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스호퍼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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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사카 고타로의 글은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아주 재밌는 글과 조금 재밌는 글.^^ 그래스호퍼는 저 중간쯤에 위치한 글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 글은 킬러들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밀쳐서 죽이는 킬러와 칼로 찔러 죽이는 킬러, 그리고 자살을 유도하는 킬러를 중심으로 사건이 발생하는데 거기에 평범한 일반인이 복수를 하러 끼어들면서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뺑소니로 아내를 잃은 스즈키는 범인을 찾아내지만, 그의 엄청난 배경 때문에 법의 처벌에 그를 맡길 수 없습니다. 결국 개인적인 복수를 결심한 스즈키는 수상쩍은 회사에 계약 사원으로 입사합니다. 범인은 그 회사 사장의 아들입니다. 기회를 엿보며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던 스즈키는 임무 수행 중에 회사의 의심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별 연관없어 보이는 사건이나 인물이 우연 혹은 계획에 의해서 맞물리는 이사카 고타로 식 구성이 여기서도 나타납니다. 자칫 잘못하면 작위적이다, 혹은 말이 안 된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는 구성인데 작가는 특유의 재치있는 글솜씨로 독자를 납득시킵니다.

작가는 프로 킬러끼리 붙으면 어떨까, 재밌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을 구상했다고 역자 후기에 적혀 있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불꽃이 튀지는 않네요. 심각, 잔혹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이사카 고타로의 성향을 감안하면 이 정도 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조금 아쉽기도 하네요.^^

그래스호퍼를 보면 사회 비판적인 시선이 종종 나오는데 그 중에서 투표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가슴에 와 닿네요. 투표권을 얻으려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했는지 아느냐. 투표를 제대로 해야 된다, 뭐 이런 이야기 말입니다. 정권이 바뀌지 않아서 사회가 썩는다는 말도 있는데 일본은 근래 정권이 바뀌었죠. 이사카 고타로는 선거 결과에 만족했으려나, 괜히 궁금해지네요.

덧.
이 글은 132회 나오키상 후보작입니다. 5번이나 후보에 올랐다는데 수상은 못했나 봅니다.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132회 수상작은 가쿠타 미쓰요의 대안의 그녀네요.
그래스호퍼를 끝으로 이사카 고타로의 글은 거의 번역되어 나온 것 같습니다. 그가 신작을 빨리 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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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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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은 일본본격추리의 결작이라고 꼽히는 작품입니다(그렇다는 군요.^^).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0주년 기념으로 베스트를 꼽았을 때 1위에 오른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독특한 설정도 기대를 부풀리는데 일조했습니다.  


 이 작품은 죽은 시체가 살아나는 괴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미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킵니다. 본문에서도 언급이 되는데 시체가 살아나면 도대체 살인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죽여 봐야 다시 살아날 텐데 말이죠. 게다가 살아난 피살자가 범인을 지목할 것이기 때문에 추리고 뭐고 할 것도 없습니다. 
 

본격추리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설정을 가지고 작가는 사건을 진행시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작가는 말이 되는 이야기를 꾸며냈습니다. 결말에 이르면 모든 단서들이 매끄럽게 맞물리면서 의문이 해소됩니다.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리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다지 재밌지가 않아요. 지루한 느낌이 들어서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미스터리 전문가 몇 분이 이 작품을 걸작이라고 평하셔서 제가 잘못 읽었나, 잠시 생각해 봤는데 그냥 제 취향이 아니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그냥 그랬습니다만, 명성이 자자한 작품이니 미스터리 좋아하는 분들은 한 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펑크족 청년 그린이 탐정 역할을 하는데 독특함으로 따지자면 그를 따를 자가 없을 듯합니다. 얼마나 독특한지는 직접 확인해 보세요. 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배경이 미국이고 등장인물이 거의 백인인데(주인공 남자는 일본 피가 절반 섞인 혼혈입니다), 생각이나 하는 행동은 전부 일본인입니다. 일본 작가가 일어로 쓴 작품이고 등장인물 언행도 지극히 일본스러운데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아무래도 현실의 공간인 일본을 배경으로 하면 독자가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설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미국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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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특별 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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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번역되어 나왔을 때 평이 아주 좋았습니다. 호평에 이끌려 읽어보려 했는데 막상 두꺼운 책을 대하고 보니 독서욕구가 사그라지더군요. 이 책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요약하고 고쳐 쓴 개정판입니다. 그림이 많고 쪽수도 160쪽 정도여서 부담없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재밌네요. 과학 교양서 중에는 이 정도로 쉽고 재밌게 쓰인 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과학 교양서를 몇 권 읽지 않아서 큰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닙니다.^^).

지식을 쌓으려고 교양서를 읽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지식보다는 재미로 읽는 쪽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저에게 알맞은 교양서였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에 치중하는 오락소설보다 재밌지는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과학교양서치고는 재미있다는 말입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금방 읽을 줄 알았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다 읽는데 무려 4시간이 걸렸습니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지리학, 생물학, 물리학, 화학, 등등 과학의 수많은 분야가 거론되고 그만큼 생각할 거리도 많습니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에게 사주면 아주 좋을 것 같네요. 초등학교 저학년은 좀 무리일 것 같고 고학년부터는 괜찮을 듯싶습니다.

