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광고 카피 도감
오하림 지음 / 서교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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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깊은 여운, 가볍지만 무거운 메세지. 마음에 카피하고 싶은 카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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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광고 카피 도감
오하림 지음 / 서교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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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카피는 상품이나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를 짧고 인상적으로 전달하는 홍보 문구다. 아무리 구구절절 제품에 대해 설명해도 사람들은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지만, 광고 카피는 짧은 문장 하나만으로도 그것을 각인시키는 마법을 부린다. 그리고 보통 이런 광고 카피에는 상품의 기능이나 이미지, 브랜드가 추구하는 콘셉트가 비교적 분명하게 담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 "침대는 과학입니다” "국물이 끝내줘요” 같은 소위 잘 만든 한국의 광고 카피만 보더라도, 그 안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무엇을 강조하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건 한국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전 세계 광고의 공통점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카피에서 강조되는 것은 대개 상품과 브랜드 자체다. 하지만 일본의 광고 카피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제품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도 스토리와 감정의 맥락을 통해 그것을 전달한다. 직접 설명하는 대신 전혀 다른 말과 장면을 제시함으로써, 그 제품이나 브랜드를 간접적으로 연상시키는 방식이다.


[일본 광고 카피 도감]은 멋짐이 담긴 일본의 광고 카피 70가지를 소개하는 책이다. 광고 카피를 보여주고 그 제품이나 브랜드에 대한 기본 정보와 해당 카피가 나오게 된 배경, 그리고 카피 내용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 속에 담긴 함의를 풀어낸다. 여기에 저자의 개인적인 감상도 덧붙여져 있는데, 사실 이런 배경 설명을 보지 않더라도 카피 자체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앞서 말했듯 일본의 광고 카피에는 정서를 움직이는 스토리가 담겨 있다. 한마디로 철학적이고 서정적인 문장이 많아, 짧은 한 줄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느끼는 점이 많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서 해당 카피의 배경까지 읽고 나면 생각할 거리가 한층 더 풍성해진다. 막연히 의미를 짐작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배경 설명을 통해 이 카피에는 이런 철학이 담겨 있구나, 혹은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 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면서 문구가 더 깊이 다가오고 가슴속에 스며든다.


전반적으로 꽤 멋진 글들이라서 순수하게 감탄하게 되는 카피도 있고, 제법 감동적인 것들도 있다. 이런 말이 호들갑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려서 그런지 꽤 인상 깊게 느껴진다. 일단 어떤 홍보를 위한 카피인지를 의식적으로 보지 않고, 우선은 카피 그 자체만 놓고 문장 자체를 즐겼다. 그런 다음 무엇에 관한 카피인지 확인하고, 다시 그 문구를 대입해 메시지를 읽어내면 전혀 다르게 읽히는 재미가 있다. 그냥 읽을 때는 별다른 의미 없이 지나갈 수 있는 문장도, 광고 제목이 더해지는 순간 미싱 링크가 맞춰지듯 하나의 원이 완성되는 느낌이 들고, 그때 느껴지는 쾌감이 꽤 짜릿하다. 한때 유행했던 하상욱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인데 이건 좀더 고오급스런 버전이라 하겠다. 가령 "별이 되어도, 달을 걷고 있을 거야"라는 문구만 보면 그 의미를 쉽게 알 수 없는데, 이것이 마이클 잭슨 유품 전시회 광고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정도면 그냥 미친거다. 또다시 호들갑처럼 들리겠지만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이처럼 멋진 문구가 또 있을까?


