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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2 ㅣ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평점 :
베르베르는 자신의 소설에서 그려내는 화자와 메신저는 모두 인간이 아닌 외부의 존재이거나, 인간이 화자인 경우에는 현재의 인간 세계가 아닌 인간의 세계 외부로 떠나는 이야기이다. '개미'에서는 개미가 메신저로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인간계와는 구별되어진 개미 세계에서의 개미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고, '천사들의 제국'과 '신'에서는 각각 천사와 신이 메신저로 나오며 이들이 관리 감독하는 인간들과는 철저하게 구분되어져 있다. 말하자면 개미와 인간은 한 공간에 있지만 개미는 인간을 신적인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고, 인간은 천사와 신을 역시 그런 식으로만 인식한다.
'타나토노트'는 인간이 화자이지만 그 이야기는 지구가 아니라 영계라는 인간 외부의 공간으로 찾아가는 이야기이고, '아버지들의 아버지'는 역시 인간이 화자이지만 인간의 조상, 즉 현재가 아닌 외부의 시간으로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둘다 현재 인간 세계 외부를 쫓아간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렇게 베르베르 소설 속에서 메신저는 현재의 인간과 직접 조우하는 일이 없고, 조금씩 조우하는 접점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서로에게 타자로 존재한다. 그리고 메신저로서의 인간은 현재 시점의 인간계가 아니라 항상 신화의 세계에 관심을 가졌다. 그랬던 베르베르가 분명 이번 '행성'에 와서는 변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행성'에서의 메신저는 고양이다. 하지만 베르베르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고양이 바스테트가 활약하는 무대는 고양이나 쥐들만이 있는 세상이 아니라 몰락해가는 인간의 세계가 주무대가 된다. 비록 인간이 살던 그 곳을 지금은 쥐들이 모두 장악을 해버렸지만 어디까지나 그곳은 인간들이 구축해놓은 세계이며, 아직 인간들이 살고 있고, 고양이는 인간들과 직접 대면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그리고 전편인 '문명'에서 고양이 바스테트는 사라져가는 인류의 모든 지식이 집대성된 베르베르의 시그니처이기도 한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담긴 UBS를 인수인계 받는데 지구의 문명이 인간에게서 고양이로 옮겨가는 것을 상징하는 것과 동시에 이로서 고양이는 외부의 메신저이면서 내부의 메신저가 된다. 이것은 베르베르가 항상 신화만을 쫓다가 이제 현재의 우리 인간에게로 눈을 돌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인간의 비중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전작인 '문명'에서는 마치 우화처럼 고양이와 다른 동물들의 입을 통해 행성의 다른 종들과 화합하지 못하고 공존하지 못하는 인간을 간접적으로 묘사했다면 이번에는 동물보다 인간들의 비중이 많아지며 인간들이 등장해서 직접적으로 인간의 배타성을 표현한다. 화자인 고양이가 인간들과 하나의 세계에서 조우하여 동일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힘쓰는데 이로써 고양이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동일화되고, 외부에서 온 메신저가 인간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고양이의 세계건, 개미의 세계건, 인간의 세계건 과거에는 각각의 독자적인 세계로 놓고 그것들을 봤었다면 이젠 동일한 하나의 행성에 포함되어 있는 운명공동체적인 입장으로 모두 하나의 공간에 놓고 보게 된 것이다. 행성이라는 타이틀도 예전처럼 고양이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라는 종의 구분으로 서로를 떼어놓지 않고 행성이라는 하나의 지구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 같다.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이나 로봇 공장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창립자 마크 레이버트 등 실존 인물을 등장시키며 현실성을 강조하고, 이제 자신의 관점이 신화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옮겨왔음을 고백한다. 물론 '행성'에서 다루는 지구는 디스토피아로 이 역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아니지만 페스트의 창궐이나 전쟁과 같은 것으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은 코로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런데 인류 멸망의 표면상의 이유는 전염병과 전쟁, 테러 같은 것들로 인해 인류가 멸망한다고 말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인류의 멸망은 인간끼리 서로 협력하고 행성 내의 다른 종과 공존하지 못하는 인간의 야만성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뉴욕의 프리덤 타워에서는 인류 여러 부족과 단체를 대표하는 102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유엔과 같은 기구를 만들고 여러가지 사안에 대해 회의를 하는데 서로 싸우고 자신들의 주장만을 내세우며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다. 그리고 고양이 바스테트는 자신을 103번째 대표 자격을 요구하지만 인간들은 고양이 주제에 인간과 같은 투표권을 갖겠다는 거냐며 완전히 무시해버린다. 인간은 같은 인간들끼리도 화합하지 못하고 다른 종을 대해서는 배타성을 보인다. 반대로 쥐들의 상황은 완전 다른데 미국의 알카포네파와 프랑스에서 건너온 티무르파는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여 더욱 견고하게 스크럼을 짜고 다른 종들을 공격한다.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 있던 피식자들이 단합화 화합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포식자가 된 것이다.
