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부터 어제까지가 휴가였다.

여름과 겨울, 학생들이 방학을 할때면 일이 더 바빠지는 탓으로 휴가를 길게 잡지는 못하고  3박4일간 제주도 시댁에 다녀왔다.

시댁이란게 아무리 편한 사이라 해도 발뻗고 맘대로 누울수 있는 곳은 아닌지라 염천에 가기는 사실 썩 내키지 않는다.

게다가 성수기의 그 살인적인 비행기삯이며...

 

그래도 이번 제주도행은 조금은 각별하고 애틋했다.

이제 팔순인 시아버지는 제주도 시골에 혼자 계신다. 재산은 없어도 평소 인품으로는 동네 유지이신지라 젊은 사람들이나 인근의 노인분들이 자주 들러 동네 대소사를 상담도 하고  자주 들여다보곤한다.

그래서 서울에 나와있는 형제들이나 제주시에 사는 시누이들도 시골에 갈때면 선물을 넉넉히 준비해 이웃집에 인사를 드리고 온다.

아직도 자존심이 대단하고 유머감각도 있으신 시아버지는 자식에게 기대어 사는 것을 마땅찮아 하는지라 혼자 생활할 힘이 있을때까지는 혼자 살리라 하시니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긴 하다.

그래도 나이는 나이인지라 벌써 작년다르고 올해 다른 노인인것은 숨길수가 없었다.

 밤에 잘때 건넌방에서 들리는 숨소리도 틀리고 몇발짝을 뗄때마다 다리도 떨리는 것 같아 보는이를 안타깝게 했다.

시아버지는 명절에 내려가면, 솜씨가 좋아 연장을 들고 아이들 장난감을 뚝딱 만들어 주시곤 한참을 자분자분 이야기를 들려주고 동네 개들을 끌고와 아이들에게 데리고 놀게 해주기도 하셨었다.

명절에 정신없이 종가집제사준비를 하는 며느리들을 도와 미리 나물도 씻어놓으시고 제수용고기들을 미리 다듬어 놓기도 하시며 오랫만에 고향에 내려와 친구들을 만나 술한잔 할 궁리에 열중인 아들들을 죄 부억일을 돕게 하시곤 했다.

그래서인지 원래가 좀 데문데문한 나도 시아버지가 적잖이 애틋하다.

도시는 답답해 살수가 없고 같은 제주도에 사는 막내에게 가고 싶다는 뜻을 언뜻 비추셨다는 얘기를 휴가삼아 친정에 다녀온 서울시누이에게 듣고 이제 아버지가 많이 늙으셨구나 싶기도 하고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것 아닌가 하여 가슴이 철렁했던 탓일까.

도착한 첫날부터 태풍이 온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과 건우아빠는 물놀이에 낚시에마음이 바빴다.

시아버지도 원래 낚시를 좋아하고 고기를 잘 잡아오기도 하셨다는데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집밖을 나서지 않았다. 아마도 바다낚시를 해야할 곳의 울툴불퉁한 바위돌사이를 힘주어 걸을 자신이 더이상은 없는듯 했다.

그나마 시아버지와 할수 있었던건 앉아 바람을 쐬는 해안가 드라이브와 경치좋은 바닷가에서 애들아빠벌세우며 며느리와 포장마차에서 소주한병을 나눠마신것뿐이었다.

현무암들이 절경을 이루는 바닷가에서 떨어지는 노을을 보며 시아버지와 소주잔을 기울이니 세월이 이렇게 무상하구나 싶었다.

시퍼런 젊음으로 자식들에게 불호령을 내리기도 하고 물고기들을 낚으며  호탕했을 한때가 이제는 좋아하는 바닷가에 내려서기조차 힘겨워지며 사그라들고 있었다.

 

 

건우는 조그만 디카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아이도 느끼는 것일까...

올라오는길에 인사를 드리니 명절에 다시보자 하시는데 그말이 꿈결같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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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2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애잔한 마음의 물결이 느껴지는군요.
손재주 있으시고 다정하시고 무엇보다 제주도 사람 특유의 꼿꼿한 독립심이 있으신 게 저는 멋있어요. 그냥 혼자 몸 하나는 아프지 않을 때까지 스스로 건사하는 게 깔끔한 인생인 것 같아요.
아름다운 글, 살짝 갖다 보관할게요.^^

물만두 2006-08-2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 뵈올때가 세월이 야속하지요.

Mephistopheles 2006-08-22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산은 없으실진 몰라도 시아버님은 자식과 손자들에게
더 많은 것을 남겨 주시는 듯 합니다...^^
복 받으신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저런 시아버지 흔하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프레이야 2006-08-22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시아버님이랑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멋진 두 분이셔요^^

sooninara 2006-08-22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이 곱게 늙으시는 것 같아서 보기엔 좋네요. 주변에 고집과 아집으로 자식과 부인과도 멀어진 분이 있거든요.
저도 이젠 시아버님이나 시어머님 뵈면 10년전과 달리 연세 드신 모습이 짠할때가 많아요.
어쨋든 아버님과 한잔 하시는 멋진 며느님에게 추천..

