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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 필립 K. 딕 단편집
필립 K. 딕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7월
평점 :
독자들을 완전히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선으로 이끌어 주는 작가가 있다. 그들은 예언자 혹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도 되는 양 남들이 보지도 생각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단번에 매료시킨다. 뛰어난 통찰력과 글 솜씨로 신선한 충격과 깨달음, 성찰, 숙고의 시간을 선물하는 작가의 힘은 그야말로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나는 그 대표적인 예로 <나무>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를 이야기 해 왔었다. 작가는 매 작품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보여줬고, 책이 끝나고 나서도 그 세계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었다. 그와 같은 작품, 작가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 펼쳐 든 책 한 권이 이러한 확신을 흩트려 놓았다. 바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필립K. 딕 작가였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로 만들어진 만큼 장편일거라 지레짐작하기 쉽지만 실상은 단편 작품집으로, 영화와 똑같이 “범죄예측시스템”을 소재로 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역시 그 속에 수록된 짧은 단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만 생각하고 책을 가져온 사람은 실망할 수 도 있지만, 그건 책을 읽음과 동시에 해결될 것이다.
이 책에는 총 8개의 작품이 들어있다. 즉 각각 다른 8개의 세계가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이다. 전문 수리공만이 다룰 수 있는 ‘스위블’에 의해 사상과 생활, 생명이 통제당하는 세계(<스위블>), 세 명의 예언자들에 의해 범죄가 일어날 미래를 예측해 예비 범죄자들을 통제하는 세계(<마이너리티 리포트>),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세계(<물거미>)…. 그야말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세계가 연속해서 모습을 드러낸다.
게다가 그 속에는 불완전함으로 인해 지독한 환각증상에 시달리는 남자들(<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나이>), 끊임없이 ‘인간성’을 시험당하는 인간과 복제인가들(<우리라구요!>), 사랑을 위하는 외계인과 성공을 위하는 인간(<그래, 블로벨이 되는 거야!>) 등 우리와 같으면서도 다른,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들이 있다. 전부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 허구의 존재지만 책을 읽는 순간 모든 것이 실체를 가지고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이들에게 생명성을 부여하고,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사로잡힌다. 그만큼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는 선명하고 강렬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대단한 점은 작가가 단순히 창조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험 가득한 신비로운 세계를 자랑하듯 늘어놓는 대신 그는 그 속에 우리사회의 어둠과 과제를 은근하게 담아낸다. 현재를 통해 미래를 그려내고, 또 그 미래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게 만든다.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에 감탄하다가도 섬뜩함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특히 <우리라구요!>와 <그래, 블로벨이 되는 거야!>는 예상 못한 전개에 놀람과 동시에 ‘인간성’과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든다.
호기심과 긴장감을 유발하는 구성, 훅 하고 빨려 들어가는 흐름,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들며 긴 여운과 생각의 꼬리를 남기는 마무리, 그리고 낯설면서도 매력적인 미지의 세계. 2002년에 나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집사재 출판사에서 나온 책 기준. 작가가 1982년에 사망한 것을 보아 이 작품이 실제로 만들어진 것은 훨씬 더 전의 일이다), 아니 오히려 시간을 초월했기 때문에 더욱 훌륭한 작품이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와 <나무>에 이어 필립K.딕 이라는 작가의 이름과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작품의 제목이 완벽하게 각인되는 기회였다. 작가지망생으로서, 독자로서 무한한 존경심을 느끼며, 앞으로 한 동안은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과 작가를 추천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