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영어 - 가볍게 읽고 평생 기억하는
가벼운학습지 지음 / 패스트캠퍼스랭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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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해보면 난 영포자이다. 언제 포기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만큼 어린 시절 영어와 절교를 했다. 물론 아무리 영어와 담을 쌓고 살아왔다고는 해도 한국만큼 영어를 쉽게, 많이 접할 수 밖에 없는 또는 접해야만 하는 사회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귀를 막아도 어쨌건 여기저기서 귀동냥으로 영어를 듣고 나도 모르는 사이 약간의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주로 영화나 미드를 보면서 반복적으로 들리는 표현이나 단어가 자연스럽게 강제로 외워지게 된 경우가 많은데 약간의 지식과 몇몇 표현을 안다고 해서 그것의 구조나 형태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점인데 체계적으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대중없이 듣고 어설프게 조금씩 영어를 습득하다보니 큰 틀에서의 문장의 구조나 형태,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채 몇몇 영어에 대한 지식이 뒤죽박죽으로 섞이고 혼잡한 상태로 머리속에 저장이 되버렸다. 그래서 당연히 응용이나 조합도 전혀 안되고, 머리 속에 들어가 있는 그 이상으로는, 아니 머리 속에 있는 것들도 체계적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예 영어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없는 것보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짧은 지식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가 공부를 하기엔 더 어렵게 느껴진다.


그동안 몇 번이나 영어 공부를 다시 해보려고 도전했지만 적당한 교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왕초보를 대상으로 하는 책들도 사실상 '정말로' 왕초보를 위한 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어민 실력을 가진 그들에게는 그 정도면 왕초보의 수준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진짜 쌩짜배기 왕초보는 그정도 수준도 안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유치원생 수준인데 초등학생 수준의 책을 보는 격이다. 유치원생 수준이나 초등학생 수준이나 거기서 거기일수도 있겠지만 그 미묘한 차이 때문에 영어에 다가가는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일도 있으니 어쩌겠는가.


그러면 진짜 유아들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재를 구해서 보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이상한 심리인데 다 큰 성인이 그런 책을 펼치고 보려고 하면 그것도 굉장히 거부감이 들면서 글이 눈에 잘 안 들어온다. 게다가 앞서도 말했지만 아무리 영포자라고는 해도 약간의 지식이 뒤죽박죽으로 머리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유아용 교재에는 아는 내용도 많아서 그런 걸 보고 있자면 굉장히 지루해지고, 긴장감이 떨어진다. 마치 재미없는 농담을 반복해서 듣는 기분이 된다. 즉, 너무 유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어렵지도 않게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정리를 싸악 해주는 그런 교재가 필요한데 세상에 이런 책은 없다. 그게 문제다.


그런데 그런 책이 나와버렸다. 물론 단순히 그동안 내가 접하지 못했을 뿐 이전에도 그런 책이 있었을수도 있지만 어쨌건 이 책은 영어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부터 아주 약간의 영어 지식이 있는 사람까지 영어에 대한 기본 틀을 잡고, 체계적으로 지식을 정리하며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준다. 누군가에겐 너무 쉽고 기본적인 내용이라 굳이 설명을 자세히 하지 않고 넘어갈만한 내용들도 한번씩 짚어주며 정리해주기 때문에 한페이지씩 따라하다보면 기초공사를 하듯  탄탄하게 실력을 다져갈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유치하게 구성되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용이 확 어렵게 뛰지도 않고 적당한 선에서 초보적인 내용을 알려주고 있어서 너무 쉽다고 느끼거나 반대로 너무 어렵게 느껴지지도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물 흐르듯이 진도를 나갈 수 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도 책에 나오는 설명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이해를 할 수 있고, 원래의 지식에 조금씩 살을 붙혀가며 문법적인 틀을 익히고, 체계적으로 형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된다.