이 책은 광고나 홍보 관련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흔히 말하는 영감, 인스피레이션을 줄 만하다. 단선적이고 직접적인 홍보는 제품이나 브랜드를 알리는 데는 분명 효과적이지만, 이런 감성 광고는 이야기를 통해 감정에 먼저 닿고, 그 결과 소비자를 설득한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광고는 더 오래 기억에 남고, 브랜드를 한층 가깝게 느끼게 만든다. 잘은 모르지만, 감동적인 카피를 접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 브랜드 자체를 다시 보게 되는 효과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에 실린 카피들을 쭉 읽다 보면 어떤 경향성이나, 잘된 카피가 갖는 공통된 특징 같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광고나 홍보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또 광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나처럼 일본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꽤 유용하다. 광고 카피라는 특성상 문장이 길지 않고, 대부분 하나의 의미로 깔끔하게 완결되어 있어 읽고 익히기 부담이 없다. 게다가 다양한 분야와 주제를 다루고 있어 자연스럽게 폭넓은 어휘와 표현을 접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실제로 쓰이는 말들로 구성되어 있어 교과서적인 일본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표현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런 멋진 문구들은 기억해 두면 언젠가는 꼭 한 번쯤 쓰이게 된다. 대화 중이든, 커뮤니티에서 글을 쓸 때든 그 문장 자체이거나, 혹은 그것을 살짝 변형한 표현을 사용할 순간이 분명히 온다. 그럴 때 이런 문장을 자연스럽게 섞어 쓰면 말이나 글이 한층 있어 보이고, 센스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차피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이런 카피들을 참고해 응용하는 창조적 우라까이가 꼭 나쁜 일만은 아니고, 오히려 표현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이런 문장들을 곱씹다 보면 그 안에 담긴 메시지나 의미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고, 그 과정 자체가 생각의 깊이를 조금은 더 깊게 만들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들 카피가 주는 감각적인 울림과 철학적인 여운, 그리고 짧지만 깊이 남는 감동은 길게 쓰인 철학책 못지않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그래서 이 책은 광고나 홍보 관련 일을 하는 사람에게도,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그리고 가볍게 읽으면서도 깊은 사유와 여운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도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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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미식 생활
이다 치아키 지음, 장하린 옮김 / 이아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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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인스타그램의 책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자신이 먹고 마시며 보낸 일상의 순간들을 일러스트로 기록하는 컨셉으로 마치 사람들이 자신이 먹은 음식을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듯 저자는 그 장면들을 일러스트로 그려 한 페이지씩 책에 담아 놓은 것이다. 다만 이 책은 단순한 SNS 기록에 그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보다 훨씬 넓은 지면을 활용할 수 있고, 사진이 아니라 머릿속 이미지와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가 마치 자랑하듯 먹거리 그 자체를 결과물로 올려놓았다면 여기서는 일상의 미식 경험이 단순한 자랑이나 기록을 넘어, 하나의 이야기와 흐름을 가진 서사로 확장된다. 단순히 자기가 먹은 먹거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먹거리를 둘러싼 자신의 일상과 기분을 더 풍부하게 표현하고 그 일상을 공유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인스타그램과 닮아 있으면서도, 그보다 더 스토리 있고 알찬 구성으로 읽히는 미식 에세이라 할 수 있다. 약간 인스타 확장판의 느낌이다.


작가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의 그림체로 인기있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집이나 생활 잡화, 소녀 같은 것들을 자주 그리는데, 딱 보면 이 작가 그림이라는 게 바로 느껴질 정도로 스타일이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도 이 작가의 '집이 좋은 사람'이란 책도 가지고 있는데 그림체가 이쁘고 소녀 감성이라 보고 있으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특별히 뭔가 대단한 내용이 없어도 그냥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좀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색감도 전반적으로 파스텔톤 위주라서 자극적이지 않고, 눈이 편하고, 오래 보고 있어도 부담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림 자체는 꽤 정교하고 현실적인 편이라서, 너무 동화 같거나 과장된 느낌은 또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보고 있으면 현실이 갑자기 일러스트처럼 포근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마음이 좀 느슨해진다. 