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의 우울이 깊어졌다.

며칠전부터 자주 쓸쓸하다고 울기도 하고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게 무섭다는 얘기까지 하곤 했다.

그때마다 씩씩한 아이라고 최면을 걸듯 얘기해주기도 하고 인기짱인 스타라고 달래주기도 했는데 칭얼거리는 기간이 제법 길어지니 이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 하는거였다.

말투가 퉁명스러워지기 시작했을까, 건우아빠가 일요일 저녁에 가족회의를 하자고 했다.

건우가 좋아하는 슛돌이나오는 프로그램 할 시간을 피해야한다고 해서 7시 30분쯤에 저녁상을 치우고 둘러 앉았다.

회의의 큰 주제는 행복한 가족 만들기이고 세부안건은 1. 실수에 짜증내지 않기  2. 손가락 인대를 다친 건우도와주기로 정했다.

안건을 미리 설명해주고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오라하니 연우는 할말이 많다며 돌연 희희낙락이고, 건우는 무슨 눈치를 챘는지 떨떠름해했다.

저녁무렵, 건우아빤 사회를 맡겠다하고, 건우는 모름지기 회의는 과일을 먹으며 발언을 해야 한단다.

멜론과 감을 한접시 깍아놓고 우물우물거리며 건성건성 회의를 시작했다.

 

건우아빠: 요즘 우리 가족이 짜증내는 횟수가 는것 같아서 회의를 해서 짜증횟수도 좀 줄여보고, 다른사람의 입장도 생각해보자고 제안한건데, 회의 시작전에 미리 알려준 안건 말고 추가하고 싶은 안건이 있으면 얘기들해.

연우: 추가할건 없는데, 저는 말할게 무지 많아요.

 

아니나 다를까, 연우가 하고 싶은 말이 무지 많았던 모양이었다.

 

나: 연우야, 일단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다른 안건이 있나 알아보구, 나는 없거든. 건우는 어때?

건우: 없어요.

건우아빠: 그럼 연우가 먼저 하고 싶은 얘길 해봐.

연우: 저는요, 제가 하기 싫은데도 오빠가 자꾸 축구를 하자고 해서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해야 하구요. 싫다고 하면 오빠가 에이씨 하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거든요. 그때마다 무지 속상해요. 나는 내가 주인이잖아요. 축구를 하기 싫으면 내맘대로 안할수도 있지 않나요? 오빠니까 항상 동생이 양보해야 하나요?

건우: 축구하기싫다고 했을때 화낸건 내가 사과했잖아, 너는 왜 지나간 문제를 가지고 얘길하냐!

 

안그래도 제발저려하던 문제를 연우가 건드렸던지 건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 건우야, 저건 예를 들면 그렇다는거지. 저와 유사한 행동을 너랑 엄마아빠 모두 연우에게 했을지도 몰라. 그래서 연우가 요즘 더 마음이 답답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연우야, 오빠가 소리지른건 하필이면 네가 예로든게 오빠가 미안하다고 사과한내용이라 기분이 좀 나빠서인가보다.

연우: 그건 저도 미안한데요, 지금은 다른 예가 생각이 안났어요.

건우아빠: 연우가 더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더 해도 돼.

연우: 엄마가 저보고 책을 세권이상 쌓아두고 보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엄마는 오늘 다섯권을 빼놓고 보시더라구요. 저도 다섯권까지 봐도 잔소리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건우아빠: 이건 엄마의 답변이 필요하겠구만...

나: 오늘 엄마가 본건 만화책이라 하루에 다섯권을 충분히 읽을수 있겠다 싶었는데, 평소에 너는 두꺼운 소설책까지 대여섯권 심하면 열권씩 챙겨서 옮겨다니니 정신도 없고 책이 여기저기 널려 있잖아. 그문제는 쉽게 동의 해줄수 없으니 네가 억울한 생각이 들면 앞으론 엄마도 종류를 불문하고 세권이상 들고 다니지 않을께. 그리고 잔소리와 주의사항의 구분도 있어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드네.