학교에서도 그랬고 학원에 가서 영어 공부를 하면 항상 문법 공부부터 시작한다. 이게 은근히 어렵고 복잡하고 이해하기도 쉽지않아서 항상 초장부터 포기하게 된다. 심지어 문법 자체보다 문법 용어를 외우는 것부터 어려워서 정작 문법은 공부해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 이 문법만 알면 그 공식에 따라 쉬운 문장으로 영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 문법은 배우기는 어렵지만 반드시 알아야 하고 알아두면 적어도 기본적인 형태의 문장은 말할 수 있게 되는 양날의 칼인 셈이다. 이 책에서는 문법을 너무 이론적으로 보이지 않게 패턴으로 문법을 설명하고 있어서 책을 읽기만 하면 대략적인 느낌이 온다. 한번 읽는 것으로 완전히 내 것이 되진 않겠지만 쉬운만큼 부담없이 몇 번 반복해서 책을 읽으면 큰 어려움 없이 영어의 기초를 습득하게 될 것 같다.


책의 첫머리를 보면 이 책이 필요한 사람에 대해 소개해놓고 있는데, 알파벳은 알지만 알파벳을 정확히 소리내어 읽지 못하는 사람, 10년 동안 학교에서 영문법을 배웠지만 간단한 문장 하나 만들지 못하는 사람, 단어는 좀 알지만 단어를 어떻게 연결해서 문장으로 만들지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데 내가 그런 사람 중 하나이고 어머 이건 꼭 봐야해라고 느꼈다. 알파벳이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어려운 문법 용어와 영문법 공식을 몰라도 단어와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드는 방법, 자주 쓰는 회화 패턴으로 기본적인 문장 만들기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물론 이정도 수준은 영어를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영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부담감을 떨쳐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엔 충분할 것 같다.


알파벳의 발음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여, 단어를 연결하여 쉬운 문장을 만드는 법, 쉬운 패턴으로 말하기,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가장 기초적인 단어와 표현 배우기의 세 파트로 되어 있고, 공부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에세이를 읽듯 그냥 부담없이 읽어나가면 공부가 된다. 전체적으로는 대략 한달 컷으로 책을 독파할 수 있고, 몇 번 반복하여 정독하면 책에 나오는 패턴이나 문법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외로 원어민들도 기본적인 문법과 패턴으로 가볍게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정도 수준만 제대로 익혀놓으면 은근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 정말 한번 해보자. 영어공부와 다이어트는 언제나 핑계가 많았는데 솔직히 이 정도 책으로도 공부를 안한다면 그건 더 이상 핑계를 댈수도 없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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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가 직장에서 이토록 쓸모 있을 줄이야
한정엽.권영지 지음 / 원앤원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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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회계가 전공이 아니고, 회계 부서가 아닌 사람이라도 회계 공부는 꼭 해야한다는 조언을 많이 한다. 회계란 회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숫자로 표시한 것이다. 모든 부서의 업무는 회계와 연동되고 회사의 업무는 회계로 귀결되므로 결국 회계를 알면 그 회사의 돈이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되고, 그에 따라 회사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식으로 업무가 진행되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므로 직장인에게 회계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특히 회사의 경영자가 되려면 회계는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물론 장부를 작성하고, 기입하는 실무적인 지식보다는 그 내용을 이해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재무제표의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이론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회계부서, 재무팀이 아닌 사람이 회사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의 업무와 연계하여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고, 업무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회계팀 직원처럼 실무적으로 기록하고 계산하는 법까지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실무적인 기술보단 회계 용어와 개념들을 이해하고 업무와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이론적으로 알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회계비전공자인데 전산회계로 회계를 처음 접했다. 그런데 전산회계는 실무적인 측면이 강해서 학원에서 강의를 할 때에도 프로그램을 어떻게 다루고, 실무적으로 어떻게 전표를 입력하는지 같은 내용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회계 공부를 하긴 했지만 이론적으로 재무제표를 읽고 그것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기술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당장 나처럼 실무적인 전표 작성법은 알지만 그것이 전체 회계의 흐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업무에 어떻게 연계되며, 무엇을 읽어내야하는지를 모른다면 오히려 회계를 배웠지만 전혀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지 때문이다.