또또유스또 2006-08-2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댁 갔다 오셨군요..
아름다운 섬 제주가 시댁이셨네요...
시아버님의 목소리와 모습.. 많이많이 맘에 담고 오셨나 봐요...
부모.... 이젠 입에 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그런 나이가 되었네요..우리가...

치유 2006-08-22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 아름다운 시댁 나들이를 하셨었군요..어른의 부지런함이 애틋하고
함께 하시는 그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버리셨을까 생각하니 더 안타깝네요..
멋진 시아버님..건강하시길..

건우와 연우 2006-08-22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님/ 어머나, 점심시간전에 급하게 써서 오타도 여기저긴데, 부끄럽사와요...^^;
물만두님/ 자꾸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들이 안됐기도 하고 저분들이 다 가시면 우리가 제일 어른인데 갑자기 무섭기도 하고 그렇습니다...ㅠ.ㅠ
메피님/ 네, 시아버님이 가진것, 배운것은 별로 없어도 여유가 있고 인생을 성찰할줄 아시는 분이란 생각이 들어요. 좋은 어른이시지요...^^
배혜경님/ 시아버지나 저나 술이라면 별로 마다치 않아서 술좋아하는 남편을 벌세우며 술마시는 재미가 좋았어요...^^
수니나라님/ 자꾸나이가 드니 늙어가시는 모습이 애잔하더라구요. 그래도 부부가 같이 늙어가시면 덜하련만 저리 홀로 늙어가시니...ㅠ.ㅠ
또또님/ 또또님도 부모님얘기엔 애틋하시지요...^^
이젠 우리도 세월을 제법 보낸 나이가 된걸까요. 보내야할것들이 자꾸 애잔해요...
작게작게님/ 나이가 드니 시부모며 친정부모가 어슷비슷하게 애틋해요.
함께보낸 세월이 우리를 관계속에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겠지요...^^
제 친정부모님은 두분사이가 썩 원만칠 않아 가끔씩 자식들 속을 긁어 놓기도 하는데 돌아서 생각해보면 그래서 또 안됐기도 하지요...

건우와 연우 2006-08-22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가기전엔 가끔 꾀도나고 그러는데요. 막상 가면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네요...^^ 아이들도 즐겁게 잘 놀구요...^^
참 태풍이 살짝 지나간것 같은데 별일 없으시지요?

춤추는인생. 2006-08-22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님...... 늙는다는건. 참 슬픈일인것 같아요....

건우와 연우 2006-08-2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추는 인생님/ 누구에게나 비껴가지 않는 세월속에 그래도 점잖게 품위를 지켜가며 나이먹어야하는데 좀 두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마음이 그렇더라구요...^^

반딧불,, 2006-08-22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련합니다..
삶이란 것은 왜이다지도 우릴 비껴가는지..;
아직도 애잔해지지 않는 스스로가 참 싫어지게 하는 글이랍니다ㅠㅠ;

건우와 연우 2006-08-22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이제 몸은 좀 편안해지셨나요? 시골집은 덥긴했지만 태풍의 여파로 그럭저럭 잘만했고 동네분들이 워낙 인심이 후해서 재미있었답니다...^^
반디님/ 파랑이나 건우연우가 좀더 나이를 먹으면 어느새 우리도 점점 세월이 무서워지지 않을까 싶어요...^^ 사는게 조심스러워요. 어른들 나이드시는걸보면 이래저래...

한샘 2006-08-23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건우와 연우님, 님의 글 속에 흠뻑 빠져 잠시동안 정신못차렸어요^^ 정말 글 잘 쓰십니다. 님을 통해 제주도의 멋진 어르신을 한 분 알게 되었어요.

'그나마 시아버지와 할수 있었던건 앉아 바람을 쐬는 해안가 드라이브와 경치좋은 바닷가에서 애들아빠벌세우며 며느리와 포장마차에서 소주한병을 나눠마신것뿐이었다.

현무암들이 절경을 이루는 바닷가에서 떨어지는 노을을 보며 시아버지와 소주잔을 기울이니 세월이 이렇게 무상하구나 싶었다.'
이 장면 감동적이며 가슴이 뭉클해옵니다.ㅠ.ㅠ 삶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해주시네요.


건우와 연우 2006-08-23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샘님/ 이런 과분한 칭찬을...
시아버지가 배운것도 가진것도 별로 없어도 말이 통하는 어른이라서 이야기 나누는게 편안해요....^^

해리포터7 2006-08-2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지신 시아버님 행복하시지요? 건우와 연우님...정말 아련하네요....

건우와 연우 2006-08-2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부지런하고 다정하고 쓸데없는 잔소리 안하고, 좋은 어른이시지요...
혹 오래 못되어 잘못되어도 추억으로 가슴이 아련할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6-08-2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기분 너무 잘 알지요.
시아버지와 포장마차에서 소주, 듣기만 해도 너무 좋습니다.
멋진 시아버지 건강하시기를......

건우와 연우 2006-08-26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어른들을 보내고 우리가 그 자리에 서야 할 나이라고 생각하니 가야할 이들이 애틋하고 남은 우리가 두렵기도 하고 그렇네요...^^

카페인중독 2006-09-15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언제까지나 강하실줄 알았는데...어느날 갑자기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시더라구요...ㅜ.ㅜ

건우와 연우 2006-09-19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독님은 참 귀엽고 살가운 며느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