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7월
읍네에 나갔던 사람이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고 왔다.

그리고 며칠후 순사가 와서 괴뢰군이 지척에 도달하였으니 마을 사람 모두 피난을 가야한다 하고는 사라졌다.
그날 밤 당황한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의논을 하였으나 우왕좌왕하여 난상토론만 벌이다 새벽까지 아무런 결론도 못 내렸다

아침,  마을 노인네들과 의논한 이장이 직권으로 결정을 내리길 20리 쯤 떨어진 물놀이 자주 가던 낙동강 지류천변으로
며칠동안 피난하였다가 그 때가서 또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기로 하였다.
그 날중으로 기르던 가축(소,돼지,닭...)들을 앞세우고 가재도구랑 가지고 갈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을  메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다 떠났다.
그러나 젊은 할아버지는 반대하였으며 결국 피난길을 거부하였다.
전쟁때 일본놈도 그렇게 악독하게 굴지 않았는데, 아무리 난리가 났다 해도 그쪽도 같은 조선사람인데,
이게 다 쏘련놈과 미국놈들의 장단인데,,,투덜댔으나 
그러나 결국 가장 중요한 이유는 농번기에 다 내버려 두고 갔다가 올해 농사 절딴 나는게 아니냐는 걱정이었다.
젊은 할아버지는 어린 아버지를 데리고 그대로 남았다.

다음날 텅 빈 마을에서 두사람만 한가히 노닥거리고 있었다.

다음날 한낮, 인민군이 마을로 들어왔다.
워낙히 아무런 전술적 가치가 없는 곳이라 그저 한번 휘둘러보고는 그냥 통과하고 말았다.
인민군들은 부자가 열심히 일하던 논 옆으로 지나가다 도주하지 않은 민간인이 있는 지라 경계를 했으나 의심스런게 보이지 않았든지 군관 혼자 할아버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군관은 왜 피난을 가지 않았는가 물었고 할아버지는 왜 피난을 가야 하냐고 되물었다 한다.
답변이 맘에 들었는지 우호적이 된 군관은 잠시 갈길을 멈추고 할아버지에게 담배를 권했으며 할아버지는 새끼참으로 가져온
감자와 옥수수등을 나누어 주어 같이 먹으면서 농삿일등에 대해 환담을 나누었다.
인민군은 곧 떠났으며 이게 할아버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인민군과의 조우였다.

강변에 피난 갔던 마을사람들은 며칠밤을 잔치벌인 모기떼들에게 시달리며 7월의 뜨거운 햇볕 아래 고생하다 인민군이든 국군이든 아무도 보지 못한체 마을로 되돌아 왔다.

이상이다.
이로서 할아버지는 부역한 빨갱이가 됐으며 아버지는 연좌로 걸려 평생을 시달려야 했다.
어릴적 매달 한번씩 찾아오던 눈매가 너무도 날카롭고 무섭던, 겉은 무서워도 속은 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은 분명 속도 무섭다는걸 분명히 알 수 있다, 대공 직원만이 이제는 모두가 다 희미해진 빨갱이 집안의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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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08-18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화?

paviana 2008-08-1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화라면 정말 기가막힐 따름이네요.

이잘코군 2008-08-18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빨갱이 되기 쉬운 나라입니다. -_- 참으로 빨갱이 되기 쉬운 시대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