하지만 비전공자에게 회계란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진다. 처음 듣는 회계용어와 어려운 내용들, 방대한 분량 등으로 회계를 접하게 되면 주눅부터 들게 된다. 한글을 읽고서 그것을 해석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회계를 배우기 위해 책을 읽으면 몇 장 진도를 나가지 않아서 막히게 되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굳이 회계를 배워야하나? 라는 자괴감에 빠지게도 된다. 반대로 회계에서 사용되는 어려운 전문용어와 개념들을 쉽게 설명만 해준다면 이해하기도 쉬울 것이고, 회계에 조금 더 부담없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회계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에게도 회계는 어렵다. 그런데 그 어렵고 광범위한 회계 내용을 전부 알려고 하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이다.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회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읽고 전체적인 틀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처음 회계를 공부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무에 딱 필요한 만큼의 회계 지식만을 골라 쉬운 설명으로 알려준다. 그리고 일반적인 회계 책은 분개나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계산 같은 회계담당자들에게 필요한 실무 중심의 회계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서는 회계담당이 아닌 일반인들이 자신의 업무에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실무적인 회계 지식을 알려준다. 회계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기초부터 알려주는데 어려운 설명이나 실무적인 일처리 방법이 아닌 쉬운 예시를 통해 개념을 이해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계산이나 분개 같은 내용이 빠지고 이론적인 설명이 많다보니 여타의 회계책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보통은 온갖 표와 그림이 가득 차 있는데 여기서는 그런 재무제표의 형식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자체의 의미와 개념을 이해시키는데 집중한다. 회사가 운영되는 흐름을 따라 큰 줄기에서 회계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꼭 알아야만 하는 핵심적인 내용들만 짚어주기 때문에 내용이 너무 복잡해지지 않고 필수적인 회계 지식을 얻을 수 있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물론 이론적인 내용이 주가 되지만 단순히 이론에 그치지 않고, 이론적으로 배운 내용을 실무적으로는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지 사례를 통해 재무비율을 분석하며 이론적인 내용을 실무적으로 활용하는 법도 배워본다.


또 회계, 숫자를 활용하여 보고서를 꾸미고, 회계적 관점에서 보고하고 질문하는 법, 회계를 업무에 적용하여 업무 효율을 높이는 실무적인 방법도 알아봄으로서 업무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사원이 되는 비법도 제시한다. 어떤 마인드로 어떻게 업무를 하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실제로 책에서 다루는 회계 지식은 많은 분량은 아니다. 이 책은 회계를 처음 시작하고, 회계의 높은 벽에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거부감을 없애고, 회계의 중요성을 알게 하며 회계로의 첫발을 내딛게 만들어준다. 물론 책에 나오는 정도만 제대로 이해해도 업무적으로 시야가 굉장히 넓어져서 업무효율성이 높아지겠지만 이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공부하며 회계에 대한 지식을 계속 쌓아가면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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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치로서 영화읽기
이황석 지음 / 베어캣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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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에 영화 좀 본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영화평론가 정성일 아저씨의 방송이나 글을 한 번쯤 접해봤을 것이다. 당시 씨네필들의 정신적 지주 같았던 정성일 아저씨는 영화에 대해 말하길 영화는 세상 밖에서 만들어져서 이곳으로 도착한 것이 아니라 어떤 영화건 간에 세상 안에서 만들어져서 우리 앞에 도착한다고 말한다. 결국 세상이란 영화이고, 우리는 영화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란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영화라는 것은 세상이라는 영화를 영화라는 기계장치를 통해서 찍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삼류영화가 넘처나는 것은 그 사회가 삼류이기 때문이고, 조폭영화가 넘치는 것은 그 사회가 조폭사회이기 때문이란다. 사회가 삼류인데 일류영화가 나오는 것은 그야말로 사기이다.


더불어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가 현실과 괴리되어 있어서 환상을 파는 것이라던지, 영화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해서 사회를 담고 있다는 식의 기계적 도식주의를 경계해야한다고도 말했지만 현실이 곧 영화이고 현실을 재가공해서 영화를 만든다면 그 영화 속에서 문화 정치적 담론의 질문으로 영화를 읽어낼 수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사회문제와 영화를 연계하여 영화를 통해 영화적 표현으로 우리 생활의 부조리를 읽어내고 있다. 이미 우리는 지난 촛불정국을 통해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영화를 통해 마치 영화같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읽어내고,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과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엿보고자 한다.