책이 쉬워서 이해하는 데 무리한 구석이 없었는데 시공간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은 골치가 아프네요. 책에도 나오는데 아인슈타인 이후의 현대 과학은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멀리 가버린 감이 없지 않습니다. 전문가들도 다른 분야는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다방면의 천재는 나오는 시절은 이제 지나간 듯싶습니다.

160쪽 분량에 이토록 많은 요소를, 그것도 쉽고 재밌게 추려 넣은 작가의 능력이 놀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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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의사 선생님
도비이 루츠 글.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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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룩말이 어떻게 의사를 할지 상당히 의아했는데 읽어보니 납득이 가네요. 고민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얼룩말 의사를 찾아가서 상담을 하고, 동물원의 동물을 보고 겪으면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형식의 글입니다. 책에 나오는 문제는 아이가 한 번쯤은 겪을 만한 문제로 보여집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해법이 나름 일리는 있는데, 현실에서 적용하면 잘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처음 등장하는 아이는 편식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야채가 싫다는군요. 이것 참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제 조카도 야채를 거의 먹지 않습니다. 고기 좋아하고 밥도 백미만 먹고 파, 양파는 작은 조각도 골라냅니다. 야채 먹이려면 한 바탕 소동을 벌여야 해요. 책에서처럼 해결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조카 버릇은 좀체 고쳐질 것 같지 않네요. 어렸을 때 야채 싫어하다가 커서 좋아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하던데 조카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제 경우는 어렸을 때 파를 무척 싫어했는데 지금은 잘 먹습니다.

왕따 문제에 대한 해법은 잘 되지 않을 것 같네요. 왕따 당하는 아이가 변해봐야 가해자가 변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죠. 인사를 잘하고 친구에게 다가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면 왕따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지도 않았겠죠. 용기를 내라고 말하는 대목이 그나마 나아 보이는데 제가 보기에는 용기보다는 깡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네가 나를 밟으면 나도 너를 밟겠다는 보복정신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역효과가 나서 참담한 결과를 빚을 수도 있습니다만 맥없이 당하는 것보다는 낫죠. 정 안 되면 혼자 노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흠, 너무 무책임한 말인가.^^

자기 머리가 나쁘냐고 고민을 상담하는 아이도 나오는데 아파트 놀이터에서 생긴 일이 생각나네요.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이 나쁘다고 한 아주머니가 말하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공부 못하는 게 머리 나쁜 거라고 잘라 말했다가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저자의 해법을 단순화 시키면 전자의 입장이네요. 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노력하면 성적이 오르기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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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 밀리언셀러 클럽 104
리 밴스 지음, 한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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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작가가 쓴 금융 스릴러라고 하기에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네요. 주인공이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점만 빼면 일반 스릴러와 별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피터 타일러는 월 스트리트의 투자 회사에서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장의 신임을 얻고 있고, 동료의 신망도 두텁습니다. 가정이 약간 비걱거리는 것만 빼면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결혼이 파탄날 수도 있겠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삶이 흔들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직장이 탄탄하고 성격도 강인해서 이혼쯤은 잘 헤쳐나갈 사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내가 괴한에게 살해당하면서 순탄한 그의 삶에 위기가 닥칩니다. 부부의 별거를 눈치 챈 경찰은 그를 용의자로 몰아붙이고 피터의 안정된 삶은 뿌리채 흔들립니다.

미국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아내가 살해당한 경우 대개 남편을 제1용의자로 꼽더군요. 형사가 아내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는 남편의 알리바이를 캐묻고(용의선상에서 제외시키기 위해서 묻는다고 부드럽게 말합니다만 엎어치나 매치나 그게 그거죠), 범인 취급에 격분한 남편이 대드는 장면은 많이 봐서 익숙합니다. 현실에서 봤을 때 남편이 실제 범인이 경우가 많으니 사실적인 묘사라고 볼 수 있는데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클리셔처럼 느껴집니다. 반환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쪽은 상황이 꽤 심각합니다. 형사가 집요하게 추궁하고 그에 대한 피터의 반격도 격합니다.

피터가 경찰의 공격을 제법 잘 피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피터가 가난한 사람이었으면 훨씬 더한 곤경에 처했을 겁니다. 직장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해있고,  이웃과 언론의 눈초리도 차가워서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일단 감옥행은 피했지만 삶은 조금씩 가라앉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말라 죽을 것 같습니다. 그때 의외의 곳에서 단서가 튀어나옵니다. 아내의 죽음이 단순한 강도 살인이 아님을 눈치챈 피터는 범인을 추적하고 엄청난 돈이 얽힌 흑막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들었는데 글이 탄탄한 편입니다. 빠르게 진행되는 사건 사이사이로 과거 회상이 겹쳐지면서 이야기가 풍성해지는데 그것 때문에 늘어지는 느낌도 듭니다. 작가가 재미를 위해서 전력투구한 느낌이 드는데 꽉 찬 스트라이크는 아니어도 최소한 볼은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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