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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면 그녀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최대한 편식 없이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선호하는 내용이 있는 것은 어쩔 수 가 없다. 장르 불문 내용 불문으로 손을 대려고
애를 쓰지만 나도 모르게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담긴 에세이, 내가 알고 싶은 지식이 담긴 사회과학서적,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소설을 더 자주 찾게 되는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선호하고 많이 찾게 되는 것은 바로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소설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따뜻함이 묻어 나올 것 같은 잔잔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흔들리면서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주인공과
그의 예민한 심리와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글을 만나면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공감하고 응원하고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다가 끝에는 먹먹한
가슴과 위안이 남게 되는 그런 글이 내가 좋아하는 글이자 쓰고 싶은 글이다. 책으로 꼽자면 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별>, 최시한
작가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아사이 료 작가의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가, 작가로 꼽자면 요시모토
바나나를 필두로 한 일본의 여류작가들이 내가 지향하는 모습이다. (물론 다른 쪽의 선호도 있다. 예를 들어 독특한 분위기와 상상력을 가진 김중혁
작가나 오츠이치 작가의 책이라던가.)
그런 의미에서 <4월이 되면 그녀는>은 읽는 것이 굉장히 즐거운 책이었다. 흔들리고 불안해하지만 안간힘을 쓰며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으려고 하는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심리와 일상을 유려하게 그려내는 문장들이 이 책에 모두 있었다. 짙고 풍부한 감성이 묻어나는 서정적인
이야기는 독자를 그 속에 끌어들여 매 순간을 함께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분명 '에. 그럼 지루하겠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다. 내가 이 책에 감탄한 것은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이야기는 자칫 지루하다는 감상을 낳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긴 하지만, 나 역시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이
책은 영화 제작자라는 작가의 이력답게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구조와 묘사와 대사의 적절한 배치 등을 이용해 독자들이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이력은 또 다른 힘을 발휘하는데,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 속에 감각적으로 담아내며 공감을 일으키고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와 음악 같은 문화. 주인공들이 '영화'를 통해 시간을 공유하는 만큼 여러 가지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직접적으로 제목을 언급하지 않은 작품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아, 그 영화'하고 생각하게 된다. 영화의 내용과 감상에
대해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반박하면서 주인공들의 대화에 집중하게 된다. 사랑과 결핍, 소통 등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그 모든 것들을 책 속에 담아낸다.
헤어진 지 9년 만에 볼리비아의 우유니에서 편지를 보내온 첫사랑. 그리고 그 편지를 시작으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사랑'에 대해,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하고 깨닫게 되는 남자와 여자. "'연애가 사라진 세계'에서 사랑을 찾으려 발버둥 치는 남녀의 이야기가 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사랑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사랑스럽다. 찬란했던 그 순간, 그 감정을 떠올리고 현실을 직시하게 된 그들이
다시 그것을 되찾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그들이 되찾을 수 있기를, 우리도 그렇게 사랑스러워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읽게 되는 책 <4월이 되면
그녀는>. 감성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수수하면서도 매력적인 이 책이 저자의 첫 작품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에 이어 또
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리라 확신한다. 저자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