책에서는 한국영화와 헐리우드 영화를 골고루 다루었으며, 꼭 영화에 국한되지 않고 영화계와 영화인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글은 저자가 기존에 쓴 칼럼이나 세미나 등에서 강연한 내용 등을 엮은 것으로 코로나와 의료파업, 방탄소년단, n번방 사건, 일본의 경제공격 같은 비교적 최근의 핫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이슈까지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어서 시의성 있게 읽을만하다. 글의 첫머리에 그 글이 쓰여진 날짜가 나오는데 날짜를 통해 대략 그 글이 쓰여졌을 때의 사회 분위기나 어떤 의도로 글을 썼는지 유추할 수 있다. 때론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며 일반론적인 이야기에 그치는 경우도 있어서 정확히 어떤 의도로 글을 썼는지 모호한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 날짜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글의 의도를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은 특별히 정치색을 띠지 않는다. 아무래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면 개인의 성향이 드러나게 되는데 여기서는 그런 개인적인 색깔을 최대한 거세하고, 대체적으로 정치적 성향에 빠지지 않고 일반론적인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물론 어떤 이슈에 대해 비판을 하거나 동조하면 이미 그 자체로 그것에 반대 혹은 찬동하는 입장에 서게 되므로 의도치 않게 정치적 편향성을 나타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영리하게도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을 비판하거나 편들지 않는다. 양쪽 모두 똑같이 비판하는 식으로 기계적 중립을 잃지 않는다. 가령 영화 <언노운걸>을 통해 병원의 집단파업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의료진과 정부를 모두 비판하는 식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트집]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했을 때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쉬리에 이어 천만관객시대가 열린 것이 불편한 이들이 세미나를 열었다고 한다. 이 때 섬세하고 철학적인 평론으로 유명한 한 평론가가 천만관객이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태극기 휘날리며의 감독인 강제규 (책에는 굳이 이름을 빼놓았지만)를 언급하며 영화 문법도 모른다며 성토했다고 한다. 아마도 추측컨데 그 평론가는 정성일 아저씨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정성일 아저씨는 천만영화는 영화의 완성도가 아닌 멀티플렉스라는 시스템의 유통으로 이루어낸 폭력이라며 굉장히 비판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태극기 휘날리며의 편집은 역대급으로 망한 영화인 성냥팔이소녀의 재림보다 못하다며 엄청나게 깠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저자는 오히려 그런 편집이 의도된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면서 정성일(로 추측되는) 평론가는 아마도 의도된 편집임을 모를리 없음에도 그 세미나의 성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괜히 트집을 잡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일 거라고 말한다. 이것을 지난 6월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과 연관지어 북한의 트집을 단순히 트집을 위한 트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것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긴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영화 '엑시트', 위험사회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영화 <엑시트>가 개봉했을 때 헬조선에서의 청년들의 현실을 다룬 이야기라며 말이 많았다. 청년 실업 등의 사회 문제를 재난영화의 형식으로 고찰했다는 평가였는데 그러면서 헬조선, 청년실업, 청년들의 현실, 탈출, 응원 같은 키워드들이 언급되었다. 유쾌한 영화라서 특별히 뭔가를 더 심각하게 읽어내고 할 것도 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저 정도의 키워드로 현 사회를 반영한 영화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인 것 같다. 저자는 위험사회가 되는 것을 신뢰가 깨진 것에서 원인을 찾는다.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시스템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부여했고, 반성과 성찰이 없는 과잉신뢰가 오늘날의 현대사회의 지구적인 위험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신뢰가 깨진 사회를 구하는 것 역시 현대사회의 위험을 초래한 바로 우리라는 것을 강조한다. 신뢰라는 키치 아래 익명의 우리들은 서로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존재인 것과 동시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존재라는 희망을 가질 것을 당부한다. 영화 속에 나오는 등산용 고리는 단순히 남녀의 사랑을 넘어 우리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서로의 신뢰의 고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고공 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의 뉴스를 보며 이런 맥락을 읽어낸 저자의 시각이 멋있다.