그래서 힐링계라고 생각하는 건데 아무튼 이런 편안한 그림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느긋하고 별일 소소한 일상이라는 컨셉이랑 잘 맞는 것 같다. 만약 이걸 사진으로 전부 찍어놓았다거나, 다른 그림체의 이미지로 꾸며놓았다면 지금처럼 소소한 일상을 편하게 즐긴다는 느낌은 없었을 것이다.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심플하다. 매일 먹고 마시는 일상다반사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작가의 일상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책으로, 일상 속 미식생활에서 한때 유행했던 ‘소확행’을 찾는 컨셉에 가깝다. 하루 세 끼 식사뿐 아니라 차나 커피, 디저트와 간식, 그리고 먹거리를 담는 컵과 접시까지도 모두 미식생활의 일부로 다룬다. 흔히 말하는 맛집을 찾아다니며 예쁜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는 보여주기식 미식이 아니라, 평일 낮 동네를 천천히 돌아다니며 혼자 밥을 먹고, 일을 끝낸 뒤 남편과 하이볼을 마시며 안주를 고민하고, 직접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만들어 먹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커피를 내려 조용히 티타임을 갖거나, 도자기 공방에서 직접 접시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동네 직판장에서 누군가가 키운 야채를 사고, 백화점에서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비싼 차잎을 고르기도 한다. 이렇게 미식생활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하루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며 취미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도 이어진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하고 싶을 때만 요리하고, 가족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취향대로 메뉴를 고르고, 마음에 드는 식기로 식탁을 꾸미는 모습은 가만 보면 요즘 여자들이 바라는 전형적인 인스타용 삶과도 겹쳐 보인다.


책은 상당히 얇은 편이다. 게다가 일러스트북 형식이라 텍스트의 비중도 크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굉장히 빨리 읽힌다. 이런 점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보면 내용이 조금 부실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보통 에세이 책은 여기저기 읽을거리도 많고 곱씹을 부분도 있는데, 이 책은 에피소드 수 자체도 적고 글도 많지 않다 보니 다 읽고 나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남는다. 표현하자면 팔도비빔면 하나 끓여 먹은 것처럼 어딘가 모자란 기분에 가깝다. 물론 그림을 보는 재미는 충분하다. 그림 하나하나가 예쁘고 보는 맛이 있어서, 글이 적다는 아쉬움을 어느 정도는 채워준다. 하지만 이왕이면 책의 분량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페이지가 더 많았다면 작가의 그림도, 이야기도 더 많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또 처음에는 이 책에 간단한 레시피 같은 내용도 들어 있을 거라고 혼자서 기대를 했었다. 작가가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이나 디저트의 레시피를 일러스트로 풀어 놓았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애초에 이 책은 레시피북이 아닌 에세이집이었으니 없는 내용을 기대한 쪽이 잘못이긴 하지만, 만약 레시피까지 함께 담겨 있었다면 작가의 미식생활을 따라 해 보면서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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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철학 편 - 알고 있으면 척하기 좋은 지식의 파편들 세계척학전집 1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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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잘 보면 ‘세계철학전집’이 아니라 ‘세계 척학 전집’이다. 심지어 부제는 ‘훔친 철학’이다. 이 책이 어떤 스타일인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제목만 봐도 대략적인 느낌은 바로 온다. 보통 비전공자들이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은 대개 삶과 인생에 대한 답을 찾고,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꽤 거창한 이유에서다. 사는 건 팍팍하고, 인간관계는 피곤하고, 일상에 무의미함과 공허함을 느끼는 청춘들은 이 버거운 삶을 지탱해 줄 무언가를 철학에서 찾으려 한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철학자의 말이나 철학 사상을 인용하며 아는 척, 잘난 척을 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요는 순수한 학문적 탐구라기보다는, 어디엔가 써먹기 위해 철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다는 것이다. 고민에 대한 답을 찾거나,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조언을 얻거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철학이라는 학문은 만만치 않다. 그 자체로 어렵기도 하고, ‘철학’이라는 이름 아래 다루는 주제와 사상의 양은 지나치게 방대하다. 어설프게 접근해서는 내 삶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멀게 느껴지기 쉽다. 그래서 기껏 관심을 가지고 책을 펼치고도 금방 싫증을 느껴 책을 덮기가 일쑤였다.


