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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괴 도감 101
잭 데이비슨 지음, 강은정 옮김, 최준란 감수 / 공명 / 2026년 3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일본 요괴 도감 101]은 일본인의 일상과 언어생활, 나아가 문화적 정서 속에 깊이 자리한 요괴들을 한데 모아 정리한 안내서로 고대 역사서와 문학 작품에 기록된 101종의 요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문적인 해석을 덧붙여놓았다. 보통 요괴라고 하면 그냥 괴물이나 괴수 같은 것을 뜻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요괴의 범위가 꽤 넓다. 책에서는 요괴를 크게 4가지 범주로 구분해 놓았는데 형태를 바꾸는 요괴인 헨게, 신비롭고 마법 같은 힘을 가진 생물인 가이부츠, 자연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존재인 초시젠,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죽은 자의 영혼인 유레이 이렇게 네가지로 나누어 놓았고, 이런 존재를 전부 묶는 큰 카테고리를 요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즉 요괴와 유령은 다른 카테고리인 줄 알았는데 유령이 요괴의 하위장르였다는 것. 애초에 요괴의 분류는 요괴 연구에서의 논쟁거리였다고 한다. 메이지시대부터 요괴란 무엇인지, 어떻게 분류할지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 왔고 학자마다 주장하는 바가 달라서 어느 것이 맞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이 책에서는 요괴를 소개하는데 좀더 용이하게 요괴의 기본 형태를 기준으로 이렇게 네가지로 구분을 하고 소개를 하고 있다.
요괴(妖怪)의 ‘요(妖)’는 괴상하고, 의심스럽고, 으스스하고, 불길하다는 뜻이고, ‘괴(怪)’는 이상하고, 경이롭고, 초자연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요괴는 본래부터 감각적이고 모호한 개념인 존재라 요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명확하고 절대적인 정의를 내리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정체불명의 존재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진정으로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갓파, 기쓰네, 다누키, 텐구, 오니와 같은 수많은 요괴는 이미 일본인의 일상과 언어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으며, 만화나 영화, 애니메이션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세대를 불문하고 대중의 삶 속에 밀착되어 있다. 결국 요괴라는 존재는 일본인의 상상력을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이자, 일본 문화를 떠받치는 강력한 서사적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요괴를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요괴가 만들어진 목적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구권에서 이러한 초자연적 존재들이 대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나 정체불명의 존재를 악령, 유령, 요정과 같은 형상으로 설명하려는 데서 비롯되거나, 우화적 형식을 통해 교훈과 경고를 전달하기 위한 이야기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에서도 권선징악과 같은 교훈적 성격을 지니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일본의 요괴는 두려움을 실체화 한 것이 아니고, 교훈이나 경고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이야기 속의 존재도 아니다. 그리고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거나 한때 숭배의 대상이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진 신적인 존재도 아니라고 한다. 정확히 어떤 목적으로 이런 요괴 이야기가 만들어졌는지는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의 요괴는 특정한 기능을 지닌 존재라기보다 이야기 그 자체를 위한 서사적 존재이자 상상력과 창의력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요괴를 하나의 기준으로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바로 이러한 모호함이 지금까지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고 소비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괴에 대한 기록은 700년경 쓰여진 신화 역사서인 '고사기'부터 헤이안 시대의 '겐지 이야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민담 모음집인 '곤자쿠 이야기'의 '백귀야행' 등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등장한다. 이러한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101마리의 요괴를 정리하였고, 일본의 대표적인 요괴 학자인 이노우에 엔료, 야나기타 구니오 등의 설명도 비교적 꼼꼼하게 담아놓았다. 즉,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은 단순히 현대 대중문화 속 요괴에 대한 인상비평이 아니라, 여러 민속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한 비교적 심도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문적인 설명 못지않게 시각 자료도 매우 풍부한데, 현대 미술부터 유명 작가의 판화와 삽화까지 다양한 형태의 자료가 첨부되어 있어 요괴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동시에 볼거리를 제공한다. 요괴의 이름을 일본어 원어와 함께 제시하고 그 의미까지 풀이해 놓은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름에 담긴 뜻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해당 요괴의 성격이나 기원을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일본어를 아는 독자라면 그 이면의 맥락까지 더 깊이 읽어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챕터 사이사이에 ‘요괴학 강의’라는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요괴에 대한 다양한 개념과 흥미로운 주제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놓았다. 사람에게 붙어다니는 악령인 쓰키모노나, 오래된 물건에 혼이 깃들어 살아 움직인다고 여겨지는 쓰쿠모가미 같은 존재들은 일본 특유의 요괴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외에도 일본 3대 악 요괴나 예언 요괴, 전설 속 신성한 생명체인 덴세츠노세이부츠 등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도 함께 소개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또 혼조의 7대 불가사의나 일본 3대 유령과 같은 이야기들은 영화나 만화 등 대중문화에서 자주 소재로 활용되는 것들이라 몇 가지는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내용들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 정도 배경지식을 알고 있으면 일본 대중문화 속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등장할 때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게 느껴진다.