인간들은 현재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하자고 하는데 언제나 인간은 핵이라는 절대적이고 강력한 물리적인 힘을 사용해서 가장 손쉽고도 폭력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미국 정부가 외계인이건 좀비떼건 손을 쓸 수 없는 적에게 핵무기를 날리는 것은 대중문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클리셰로 인간의 단순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표현할 때 곧잘 써먹는 설정이다. 또 핵폭탄과 함께 쥐떼에 맞서기 위해 드론과 로봇 고양이라는 신무기가 등장하고, 인류와 고양이를 위협하는 쥐의 수는 몇천만 대군으로 묘사되는데 이쯤되면 너무 영화스러운 같은 구성이라고도 하겠다. 실제로 베르베르의 소설은 원래 영화적인 성격이 강해서 머리속으로 마치 영화를 보듯이 그런 장면들을 상상하면서 글을 읽으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인간과 고양이 개의 연합은 쥐떼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새로 총회의 의장을 선출하게 된다.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힐러리 클린턴이 재임을 노리며 출마했고, 군인 부족과 로봇 공학자 모임, 생물학자, 이 대륙, 천문학자 그룹의 대표 등이 각각의 공약을 내세우며 출마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쥐떼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 고양이 바스테트도 지구라는 행성의 모든 종의 이익과 평화, 공존과 조화를 기치로 출마한다. 하지만 이 영웅 고양이는 103명 중 단 3표만을 받았을 뿐이고 질서 유지와 안보를 내세운 군인 부족의 그랜트 장군이 회장으로 선출된다.
인간들은 그 사달을 겪고, 멸종의 위기에까지 갔었음에도 변화하지 못하고 다른 종과의 공존보다는 인간들의 안전과 질서유지, 인간계를 보호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인다. 이제 인간들은 군인의 대표를 의장으로 선출하고 쥐떼와의 전쟁이 군인을 대표하는 한 인간 영웅에 의한 승리라고 역사에 기록하고, 그 만들어진 가짜 인간 영웅을 중심으로 미래 세계를 움직여나갈 것이다. 바스테트의 말처럼 인간의 상상력은 끝까지 인간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인간은 끝내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베르베르는 독자에게 묻는다.
베르베르의 '나무'의 투명피부라는 에피소드를 보면 투명인간이 된 박사에게 불량배들이 공격해오자 박사는 방어를 위해 코트를 열어서 투명한 몸을 보여줬고, 불량배들은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는데 도와주러 온 주위 사람들이 박사를 보고는 오히려 불량배를 걱정하며 단체로 박사를 공격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누가 폭력을 당하는 광경은 견뎌내지만, 어떤 사람이 자기들과 다르다는 것은 참지 못한다. 하물며 그것이 사람이 아닌 다른 종이라면 더욱 배타심을 가진다. 이렇게 인간은 자신과 다른 것과 공존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만약 인간이 그런 배타심을 버리고 행성의 수많은 생명체와 공존하지 못하면 우리의 문명은 이 행성에서 퇴출당할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로 인해 유럽과 그외 여러 지역이 셧다운이 되며 인간의 발길이 끊어지자 강과 운하가 깨끗해지고, 다른 생명체들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여 그곳으로 몰려든 사진이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환경, 자연, 지구상의 다른 종들과의 공존이라는 말을 구호처럼 막연하게 외치기만 했었는데 실제로 코로나로 인해 인간이 사라지자 그 곳에 자연이 살아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서는 지구라는 행성은 분명 인간만의 것이 아니고, 다른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나누어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추측컨데 베르베르 역시 코로나라는 전대미분의 사태를 겪으며 코로나 시대의 시대정신을 소설 속에 담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행성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는 베르베르의 메세지는 지금의 코로나 시대에 더욱 크게 다가온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