어차피 초보 수준에서 알아야 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그리 깊이 있는 것일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의 역사나 사조, 학파나 계보 따위의 이론은 과감하게 빼버리고, 사람들이 한 번쯤 궁금해했을 법한 질문과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철학을 학문으로 정리하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한 번쯤 꺼내 생각해볼 수 있는 생각거리로 다루려는 것이다. 책은 총 세 파트로 나뉘는데, 각 파트에서는 진리와 인식, 윤리와 정의, 자유와 실존을 다룬다. 당장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목차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주제를 먼저 읽어도 되지만, 책의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한다. 뒤의 파트는 이전 파트에서 다룬 철학적 문제의 토대 위에서 생각을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앞의 내용을 이해한 뒤에 다음 파트를 읽으면 사고가 단계적으로 넓어진다. 각각의 파트는 그 파트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을 전제로 구성된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누군인가?”가 그것이다. 각 장에서 다루는 철학자들의 사상과 개념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은 이 질문들에 대한 각기 다른 답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다. 진리를 의심하는 법에서 출발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을 고민하고, 마지막에는 그 모든 질문을 던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생각이 수렴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저자의 추천처럼 순서대로 단계별로 읽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읽어버렸다. 그 탓에 이전의 철학적 사고와의 인과관계나 연계성을 충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단절된 철학적 사고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적지 않았다. 이 책이 특히 재미있는 이유는, 실생활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거나 고민해봤을 만한 상황을 함께 던져놓고 그에 대해 철학으로 풀어가기 때문이다. 추상적이고 지리한 이론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내 일상을 철학으로 해석하고 주석을 달아주는 방식에 가깝다. 보통 철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거나 다소 교조적으로 다가오기 쉬운데, 이 책은 일상 속의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어떤 형태로든 생각의 실마리나 나름의 답을 얻게 만드는 생활밀착형 철학이다. 그런 점에서 철학이 삶에 실제로 쓰일 수 있다는 효용감을 느끼게 해준다.


철학 개념을 보다 보면, 하나의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사상이나 관점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이미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생각을 어떤 철학자의 사상으로 뒷받침해 보기도 하고, 반대로 내 생각과 상충하는 다른 철학자의 이론을 통해 스스로의 입장을 다시 다듬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르트르는 “억압받는 사람들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집단적 행동이 필요하지 않은가, 역사적 진보를 위해서라면 때로는 폭력도 정당화될 수 있지 않은가”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카뮈는 “어떤 목적도 무고한 사람의 죽음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부조리다”라고 반박한다. 개인적으로는 기본적으로 카뮈의 주장에 더 공감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르트르의 말에도 일견 타당한 지점이 있다고 느낀다. 이렇게 어느 쪽에도 쉽게 손을 들어주지 못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은 역사 역시 아직 어느 쪽이 옳았는지를 단정하지 못했고, 어쩌면 두 주장 모두 부분적으로 옳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모든 문제에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이런 애매한 회색지대 역시 하나의 답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점이 오히려 인상 깊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말한다. 전장에서 혼자 미친 듯이 적진을 향해 뛰어가는 병사가 있다. 그는 용감해 보이지만 결국 가다 죽는다. 반대로 두려움에 뒤에 남아 숨어 있던 병사는 아군의 패배와 함께 죽음을 맞는다. 이 둘 중 누가 용감한가라는 물음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둘 다 용감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보통은 적진을 향해 뛰어드는 사람을 용감하다고 여기겠지만,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에 가깝고, 뒤에 숨어 있던 병사는 분명 비겁하다. 진짜 용기란 무모와 비겁 사이 어디메에 있다. 상황을 판단하고, 필요할 때는 위험을 감수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그렇지 않을 때는 물러설 줄 아는 균형점.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그 지점을 덕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마도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일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식 극중주의는 중용과는 거리가 멀다. 극단을 피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중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보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열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어떤 사람은 제자리에 머문다면 그것은 진보라고 부르기 어렵다. 모두가 각자 다른 속도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게 진보에 더 가깝다. 그러기 위해서는 극단과 극단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내디딜 수 있는 한 걸음을 찾아야 한다. 평소 막연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걸 아리스토텔레스식 사고로 포장해 보니 제법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게 바로 책이 지향하는 척학이 아닐까 싶다.


