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신살도감
애옹희(성민정)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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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사주보는 게 대유행이다. 소위 AI시대에 MZ라는 디지털 세대가 비과학적인 사주에 관심을 보인다는 게 아이러니처럼도 보이는데, 이는 지금 유행 중인 MBTI나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타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상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그것을 맹신한다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과 상대를 이해하고, 힘든 현실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위로와 조언을 얻기 위한 하나의 문화적 도구로 소비하는 게 아닐까 싶다. 즉, 사람들은 사주를 일종의 멘토의 조언이나 상담사의 위로처럼 생각하고 소비하는 것이라는 뜻. 물론 단순히 재미나 흥미로 사주를 보기도 하겠지만 단순한 재미를 넘어, 위로와 공감을 얻기 위해 사주를 찾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하다.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사주신살’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주 전체와 정확히 같은 개념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책 안에 자세한 설명이 부족해 검색을 통해 따로 찾아보니, 신살은 사주명리 안에 포함된 여러 해석 체계 중 하나로 도화살이나 역마살처럼 특정한 성향과 기질, 운의 흐름 등을 읽어내는 개념에 가깝다고 한다. 반면 흔히 말하는 사주는 오행이나 십성 등 훨씬 복잡한 요소들을 함께 다루는 보다 거대한 상위 개념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주신살은 일반적인 사주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방식이라기보다는, 생년월일만 알면 MBTI를 찾아보듯 자신의 신살을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을 보여주는 일종의 성격 유형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주신살도감]은 60갑자 일주 설명과 신살별 성향 분석, 그리고 각 일주가 마주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대응 방식과 삶의 태도까지 아우르는 사주 해석 도감이다. 책은 총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첫 번째와 두 번째 파트에서는 일주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과 60갑자를 기반으로 각 일주별 특징과 주요 신살, 장점과 단점, 그리고 잘 맞는 일주와 잘 맞지 않는 일주를 정리해 놓았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신살의 개념과 각 신살이 가지는 성향적 특징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특정 신살이 어떤 기질과 성향으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그것이 강하게 발현되는 상황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정리해 놓았고 네 번째 파트는 각 신살이 가진 성향이 현실에서 마주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을 중심으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대응 방식과 조언을 제시한다. 마지막 파트는 운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사주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사유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첨에는 60갑자 일주별로 전부 고유한 신살이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책을 보니 그런 구조는 아니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신살은 대략 열두어 개 정도로, 각 일주마다 그중 하나 혹은 복수의 신살이 부여되는 형식이다. 말하자면 타로카드처럼 각기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 분류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MBTI처럼 몇 가지 유형을 기준으로 성향을 나누고 설명하는 시스템인 셈. 사주에서 말하는 신살이 그것뿐인지, 대표적인 것들만 선별해 다루고 있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체 구성상 핵심적으로 반복되는 신살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정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주별로 완전히 다른 체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신살 체계를 각 일주에 대응시켜 성향을 설명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으며, 이후 내용 역시 이 신살을 중심으로 성향, 특징, 그리고 상황별 대응 방식을 정리한 형태인 셈이다. 즉 자신의 일주를 확인한 뒤 해당 일주에 부여된 신살을 기준으로 특징을 살펴보고, 그 신살이 가지는 부정적 경향과 그에 대한 조언을 함께 참고하는 방식으로 내용을 읽어 나가는 구조다. 그래서 굳이 책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 없이, 자신에게 해당되는 일주와 신살 부분만 골라 가볍게 확인하며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구성이다.


