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 스토리의 의미는?

추상오단장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단편이 실려 있다는 소리를 듣고, 추상오단장은 단편 소설이 다섯 편 수록된 연작 단편집인 줄 알았습니다. 오단장이라는 제목 때문에 그런 연상을 한 것 같은데 단편집이 아니라 장편 소설이네요.

작품 안에 단편이 다섯 편 나오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 짤막한 다섯 이야기가 좀 묘해서 모두 리들 스토리입니다. 결말을 적지 않은 소설을 리들 스토리라고 한다는군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는 점에서 열린 결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수께끼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고요.

개인적으로 열린 결말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리들 스토리는 아예 결말이 없습니다. 딱 떨어지는 결말을 좋아하는 저한테 리들 스토리는 기피 대상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추상오단장은 리들 스토리가 아닙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추상오단장은 리들 스토리 형식을 취하고 있는 다섯 단편의 숨겨진 의미를 밝혀내는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시미츠는 등록금이 없어서 휴학을 하고 백부의 고서점에서 얹혀삽니다.(이 부분에서 요즘 한국 대학생들 처지가 떠올랐습니다. 등록금 정말 비싸더군요. 제가 지금 대학 다녔으면 돈이 없어서 졸업 못했을 겁니다.). 카운터도 보면서 백부를 돕긴 하는데 열심히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무력하게 시간을 보내는 느낌입니다. 백부도 열심히 일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파친코를 하러 종종 가게를 비웁니다. 

어느 날 아가씨가 책을 구하려고 고서점을 방문합니다. 앞선 언급한 리들 스토리가 실린 책입니다.
요시미츠는 아가씨의 의뢰로 그 단편들을 구하러 다니다가 단편을 창작한 키타자토 산고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다섯 단편이 의미하는 게 뭘까요.
그게 궁금해서 열심히 읽었습니다.

책날개에 보면 요네자와 호노부는 인사이트 밀을 발표한 이후 차세대 주목작가로 급부상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저도 인사이트 밀을 읽고 요네자와 호노부를 주목하게 됐습니다. 인사이트 밀 이후 홈런을 펑펑 날릴 것 같았는데 기대에 미지는 못하네요. 덧없는 양들의 축연, 추상오단장 모두 재미있는 책입니다만 뭔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결정적 한방이 느껴지지 않는달까.^^

덧. 요네자와 호노부의 부러진 용골이 6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군요.

트렁크의 시체

트렁크 뮤직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5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5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3월

할리우드의 삼류 영화 제작자가 트렁크에서 죽은 채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머리에 총알 두 방을 맞은 모습이 마피아의 처형을 연상시켜서 형사들은 조직 폭력 쪽에 초점을 맞춰서 수사를 진행합니다.

라스트 코요테의 사건 이후 1년 동안 살인전담팀을 떠나 있었던 해리 보슈는 복귀 이후 처음으로 맡게 된 사건에 열의를 보입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마음에 들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전임과는 달리 현 상관은 믿고 일을 맡겨줘서 수사 분위기는 좋은 편입니다. 주변, 특히 상관과 불화하며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던 예전과 비교하면 한결 편해진 셉이죠.

수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튀어나와서 편한 게 오래가진 않네요.
하긴 계속 편하게 가면 재미없죠.^^

트렁크 뮤직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과거에 나왔던 인물의 재등장입니다. 그 작품을 읽었을 때 그 사람의 미래가 궁금했었는데 그렇게 풀렸군요.(스포일러 방지 차원에서 대명사를 남발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야기가 풍성해지는데 이런 게 시리즈의  묘미라고 생각합니다. 독립 작품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재미죠.  

해리 보슈는 고독한 늑대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홀로 다니며 총격전을 벌리고 힘으로 범인을 제압할 것 같다는 인상을 품게 되는데 수사를 진행하는 걸 보면 예상과 달리 정석을 밟아갑니다. 현장 검증과 부검을 통해서 얻어낸 지문과 족적 같은 과학적 증거물과 탐문과 심문을 통해서 얻어낸 단서를 연결해서 진상을 밝혀냅니다. 초인적 형사나 탐정과는 거리가 있는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국내에 번역된 여러 미스터리 시리즈 중에서 해리 보슈 시리즈가 제일 재밌습니다.(언제 또 바뀔지 모르겠지만 트렁크 뮤직을 막 읽은 현 시점은 그렇습니다.^^).
현재 해리 보슈 시리즈는 7편이 번역되었는데 제가 느낀 재미 순으로 1등부터 나열하면 라스트 코요테, 트렁크 뮤직, 블랙 에코, 유골의 도시, 시인의 계곡, 블랙 아이스, 콘크리트 블론드 순입니다.

꽃

회귀천 정사 ㅣ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책이 나오기 전에 입소문이 돌았던 작품입니다. 출간을 기다리는 미스터리 팬이 많았고, 저도 기대를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데, 책이 예쁘게 나왔네요. 표지, 책등, 띠지가 잘 어울립니다.

회귀천 정사는 미스터리 단편집입니다.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중심 테마가 사랑입니다. 책의 장르가 미스터리여서 사랑이 치정 쪽으로 흘러가는군요. 위험하고 꿉꿉하고 때로는 음습해 보입니다. 로맨스였다면 예쁘게 포장되었을 텐데 말이죠.

내용은 격정적인데(사람이 죽어나가니까 격정적일 수밖에 없지요.), 이야기 흐름 자체는 잔잔하고 느긋하게 느껴집니다. 서정적이기도 하고요. 화자가 치정에 직접 얽히는 게 아니라 타인의 치정을 깨닫는 형식이어서 그런 느낌이 드는 모양입니다. 씁쓸하게 곱씹는 맛이 있어요.