건우아빠: 짜증내면서 두번이상 되풀이말하면 잔소리, 한번만 평소대로 얘기하면 주의사항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앞으로 잔소리라고 생각되면 건우와 연우에게 잔소리 그만해주세요라고 말할수 있는 잔소리 항변권을 줄께. 이건 엄마아빤 많이 건우는 조금 불리한 내용이지. 하지만 행복한 가정에선 약자를 배려하며 사는거니까 엄마아빠가 먼저 시범적으로 많이 불리한걸 감수할께...

나: 그리고 건우도와주는건, 팔의 기브스 풀때까지는 아침책가방싸는건 시간이 되면 내가 도와주지.

건우: 아빠는 문제집 푸는걸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건우아빠: 문제집을 내가 풀라구?

건우: 아니요, 제가 머리속으로 계산해 답을 부르면 아빠가 옮겨 적어주세요. 그냥 체크만 하는건 제가 하구요.

건우아빠: 그건  장담은 못하고 시간이 날때만 한해서 도와주도록 노력할께.

연우: 치약은 내가 짜줄수 있는데...

건우아빠: 그럼 오늘 나온 얘기들을 잘 기억해두고 또 회의하고 싶은 내용이 생기면 누구나 가족회의를 요청하기다. 그럼 오늘 회의를 마칠께...

 

박수까지치고 회의를 마치니 제법 시간이 늦었다. 연우는 자신의 발언이 인정받았다는 뿌듯함 때문인지 얼굴이 한결 밝아져 있었다.

이렇게라도 연우가 자신감을 가지고 행복하다면 좋을텐데...


댓글(21)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드무비 2006-10-2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우: 치약은 내가 짜줄수 있는데...

아아, 사랑스러운 연우.
건우와 연우님 가족 파이팅!!!
정말 멋집니다그려.


씩씩하니 2006-10-23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님...이런말씀 드려도 되는지...건우아빠가,넘 멋지셔서,,,부럽구,...
제가 앞으로 팬된다구 말씀 좀 드려주세요~~ 네?
건우와 연우,,글구 님이라,,,남푠분,,이렇게 네분이 둘러앉은 회의장(!!),,,,,
그 행복 읽구 가요~

Mephistopheles 2006-10-23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주의는 대단한게 아니라니까요..^^
작은 가정에서도 조금씩 풀어나가면 되는 일인걸 가지고..
페이퍼의 가족을 몽땅 국회로 옮기고 싶은 충동이....^^

건우와 연우 2006-10-2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가족회의는 일종의 연우위로회의처럼 되어버렸어요.^^ 평소에 떼가 전혀없었던 아이라 스트레스풀 방법을 못찾았는데 회의를 통해 조금 해소되기도 하나봐요. 자기가 오빠를 도와줄수도 있고 불만을 말할수도 있어서...^^
씩씩하니님/ 칼로흥한자 칼로 망하고 회의 많은조직 회의로 망한다고 개기며 제가 협조를 잘 안하는데 가끔은 효과도 있더라구요...^^
메피님/ 국회로 가면 제가 젤루 욕먹어서 안돼요^^ 제가 제일 많이 개기거든요.^^
속삭이신님/ 연우는 평소에 다른 사람을 관찰했다가 저렇게 한번 써 먹으며 쾌감을 느끼나봐요. 엄마를 난감하게 하면서 어찌나 좋아하던지요.^^

내이름은김삼순 2006-10-23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의 짧막한 드라마를 보는 듯 해요,ㅋㅋ
연우~~저리 당차게 말할 수 있는 자신감 좋은걸요!
가족회의 무사히 마치셨으니 이젠 화목하고 즐거운 가정이 되시길,,
글구 님이 만화책 보신다는 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조금 의외(?)여요^^;;

물만두 2006-10-2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뻐요^^

건우와 연우 2006-10-23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순님/ 어머나, 저 만화 좋아해요.^^ 근데 만화도 예전처럼 하루에 여러권을 한꺼번에 읽는건 이제 안되더라구요.^^ 지금 읽고 있는건 서재의 모모님이 빌려주신건데 내용이 참 좋아요. 만화에 나오는 여자아이가 외모만 빼고 하는 행동이 연우랑 많이 닮았구나 싶어서요...(이거, 쓰고 보니 자뻑이네요. 여자애가 무지 귀엽고 당차거든요)

