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농장의 소년

에드거 소텔 이야기 2
데이비드 로블레스키 지음, 권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이런 경고 문구로 서평을 시작하는 게 좀 그렇네요. 이런 문구가 나오는 서평은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써야할 것 같습니다.

주의-스포일러 약간 나옵니다.



에드거 소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생각나는 고전이 있습니다. 햄릿입니다.(이게 스포일러 입니다.^^) 이 사실을 느낀 후부터 독서 방향은 한 곳으로 집중되었습니다.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가!

어릴 때 고전을 꽤 읽었습니다. 대부분 일본 책을 베낀 아동용 축쇄본인데,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축쇄본이란 사실도, 일어 중역본이란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후 완역본을 하나씩 읽어나갔는데 그냥 축쇄본으로 끝낸 책들도 있습니다. 햄릿 같은 책이 대표적입니다. 당장 칼을 뽑아 피를 보지 않는 주인공이 몹시 못마땅했었거든요. 그래서 읽지 않았습니다. 비극적인 결말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유난히 정이 가는 캐릭터와 마주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에드거 소텔이 그랬습니다. 너무 정이 가서 소년이 불행해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찮아요. 개를 키우면서 부모님과 행복하게 사는 소텔의 삶에 숙부가 끼어들면서 먹구름이 낍니다.

주의-진짜 스포일러 나옵니다.


읽는 내내 에드거 소텔을 응원했습니다. 그래서 햄릿과는 다른 결론이 나기를 바랐습니다. 실컷 응원했는데 마지막에 소년이 죽는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았습니다. 햄릿은 어머니가 숙부와 결혼하는 바람에 왕위를 잃었지만 에드거 소텔이 잃은 것은 개농장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개농장 때문에 죽고 죽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다시 주의-스포일러 나옵니다.

읽는 내내 불안했는데 결국 비극적으로 끝나네요. 울컥 했어요. 감정을 삭이느라 서평 쓰는데 오래 걸렸습니다.
자, 여기 현대판 햄릿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극적 결말을 감수할 수 있다면 읽어 보세요. 잘 쓴 글입니다만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덧.
프롤로그 한국이 등장해서 살짝 놀랐습니다.

탐정과 범인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ㅣ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을 꽤 재밌게 읽었습니다. 연쇄살인범보다 더 무서운 소년 탐정 김전일이 스포일러를 했기 때문에 후반부에는 트릭을 눈치 챘는데 그래도 좋았어요. 홈즈에 대한 이야기처럼 트릭 외적으로 재밌는 구석이 꽤 많았기 때문입니다.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는 점성술 살인사건보다는 좀 못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기본은 하는 소설이라 일본 신본격 좋아하는 분들은, 특히 아야츠지 유키토 소설 좋아하는 분들은 재밌게 읽을 듯하네요.

읽는 도중에 범인을 눈치 챘습니다. 책에 제시된 증거로 추리를 해서 알아낸 건 아닙니다. 읽다가 보니까 범인은 그 사람일 수밖에 없겠더군요. 범인을 알아냈으니 트릭도 알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탐정이 설명할 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흠, 그런 방법을 썼군요.^^

훗카이도 섬의 끄트머리에 괴상한 저택이 서 있습니다. 갑부 하마모토가 재미 삼아 지은 저택인데, 이 집은 기울어져 있습니다. 방문객들을 놀리려고 일부러 그렇게 지었다는데 그는 기울어진 저택 옆에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탑을 세워서 생활합니다.

하마모토는 거래처 임원과 지인을 초대해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엽니다. 재벌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탑에 올라 눈 덮인 정원을 바라보며 수수께끼 풀이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다음 날 밀실에서 손님 중 하나가 죽은 채로 발견되면서 연휴는 피로 물듭니다.

살인이 의외로 빨리 시작되는데 그에 비해 탐정의 등장은 의외로 늦습니다. 중반부까지 경찰이 수사를 하는데 삽질을 하는 과정이 눈물겹네요. 그때 등장한 우리의 탐정 미타라이 기요시는 어릿광대처럼 굴면서 사람들의 혼을 빼놓습니다.

339쪽에 보면 독자에게 도전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독자에게 도전한다. 재료는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진상이 간파되지 않기를!'
간파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마지막 구절이 귀엽네요.

그 사람을 죽인 건 그러려니 하는데 그 사람까지 죽인 건 너무 했다 싶네요.