[아카데미시상식서 봉준호감독이 마틴 스콜세이지를 언급한 이유]
올해 아카데미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위한 자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아카데미의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건 비영어권의 외국 영화가 작품상, 감독상을 포함해 4관왕에 올랐다는 것은 정말 이례적이고 역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날 시상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봉감독이 감독상을 받으러 시상대에 올라갔을 때 마틴 스콜세지를 언급하며 노감독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현하는 모습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그냥 아이고 훈훈한 모습이네 라고만 생각했는데 저자는 이런 수상 소감에 봉감독만의 디테일이 살아있다고 말한다. 마틴 스콜세지는 명성에 비해 아카데미 상복이 없다. 쟁쟁한 작품을 수없이 만들고도 번번이 상을 받지 못하다가 2007년에 디파티드로 처음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디파티드도 훌륭한 작품이긴 하지만 솔직히 원작인 무간도보다 못하다는 의견도 많고 마틴 스콜세지의 작품 중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의견 또한 많기 때문에 더 좋은 작품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지 못한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저자는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상을 받지 못한 것이 이탈리아계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카데미놈들은 엄청나게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주류 헐리우드에서는 변방에 속하는 라틴계 이탈리아의 폭력의 미학을 추구한 스콜세지에게 상을 줄리가 없었다는 거다. 봉준호는 그런 헐리우드를 향해 뼈있는 농담을 한 것이라는 거다. 정말 그런 의도로 말을 한 것이라면 봉테일 인정이다.


[영화 ‘기생충’과 ‘짜파구리’]
봉준호와 기생충 말이 나온김에 계속 기생충 이야기를 해보면 영화에 짜파구리가 나온다. 영화 때문에 외국 사람들도 짜파구리를 먹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는데 영화 속에서 이 짜파구리는 생각보다 심각한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일반적인 가짜 짜장면인 짜파게티에 너구리를 섞어서 먹는 짜파구리. 서민 음식이지만 거기에 스테이크용 등심을 때려넣어서 고급스럽게 만든 라면이다. 사모님은 막내아들을 위해 짜파구리를 만들었지만 아들이 안먹는다고 하니 남편에게 권하고, 남편도 안먹는다니 자신이 먹는다. 짜파게티는 라면 두개를 넣어서 끓였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2인분이다. 하지만 사모님은 누구와도 나눠먹지 않는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도 하지 않고 한 사람이 혼자 라면을 독식한다. 과잉에는 잉여가 발생하지만 사모님은 가정부에게 먹겠냐고 권하지만 말로만 권하고 실제로는 혼자 먹는다. 저자는 이것을 잉여의 생산물을 독차지한 자본권력의 하부에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잉여 생산물, 이른바 떡고물을 얻기 위해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억압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주인이 갈비를 뜯고 뼈다구 하나를 던져주면 개들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것이다. 이것이 낙수효과가 뒤틀리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현실은 낙수효과가 아닌 잉여물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뒤엉쳐 싸우는 개떼같은 삶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메타포라고 한다. 짜파구리에서 그런 것을 읽어내는구나.. 난 영화 헛본 것 같다.


요즘은 사실 너도나도 평론을 하는 시대라서 영화 평론가의 위치나 입지가 예전만 못하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동의하지도 않고 그 정도는 영화를 읽고 해석하는 유튜버들도 수없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평론가는 역시 평론가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단순히 영화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그 속에 현실 사회를 연계해서 영화적으로 읽어내는 내공이 느껴진다. 영화와 현실을 연계해서 영화 속에서 현실의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정치와 문화적인 징후기호로써 읽어내는 시도를 하며 영화를 본다면 더 재미있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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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의 인문학 - 거대한 지식을 그림으로 잘게 썰어보기
권기복 지음 / 웨일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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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강연도 많고, TV에서는 물론 팟캐스트 방송이나 유튜브에서도 각종 인문학 강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만큼 지식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큰 것도 있을 것이고, 이 정도는 알아줘야 세상 사는데 문제가 없을 거란 생각 때문에 너도 나도 인문학에 빠져드는 것 같다. 실제로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인문학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주목받게 된 것은 그것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란 결국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기고, 우리가 살아갈 이야기이기에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인문학에서 다루는 주제는 굉장히 광범위하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이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인문학이므로 사람이 사는 모든 것이 인문학의 주제가 되기 때문에 인문학에서 다루는 주제도 수없이 많다.


