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이 현대사회의 고질적인 병이 되어버린지가 어느새 십수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참으면 지나가리라 여겨졌던 불경기는 일상이 되어 버렸고, 기업이 슈퍼갑이 되어버린 2014년, 제일 흔하고 값없이 되어버린게 사람이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염치도 예의도 버려야 하는게 만성실업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요구되어야 하는 덕목이 되어버린 것일까?

 

며칠전 터져나온 삼성의 총장추천제에서 나는 거대기업의 은밀하고 치밀하며 졸렬한 악의의 냄새를 맡는다.

한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115에서부터 제로까지의 숫자들.

또한 시작은 삼성이되 조만간 대부분의 대기업으로 번져나갈 그 숫자들 앞에 어느 대학에서도 거부의 단호한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에서 슈퍼갑이 되어 젊음의 존엄을 짓밟는 취업이라는 괴물의 모습을 본다.

 

어느 한순간 자본주의가 인간의 얼굴을 한적이 있었느냐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증거를 들이밀만한 지혜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조금 덜 받고, 더 나누며 살만한 세상을 만들수도 있으리라는 꿈조차 버릴수는 없기에 슬금슬금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 또한 막을수 없다.

 

이토록 팍팍하고 추운 겨울에 저들은 왜 새파란 젊은것들에게 자꾸 무릎을 꺽으라 종용하는가?

결국은 꺽인 무릎에 찍힌 모래며 돌멩이 자국들을 확인하며  절망하게 될 지라도 아직은 너무 젊은 그들에 앞서 우리가 좀 더 화를 내야 할 때이다.

그것이 여러해를 먼저 살아온 우리들의 나이값이며, 또한 나는 아직 열몇살짜리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가?

 

그러기에 아직 나는 분노를 포기할 수없다.

내 아이들의 꺽인 무릎에 찍힐 수많은 상처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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