뛰어난 작가의 뛰어난 데뷔작

전쟁 전 한 잔 ㅣ 밀리언셀러 클럽 4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전쟁 전 한 잔은 데니스 루헤인의 데뷔작으로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4번째 작품이 벤 에플렉이 영화로 만들었던 가라 아이야 가라였고 5번째 작품이 비를 바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니까 거꾸로 소개가 되는 셈입니다. 먼저 출간된 두 작품 다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데니스 루헤인은 역시 글을 잘 쓰네요. 전쟁 전 한 잔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데뷔작이라 미숙한 점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솜씨가 능숙합니다. 의뢰인의 등장부터 마지막 총격전까지 술술 읽힙니다. 가벼운 작품도 아닌데 쉽게 읽히는 게 신기합니다. 인종 차별, 갱들의 전쟁, 아동 학대, 정치인의 부패, 빈부 격차, 가정 폭력 등 웬만한 사회문제는 거의 다 건드리는데 말이죠. 여러 문제를 스릴러 틀 안에 집어넣는 솜씨가 매끄럽습니다.

패트릭 켄지는 주 상원을 지배하고 있는 스털링 멀컨 상원의원의 의뢰를 받게 됩니다. 청소부가 상원의 중요한 자료를 훔쳐서 잠적했다는 겁니다. 켄지는 자료를 회수하는 임무를 띠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를 찾아낸 켄지는 일이 단순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사건은 단순한 도난 사건을 넘어서 보스턴 시 전체로 확산되며 피를 부릅니다.

후속작인 가라 아이야 가라와 비를 바라는 기도를 먼저 읽었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관계나 이후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좋았던 점도 있었고 나빴던 점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관계 특히 켄지와 제나로의 사연을 자세히 알게 되어서 좋았고, 누가 죽지 않는지 미리 알았기 때문에 긴장이 약간 떨어진 점은 아쉬웠습니다. 후속권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이 전작에서 죽을 리는 없으니까요.^^

켄지&제나로 시리즈는 전부 다섯 권인데(현재 시점에서), 역자 후기를 보니 올 여름에 2번째, 3번째 이야기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시리즈가 다 나오는 셈이죠. 살인자들의 섬, 미스틱 리버 같은 독립 타이틀까지 합치면 데니스 루헤인 작품은 거의 소개가 되는 셈인데, 다작을 하는 작가가 아닌 게 아쉽네요.

덧.
밀리언셀러 클럽 작품들은 역자 후기 붙어 있는 경우가 드문데 조영학 님은 후기 쓰는 걸 즐기시는지 후기가 자주 보입니다. 후기 쓰는 일도 만만찮을 텐데 말이죠. 후기 쓰는 취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싱그런 연애담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3월

설정이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일본의 고도인 교토에 위치해 있는 네 개 대학교에 특이한 동아리가 있습니다. 교토대학 청룡회, 리쓰메이칸대학 백호대, 교토산업대학 현무파, 류코쿠대학 피닉스. 이름만 들어도 독특한데 내용은 더 독특합니다.

이들 동아리는 귀신을 부립니다. 그들은 길이 20센지미터의 작은 귀신 1000마리를 가지고 다른 동아리와 전쟁을 벌입니다. 전쟁이라고 하면 심각하게 들리는데 사실은 놀이에 가깝습니다. 연고전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호루모라고 불리는 그 전투를 중심으로 글을 쓰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의외로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는 싱그러운 연애담입니다. 연애담의 주인공들이 호루모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긴 합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호루모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프롤로그 뒤로 6편의 단편이 담겨 있습니다.

첫 번째 풍경 가모가와 (소)호루모는 현무파의 두 아가씨 이야기입니다. 양대 시즈카라 불리는 쇼코와 사다코는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나지 못해서 남자 친구가 없습니다. 한 번도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는 두 사람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세 가지로 가모가와 강변의 바퀴벌레 커플들, 발끝의 냉기, 남자 마음을 꼽고 기념일에는 반드시 두 사람이 함께 지낼 것을 서약합니다. 작품 성격상 서약이 지켜질 것 같지는 않네요.^^ 스토리는 예상대로 진행됩니다. 쇼코가 다른 여자를 보고 하는 평이 재밌습니다. '뭐야, 쟤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만 하잖아.' 요런 구절 말입니다.

두 번째 풍경 로마풍 휴일은 성격상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지 못하는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글 속에 등장하는 퍼즐은 많이 본 거네요.

세 번째 풍경 연애편지와 레몬은 이상하게 느껴지는 점이 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시간상의 격차 때문이더군요.

네 번째 풍경 도시샤대학 황룡진은 유일하게 호루모의 외부인이 등장하는 단편입니다. 도모에는 우연히 호루모에 대해서 쓴 글을 발견하고 그게 뭔지 추적에 나섭니다. 요기에 등장하는 연애담은 조금 질척거리는 느낌이 납니다.

