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퇴근시간에 맞춰 제 오빠와 함께 셔틀버스를 타고 엄마를 기다리던 연우의 얼굴이 불그레했다.

무언가에 약이 바짝 오른 얼굴로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나: 딸래미 오늘 무슨일이 있으신가요?

연우: 엄마, 오늘 제가 기분이 안좋거든요.  아주 많이 속상해요..

나: 그러니까 얘기를 해보세요...우리 둘이 토론을 하다보면 방법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연우: 그럼 그 장난하는 말투 말고 진지하게 제 말을 들어주세요...

이쯤되면 진지한 표정으로 연우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 장난끼를 거두고 묻기 시작하니 이내 연우는 울먹울먹하는 표정이 되었다. 단단히 약이 올랐었나보다.

내용은 일상적으로 유치원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다툼이 원인이었다.

건우 읽으라고 사준 수학귀신이라는 책을 오빠를 제치고 열심히 읽고 있는 연우는 그책을 통해 분수나, 곱셈에 대한 개념을 어렴풋이 이해해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책속에 13이 6번 반복되면 78이라는 내용이 있었나보다. 그런데 유치원에서 어찌하다보니 같은반의 준*라는 남자아이한테 설명을 하게 되었고 그 아이는 연우를 제쳐두고 13이 6개 있으면 78이라고 아이들한테 퀴즈를 냈었나 보다.

유치원의 아이들은 준*를 새로운 내용을 많이 아는 똑독한 아이로 등극을 시켰고 그 과정에서 연우는 철저히 소외된 것이었다.

 

연우: 엄마,  준*는 숫자쓰기랑 덧셈도 요즘 내가 가르쳐주었구요.  책읽기도 가르쳐주었는데 왜 나를 무시하는걸까요? 스승님을 무시하는건 정말 나쁜거라구요.

나: 그러게, 우리 연우가 친구한테 많은걸 가르쳐 주었구나. 그렇지만 너를 통해 친구가 무얼 알았다고 해서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때 꼭 너의 허락을 받거나 놀때 너를 끼워줘야 할 의무가 있는걸까? 네가 책을 통해 안 내용을 친구에게 알려줄때그 책을 쓴 사람한테 허락을 받았던건 아니잖아?

연우: 그렇지만 나는 책을 따돌리거나 일부러 책 쓴사람에게 똥개라고 하지는 않아요.

나: 준*가 너에게 똥개라고 놀렸니?

연우: 준*는 친구들에게 내가 가르쳐준 내용을 자랑하다가 내가 뭐라고 하려고 하니까 막 나보고 똥개라고 했다구요.

나: 그럼 연우야 너는 그 친구에게 어떻게 해주고 싶니?

연우: 나도 똥개라고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막 미친놈이라고도 해주고 싶어요.

나: 연우야, 너는 친구한테 좋은걸 가르쳐주었는데, 그 애가 너에게 많이 서운하게 했다고 그렇게 욕을 하면 네가 너무 유치해지는것 같지 않니? 

연우: 그럼 어떻게 하냐구요...

연우의 얼굴이 울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이럴땐 최대한 웃기는 내용으로 일단락을 짓는게 상책이다.

나: 있잖아 연우야,  이러면 어때. 준*가 또 그러면 눈을 착 내리 깔고 도도한 목소리로 말해주는거야. <내가 널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

연우: 네에?

나: 네가 아는 것은 다 내가 가르쳐준거다 하는 표정으로 말해주라구...

연우: 그래도 안돼면요?

나: 어쩌냐, 그냥 흥 하고 무시해줘야지...

옆자리에서 친구랑 앉아 낄낄거리던 건우가 대뜸 말을 가로챘다.

건우: 연우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나가.

연우 : 오빠 뭐라구.

건우: 걔가 널 무시하면 똑같이 해주라고. 과감히 똥침을 날리던지...

연우가 똥침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나보다. 금새 제오빠와 희희낙락이었다.

어쩌랴, 인생이라는게 늘 정석대로 풀리는 것은 아니니 연우는 그 나이에 맞는 해법을 찾은것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보면 또다른 새로운 문제점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되는것이 있을수도 있고  더불어 한여름의 고온은 더 이상 공자님 말씀을 되풀이 하는데 역부족이기도 했고...

 

저녁내 연우는 제 오빠와 땀을 뻘뻘흘리며 이리저리 피하는 친구를 잡아 똥침 놓는 연습을 하였다.

연우의 일곱살 인생의 한고비가 저렇게 땀냄새와 함께 지나가고 있는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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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8-13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곱살 인생이 참 만만치 않네요^^

춤추는인생. 2006-08-1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곱살 기억이 뚜렷하거든요. 일곱살 연우에게 생기는 여러일들이.
아마 연우 살면서 스치는 소중한 추억이 될것 같네요. 연우 !
이모가 찍어두었다고 전해주세요 ^^

건우와 연우 2006-08-1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그러게요. 저는 일곱살이 있지도 않았던것 같은데, 연우는 쪼그만게 왜 그리 인생이 파란만장(?)한건지요...^^
인생님/ 인생님의 일곱살도 아주 생각이 많았을거 같아요...^^
연우가 저 과정을 다 거치고 좋은 추억들로 유년시절의 기억이 풍요롭길 바래요...^^

