑스럽다. 찬란했던 그 순간, 그 감정을 떠올리고 현실을 직시하게 된 그들이 다시 그것을 되찾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그들이 되찾을 수 있기를, 우리도 그렇게 사랑스러워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읽게 되는 책 <4월이 되면 그녀는>. 감성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수수하면서도 매력적인 이 책이 저자의 첫 작품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에 이어 또 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리라 확신한다. 저자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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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휴식
구가야 아키라 지음, 홍성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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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만성 피로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다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단 한순간도 피곤하지 않은 때가 없다. 가장 활발해야 할 낮 시간에도 반쯤 감긴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거나 시도 때도 없이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커피와 에너지 음료의 도움을 받는 것도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주말과 휴가만 손꼽아 기다리다가 원하는 만큼 늦잠을 자고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삼림욕을 하고 휴식을 취해도 피로는 가시지 않는다.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고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말에 너도 나도 공감을 표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넘쳐날 지경이다. 정보과잉 시대인 만큼 온라인 매체에서, 책에서, 주변 사람들의 입에서 수많은 방법들이 정론처럼 이야기된다. 지금 당장 인터넷 검색창에 만성피로만 쳐도 뜨는 글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거나 홍보성 강한 글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믿을만한 정보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방법이 너에게도 맞으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책 <최고의 휴식>도 휴식을 취하고 피로를 없애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중 하나다. 좀 신랄하게 말하자면 넘쳐나는 정보 속에 또 하나의 정보가 더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구별되는 분명한 차이점을 가진다. 바로 과학적 연구로 그 원리와 효과가 증명된 마인드풀니스라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다. 막연하거나 뜬구름 잡는 식의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다른 방법들과는 달리 공신력을 갖추고 있다.

 

작가는 먼저 우리의 뇌가 의식적인 활동, 쉽게 말해 의도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작동하며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피로해 진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쉬지 않고 작동하는 우리의 뇌가 우리로 하여금 지쳤다고 느끼게 만들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피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몸을 쉬게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뇌를 쉬게 해야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낯설고 의심이 가는 말이지만 뇌과학을 연구한 사람답게 실제 연구 결과들을 이용해 자신의 말을 뒷받침한다.

 

본격적인 최고의 휴식법에 대한 이야기는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게 이 책이 다른 책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차이점인데, 가상의 인물과 공간, 상황을 이용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통해 최고의 휴식법을 알려주는 방법이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마시멜로 이야기> 같은 책들이 바로 이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딱딱한 줄글로 압박감을 주는 다른 책들과 다르게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사람들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여기서는 마인드풀니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사실 이야기 자체는 굉장히 단순하다.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주인공과 그를 이끌어주는 스승이 있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혼란스러워 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에 따르고 점점 더 긍정적인 변화를 맞는다. 중간에 다른 인물들과의 갈등, 그리고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있는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단순하다 못해 유치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접근을 더욱 쉽게 만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쉽게만 볼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작가가 뇌과학을 연구한 사람이기도 하고 마인드풀니스가 과학적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는 만큼 과학과 관련된 용어가 자주 언급된다. 그게 공신력을 높이는 장점도 되지만 비전공자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집중해서 읽다 보면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최고의 휴식법을 알 게 되는 것은 물론 우리의 뇌에 대해 더 깊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의심할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데로 한다고 해서 피로가 해소될까?’ 하고. 책에서 주인공이 끊임없이 불신하고 반발했던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 역시 그런 의심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심만 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인공은 문제가 바로 앞에 닥쳤기 때문에 거의 어쩔 수 없는 수준으로 스승의 이야기에 따랐으며 결국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 주의를 기울여 이 책을 읽고 한 번이라도 제대로 책에 따라 시도해 보는 것. 그게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알아보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나는 단지 내가 내 몫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한 발짝 내딛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자신만의 한 발짝을 내딛길 바랄 뿐이다.

 

 

 

 

P.S. 이 책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작가의 소설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를 읽을 때는 몰랐는데, <최고의 휴식>을 읽고 나니 소설에서 어려움에 처한 주인공 앞에 나타난 말하는 고양이가 주인공에게 가르쳐주는 행복해지는 방법이 이 마인드풀니스와 비슷하다. “지금 여기, 현재에 집중하라는 큰 명제는 물론 그를 위한 세부적인 방법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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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반짝이는 동안에 - 날_안아_주었던_바람의_기억들
안시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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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의 일이다. 평소처럼 서점 나들이를 갔다가 한 책을 발견했다. 신간 에세이 란에 있는 따끈따끈한 신작이었는데, 표지가 내 눈을 잡아끌었다. 하얗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끝이 내려간 순한 눈매, 노란 막대과자를 먹기 위해 크게 벌린 입. 전체적으로 귀엽고 앳된 모습이었다. 거기에다가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이라는 제목까지, 모든 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아기자기한 표지였다.

 

그길로 펼쳐든 책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겁 많은 작은 소녀가 세계여행을 떠나기까지의 두려움, 그리고 세계를 누비며 느낀 눈물, 슬픔, 감동, 행복. 무엇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작은 인연도 소중히 품에 안는 예쁜 마음, 여행이 지속될수록 점점 단단해지는 소녀의 모습이 나를 반하게 만들었다.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소녀, 아니 작가의 글에 이런 여행도 있구나, 이런 글도 있구나, 하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안시내라는 이름을 기억하며 그녀의 책이 나올 때 마다 꼬박꼬박 읽는 팬이 되었다. 그래봤자 2권이 전부인데다가 두 번째 책인 <우리는 지구별 어디쯤>은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던 그녀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실망했지만(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그녀와 관련된 SNS 페이지와 글에 좋아요를 누르며 꾸준히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이번 그녀의 신작 소식, ‘안시내라는 이름을 단 세 번째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소식에 굉장히 기뻤다. 더군다나 좋은 기회로 책을 얻을 수 있었고, 기대감에 잔뜩 들떠서 책을 펼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좋았다.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에서 느꼈던 감동이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담겨있었다. 작가는 여전히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품 안 가득 인연을 품었으며, 보다 예쁘고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함께하는 여행에 대해, 혼자 떠났지만 결국은 우리가 되는 여행에 대해 그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아 이야기했다. 사진 한 장 한 장, 문장 하나하나에 눈길이 가고 마음이 가는 그런 글이었다.

 

이런 철없는 인생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나는 내 인생이 실패로 굴러가도 좋다고. 그럼 내가 실패의 표본이 되어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지 않겠냐고. 어찌 됐든 의미가 있는 삶일 거라고.(37p)” 말하는 그녀. 어린 시절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아픔을 조심스럽게 털어놓는 그녀. 3년 전에 만났던 한 아이를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이로 존재할 수 있게 하고 또 그것이 그 아이의 사랑스러움이라고 말하는 그녀. 한없이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나눠줄 주 아는 그녀. 눈과 가슴과 추억에 담긴 소중한 이야기들을 하나 둘씩 풀어 읽는 이들에게 선물해주는 그녀. 정말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느 것 하나 마음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 한동안 울렁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해야했다. 이 벅찬 마음을 작가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당신의 글을 좋아한다고, 당신의 시선과 당신의 마음을 좋아한다고.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좋아하고 믿는다고. 책 속에서 그녀의 인연이 그녀에게 건넨 쪽지처럼 나 역시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여행, 인연, 행복, 따뜻함, 그 어떤 키워드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글, 그런 책. 늘 그래왔듯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책과 좋아하는 작가를 묻는다면 지체 없이 그녀의 책과 그녀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러한 내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져 보다 많은 이들이 그녀와 그녀의 책에 대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좋은 사람이고 좋은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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