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선잠을 자기 시작한것이 3주쯤 되었다.

체격으로만보면 인심좋은 후덕한 아주머니건만, 일년이면 서너차례 불면증이 되풀이되는것 같다.

뚜렷이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치료방법도 알 수가 없다.

문득, 사는게 발밑이 불안하구나 느껴지면 그날부터 오래든 짧게든 편안한 잠이 달아나버리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불면은 역사가 길다.

십년도 더 전에 철밥통 같았던 직장에서 노조간부로 일하다가 해고되던해, 해고보다는 생각보다 견고하지 못했던 인간관계속에서 느꼈던 절망감이 복직이후에도 늘 가시처럼 남았었다.

혹은 그보다 더 전이었을까.

대학입시만으로도 힘겨웠던 고3무렵 갑자기 몰아닥친 빚쟁이들과, 이제부터 무슨일이든 혼자결정하고 책임져야한다는 고립감이 손톱을 세우고 목덜미를 할퀴는 짐승처럼 자리를 잡았다. 그때 이후로 자리잡은 막막함.

혹은 그보다 더전에 강경쪽다리밑에서 너를 주워왔노라는 엄마와 언니들의 놀리는 말을 들으며 <어쩌면 나에게 불우한 성장의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는> 턱없는 불안감으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어도 이유가 명확하지않은 이  불안감은 도무지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더빨리 내가 늙어지기를 소망한다.  나이먹으면 세월뒤에 웅크린 불안감이란 놈이 조금씩 익숙해지기도 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그리하여 밤마다 햇솜같이 편안한 단잠을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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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6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6-06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가족이나 이웃에게 마음이 정말 따뜻한 분이시군요. 건우아빠가 이번에는 병의 주기가 짧아져서 통증이 빨리 가라앉았어요. 덕분에 밀린 공부를 하겠노라고 휴일에도 책싸들고 나갔어요.
아마도 님의 기도효험을 봤나봐요.^^
님도 편안하고 즐거운 휴일보내세요.

치유 2006-06-06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낮에라도 좀 주무셨나요?/
아이들 아빠의 통증이 빨리 가라앉아서 공부하러 가셨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님께서 간호를 아주 정성껏 하시고, 성의껏 죽끓여 대령하신 덕인가 보네요..

건우와 연우 2006-06-07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덕분에요. 어제는 잘 안자던 낮잠도 잤답니다.^^

카페인중독 2006-09-1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고보다는 생각보다 견고하지 못했던 인간관계속에서 느꼈던 절망감이 복직이후에도 늘 가시처럼 남았었다.' 밑줄긋기 하고픈 심정...^^ㆀ
 

제사끝에 건우아빠가 목구멍안쪽이 헐고 열이 나기 시작한다.

연우낳을 무렵에 발병한 건우아빠의 병은 완치가 되지 않은채 올해로 7년째다.

매일 아픈건 아니지만 재발하면 한달여를 입안이 헐고 관절이 붓고 고열이 오르내린다.

그와중에 그는 간간이 강의나가고 공부하고 옛동료들을 만난다.

그의 표현으로 당장 죽는병은 아니고  아프고 완치되지도 않지만 관리가 가능한 병이니 어쩔수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딴에는 면목없음을 그렇게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리라.

그도 그럴것이 연우낳을 무렵, 나는 직장생활에도 지쳐 있었지만 돈도 안돼면서 몇주씩 밥먹듯이 외박을 요구하는 그의 직장아닌 직장생활에 신물이 나 있었다. 

건우와 둘이 잠든 밤에  이상한 협박성 전화라도 걸려오면 심드렁하게 받아넘기는척 했지만  아침까지 선잠으로 지새야 했다.

그해 나는 낳지도 않은 아이를 몇번이고 죽였다. 그리고 그해부터 시작된 건우아빠의 병은 그렇게 태어난 연우와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그의 병이 익숙해졌음일까? 건우아빠의 통증에 익숙해진만큼,  건우와 연우는 철이 들었다..

그는  병을 나에게 상의하지 않는다.  나역시 묻지 않는다. 내가 묻지 않는 것은 아직도 정리하지 않는 그의 일에 대한 서운함의 표시다. 그가 내가 정한 의미를 알든 모르든...

 

오늘 아침엔 입안이 헐어 밥을 먹지 못하는 건우아빠를 위해 따로 깨죽을 끓였다.

늘 먹는 밥에 물렸던 탓일까, 생전 죽을 입에도 대지 않던 아이들이 맨밥을 물리고 죽그릇에 달라붙어 아침부터 죽을 두번이나 데웠다.