일주나 신살 같은 개념 자체가 한자어 기반이라 용어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고, 텍스트 중심으로만 설명할 경우 자칫 지루하거나 어렵게 다가올 여지도 있다. 그래서 책에서는 핵심적인 내용을 만화 형식으로 함께 구성해, 시각적으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보완해 놓은 점이 특징이다. 보통 MBTI를 이야기할 때는 유형별 성격이나 성향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 역시 그런 식으로 신살을 통해 각 유형적 성향을 소개하고도 있지만 단순한 성향 설명에 그치기보다는 해당 신살이 가진 특징과 단점,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보완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까지 함께 제시한다. “특징”보다는 오히려 “조언”에 방점이 찍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해당 신살의 인간이 겪기 쉬운 어려움을 겪기 쉬운 지점을 극복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조언이 하나의 챕터를 차지할 만큼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현실적인 조언까지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신살에 대한 조언에 그치지 않고, 사주라는 것을 정해진 결말로 생각할지 시작점으로 생각할지에 대한 조언이라던지, 사주에는 왜 완벽한 사람이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통해 사주라는 개념 자체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고찰과 조언까지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흔히 사주를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맹신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이를 절대적인 예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성향과 약점을 돌아보고 보완하는 하나의 해석 도구처럼 바라보는 시각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 위에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인식하고 삶의 방향을 조정하는 일종의 완충 장치로서 사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또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안 맞는 사람과는 정말로 멀어져야 하는 것인지, 남들보다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흔들리는 시간에 대한 고민 등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꼭 해봤을 법한 현실적인 삶의 고민에 대해서도 사주라는 틀을 통해 해석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이 책은 신살과 사주, 일주 개념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아, 해당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다소 진입 장벽이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책 제목은 ‘사주신살’이지만 본문에서는 ‘사주’라는 표현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사주·신살·일주의 관계도 명확하게 구조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아 전체적인 개념 이해가 쉽게 이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또한 자신의 일주를 확인할 수 있는 만세력이나 만세력을 읽는 기본적인 방법에 대한 안내도 따로 제시되어 있지 않아, 독자가 스스로 검색하거나 외부 자료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구조라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과적으로 특정 개념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큰 무리가 없을 수 있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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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식물학 - 이름은 알지만 사연은 몰랐던 105가지 꽃과 풀의 속사정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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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집이 숲세권에 있어서 지금 이 무렵이면 아파트 화단이며 주위 공원에 온갖 풀과 나무가 어지러이 꽃을 피운다. 당장 베란다 문만 열어도 작은 제비꽃이 수두룩하게 피었는데 얼마전까진 그냥 "작고 귀여운 보라색꽃"이라고만 생각했지 제비꽃인줄도 몰랐다. 의외로 주변에서 쉽게, 자주 볼 수 있는 꽃과 풀이지만 그 이름을 아는 건 많지 않다. 그래서 평소 길을 가다 보게 되는 풀꽃을 두고 흔히 "이름 없는 잡초"라고 부르는 일도 많은데 사실 이름 없는 풀은 없다. 우리가 그걸 모를 뿐이다. 심지어 잡초도 아니다. 제비꽃을 작은 보라색꽃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말이다. 엄마도 집 주변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꽃에 눈길이 가셨는지 길가에 꽃이 많이 피었다고 말을 꺼냈지만, 정작 꽃 이름을 몰라 “보라색 꽃”, “노란 꽃” 같은 식으로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보니 그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한 번쯤은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구석 식물학]은 길가나 꽃집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105가지 풀과 꽃의 트리비아 모음집이다. 길고 복잡한 식물 정보 대신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식물들의 이름과 그에 얽힌 흥미로운 사실들을 일러스트와 함께 간결하게 정리해 놓아서 가볍게 읽고 식물의 이름과 식물에 관련된 재미있는 뒷이야기를 알아가기 좋다. 책은 총 3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각 들판의 풀꽃, 정원의 꽃, 꽃집의 꽃이라는 테마로 구분해서 식물을 소개한다. 꽃은 개화 시기를 기준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계절 단위로 제시된 시기는 일본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한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각 식물은 전부 한 장씩 다루어지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일러스트다. 실제 사진이 아니라 사인펜이나 수채 물감으로 그린 듯한 느낌이라 포근하고 보기에도 좋다. 그리고 일러스트 특유의 섬세한 묘사 덕분에 오히려 사진보다 식물의 형태와 특징을 더 또렷하게 파악할 수 있어서 식물을 알아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식물 이름과 그 식물의 한줄평, 그리고 학명과 과(科), 개화기, 꽃말이 공통적으로 제시되고, 해당 식물과 관련된 트리비아가 가볍게 소개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트리비아는 일정한 틀에 맞추기보다 각 식물마다 필요한 정보만 선별해 담고 있어 읽는 데 부담이 없다.


