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전생 말고 현생에서, 5촉 짜리 노란 전구가 저 높은 천장에 매달려 있고
다다미 한장이 끝간데 없이 펼쳐진 방이다. 천정이나 방의 그 거대한 스케일로 보아 거의 유아 때가 아닌가 싶다.
물론 5촉 전구나 다다미로 구체화 된걸 보면 그 기억이 반복되어 디테일의 보강이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

그 다음 기억은 어린 누나가 날 들쳐업고, 사실관계를 따져 보면 누나도 채 7살이 안되었을 시기이다, 철길을 가로질러
달리는 장면이다.  이 기억에서 유의할 점은 제3자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 어린 여자아이가 갓난애를 업고 뛰어가고
있는 것을 카메라가 같이 달려가며 찍어낸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누나에 대한 디테일도 있다. 단발머리에 검정색 짧은 치마 그리고 기차표 운동화, 그러나 이 기억은 훗날 추가된 왜곡된 기억일 가능성이 크다

다음은  세구루 미류나무에 대한 기억이다. 하늘을 찌르며 쭉 올라간 근사한 나무이다.
이 기억은 매우 세부적이며 게다가 아직도 그 기억의 실체가  그대로 남아있다.
강렬한 햇빛, 찢어질듯 몰아대는 매미 울음소리, 낯을 스쳐가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 분명 여름날 한때다.
잔디처럼 잘 가꾸어진 파란 떼, 근심 걱정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감정의 태초, 모든게 편안하고 아늑한 미류나무 아래서의 기억이다.
워낙히 강렬한 기억인지 수없이 반복되어 꿈에서 나타난다. 똑같이 반복되는 꿈.
이 기억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무덤, 땅속에서의 평안.

종일 비가 오던 날. 뒤채 흙담에 기대어 초가지붕의 짤막한 처마가 막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날린 빗물을 그대로 맞고 서 있었다.
다 젖어 오한이 시작된 몸을 언제 왔는지 누나가 자기 옷가지로 덮어 주고 빗물과 눈물과 콧물과 흙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자기가슴에 꼭 안아주어 영원으로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불과 9살짜리 여자애 가슴의 채취가 늘어난 시간을 타고 아직도 생생히 살아 있으니.

시골에서는 죽음이 익숙하다. 사람의 죽음도, 동물의 죽음도.
9살에 죽은 아이는 아직도 9살이다.
동그란 얼굴에 송충이 눈썹, 커다란 눈, 잘 붉어 지는 얼굴, 어눌한 말투, 작은 몸집, 항상 9살인채로 나타난다.
세월에 의해 바래진 죄책감은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자극도 주지 않는다.
온후한 낯빛과 다정한 대화와 포근한 심정이 이제 9살에 죽은 아이를 맞는다.
9살에 아직 죽지 않은 아이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나이다.
깊은 눈에 덮힌 산길에서 내가 물었다.
저기 뒤에 서 있는 하얀 옷 여자 봤어?
돌아 보지마.
같이 가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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