각 단편을 읽고 나면 아 그랬었구나, 그래서 저런 사건이 일어났고, 그래서 저런 행동을 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등나무 향기-홍등가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을 다룬 작품입니다. 화자가 사건을 담담하게 회상해서 연쇄 살인의 긴박감은 느껴지지 않지만 대신 애상적인 느낌을 줍니다.

도라지꽃 피는 집-신참 형사가 유곽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수사하면서 발생한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전에 xx검사 어쩌고 하면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글에서 본 트릭이 나옵니다. 이 단편을 보고 지은 글인지, 아니면 이 단편이 그 이야기의 영향을 받은 건지, 그도 아니면 단순한 우연인지 궁금하네요.

오동나무 관-고용살이하던 주물공장에서 쫓겨난 쓰기오는 폭력조직의 소두목 누기타 밑으로 들어가서 그의 손발 역할을 합니다. 그러다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데 그때는 왜 그런 명령을 받게 되었는지 이해를 못하다가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흰 연꽃 사찰-아주 어렸을 때 살인을 목격한 주인공이 오랜 기간 그 기억으로 고민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진실을 깨달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회귀천 정사-대단히 유명한 단편이라고 들었습니다. 두 번에 걸친 자살 미수 사건에 읽힌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호평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젊은 형사와 여탐정

저택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권일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4월

히가시가와 도쿠야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입니다. 역자 후기를 보니 작년부터 작가의 이름이 여러 출판사에서 거론되었다고 하는군요. 무슨 상 후보에 들었기 때문이라는데, 그 상이 서점대상이었나 봅니다. 2011년 서점 대상을 받았군요. 저택섬이 받은 건 아니고 '미스터리 풀이는 디너 후에' 라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서점대상을 받았으니 조만간 번역되어 나오겠죠.(서점대상 수상작 중에서 재밌는 작품이 꽤 많죠.).

저택섬은 본격 추리물인데 거기에 유머가 첨가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에 등장하는 유머가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작가와 저의 유머 코드가 다른 것 같더군요.^^

천재 건축가로 불리는 주몬지는 한적한 섬에 저택을 짓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추락사한 게 분명한데 어디서 떨어졌는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노련한 형사가 수사를 지휘합니다만 사건은 미궁에 빠집니다.

6개월 후, 피해자의 부인은 남편이 죽었을 때 저택에 머물렀던 사람들을 다시 초대합니다. 초대자 명단에 젊은 형사와 여탐정이 포함된 걸 보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로써 본격 미스터리의 무대가 마련됩니다.

한정된 공간(한적한 섬에 건립된 육각형의 기이한 건물), 한정된 용의자(그때 머물렀던 사람들). 그리고 고립. 분명히 저 속에 범인이 있습니다. 본견 미스터리 좋아하는 분에겐 꽤 익숙할 설정일 겁니다.

초청인 사이에 끼어든 형사와 탐정은 콤비를 이뤄 사건을 수사합니다. 작품의 유머는 대부분 남자 형사와 여자 탐정 사이에서 발생합니다. 앞에서 말했듯 그렇게 웃기지는 않은데 하는 행동이 귀엽습니다.

탐정 외에 그 당시 없었던 사람이 한 명 더 초대되는데 이 아가씨 때문에 이야기가 좀 복잡해집니다. 이복형제 셋이 동시에 구애를 하는데 그녀가 누구를 신랑으로 선택할지 궁금해서 관심있게 지켜보았는데......흠, 그런 선택을 하는군요.

제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집중한 건 트릭인데, 작가가 꽤 만족스러운 트릭을 보여줍니다.
본격 미스터리 좋아하는 분들은 맞혀 보세요. 쉽지는 않을 겁니다.^^(저는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2011년 일사분기에 읽은 재밌는 책.

세월 참 빠르게 갑니다. 어느새 2011년의 사분의 일이 지났군요. 일사분기에 읽은 책 중에서 재밌는 책을 꼽아 봤습니다. 서평 쓰기 귀찮아서요.^^(책 읽으면 꼭 서평 쓰려고 마음 먹었는데 한, 두 권씩 밀리다 보니까 걷잡을 수가 없네요.)   

미야베 미유키 여사님의 시대 미스터리입니다. 개인적으로 여사님의 현대물보다 시대물을 더 좋아합니다. 그중 최고는 외딴집이었고, 메롱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하루살이는 얼간이와 이어지는 내용이 많아서 얼간이부터 먼저 읽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복수사는 경찰물로 유명한 사사키 조의 작품입니다. 수사에서 한 발 비켜선 형사가 차근차근 진상에 접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오락성이 아주 뛰어나더군요. 정신없이 읽었습니다.   

 

올해는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을 꽤 많이 읽었는데 작품이 전부 좋더군요.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개인적으로 데니스 루헤인,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 같은 작가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웅진에서 나오는 팬던 스토리 좋아하는데 통 나올 생각을 안 하는군요. 혹시 접은 건 아닐까 걱정이 되네요. 하느님 끌기는 하느님이 돌아가시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무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만 즐겁게 읽었습니다. 테메레르 시리즈는 여전히 재밌네요. 시리즈가 길어지면 힘이 빠지기 마련인데 테메레르는 예외입니다. 심연 위의 불길은 휴고상 수상작으로 설정이 인상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샤바케는 귀엽고 앙증맞고, 사랑스런 작품입니다. 일본 미스터리에서 종종 느껴지는 기분 나쁜 뒷맛이 없어서 더 좋았습니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 다른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