마치 맥주 이름을 연상시키는 하이데거는 ‘세인’과 ‘공공연함’이라는 개념을 말했다. 자신의 선택이 정말로 내가 원해서라기보다, 사회적으로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라는 기준에 따라 이루어질 때, 그 순간의 나는 더 이상 ‘나’가 아니라 익명의 ‘사람들’이 된다는 주장이다. 공공연함은 이런 선택과 태도가 평균화되고, 의심 없이 당연한 것으로 굳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이 개념이 묘하게 그럴듯하고 꽤 설득력이 있어서 눈길이 갔다. 특히 유행에 민감하고 냄비처럼 쉽게 끓어오르는 성향이 있다고들 말하는 한국 사회를 떠올리면, 세인이라는 개념은 더 크게 와닿는다. 스스로는 일반화나 획일화, 동일화, 평준화, 균일화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행동은 튀지 않게, 괜히 눈에 띄지 않게, 중간만 하자는 쪽으로 기울어 있기 쉽다. 세인이 되는 편이 위험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특별한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는, 특별한 행동으로 감수해야 할 위험을 피하려는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나지 않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로 관계를 맺는 편이 미움받지 않고, 말 그대로 평균은 가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런 모습들을 그냥 일상의 태도라고 말하는 것보다, 하이데거의 세인이나 공공연함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해보면 훨씬 또렷해진다. 확실히 있어 보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척학하기에도 딱 좋은 개념이다.


사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이 정도는 옆에 앉은 친구도 해줄 수 있는 조언일지 모른다. 그런데 책은 한 단계 더 들어가서 ‘불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인은 요즘 커뮤니티 용어로 치면 NPC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세인으로 있을 때는 배경에 녹아든 NPC처럼 의미 없는 행동을 해도, 모두가 똑같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 그것이 딱히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있는 밤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잠 못 드는 밤은 있고, 그런 밤에는 모든 것이 문득 의미를 잃는다. 존재의 의미, 행동의 의미, 관계의 의미가 하나씩 흐릿해지고, 그 자리를 공허함이 채우면 불안이 찾아온다. 하이데거는 이 불안을 어떤 대상 때문이 아니라 ‘무’에서 비롯된 감정이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하이데거가 이 불안을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물에 가깝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불안 속에서는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데”라는 세인의 위로, 다시 말해 자기변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반복되던 일상성은 멈추고, 대신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그리고 바로 그 질문이 나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밤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 끝에 불안해질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애써 고개를 돌리고 현실을 보지 않으려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그 불안과 마주했을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피하려 했던 불안 자체가, 가장 정직한 신호였던 셈이다. 안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고, 그렇게 활용해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철학이 이런 생각의 전환을 가져온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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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라멘! - 요리 코믹북
휴 아마노.새라 비컨 지음, 임태현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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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라멘!]은 이 책은 특이하게도 미국인이 쓴 일본 라멘 레시피북이다. 일본인의 소울푸드라 불리는 라멘을 미국인이 설명한다는 점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일본인의 라멘이 소울푸드이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인은 라멘의 정답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집집마다 맛이 다른 한국의 김치처럼, 라멘 역시 만드는 사람과 지역에 따라 무수한 변주를 지니고 있어 어느 하나를 기준이라고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 안에 있는 사람은 그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전체를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기는 쉽지 않다. 