집 주변에 파란색의 작은 꽃들이 굉장히 많이 피어 있었는데, 매년 보면서도 이게 무슨 꽃인지 알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크지도 않고 10센티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키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피어 있었는데, 이것이 책에서 첫 번째로 소개된 큰개불알풀이었다. 이 풀의 학명은 베로니카로, 형장으로 끌려가는 예수에게 손수건을 건넨 여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궁금한 건 베로니카가 아니라 ‘큰개불알’이라는 이름의 어원이다. 솔직히 베로니카보다 이렇게 예쁜 꽃이 왜 개불알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가 더 궁금하지 않나. 아쉽게도 책에는 이름의 유래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이름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이건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머위의 일본 이름은 ‘후키’인데, ‘닦는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예전에 이것으로 뒤를 닦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시골에서는 머위 잎으로 뒤를 닦았다는 이야기가 있어, 비슷한 생활 문화가 반영된 점이 흥미롭다.


냉이의 별명은 ‘펜펜구사’인데, 삼각형 모양의 열매가 일본 악기 샤미센의 채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봄망초’라는 식물도 소개되는데, 이름은 낯설지만 이미지를 보니 길에서 자주 보던 꽃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J-pop 가사에도 자주 등장하고, 아이돌 그룹 노기자카46이 ‘봄망초가 피는 무렵’이라는 노래를 부를 정도로 익숙한 존재라고 한다. 계요등은 닭 오줌 냄새가 나는 덩굴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인데, 일본에서는 ‘헤쿠사’, 즉 방귀 냄새라는 의미로 불린다고 한다. 문화는 달라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름이 붙는 점이 재미있다. 그런데 이 식물은 또 ‘사오토메바나’, 즉 아가씨꽃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방귀 냄새가 난다는 이름과는 달리, 꽃의 모습은 청순하고 단아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같은 식물에 전혀 다른 이미지의 이름이 공존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평소 잘 몰랐던 식물들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내용도 학술적인 정보에 치우치지 않고, 식물의 이름에 담긴 사연이나 꽃말 같은 감성적인 해설과 일상의 문화가 어우러진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가볍게 읽기 좋았다. 앞서 일본 문화와 관련된 내용만 일부 골라 소개했지만, 실제로는 이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다만 일본 식물학자가 쓴 책인 만큼 일본어와의 연관성이나 민담, 문화적 배경을 다룬 내용이 적지 않아, 일본어를 공부하거나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식물에 대한 설명을 넘어 일본 특유의 정서와 언어 감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식물에 대한 서술이 짧은 편이라 한 식물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아쉽게 느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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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괴 도감 101
잭 데이비슨 지음, 강은정 옮김, 최준란 감수 / 공명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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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중문화 속의 단골소재인 요괴를 소개하는 요괴 대백과사전. 가벼운 인상비평이 아니라 민속학자들의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꼼꼼하게 설명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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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괴 도감 101
잭 데이비슨 지음, 강은정 옮김, 최준란 감수 / 공명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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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일본 요괴 도감 101]은 일본인의 일상과 언어생활, 나아가 문화적 정서 속에 깊이 자리한 요괴들을 한데 모아 정리한 안내서로 고대 역사서와 문학 작품에 기록된 101종의 요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문적인 해석을 덧붙여놓았다. 보통 요괴라고 하면 그냥 괴물이나 괴수 같은 것을 뜻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요괴의 범위가 꽤 넓다. 책에서는 요괴를 크게 4가지 범주로 구분해 놓았는데 형태를 바꾸는 요괴인 헨게, 신비롭고 마법 같은 힘을 가진 생물인 가이부츠, 자연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존재인 초시젠,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죽은 자의 영혼인 유레이 이렇게 네가지로 나누어 놓았고, 이런 존재를 전부 묶는 큰 카테고리를 요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즉 요괴와 유령은 다른 카테고리인 줄 알았는데 유령이 요괴의 하위장르였다는 것. 애초에 요괴의 분류는 요괴 연구에서의 논쟁거리였다고 한다. 메이지시대부터 요괴란 무엇인지, 어떻게 분류할지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 왔고 학자마다 주장하는 바가 달라서 어느 것이 맞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이 책에서는 요괴를 소개하는데 좀더 용이하게 요괴의 기본 형태를 기준으로 이렇게 네가지로 구분을 하고 소개를 하고 있다.