책은 그중에서도 돈과 사랑 같은 조금은 추상적이거나 계급과 자유 같은 사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문화, 예술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재미도 있고 알아두면 대화 중에 쓰일 곳도 많지만, 책에서 다루는 정치적이고 사상적인 이슈는 내용 자체도 지루하고, 어려우며, 자칫 이런 걸로 말을 잘못하면 싸움나기 쉬운 민감한 주제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정치혐오와 사상적 갈등이 심한 시기에 굳이 정치적이고 사상적이고 체제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까도 싶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정치적 이념과 사상의 이론적 개념을 확실히 알고 있어야 어설픈 정치 선동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정치적이고 사상적인 기준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돈에 대한 것도 현대사회를 살아가다보면 긴 인생길에서 언젠가 반드시 한번쯤 만나게 되는 주제들이라 평소 이에 대해 깊은 사유를 해두면 자신만의 철학과 가치관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인문학은 어렵다. 특히 사상, 철학, 체제 같은 내용이 나오면 더욱 어려워진다. 이론적이고 개념적인 설명이 많아지기 때문에 이해할 것도 많고, 때론 외워야 하는 내용도 있다. 처음 듣는 용어가 나오고, 복잡한 설명이 시작되면 깊은 사유를 하기는 커녕 그 내용을 이해하기도 버거워진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는가싶다가도 진도를 나가다보면 어느새 헷갈리고, 아까 읽었던 내용도 뒤죽박죽이 되버린다. 이렇게 되면 무슨 수험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외우고 '공부'를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어느새 책을 덮게 된다. 인문학의 방대한 지식을 다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고, 삶에 도움이 되는 지식이라도 내것이 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이 때 저자가 추천하는 인문학 공부법은 거대한 지식을 그림으로 잘게 쪼개어 보는 것이다. 글자만 빽빽하게 가득찬 책은 어려워보이고 거부감부터 생긴다. 그래서 중간중간 소화가 잘 되라고 한 컷씩 그림을 섞어놓았다. 그림이 들어가면 마냥 어렵게 느껴지던 내용도 한결 쉽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림 그 자체가 부연설명이 되서 내용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또 이미지는 연상작용으로 같은 내용도 더 오래 머리 속에 기억하게 만들어준다. 그렇다고 만화책처럼 모든 것을 그림으로 전달하다보면 내용이 부실해질 수도 있어서 그림은 윤활유처럼 한 컷이 섞어서 인문학의 이해를 도와준다.


요즘은 먹고 살기에도 바빠죽겠는데 무슨 사랑타령이냐며 남녀간의 사랑을 냉소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한다. 분명 3포세대, 5포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사람들은 사랑도 결혼도 포기해버리는 일이 많은 것 같다. 일본에도 초식남이라는 연애를 포기한 남자들이 있고, 세계적으로 인셀이라는 비자발적 독신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과연 사랑은 할 필요가 없을까? 기원전 고대 이집트 유물에서도 연애시가 발견되었다는데 사랑이란 개념은 매우 오래전부터 광범위하게 발견된다고 한다. 즉, 사랑이 인류의 보편적인 행위이자 감정이란 뜻이다. 그런데 왜 현대 사회에선 인간의 유전자에 세겨진 사랑이란 감정을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인가?