영화 파묘에 '누레온나'가 등장하는데 책에서 말하는 누레온나는 영화 상에서의 설정과는 전혀 다르다. 누레온나는 아기를 안아달라고 간청해서 아기를 안아주면 아기가 점점 무거워져서 그 무게로 호수가의 진흙 속에 발이 빠지고, 그때 공격을 한다는데 친절을 베풀려는 선한 마음을 공격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요괴 중 하나라고 한다. 이렇게 보니 파묘에 누레온나가 나온 이유가 궁금해진다. 거대괴수인 카이주도 요괴의 하나라고 한다. 보통 고지라 류의 영화를 괴수영화라고 하는데 요괴영화라고 해도 틀린게 아니라는 말씀. 실제로 첫 번째 고지라 영화에서는 요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요괴의 카테고리가 엄청 넓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된다. 게임이나 만화에 맨날 나오는 텐구. 텐구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요괴 중 하나로 불교와 함께 전래된 것으로 텐구라는 말은 엄청 익숙하지만 원어의 의미는 몰랐는데 이게 한자로 하면 하늘의 개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생긴 것은 개가 아닌 조류처럼 생겼는데 약간 힌두교의 가루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입 찢어진 여자인 구치사케온나는 한국에서는 빨간마스크로 알려져있다. 이건 90년대에 유행했던 괴담인데 의외로 에도 시대부터 유사한 요괴의 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70년에 접어들어 도시괴담으로 리뉴얼된 것 같은데 그게 다시 90년대에 부활했다고 하니 빨간마스크도 의외로 역사가 긴 요괴였다. 유령 택시도 50년대에 처음 등장한 요괴다. 유령 택시는 도시괴담인데 이것까지 요괴에 포함시키는구나.
오니와 한냐도 일본 대중 문화에 엄청 많이 나온다. 오니는 흔히 한국의 도깨비 포지션이라고 말해지던데 머리에 뿔이 솟아 있고,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방망이를 휘두른다는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일부 유사한 점이 있지만 그 외에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해도 될만큼 차이가 크다. 한냐는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힌 여성의 영혼이다. 질투, 분노, 집착 등 모든 감정이 엄청나게 강력해지면 여성의 머리에서 뿔이 돋아나고 입이 갈라지면서 살아 있는 오니로 변하는데 한냐는 보통 이런 유형의 요괴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지만 실제로는 요괴가 아니라 가면 자체를 가리킨다고 한다. 목이 늘어나는 로쿠로쿠비와 마법의 우산 카사오바케는 이름은 몰라도 생긴 건 보면 다 알만큼 일본 요괴 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임팩트가 있는 애들이다. 설녀와 갓파는 일본 문화를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조차 알만큼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갓파의 경우는 아주 방대하고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존재하지만 정작 에도 시대 이전에는 갓파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고 한다. 몰랐는데 갓파는 인간의 항문에 들어있는 신비한 구슬을 갈망해서 수영하는 사람의 항문을 손으로 찢어버린다는 설정이 있다고 한다. 의외로 변태였네.
쿠단, 우시오니, 하쿠타쿠는 소 요괴다. 소 요괴는 영화나 공포 드라마에서도 가끔씩 소재로 나와서 찾아봤던 기억도 있다. 의외로 개와 고양이 다음으로 많은 게 소요괴인 것 같다. 그외에도 게, 메기, 고래, 닭, 곰, 가오리까지 별별 동물 요괴가 다 등장한다. 나름 요괴 영화 같은 걸 많이 봐서 어느 정도 많이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보니 생소한 요괴도 엄청 많고, 알고 있던 요괴들에 대해서도 좀 더 디테일한 캐릭터의 설정을 알게 되니 신기하고 재미있다. 책을 쓴 저자가 일본인이 아닌 서양인인데 그래서 신비하고 낯선 존재들이 외국인의 시선에서 서술되면서, 더욱 신비롭고 경이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다만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는 익숙한 예시나 한국 요괴와의 비교가 함께 제시되었더라면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서양 작가의 시선에서 서술되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등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