요괴(妖怪)의 ‘요(妖)’는 괴상하고, 의심스럽고, 으스스하고, 불길하다는 뜻이고, ‘괴(怪)’는 이상하고, 경이롭고, 초자연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요괴는 본래부터 감각적이고 모호한 개념인 존재라 요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명확하고 절대적인 정의를 내리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정체불명의 존재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진정으로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갓파, 기쓰네, 다누키, 텐구, 오니와 같은 수많은 요괴는 이미 일본인의 일상과 언어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으며, 만화나 영화, 애니메이션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세대를 불문하고 대중의 삶 속에 밀착되어 있다. 결국 요괴라는 존재는 일본인의 상상력을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이자, 일본 문화를 떠받치는 강력한 서사적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요괴를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요괴가 만들어진 목적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구권에서 이러한 초자연적 존재들이 대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나 정체불명의 존재를 악령, 유령, 요정과 같은 형상으로 설명하려는 데서 비롯되거나, 우화적 형식을 통해 교훈과 경고를 전달하기 위한 이야기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에서도 권선징악과 같은 교훈적 성격을 지니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일본의 요괴는 두려움을 실체화 한 것이 아니고, 교훈이나 경고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이야기 속의 존재도 아니다. 그리고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거나 한때 숭배의 대상이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진 신적인 존재도 아니라고 한다. 정확히 어떤 목적으로 이런 요괴 이야기가 만들어졌는지는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의 요괴는 특정한 기능을 지닌 존재라기보다 이야기 그 자체를 위한 서사적 존재이자 상상력과 창의력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요괴를 하나의 기준으로 명확히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바로 이러한 모호함이 지금까지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고 소비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괴에 대한 기록은 700년경 쓰여진 신화 역사서인 '고사기'부터 헤이안 시대의 '겐지 이야기',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민담 모음집인 '곤자쿠 이야기'의 '백귀야행' 등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등장한다. 이러한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101마리의 요괴를 정리하였고, 일본의 대표적인 요괴 학자인 이노우에 엔료, 야나기타 구니오 등의 설명도 비교적 꼼꼼하게 담아놓았다. 즉,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은 단순히 현대 대중문화 속 요괴에 대한 인상비평이 아니라, 여러 민속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한 비교적 심도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전문적인 설명 못지않게 시각 자료도 매우 풍부한데, 현대 미술부터 유명 작가의 판화와 삽화까지 다양한 형태의 자료가 첨부되어 있어 요괴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동시에 볼거리를 제공한다. 요괴의 이름을 일본어 원어와 함께 제시하고 그 의미까지 풀이해 놓은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름에 담긴 뜻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해당 요괴의 성격이나 기원을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일본어를 아는 독자라면 그 이면의 맥락까지 더 깊이 읽어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챕터 사이사이에 ‘요괴학 강의’라는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요괴에 대한 다양한 개념과 흥미로운 주제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놓았다. 사람에게 붙어다니는 악령인 쓰키모노나, 오래된 물건에 혼이 깃들어 살아 움직인다고 여겨지는 쓰쿠모가미 같은 존재들은 일본 특유의 요괴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외에도 일본 3대 악 요괴나 예언 요괴, 전설 속 신성한 생명체인 덴세츠노세이부츠 등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도 함께 소개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또 혼조의 7대 불가사의나 일본 3대 유령과 같은 이야기들은 영화나 만화 등 대중문화에서 자주 소재로 활용되는 것들이라 몇 가지는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내용들이기도 하다. 반대로 이 정도 배경지식을 알고 있으면 일본 대중문화 속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등장할 때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게 느껴진다.