사랑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어느 시대에서나 사회 구조가 사랑을 하는데 어떤 식으로건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현대는 무한자유의 시대이다. 예전같은 봉건적인 질서나 전통에 의한 결속, 종교의 장악력도 없이 오직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사랑도 결정된다. 그런데 이 무한자유는 무한책임을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은 안정과 가능성, 자유 대신 허무함과 불안, 우울을 안게 되었다. 불확실함 때문에 사랑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망설이게 된다는 뜻이다. 그 불확실함 때문에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사랑도 선택하게 된다. 말하자면 사랑을 하거나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갔을 때 자신의 입장이 어떻게 될지 계산을 때리게 된다는 뜻이다. 결국 조건을 보고 연애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 조건이라는 것이 꼭 경제적인 측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외모, 성격, 라이프스타일, 직어, 성적기호, 정치성향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어떻게 조건 보고 사람을 선택하냐고 분노하는데 원래 그런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선택에 사회 구조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대 사회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한번 실패하면 낙오자가 되어버리는 사회구조 속에서 사랑에 빠졌다가 사랑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시간조차 버거워한다. 실패와 아픔은 자아를 좀먹고, 패배주의에 빠지게 만든다. 사랑에 실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요즘엔 진지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것보다 그 시간에 자기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것을 나르시시즘의 시대라고 한다. 사회적 분위기가 개인의 연애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이성의 모습은 사회가 규정해놓은 성정체성에 의해 구축된다. 소위 가부장적 사회에서 말해지는 남성다움, 여성다움이 강조된 사람이 섹시하다고 생각하게 훈련되어져왔다. 그런데 이런 섹슈얼리티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들이 소비자들에게 심어놓은 개념이라고 한다. 구매율을 높이기 위해 성적 상징과 소비를 연결시켜 인간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사회 분위기와 사회구조에 의해 사랑에 대한 이미지와 사랑을 대하는 마음을 조종당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 분위기가 힘들고 어렵다보니 연애도 힘들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5포세대, 초식남이 등장하는 것이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사랑을 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자발적인 독신, 비혼을 선언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책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굳이 사랑을 해야만 하는지, 그냥 가볍게 즐기는 관계만 맺으면 안되는지 묻는다. 물론 당연하게도 대답은 '그럼에도 사랑은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운동가 벨 훅스는 '사랑이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사랑을 정의했다. 두 사람이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회비용과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합리적 기준과는 동떨어진 것이지만 결국 사랑은 그런 어려운 것들을 모두 초월한다. 그게 사랑이다..라는 결론이다.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공화주의에 대한 내용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론적이고 학술적인 개념들이 필요하지만 사랑과 돈에 대한 사유를 할 때는 굳이 어려운 철학이나 개념이 없어도 각자 자신만의 개똥철학을 늘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건 그것을 경험하고 보고 듣고 느끼며 자신만의 경험으로 그것에 대해 나만의 관점이 형성되고 그 흔적이 지성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경험과 사유라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학문적이고 이론적으로 다양한 시각으로 생각해보면 지성의 깊이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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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만나는 한국신화
이경덕 지음 / 원더박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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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는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해서 동화나 만화로 많이 읽힌다.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북유럽 신화나 이집트 신화 같은 것들은 영화나 문학작품을 통해 간간히 접하기 때문에 자세히는 몰라도 의외로 들어본 이름도 많이 있고, 내용도 아주 생소하진 않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신화에 대해서 아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면 단군신화나 고구려 건국의 주몽신화, 알에서 나온 신라 박혁거세의 건국신화 같은 몇몇 건국신화 외에는 제대로 답변을 하기 어렵다. 우리의 것이지만 정작 한번도 제대로 배우거나 그다지 많이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몇 년 전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라는 작품에서 다루어진 신화를 읽은 것이 한국 신화에 대해 들어본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알지 못한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한국에는 특별히 신화 같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왜냐면 한국의 신화라는 것을 그다지 많이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용을 알고 모르고는 둘째치고 한국 신화의 존재 자체에 대해 들어본바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책에서 수많은 신화들을 접한 후 한국에 이렇게나 많은 신화가 있었는지 놀랐다. 재미있게도 그중 일부는 어릴 적 동화책 등을 통해 읽었던 기억이 있는 것도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이 한국의 신화인지 모르고 그저 옛날 이야기나 창작동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접했던 것이다.