다섯 번째 풍경 마루노우치 정상회담은 연배가 조금 높네요. 다른 단편의 주인공들은 20살 21살 정도로 보이는데 여기 등장하는 남녀는 26살 정도로 보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직장인들이 소개팅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책의 배경을 이루는 호루모는 판타지인데 내용 자체는 현실적이어서 판타지라는 느낌이 잘 나지 않습니다. 도시에 사는 대학생들의 싱그러운 연애담이 주가 되는 단편집이거든요. 헌데 여섯 번째 풍경 나무 궤 사랑은 판타지 느낌이 많이 납니다. 유일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담긴 단편이기도 합니다.

호루모라는 게 참 흥미롭습니다. 요걸 진지하게 다루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게 왜, 그리고 어떻게 시작되는지 작품 속에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배경 역할에 머물 뿐이라 아쉬웠습니다. 호루모를  주재료로 요리하면 더 맛 있는 요리가 나올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 생각을 하며 해설을 읽어보니 작가의 데뷔작이 그거네요. 호무로 게임을 중점적으로 다룬 장편. 제 생각에는 이게 더 재밌을 것 같은데 왜 속편을 먼저 냈나 모르겠어요.(독립적인 내용이라 따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SF 단편집

U, Robot 유, 로봇 - 한국 SF 단편 10선
이영수(듀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9년 2월

우선 표지에 대해서 한 마디. 표지 좋네요. 마음에 듭니다. 내용은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은 단편집이 대개 그렇듯,  어떤 작품은 아주 마음에 들고 어떤 작품은 무난하고 어떤 작품은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유 로봇에는 열 명의 작가가 쓴 열 개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재작년부터 한국 작가의 장르 단편집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 그 덕에 익숙한 이름이 생기고 있습니다. 나름 유명한 분들이라 아실 분들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작품 성향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유 로봇-표제작입니다. 표제작을 읽을 때는 기대치가 높기 마련입니다. 단편집에 실린 작품 중에서 가장 좋은 작품이기 때문에 표제작으로 세웠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이 작품의 경우는 꼭 그런 건 아닌 듯합니다. 작품이 나쁘다는 의미로 한 말은 아닙니다. 제목이 워낙 흥미를 끌어서 그만큼 기대가 컸다는 뜻입니다. 글을 읽기 전에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을 빗댄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읽다 보니 로봇3원칙도 언급되고, 무관한 작품이란 생각은 안 드는데 그렇다고 아시모프가 많이 생각나지는 않습니다.
미래, 로봇 공학이 발달해서 인간과 분간하기 어려운 로봇이 나오고 있습니다. 당연히 반대하는 사람이 생기겠죠. 유 로봇은 그런 사회적 배경을 깔아놓고 로봇을 자식으로 키우는 과학자와 자신이 로봇임을 자각하고 성장하는 아이의 유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괜찮은 작품입니다.

박시은 특급-유쾌한 단편입니다. 주인공과 각을 세우는 남자가 너무 전형적이라는 점만 빼면 다 좋았습니다. 외계인과의 마지막 대화 부분은 이런 식으로 갈 것 같다고 예상한 내용인데 그래도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박시은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잘 가거라 내 아들 엄마는 널 사랑했단다-흠, 그렇다는군요.^^

파라다이스-박애진 님 글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취향에 맞지 않았습니다. 작품 속에서 이유가 언급되지는 않는데 지구는 황폐화되었고 사람은 모두 죽었습니다. 달 기지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조종사를 지구로 파견해서 자원을 뽑아가고 과거의 유물도 회수합니다. 애인과 헤어진 주인공이 그 작업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천사가 지나가는 순간-예전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드라마가 있었죠. 이상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작품 속에서 그 뜻이 나옵니다. 개와 늑대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진 황혼 무렵을 뜻하는 프랑스 말이었군요. 아군과 적군을 구별할 수 없는 혼란의 시간이란 속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도 프랑스 말인데, 뜻은 직접 읽으면서 알아보세요.^^
로봇을 만드는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어떤 사건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고객만족센터로 자리를 옮긴 연구원의 이야기 입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우주류-예전에 어디에서 한 번 읽었던 글입니다. 기억력이 날로 쇠퇴해가는 덕분에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날 뿐 스토리는 생각나지 않아서 처음 읽는 것처럼 읽었습니다. 바둑에 빗대서 우주에 대한 갈망을 풀어놓은 작품입니다.

무기여 잘 가거라-독특한 작품입니다. 남자 주인공 처지가 참 묘하네요.

미래관리부-듀나님 작품입니다. 미래의 후손이 등장해서 현재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듀나님 작품을 읽다보면 동성애 관계에 놓인 사람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일부러 그런 건지 궁금하네요. 듀나님 작품답게 기본은 합니다.

다섯 번째 감각-크게 재밌진 않았는데 설정이나 소재를 풀어가는 솜씨가 좋았습니다.

매뉴얼-제품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봅시다.

여러 단편집에 중복적으로 이름을 올리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 작가들의 장편이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