반면 문화의 외부에 있는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라멘을 관찰하고 비교적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외국인 독자에게 일본 라멘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는 같은 외국인의 시각으로 연구하고 분석한 글이 더 유용할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는 식당 레멘을 가정에서 따라할 수 있게 간단하게 소개하는 레시피북이지만 영미권 독자에게 라멘의 종류와 개념, 먹는 법, 역사, 조리기구, 라멘과 관련된 문화 등을 소개하는 토탈 라멘 가이드북의 역할도 한다. 책은 총 6챕터로 1장에서는 앞서 말한 라멘과 관련된 다양한 트리비아를 소개하고 2~5장에서는 각각 육수, 면, 차슈, 토핑에 대해 설명하고, 마지막 6장에서는 기본 라멘 이외의 응용 메뉴를 소개한다. 책은 전부 일러스트로 구성되어 있어서 보는 맛도 크다. 실제 사진보다 라멘의 특징을 더 잘 살린 이미지로 설명을 하고 잇어서, 각 요소가 한눈에 들어오고 시각적으로도 편안하게 읽힌다. 덕분에 레시피북이면서도 가볍게 넘겨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폰트가 손글쓰 같은 폰트인데 글자가 작기도 작고 흘림체로 되어 있어서 그림에 비해 글자는 읽기가 좀 불편함 감이 있다. 역시 폰트는 정자체가 나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라멘을 아주 좋아해서 한때 일본 사이트에 들락거리며 라멘 만드는 걸 공부하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는 주로 국물 위주로 연구를 했었다. 일본은 면을 중요시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국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특히 개인적으로 국물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어서 라멘 만들기는 곧 국물 만들기라고 생각할 정도로 국물에 관심을 가졌다. 반대로 그 외의 요소들은 소홀히 하고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한 그릇의 완성된 라멘을 만들기 위해서는 국물뿐만 아니라 면과 차슈, 다양한 고명까지 전체적인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그때 등한시했던 면과 차슈, 그리고 여러 고명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라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국물을 만드는 것도 당시에는 몇몇 가게들의 비법을 통해 소유나 돈코츠 육수 내는 방법을 단편적으로 엿보았을 뿐, 라멘 육수 전반의 기본적인 상식을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라멘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와 육수 만드는 법까지 함께 배울 수 있어 상당히 유익했다.


책에는 수제 면 제조법이 나오긴 하지만, 간수와 제면기를 사용하는 비교적 전문적인 식당의 면 뽑는 방식이 소개되어 있어 사실 집에서 그대로 따라 하기는 어렵다고 느껴진다. 집에서 면까지 직접 만들어 라멘을 해 먹는 일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라멘 면의 특징과 기본적인 제조 방식, 굵기나 모양에 대한 이해가 밑바탕이 된다면 시판 면을 고를 때도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라멘의 종류와 특징에 맞는 면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면에 대한 설명 역시 알아두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 또 기본적인 면 제조 방식과 과정을 이해하고 나면 냉부의 셰프들처럼 비교적 간략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면을 만들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마 면까지 직접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역시 면은 마트에서 사는 걸로.. 책에서는 간수의 대체품으로 구운 베이킹소다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이는 영화 남극의 셰프에서도 등장했던 방식이라 실제로 이런 방법이 가능하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차슈와 고명으로 소개되는 것들 중에는 꼭 라멘 위에 토핑으로 올려서 먹지 않더라도, 야키토리나 고기완자, 구운 닭 껍질, 온천달걀과 달걀 장조림, 표고버섯 절임, 채소 볶음처럼 그것만으로도 밥반찬이나 술안주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알아두면 활용도가 높을 것 같다. 그리고 맛기름이나 마늘 향미유, 라유, 마유 등의 레시피도 함께 소개되어 있어 한번 만들어두면 말 그대로 만능 양념처럼 여기저기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이 되는 쇼유, 시오, 미소, 돈코츠 라멘뿐만 아니라 츠케멘을 비롯해 다양한 비빔면과 탄탄멘, 야키소바, 그리고 늘 궁금했던 카레 라멘이나 치킨 라멘 같은 응용 라멘 레시피까지 폭넓게 수록되어 있어 기호에 따라 하나씩 도전해볼 수 있겠다. 무엇보다 집에서 라멘을 만들 때 유용한 꿀팁들이 곳곳에 담겨 있어, 부담 없이 육수나 타레, 토핑 같은 간단한 요소들부터 시도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라멘의 맛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전체적으로 꽤 볼만한 책이다. 라멘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책을 통해 접한 라멘의 세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깊었고, 라멘에 대한 상식과 라멘 만들기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끌어올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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