해리포터7 2006-08-13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승님 연우를 제치고 기고만장한 그녀석에게 똥침날릴 걸 생각하니 슬금슬금 웃음이 지어집니다.ㅋㅋㅋ 아이들은 다 지네들방법으로 살더군요.ㅎㅎㅎ

내이름은김삼순 2006-08-13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같은 페이퍼를 읽은 듯한 느낌이예요, 건우와 연우님 너무 멋진 어머니세요~~연우도 너무 귀엽고 건우는 너무 의젓해보이구,,!!
그렇게 속상해 한다고 달라질건 없으니 귀여운 연우에게 다음부터는 연우가 먼저 친구들에게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려주라고 하세요,ㅎ 주위에 얄미운 친구들이 꼭 있기 마련인데, 또 좋은 친구들도 많다는 걸 많이 알았음 하네요, 성장하는 과정이니 님께서 지금처럼 좋은 가르침 해주시면 정말 훌륭한 연우와 건우가 될것 같아요,^^

건우와 연우 2006-08-13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터님/ 맞아요. 아이들은 아이들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더라구요. 바라보는 어른이 안쓰러워, 혹은 답답해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따우님/ 정말 그런가봐요. 걔네들도 걔네 나름으로 인생이 복잡하더라니까요 =3=3=3
삼순님/ 제가 썩 좋은 엄마는 못돼는데, 삼순님이 그렇게 얘기해주시니 마음이 으쓱한걸요...^^ 시간이 좀더 지나면 속상한 일도 추억이 돼곤 할 터이니, 아이들스스로 해결하는 것을 지켜보는법을 배워야겠다 생각했어요..^^

달콤한책 2006-08-13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빠가 제시한 방법이 썩 마음에 듭니다...알아서 터득해 나가야 하는데, 지켜보는 마음은 아리지요. 근데....연우, 너무 많은거를 아네요...똑똑해라^^

푸하 2006-08-13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준*의 실명이 나중에 밝혀진 거 아닌가요?^^;
그리고 준*와 같은 친구(스승님에게 똥개라고 무시하는)는 적은 수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연우가 자신이 아는 지식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능력(취미)을 계속 기르면 참 좋겠네요.

전호인 2006-08-14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재미있는 인생(?)들입니다.
연우의 생각이 귀엽습니다

건우와 연우 2006-08-14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콤한책님/ 생일은 즐거우셨나요? 요즘들어 오빠랑 앙숙인데 가끔 황당한 상황에서 저리 죽이 잘 맞아들어갑니다..^^
푸하님/ 앗 실수!! 수정했습니다.^^ 책읽기만큼 글쓰기와 수다를 좋아하니 아마도 계속 그리되지 않을까 싶네요...^^
전호인님/ 아이들의 생각은 가끔은 영악할때도 있지만 결국은 그나이 범위안에서 놉니다...^^ 결국은 앤거죠..^^ 더운데 주말 잘 보내셨나요?

로드무비 2006-08-1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널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
ㅎㅎㅎㅎㅎ
지혜로우십니다.
아그들은 너무 귀엽고요.^^

비자림 2006-08-14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건우와 연우님
참 현명한 엄마의 모습을 님에게서 보는군요.*^^*

건우와 연우 2006-08-14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친구한테 가끔씩만 써먹어보라고 가르쳐주면 엉뚱하게 제 오빠한테 써먹다가 쥐어박히곤 합니다...그럴땐 둘이 딱 개와고양이로 돌변합니다...^^
비자림님/ 쑥스럽게 과찬의 말씀을요...
애들하고 노는건 늘 똑같진 않지만 어른끼리 노는거하곤 또다른 매력이 있어요...^^
감기는 좀 나아지셨나요?

건우와 연우 2006-08-14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나침반님/ 남들이 보면 연우는 오빠가 있어 행복하고 본인주장으론 오빠가 있어 귀찮다네요..^^
그래도 살다보면 그 핏줄이라는게 때론 가슴아프고 때론 살갑게 느껴지며 위로가 되어줄 날이 많으리라 생각해요...^^

기인 2006-08-14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오빠 건우 :)
수학귀신 저도 읽었는데, 아이들은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약간 유머의 코드가 안 맞지만. ㅎㅎ

건우와 연우 2006-08-1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와주셔서 고마워요..^^
저는 사실 그책 사주기만하고 안읽었어요.^^ 근데 애들은 재밌나봐요...^^

한샘 2006-08-16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랴, 인생이라는게 늘 정석대로 풀리는 것은 아니니 연우는 그 나이에 맞는 해법을 찾은것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보면 또다른 새로운 문제점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되는것이 있을수도 있고  더불어 한여름의 고온은 더 이상 공자님 말씀을 되풀이 하는데 역부족이기도 했고...

 저녁내 연우는 제 오빠와 땀을 뻘뻘흘리며 이리저리 피하는 친구를 잡아 똥침 놓는 연습을 하였다.

연우의 일곱살 인생의 한고비가 저렇게 땀냄새와 함께 지나가고 있는것일까?

...... 아~ 건우와 연우님......님의 문장들 참 좋아요~

건우와 연우는 이렇게 좋은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다니 부러워~

 


건우와 연우 2006-08-17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저는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시선이 느껴지는 한샘님의 사진들이 더 부러운걸요...^^

씩씩하니 2006-08-18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연우가 점심 먹고 부른 배 땜에 흐뭇하던 제 마음을 더 많이 벙긋거리게 하네요...
음...이런 구여운 녀석들이 우리의 이쁜 미래인거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