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아마 이 책을 10대 후반~20대 초반 사이에 읽었다면 훨씬 감동적이었을 듯.

   일독에 실패한 '새벽의 약속' 으로 인해 이미 '로맹 가리' 에 대한 인상이 생성되어버린 뒤라

   다른 이들이 찬사를 보내는 것만큼의 울림은 못 받은 듯 하다.

   허나 후반부의 슬픔은 말해지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 크다.


2. 생각보다 전개가 빠르다. 아마 문장의 이유도 있지 않을까 추측 중.

   전개가 빠르다는 것이 사건이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동시다발적으로 해결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술자의 사고 전환이 빠르다는 것.

   이것이 서술자의 나이를 염두에 둔 방식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허나 덕분에 문장이 고여있지 못 하고 스쳐지나간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3.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였다.

   아마 배경과 서술자(혹은 주인공)의 상상 탓일 거다.

   그리고 다음에 떠오른 것은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 라는 만화.

   그 만화에는 아주 오랜 폭력에 시달린 주인공이 나온다.

   뭐. 그 만화의 내용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주인공이 아직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 했을 때

   우연히 알게 된 정신과 의사였던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된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올바르고 똑바르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왜곡된 것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사랑.

   비뚤어진 집착이나 폭력으로 변질되어버린 한때 사랑이었던 것이 아닌 지금 그대로의 사랑.


   모모의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 라는 대사에 문득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 의

   그 나레이션이 생각났다.

   '올바르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물론 100% 정확성은 장담하지 못 한다.


4. 사람이 살면서 가장 필요로 하는 말(아니면 마음) 중에

   '넌 필요한 사람이다' 라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어떻게든 필요한 사람임을 입증하기 위해 거짓말들을 지어내고 거짓미소를 꾸미고

   그렇게 겨우겨우 관문을 통과하고 나서도 필요없어질까봐 불안해하고 계속 꾸며내야 하고.


   사람으로 태어나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그렇게나 중한 일인지.

   그것 외에 사람의 효용가치는 없는 건지.

   내가 나로 태어난 것의 의미가 누군가에게 필요가 되기 위해서.

   단지 그것만이 이유인 건지 다른 건 없는 건지.

   ...이런 걸 생각하다가 관둬버린 기억이 있다.


5. 사람이 살아가는 데 커다란 이유 하나만 존재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여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 이라는 인식만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날 필요로 해주면,

   그래서 내가 좀 더 쓸모있는 사람(혹은 도움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좀 더 충만해지는 정도의 차이라고 본다.

   허나 점점 혼자 하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고

   과연 언제까지 가족과 살 수 있을까도 의심되는 상황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 라는 것에만 위안을 얻는다면...

   글쎄 삶이 퍽 피곤해질 것도 같다.


6. 인상적이긴 하나 너무 감동적인 책까지는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 가 자꾸 오버랩되는 바람에

   책 자체에서는 큰 울림을 못 받은 것도 같다.

   다만 여러 면에서 생각해 볼 여지는 있는 것 같다.


7. 이 글의 결말이 부정적인 것 같진 않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8. 이 책의 한 문장이 있다면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나요' 가 아니라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 살 수 없다' 가 돼야할 듯.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2-04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살로메님의 <라요하네의 우산>이라는 단편소설에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 언급됩니다. 김살로메님의 소설집을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

cheshire 2017-02-05 07:56   좋아요 0 | URL
무슨 내용으로 언급되어 있을지 궁금하네요. 근 몇달간 책 구매를 꾹꾹 참다가(일전에 사둔 걸 아직도 못 읽어서) 요 며칠 전에 폭발하여 두세달치의 책을 한꺼번에 샀는데 그도 소용없이 장바구니는 금세 다시 차버리네요. 통장도 그러면 좋으련만...

좋은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