볶은 찹쌀이 참깨와 함께 물속에서 넓게 퍼져가는 것을 보며, 이제 그의 병도 이렇게 퍼져 가족처럼 익숙하구나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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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6-02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리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모든 가족이 짊어지고 가는.......
아...건강하셔야 하는데 말이죠..^^ 힘내세요~!

치유 2006-06-02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ㅠㅠ연우가 그렇게 컸군요..
그래도..보실때마다 안스럽겠지만 그래도 잘관리하시고 건강해 지시겠지요..
빨리 회복하셔서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되셨으면..하고 바래봅니다..

물만두 2006-06-0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건우와 연우 2006-06-02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메피님, 배꽃님 그리고 만두님
사실은 이제 익숙해져서 많이 덤덤해요. 아픈사람이 속으로 서운해할지도 모를 정도로요... 그리고 언젠가 저절로 나을지도 모르지요(희망사항)
모두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6-06-03 0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지 짠하고 여운이 오래 남는 글입니다.
아무리 익숙해져도 그 아픔은 생생하고 고스란히 또 아픈 것일 텐데.
빨리 깨끗이 나으시길 빌게요.

건우와 연우 2006-06-04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고맙습니다. 어차피 쉬 낳지 않을거라서 그냥 친구처럼 생각해요. 썩 반갑지 않지만...
 

박근혜가 접전지인 대전과 제주에서 지원유세를 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대전에서는 짤막하게 한나라당 후보를 찍어주세요, 제가 보증합니다라고 했단다.

아, 정말 짜증난다. 왠지 익숙하게 돌아가는 선거운동의 양상을 보며 접전지의 접전내용도 짜증나고, 잠시나마 피습당한 그녀의 인생유전에 연민을 느꼈던 나에게도 짜증이 난다.

그녀는 뭘 보장한다는 것일까?

이나라의 유구한 왕조정치를? 혹은 부패의 전국적인 고착화를...

뭐 하기야 그녀의 출신지가 아니어도 칠십이 넘은 친정아버지와 친정엄마는 그래도 나라가 안정되어야 준공무원인 딸의 직장이 편안하리라 하시며 줄창 극우의 외길을 걸어 오셨다. 꼭 한번 지난 대선만 나의 공갈 협박에 굴복하셨던 듯하다. 그도 사실 확실치는 않다.

친부모조차 합리적인 설득이 아니라 반우격다짐으로 제발 그런 사람찍어 자식발등찍지 말아달라는 협박이나 겨우 통할까 말까하니...

단체에서 활동했던 남편이 최근 몇년사이 조직상황에 회의할때 소주잔을 나누며 위로랍시고 했던 말이 있었다.

<아직 덜 썩어서 그래, 완전히 썩고 나면 그걸 발판으로 다시 시작할수 있을지도 몰라...>

그때 근거없이 한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이렇게 세상이 돌아가다 보면 혹시라도 그말처럼 다시 시작할 희망도 어딘가에서 썩는만큼 자라나고 있지 않을까?

아, 부탁이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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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와 연우 2006-05-29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대책없이 짜증내게 되는것은 사실 무서워서다. 나이먹을수록 사는데 낙관적이질 못하게 된다.
 

건우의 수학경시대회 점수가 나왔다.  초등학교 3학년이 뭔 경시대횐지 학교측의 처사가 못마땅하긴 하지만 점수가 궁금한건 어쩔수 없다. 게다가 녀석은 최근 며칠동안 나름대로 복잡한 지문이 제시되어 있는 문제를 풀어보며 연습을 하곤 했다.

그런데 건우의 점수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 점수를 물으니 주저주저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시험지를 보내주는것도 아니고 아이에게 달랑 점수만 알려준것으론 뭐가 문제인지 알수가 없다.  이럴때 나이값을 하여야 하거늘 기분이 울적해지는 것을 감추기가 어렵다.

시험을 볼때마다 건우는 어려운 문제를 다풀어 놓고 사소한 실수로 틀리는것을 되풀이하곤 한다. 그래서 시험볼때마다 모르는것 틀리는 것은 어쩔수 없으나 아는 것을 틀리면 속상하니 끝까지 집중을 하라고 다짐을 받곤 하건만 아마 이번에도 그런 문제가 제법 있었으리라 짐작을 하며 혀를 끌끌찼다.

경시대회점수를 잘 받겠다는 전제하에 녀석은 유희왕 카드를 사달라고 했었다. 그리고 혹 점수가 목표에 미달이면 2주간 컴퓨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함께.

숙제를 하며 주말내내 건우는 울적해 있었다. 건우아빠는 왜 아이에게 무리한 약속을 받았느냐며 혀를 찼다.