건우와 연우 2006-10-23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ㅎㅎㅎ 제가요?^^

또또유스또 2006-10-23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연우의 우물이 깊어졌다해서 울 유스또도 그러하여 위로 받을까 하고 와 봤는데... 헉!!! 염장이십니다....
단란하다 못해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계시는군요 흑흑흑..
요즘 유스또의 질문에 시달려 거의 실신 직전입니다...
제가 조금 뭐라하면 울기도 많이 울고..
님 많은 가르침 부탁드려요... 어흑

춤추는인생. 2006-10-23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무지하게 할말이 많아요.
연우야 깊어가는 가을. 언니와 이야기 하지 않을래?^^

해리포터7 2006-10-23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가족은 정말로 대단하셔요..어쩜 저렇게 멋지게 문제를 해결해버릴수가..본받아야겠어요..아이들이 반듯하게 말하는게 다 이유가 있었군요..연우가 이젠 자신감을 되찾았기를 바래요^^

건우와 연우 2006-10-23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또님/ 이상적이라기보단 연우의 우울을 달래주는 여러 방법중의 하나지요.^^ 연우는 회의하고 토론하는걸 좋아해요. 아마도 그과정속에서 주목받는걸 즐기고 있을지두요...^^
그나저나 유스또가 우울한가요. 음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니 뭐라하긴 어렵지만 요즘 유치원애들도 사춘기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좀전에 연우선생님 전화를 받았네요. 잘 달래주세요, 꼬마총각의 우울...
인생님/ 그러게요, 좀 대화를 나눠주실래요? 아마도 연우가 좋아라 하루 종일 떠들어댈지도 몰라요.^^

건우와 연우 2006-10-2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터님/ 대단은요, 애들아빠가 회의를 심하게 즐기는것 같아 저는 가끔 개기기도 하는데요, 회의 많은 조직치고 건설적인 조직 드물다 ,이러면서요...^^ 그래도 아이들을 달래는데는 가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합니다..^^

해리포터7 2006-10-2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민주적인 아빠도 계시군요..저희집 남푠은 개그프로를 심하게 즐겨봐서 애들 교육에 하나도 도움이 안된답니다.ㅜ.ㅜ!

건우와 연우 2006-10-23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터님/ 포터님 옆지기는 귀여우시잖아요.^^ 모형비행기 조립도 잘하시구...그런거 잘하시는분이 두고두고 아이들이랑 친구같지요... 건우아빤 회의가 습관이랍니다..ㅜ.ㅜ

조선인 2006-10-23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우워우워우. 해람이가 몇 살 되면 우리도 가족회의를 할 수 있을까요? @,@

비자림 2006-10-23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옷 대단하시옵니다. 민주가정 모범가정 건우와연우네 놀랍네요!!!!!!

꽃임이네 2006-10-24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저희 집과 정 반대 이네요 .
가족회의 .. 부럽당 ..음 늘 바쁜 아빠의 자리가 없어 늘 안타깝다는 ..
연우의 우울이 좀 풀렸는지요 ..꽃돌이는 사춘기라 말이 없고잘삐져요.님

카페인중독 2006-10-2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안 풍경이 너무 좋아요...아이들이 이쁘게 크겠네요...^^

건우와 연우 2006-10-25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복직 첫 출근은 어떠셨나요? 아이들하고 많이 힘드셨을텐데, 병나지 않게 무리하지 마세요.
해람이랑 마로도 금새 자라 같이 회의도하고 토론도 하겠지요.^^ 지나니 금방이네요. 아이들데리고 뛰던게...^^
비자림님/ 민주가정은요, 쑥스럽게... 애들아빠랑 연우가 회의를 유난히 즐기는(?) 탓이지요.^^
꽃임이네님/ 몸은 좀 어떠세요?
자주말고 가끔 한번씩 해보세요, 가족회의. 의외로 좋은점이 있더라구요.
꽃임이나 꽃돌이정도면 충분히 가능할텐데, 아이들을 표안나게 달래고 어르는데도 좋더라구요^^
카페인중독님/ 회의는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지만(아무래도 아이들에게 유리한게 많으니까요.^^) 가족구성원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수단이 되기도 하더군요..^^

LAYLA 2006-10-2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대단하세요..추천하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