영화 파묘에 '누레온나'가 등장하는데 책에서 말하는 누레온나는 영화 상에서의 설정과는 전혀 다르다. 누레온나는 아기를 안아달라고 간청해서 아기를 안아주면 아기가 점점 무거워져서 그 무게로 호수가의 진흙 속에 발이 빠지고, 그때 공격을 한다는데 친절을 베풀려는 선한 마음을 공격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요괴 중 하나라고 한다. 이렇게 보니 파묘에 누레온나가 나온 이유가 궁금해진다. 거대괴수인 카이주도 요괴의 하나라고 한다. 보통 고지라 류의 영화를 괴수영화라고 하는데 요괴영화라고 해도 틀린게 아니라는 말씀. 실제로 첫 번째 고지라 영화에서는 요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요괴의 카테고리가 엄청 넓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된다. 게임이나 만화에 맨날 나오는 텐구. 텐구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요괴 중 하나로 불교와 함께 전래된 것으로 텐구라는 말은 엄청 익숙하지만 원어의 의미는 몰랐는데 이게 한자로 하면 하늘의 개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생긴 것은 개가 아닌 조류처럼 생겼는데 약간 힌두교의 가루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입 찢어진 여자인 구치사케온나는 한국에서는 빨간마스크로 알려져있다. 이건 90년대에 유행했던 괴담인데 의외로 에도 시대부터 유사한 요괴의 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70년에 접어들어 도시괴담으로 리뉴얼된 것 같은데 그게 다시 90년대에 부활했다고 하니 빨간마스크도 의외로 역사가 긴 요괴였다. 유령 택시도 50년대에 처음 등장한 요괴다. 유령 택시는 도시괴담인데 이것까지 요괴에 포함시키는구나.


오니와 한냐도 일본 대중 문화에 엄청 많이 나온다. 오니는 흔히 한국의 도깨비 포지션이라고 말해지던데 머리에 뿔이 솟아 있고,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방망이를 휘두른다는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일부 유사한 점이 있지만 그 외에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해도 될만큼 차이가 크다. 한냐는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힌 여성의 영혼이다. 질투, 분노, 집착 등 모든 감정이 엄청나게 강력해지면 여성의 머리에서 뿔이 돋아나고 입이 갈라지면서 살아 있는 오니로 변하는데 한냐는 보통 이런 유형의 요괴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지만 실제로는 요괴가 아니라 가면 자체를 가리킨다고 한다. 목이 늘어나는 로쿠로쿠비와 마법의 우산 카사오바케는 이름은 몰라도 생긴 건 보면 다 알만큼 일본 요괴 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임팩트가 있는 애들이다. 설녀와 갓파는 일본 문화를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조차 알만큼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갓파의 경우는 아주 방대하고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존재하지만 정작 에도 시대 이전에는 갓파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고 한다. 몰랐는데 갓파는 인간의 항문에 들어있는 신비한 구슬을 갈망해서 수영하는 사람의 항문을 손으로 찢어버린다는 설정이 있다고 한다. 의외로 변태였네.


쿠단, 우시오니, 하쿠타쿠는 소 요괴다. 소 요괴는 영화나 공포 드라마에서도 가끔씩 소재로 나와서 찾아봤던 기억도 있다. 의외로 개와 고양이 다음으로 많은 게 소요괴인 것 같다. 그외에도 게, 메기, 고래, 닭, 곰, 가오리까지 별별 동물 요괴가 다 등장한다. 나름 요괴 영화 같은 걸 많이 봐서 어느 정도 많이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보니 생소한 요괴도 엄청 많고, 알고 있던 요괴들에 대해서도 좀 더 디테일한 캐릭터의 설정을 알게 되니 신기하고 재미있다. 책을 쓴 저자가 일본인이 아닌 서양인인데 그래서 신비하고 낯선 존재들이 외국인의 시선에서 서술되면서, 더욱 신비롭고 경이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다만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는 익숙한 예시나 한국 요괴와의 비교가 함께 제시되었더라면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서양 작가의 시선에서 서술되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 등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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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코프스키의 영화 - 시간과 공간의 미로
나리만 스카코브 지음, 이시은 옮김 / B612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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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글을 쓰려면 아무래도 정성일 평론가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성일 평론가는 우리 시대의 이동진이고, 그 시대를 지나오며 그 새벽 정영음을 함께 듣던 사람이라면 정성일이란 이름은 조금은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유튜브는커녕 개인 블로그 같은 것도 없던 아날로그 시절이라서 개인이 영화에 대해 평을 하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그래서 정성일 아저씨 같은 평론가의 영향력은 굉장히 컸다. 그런 당시 씨네필의 멘토 같은 정성일 아저씨가 정영음에 나와서 틈만 나면 찬양하던 감독이 있었으니 바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되시겠다. 