못들은척 하였지만 나도 적잖이 신경쓰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6시에 일어나 영어테이프를 듣는 건우에게 유자쥬스를 한잔주고 가만히 마주 앉았다.

"건우야, 게임 못해서 우울해?'

"네, 그리고 나도 점수 잘 받고 싶어요. 근데 엄마가 실망하는 것 같아서 더 우울해요."

"건우야,  성적이 잘 안나오는건 네 잘못이 아니야."

건우가 뜨악해서 나를 보았다.

"사실은 네가 더 어렸을때 테레비나 게임을 하는 것을 적절히 조절해주고 책을 읽는 습관을 길러주고 또 그것을 잘 요약하거나 끝까지 집중하게 습관을 길러줘야 했던 것은 엄마몫이야.  그런데 네가 자꾸 끝까지 집중을 못하는 버릇을 지금 고쳐주지 않으면 앞으로 네가 더 힘들어질까 걱정이야. 네가 아기때 잘못 든 습관은 엄마 잘못이지만 앞으로 고치지 못하는건 엄마 잘못에 네 잘못도 덧붙여지는 것이거든."

얼핏보니 건우의 눈에 눈물이 돌았다.

공부를 많이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책을 꼼꼼하게 읽고 독서록과 일기도 맞춤법과 어법에 맞춰쓰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 거렸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의 성적이 안나오는 것이 어찌 아이책임이겠는가마는 공연히 아이에게 짜증을 부리게 되는 마음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힘들게 건우의 등을 다독거려 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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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5-29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의 잘못도, 건우와 연우님 잘못도 아니에요.
이 사회의 잘못된 교육제도 탓이지.
건우가 참 순하고 어집니다.
모자의 대화에 뭉클.^^

물만두 2006-05-29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우리 잘못입니다. ioi

건우와 연우 2006-05-29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로드무비님 물만두님 어른들의 잘못이죠...
물만두님 들러주셔서 반가워요^^

치유 2006-06-01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뭉클합니다..그놈의 성적 끌고 가는 것도 아니건만 왜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지..ㅠㅠ
너무 속상해 마세요..

건우와 연우 2006-06-01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고맙습니다.
 

금요일 오후 1시 38분, 휴대폰에 낯선번호가 떴다.

나: 여보세요?

발신자: 안녕하세요 기호0번 후보 자원봉사입니다.

나: <버럭> 여보세요? 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아냈어요?

발신자: <뜨악한 목소리로> 휴대전화번호야 여기 저기 많이 있잖아요?

나: <버럭 버럭>댁들이 내가 그 동네에 사는지 어떻게 알구 번호를 알아냈냐구요?

발신자: <더듬 더듬>주차해놓은 차에 전화번호가 있어서요...

나: <싸늘한 목소리로>나는 운전안하거든요.

발신자: <더듬 더듬>왜 연락번호 남겨놓으시는거 있잖아요?

나: <다시 버럭>아 그러니까 어떤 놈이냐구요? 내 연락번호는 나한테 연락하라구 알려줬지 댁들한테 넘겨주라고 준거 아닌데 어떤놈이 넘겨줬냐구요?

발신자: <더듬 더듬>그게 저...

나: <싸늘한 목소리로>몇번 운동원이라구 하셨지요?

발신자: 아니요 저기 죄송합니다......

 

전화가 끊겼다. 그녀는 아마도 재수 옴붙었다고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뭐, 이런 여자가 다있어. 나이는 먹을만큼 먹은 여자가 세상 참 힘들게 사는군 쯧쯧...> 혹 그렇게 혀를 찼을지도...

어쩌면 내가 지지하려고 했던 후보가 표다지기 차원에서 전화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내편이든 남의 편이든 그런식의 룰을 깨트리는 행위가 싫다. 그냥 싫은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혈압이 확 오를정도로...

그럴때마다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이제 대충 넘어갈 나이 아니냐고...

혹은 피해의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거기까지일뿐이다. 휴대폰에 남아있는 전화번호를 보면서 이걸 정말 끝까지 확인해볼 생각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몇년전이었다면 기운이 펄펄넘쳐 끝까지 확인해보고 따져댔으리라.

그래, 이렇게 대충 넘어가고 있다. 세월을 따라 노쇠해감에 씁쓸해진다.

사무실밖에서는 선거운동원들의 요란한 연설이 들리고 초등학생들이 한무리 지나가고 있다. 건우나이쯤 되었을까?

숨을 들이키며 생각한다. 아이들아, 빨리커라. 어른들이 더 비겁해지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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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5-2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난하고 까탈스러워서 그런 게 아닌데 그런 의심을 받게 될 때가 있어요.
저도 물어봅니다.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죠?"
그러면 대개 깨갱하는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