저자 역시 같은 말을 한다. 한국 사람들은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것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 이유로 일제 강점기와 6.25 이후 서구화 과정을 통해 일본과 서양의 문화가 마구잡이로 들어오면서 한국 사회 내에서 서양 문화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란다. 개인적으로는 아마 한국의 사대주의 성향도 이런 것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생각한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강제적이고 강압적인 문화적 변형이라고 설명한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강제적으로 한국의 문화, 정신, 역사가 배척당했고, 전후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서구화에 대한 열망으로 사회 전반에 서구의 정신적인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신화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리스 신화는 지고, 북유럽 신화가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신화에도 유행이 있나보다. 아마 마블 영화에서 북유럽 신화의 인물과 컨셉이 많이 차용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탓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아시아적 가치도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오랜 시간 세계 문화를 지배했던 서양 문화의 효용성이 떨어지면서 그 대안으로 동양권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의 신화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던 입장에 있던 한국이 이젠 K-문화를 세계로 전파하는 위치가 되었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 우리의 신화를 새롭게 만나보고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 지역의 신화는 그 사회의 세계관과 정서, 가치관, 관습 등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신화는 단순히 옛날 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문화의 응집체로 볼 수 있다. 우리의 신화를 살펴본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고, 한국인의 세계관과 정서를 알게된다는 뜻도 된다. 한국인의 정신적 토대가 되는 한국의 신화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우리 문화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지금 한국의 신화가 많이 남아있지 않고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은 한국의 종교에도 그 이유가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신화라는 것은 도교나 무교가 어울어진 토속신앙인데 이후 불교와 어울어지며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 후 유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조선 시대 때에 억불정책으로 인해 불교서적이 붙태워지고 그와 함께 한국의 신화도 많이 약해진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장 큰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기독교에 의해 한국의 신화는 우상숭배라는 이름으로 배척당한 것은 아닐까 한다. 신화는 그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 등에 영향을 받는데 이런 종교적 이유로 인해 신화 그 자체가 구습과 미신으로 치부되며 씨가 말라버리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 신화 중 가장 특이한 것은 가택신앙이 아닐까 한다.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 신화는 말 그대로 전지전능한 신과 영웅이 활약하는 이야기인데 한국의 가택신앙은 집을 지키고, 부엌을 지키고, 뒷간을 지키는 소박한 이야기이다. 집은 인류 공동체 중 가장 작지만 핵심적인 최소 단위이다. 집은 가족이라는 집단이 삶을 영유하고 거주하는 인간 삶의 토대가 되는 곳이다. 그리고 공간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는 집을 중심으로 생활하게 된다. 특히 과거에는 집에서 태어나서 집에서 죽는 일이 많았으므로 말 그대로 한 인간의 일생과 함께 하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집을 그렇게 특별하게 생각한만큼 집 곳곳을 지키는 가신신앙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집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닐텐데 왜 이런 형태의 독특한 가택신앙이 한국에서만 보이는지는 설명이 없어서 궁금증을 가지게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화로의 신인 '헤스티아'나 불의 신인 '베스타'가 존재하긴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다양하지도 않고 문의 신이나 화장실의 신 같은 것은 없다. 한국에서는 집안 곳곳에 발닿고 손길 닿는 모든 곳에 신이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이 있다. 이것은 한국의 신화가 생활밀착형으로 단순히 우주나 죽음과 같은 주제 뿐만 아니라 우리가 늘 함께 하는 집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한국만의 정서가 반영된 독특한 신화라고 하겠다.


이처럼 한국의 신화는 생활밀착형으로 이야기가 우리의 생활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그리스 로마 신화는 영웅의 영웅담이나 신들의 치정 같은 내용이 많은데 한국의 신화는 당시 벌어진 사건들을 이야기로 만들어서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신화만의 독창성을 가진다. 가령 처용가에 나오는 처용은 여러 문헌을 분석해보면 당시 신라와 교역을 하던 아라비아 사람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그리고 처용의 아내와 잠자리를 한 역신은 천연두를 의인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처용 이야기 외에도 철현도령 이야기에 등장하는 손님들도 천연두를 의미한다고 한다. 외부로부터의 공포를 손님의 방문이라는 이야기로 바꾸어 재앙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저자가 말하는 한국 신화의 특징은 여성이 많이 등장하고 큰 활약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등에도 여신이 나오기는 하지만 실제로 큰 역할을 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남성 영웅이다. 여신은 영웅에게 시련을 주거나 영웅을 돕는 조연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의 신화는 대부분이 여성이고 여성이 세상을 바꾸어 간다. 여성이 활약하는 더럽고 거짓으로 가득찬 세상은 남성들이 만들어낸 곳이다. 저자는 여성을 약자의 상징이라고 말하며 깊게 들어가면 민중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남성 중심의 가치와 편견으로 왜곡되는 세상을 여성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민중의 가치로 살려내자는 의미라는 것이다. 


한국의 신화는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 가치관을 담고 있어서 우리 신화를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역사와 생활, 삶에 대해 조금 이해하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서양의 신화와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만의 정서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한국 신화만이 가진 우리의 정서와 그 신화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조상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는 무엇이고,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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