아무리 위대한 감독이라도 필모의 모든 영화를 잘 만들 수는 없다. 영화 역사상 단 한편의 실패작도 찍지 않은 감독은 타르코프스키 단 한 명뿐이다. 이런 식의 말을 하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정성일 아저씨의 타르코프스키 사랑은 유별났다. 솔직히 씨네필을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야기까지 듣고 어찌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엔 어째서인지 영화를 보지 못했고, 타르코프스키를 영접하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90년대 중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세 편이 비디오로 출시가 되었고, 유작인 희생은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했지만 그땐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가 시간이 흘러 21세기에 접어들어서야 겨우 스토커와 솔라리스, 희생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는 봤지만 그 영화들에 대한 어떤 비평이나 짧은 감상조차 한마디도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영화가 너무나 난해하고 어려워서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봤지만 아는 게 없고, 이해도 못하고, 영화를 읽고 어떤 식으로건 해석을 하지도 못한 상태라 그저 정성일 평론가의 말을 빌려서 타르코프스키가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감독인지만 떠들 뿐이었다. 그래서 사실 나에게는 타르코프스키에서 정성일을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니 타르코프스키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정성일 평론가의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때 정성일 아저씨가 영화 한 편 한 편에 대해 분석하고 영화를 꼼꼼하게 읽어줬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당시엔 감독에 대한 소개만 했을 뿐 디테일하게 영화를 디벼보진 않아서 풀리지 않는 영화의 궁금증은 늘 갈증처럼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해 못할 어려운 영화를 다시 볼 엄두는 나지 않았고, 그렇게 타르코프스키의 이름과 영화에 대한 물음은 점점 잊혀져 갔다. 그러다가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서거 40주년을 맞아 다시 그 잊혀져가던 이름이 도착한 것이다. 해외에서는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어지고 영화를 분석한 책도 많이 나왔다는데 그중 가장 깊이 있게 영화를 분석한 책이 나리만 스카코브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라고 한다. 이 책은 2012년에 타르코프스키 탄생 80주년을 맞아 출간되었는데 한국에서도 출간되었지만 절판되었다. 그러다가 올해 타르코프스키 서거 40주년을 맞아 이 절판됐던 책이 재출시된 것이다. 앞서 다시 그 이름이 도착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2012년부터 내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기다림의 시간이야말로 타르코프스키적인 시간이라고 하겠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 시간과 공간의 미로]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는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시간과 공간의 측면으로 분석한다. 타르코프스키의 미학적 체계의 핵심은 시간 그 자체에 있다. 타르코프스키의 이미지는 공간적 구성을 넘어선 '시간-이미지'이며, 이는 정성일 평론가가 타르코프스키의 이미지란 다른 감독의 이미지와는 달리 공간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의 이미지라고 언급했던 것처럼 감독공간의 프레임을 넘어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는 데 주력한다. 일반적인 영화가 극적 긴장감을 위해 시간을 소비되는 도구로 사용한다면, 타르코프스키는 시간의 현존 그 자체를 체험하게 한다. 가령 미션 임파시블에서 성냥불이 시간 내에 붙어야 하는 사건의 조건이라면, 타르코프스키에게 성냥불은 그것이 타들어 가며 소멸하는 과정 전체를 관객이 견디게 만드는 시간의 경과이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타르코프스키는 필연적으로 롱테이크를 선택하며, 관객을 영화적 사건이 아닌 존재의 지속 속에 머물게 한다.


롱테이크는 편집을 하지 않아 시간을 닫지 않고 열린 상태로 지속적인 현장감을 추구한다. 실재 시간을 재현하여 그것을 보는 관객이 내러티브가 아닌 시간을 보는 경험을 하게 한다는 것. 타르코프스키가 이렇게 롱테이크를 사용하는 것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으로 몽타주가 시간의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언제나 감춰져야 한다고 말한다. 편집이란 감독이 자신의 의도를 말하기 위한 수단인데 그것을 거세함으로서 감독의 주관적 이야기에서 객관성을 띄게 되고, 비로소 화면은 의미가 아니라 시간으로 채워지게 된다는 것. 이는 시각적 요소의 충돌에서 새로운 인식을 끌어내는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기법과는 반대 입장인 것이다. 몽타주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모호하지 않게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고, 사건을 보여주고 암시하는 데 그친다면 타르코프스키의 롱테이크는 시간 속에 머물며 변해가는사실과 본질의 감각을 전하겠다는 영화의 근본적인 목적을 실현하는 예술적 근간인 셈이다.


