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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대형 ㅣ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집
박순찬 지음 / 비아북 / 2023년 11월
평점 :
풍자라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를 조롱하고 폄하하며 비웃는 것이 아니라 웃음이라는 소재로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지배권력의 모순과 불합리를 고발하고 비판하거나 공감과 치유, 때로는 추모를 보내기도 하는 등 대중들이 정치와 사회적인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하나의 문화적 활동이나 일종의 정치적 행위로 볼 수도 있겠다. 한국인은 풍자와 해학의 민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런 풍자문화가 발달해있는데 아무래도 정치적 참여도가 높은 국민의식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정치가 썩어빠지고, 사회가 어지럽고, 살기가 힘들수록 당연하게도 풍자문화는 더욱 성행하게 되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이다. 지난 대선은 워싱턴포스트의 말을 빌리자면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었고, 누가 당선이 되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똥물을 뒤집어쓰는 꼴이었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똥물이 되었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답답한 속을 뚫어주는 사이다 같은 정치풍자이다.
만평, 시사만화계에서 아마 가장 널리 알려져있는 사람은 장도리의 박순찬일 것이다. 물론 이 양반은 과거 고 노무현 대통령을 조중동의 시각에서 디스하거나, 진영논리에 빠져서 어느 한쪽만을 비판하는 등 비판받는 지점도 많지만 그럼에도 재미와 풍자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은 만평의 대가임에는 틀림없다. 일단 이 양반의 만평은 꽤나 기발하고 꽤나 재미가 있어서 앞서 진영논리에 빠져있다는 말을 했는데 박순찬 진영의 사람이라면 상대 진영을 까는 그의 만평이 상당히 재미있고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반대 진영의 사람이라면 부들부들거리겠지만.. 뭐 그런 사람들은 ㅇㅅㅇ 만평 따위나 보면 될일이다. 아무튼 박순찬은 경향신문에 26년 간 장도리 만평을 연재하다가 2021년 그러니까 문재인 임기 후반기에 붓을 놓았다. 그리고 2023년 4월, 자신의 블로그에 윤정권을 비판하는 [용산대형]이라는 만평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 책은 그 만평을 모아놓은 것이다.
일단 용산대형은 윤정권와 여당인 국짐을 풍자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은 전부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 뿐이다. 용산돼지를 시작으로 건희, 한동훈, 장제원 같은 인간들이 메인으로 등장하고 그때그때 벌어지는 사안에 따라 천공, 전광훈, 권성동, 원희룡, 김은혜, 김기현, 이명박, 이동관, 유인촌, 이준석, 김행, 한덕수, 안철수, 홍준표 같은 정부와 여당 내에서도 문제가 많은 인간들이 조연으로 출연한다. 한마디로 여기에 얼굴을 올리는 인간들은 뭔가 사고를 쳤거나 문제를 일으킨 인간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일단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캐릭터들인데 인물들의 특징을 잘 잡아내서 재미있고 성격에 맞게 잘 해석해 놓았다. 물론 장제원을 고릴라로 그리거나 조중동 보수 쓰레기 신문을 계란판으로 그리는 식으로 일부러 과장되게 묘사를 한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것이 만평의 장점이라서 상당히 재미있다. 또 이동관이 미키"마우스" 티를 입고 있고, 여가부장관 김현숙은 자폭테러를 하는 테러범의 복장을 하는 등 캐릭터를 나타내는 디테일도 매우 꼼꼼해서 그런 디테일을 찾아보는 것도 정말 꿀잼이다.
이 용산대형은 작가의 대표작인 장도리와 마찬가지로 4컷만화의 형태를 가진다. 원래 신문 같은데 연재되는 만평은 4컷 만화의 형태가 많다. 그 짧은 4컷 안에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와 날카로운 풍자, 재미까지 더해야 하기 때문에 만평이 어려운 것이다. 보통 신문에 연재되는 만평은 전날 벌어진 사건을 하나의 스토리, 하나의 풍자로 정리를 하는데 이 용산대형은 특이하게 계속 내용이 이어지는 자칭 연속극 시리즈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4컷 만화의 완성도를 가지면서도 각각의 사건들이 서로 이어지며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와 서사를 가지게 되는 독특한 형식이다. 실제로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사안은 하나의 단독 이벤트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큰 흐름을 가지고 계속 이어지거나 인과관계를 지니게 되는데 이런 연속극 형태의 만평은 그런 흐름을 잘 담아내어 정치판의 천태만상을 생동감있게 보여준다. 실제 저 인간들이 벌이는 작태를 실시간으로 따라가며 풍자하고 비판하며 때로는 미래를 예언하기도 하는 현실 반영의 스토리를 통해 현재 저들이 벌이는 사건의 정치적 맥락이나 그들의 사고방식 등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이 용산대형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각 커뮤에 많이 퍼트려졌기 때문에 이 만평을 접한 사람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도 저자의 블로그에 가면 모두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책으로 소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책으로 봐야하는 이유는 작가의 설명이 첨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만평류는 적시성, 시의성이 생명이다. 지금 현재 정치판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건 사고를 비틀고 뒤집고 풍자하는 것에서 재미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데 이게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면 그 재미가 급감하게 된다. 다른 걸 떠나서 워낙 큰 뉴스가 많은 우리 정치판에서는 아무리 큰 사건도 한달만 지나도 잊혀지게 된다. 그 사이 또 다른 큰 사건이 워낙 많이 터지기 때문이다. 똥으로 똥을 덮는 효과. 그래서 그 당시에는 굉장히 뉴스에서 많이 보고 많이 언급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그게 무슨 사건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해당 사건 자체가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면 실제 사건을 한번 꺾어서 비판하는 만평의 내용은 더욱 알아먹기 힘들어진다. 그 이야기가 말하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풍자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이 용산대형은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의 비교적 최근의 사건들을 담은 만평인데도 실제로 책을 보면 굉장히 오래전 사건을 보는 것처럼 그 일들이 가물가물하고,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저자는 그 만화가 그려진 당시의 사건의 맥락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장도리 만평이라는 코너를 수록했는데 용산대형이 그려질 당시 저자가 다른 곳에 게재했던 한컷짜리 만평을 모아서 시간에 맞게 배치하고, 그 사건의 맥락과 배경 등을 따로 설명하며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준다. 이로서 저자의 의도와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책에는 용산대형과 진격의 수색대, 간도리 총 3가지 시리즈가 수록되어 있는데 만평을 읽을 때 뒤의 장도리 만평도 병행해서 읽으면 이해가 잘 된다.
지금은 각자도생의 좋빠가 시대이다. 무능한 대통령과 무능한 야당 대표가 협작하여 나라를 망치고 있는 중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무능하면 야당이라도 잘해야 하는데 이놈이고 저놈이고 자기 팬덤을 앞세워 자기 권력욕을 채우기에 급급하여 나라를 개판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한심한 작태를 보고 있으면 한숨 밖에 나지 않고 썩어빠진 정치는 국민의 가슴을 답답하게만 한다.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암흑기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럴 때 답답한 가슴을 잠시라도 뻥 뚫어주는 것이 이런 재미있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용산대형 같은 만평이 아닐까 한다. 정치판에 관심이 있고 뉴스를 통해 정치판이 돌아가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고 통쾌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