여기서 핵심은 타르코프스키가 롱테이크에 담아내려 한 것이 정교한 메타포나 상징적 기호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였다는 점이다. 사건이나 움직임이 내러티브적 목적을 내려놓는 순간, 그 행위가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물리적 사실만이 남게 된다. 즉, 특정한 의미를 관철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라 그저 행하는 동작이 될 때, 그 행위의 유일한 속성은 오직 시간이 된다. 이는 관객에게 해석이 아닌 시간을 체험하게 만드는 장치다. 그래서 기존 영화 문법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들은 그 긴 시간 동안 그 화면에 담긴 의미나 의미론 적 암시를 읽어내기 위해 애를 쓰지만 결국 믿을 수 없는 지루함에 도달하게 된다. 30초 짜리 쇼츠도 재미가 없으면 바로 넘기는 요즘의 관객들에게 의미없는 행동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그 과정을 견디라고 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어떤 심오한 뜻이 있을까 싶어 졸린 눈을 비벼가며 화면을 뚫어지게 봤지만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한 씨네필의 자괴감은 영화에서 더 멀어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타르코프스키가 이런 롱테이크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경과를 보여주기 위해 사용한 도구는 공간이다. 롱테이크 속에서 시간적 평면성이 부각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공간적 조작 덕분이다. 롱테이크가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의 이동은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대신 단일한 시점만을 제시하며, 그 결과 공간과 카메라가 동일시되면서 사물의 물질성이 오롯이 드러나게 된다. 즉, 카메라의 쇼트를 나누지 않고 하나의 시점을 유지함으로써 관객의 시선은 그 공간에 갇히게 되고, 비로소 화면 속 사물의 실체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대표적인 3대 롱테이크라고 불리는 스토커의 비밀의 방 시퀀스, 향수에서의 촛불 시퀀스, 희생에서의 저택을 불태우는 시퀀스에서는 각각 망설임과 지연의 시간, 지속과 반복의 시간, 경과와 소멸의 시간을 체험하게 한다. 그리고 향수와 희생의 롱테이크는 엔딩과 맞물려 있는데 이는 영화의 마지막을 하나의 끊김 없는 시간으로 지속시킴으로써, 끝남의 순간을 지연시키고 그 자체를 체험하게 만든다.


이 책은 타르코프스키가 직접 쓴 두권의 책 타이틀에 모두 들어가 있을 정도로 타르코프스키가 중요하게 생각한 시간의 개념과 그것과 셋트로 움직이는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앞서 롱테이크에 어떤 상징이나 함의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체험하게 하는 도구라는 말을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영화 자체에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시간, 공간, 사건이라는 세 요소를 중심으로 구성되므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프롤로그에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꽤나 어려운 분석이 등장한다. 그리고 나서 일곱 편의 영화를 하나씩 심층분석하는데 타르코프스키가 시간, 공간, 사건이란 세 요소로 만들어내는 철학적 체험을 소개한다. 사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그러하듯 이 책도 굉장히 지루하고 현학적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에 나오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해석부터 제대로 다 이해를 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기 전 우선 스토커를 다시 본 후 책을 통해 그 내용을 되짚어보려 했다. 하지만 역시나 오랜만에 다시 본 스토커는 여전히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책의 내용도 어려워서 영화를 분석한 그 내용들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분석 자체를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탓이리라. 그러나 전부까진 아니지만 이렇게나마 그동안 궁금해하던 스토커에 대한 의미를 분석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물론 책을 읽은 후 다시 영화를 본다면 무심코 지나쳤던 것까지 디테일하게 살펴보며 책에 써있는 내용을 재차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스토커가 끝나면 향수와 희생까지 묵시록 3부작을 조지고 싶다. 타르코프스키 영화만큼 어렵지만 알고 싶은 나리만 스카코프의 이 책도 나에겐 타르코프스키 영화만큼의 도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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