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 탐정 실룩 2 : 사라진 반짝 샴푸 비법서 변비 탐정 실룩 2
이나영 지음, 박소연 그림 / 북스그라운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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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 왔어, 변비 탐정 실룩 2가 드디어 왔다!

 

책장 하나 가득 '셜록홈즈' 등의 추리 소설 제목을 보고 큰 탓인지 일찍이 '탐정'이나 '추리'에 관심을 가진 우리 꼬마. 그래서 『변비 탐정 실룩』은 제목부터 대환영이었고, 추리력과 창의력,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러 소재의 배합으로 단숨에 아이의 애정 도서가 되었다. 그렇게 근 4달간 읽고 또 읽으며 2권은 언제 나오나 기다리던 우리 꼬마! 『변비 탐정 실룩 2- 사라진 반짝 샴푸 비법서가 오자마자 소리를 지른다. “왔다 왔어! 변비 탐정 실룩 2가 드디어 왔다!”

 

한층 익살넘치는 표지로 우리를 찾아온 『변비 탐정 실룩 2- 사라진 반짝 샴푸 비법서편에는 한층 흥미진진하고 한층 다양한 퀴즈가 독자를 기다린다. 라푼젤이 1대 회장인 찰랑찰랑 기업에 200년간 내려오는 샴푸 비법서가 사라지게 되고, 요키 회장은 명탐정 실룩을 부르게 된다. 실룩은 또 한 번 기지를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고, 실룩과 함께 생각하고, 추리하고 퀴즈도 풀며 아이들의 생각도 쑥쑥 자라난다. 

 

『변비 탐정 실룩 2- 사라진 반짝 샴푸 비법서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 첫 번째. 1권을 소개할 때도 했던 말이지만 아이들이 눈치챌 만한 등장인물, 빈틈없는 스토리, 화려한 일러스트로 아이들의 관심을 꽉 붙들어 맨다. 탄탄한 스토리에 화려한 색감과 재미있는 대사들이 어우러져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듯 입체적인 감상이 가능한 것. 우리 꼬마 역시 라푼젤의 등장을 보며 “맞네, 샴푸 광고하기에 제일 적합한 모델이네”라고 깔깔 웃더라. 또 실룩이 빨개질 때마다 '똥' 쌀 타임이라고 즐거워하기도 했다. (역시 똥!) 

 

두 번째 장점은 아이들이 직접 힌트를 찾고, 범인을 추리해보는 점. 책을 읽는 내내 단서를 찾으려 노력하고, 여러 등장인물의 관계를 파악해보는 등 단순한 '독자'가 아닌 관찰자가 되어 테리나 쥬쥬 등의 대답이나 행동 등을 관찰하며 스토리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변비 탐정 실룩 2- 사라진 반짝 샴푸 비법서』는 범인이 누군지 맞추는 바람에 아이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변비 탐정 실룩』의 세번째 장점은 부모님들에게 더 만족을 주리라 생각된다. 만화와 문고본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어 문장을 읽는 연습을 함과 동시에 책의 재미도 느끼게 하는 것. 사실 엄마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간 순간 문고본을 읽히고 싶어 하지만, 아무리 권해봐라. 재미없으면 안 읽는다. 『변비 탐정 실룩』은 그런 점에서 재미와 문장 읽기 둘 다를 잡은 책. 또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풀이해주기도 하니 어휘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어릴 때는 그림책에, 입학하여 스스로 책을 빌리게 된 후에는 한참 동안 학습만화에 빠져있던 우리 집 꼬마는, 『변비 탐정 실룩 2- 사라진 반짝 샴푸 비법서』 등의 재미있는 문고본 덕분에 이제는 글밥이 꽤 많은 문고본도 집중하여 읽는 아이가 되었다. 물론 독서는 다양한 장점이 있는 활동이지만, 아무리 억지로 시킬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변비 탐정 실룩 2- 사라진 반짝 샴푸 비법서처럼 재미있는 책들을 권하고 싶다. 책을 원래 좋아하는 아이도,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풍덩 빠져들 수 있으니 말이다. 

 

잘 보고, 잘 듣기로 소문난 명탐정 실룩과 함께 우리아이의 관찰력, 상상력, 문장력이 자랄 수 있는 책, 『변비 탐정 실룩 2- 사라진 반짝 샴푸 비법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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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천재가 된 철수와 영희의 우리말 배틀 국어 천재가 된 철수와 영희의 배틀
배은영 지음, 김창호 그림 / 제제의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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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너나들이하자.

너 오늘 왜 이렇게 몽니쟁이같니?

오늘따라 소나기밥을 먹네! 

 

이 말들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너나들이”는 '너', '나'라고 부르는 허물없는 사이, 즉 친한 사이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며, “몽니''는 심술이 가득한 마음으로 '몽니쟁이'는 심술쟁이를 뜻한다. 그렇다면 “소나기밥”은? 평소에는 양이 많지 않은 사람이 우걱우걱 많이 먹는 모습을 뜻하는 말이다. 풀어보면 이렇듯 재미있는 순우리말이지만, 한자어, 외래어에 의존해 자꾸 잊히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그뿐인가, 정확하지 않은 표현으로 굳어져 버린 표현도 너무 많다. “도긴개긴”은 주로 '도찐개찐'으로 쓰이기도 하고,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라는 뜻의 “칠칠하다”는 마치 틀린 말처럼 취급되며 '칠칠하지 못하다'등의 부정적인 의미만 사용되기도 한다. 

 

'어렵다'라고 치부해버리는 어휘는 사실 쓰면 쓸수록 익숙해지고, 배우면 배울수록 쉬워져서 그 격차가 점점 커진다. '말에 품격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로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으니, 어릴 때부터 많은 어휘를 익혀두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순우리말표현들은 안타깝게도 점점 줄어드는데, 그 예쁜 표현들을 아이와 공부해본다면 우리 언어에 대한 사랑이 한층 깊어지지 않을까? 

 

최근 아이와 만나본 『국어 천재가 된 철수와 영희의 우리말배틀』은 아이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우리말을 가장 쉽고 재미있게, 또 같은 뜻이나 비슷한 뜻, 연관되는 표현 등까지 함께 공부할 수 있어 무척 좋았다. 

 

가령 '떨어져서 바람에 날리는 많은 꽃잎'을 의미하는 “꽃보라”를 재미있게 만화로 풀어준 뒤, '보라'가 지니는 여러 뜻을 설명해준다. 그뿐 아니라 계절을 대표하는 여러 꽃, 꽃과 관련된 우리말 표현,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는 이유, '꽃놀이'의 유래까지 설명해주는 등 단순한 단어 풀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어휘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삽화 역시 일러스트, 도표, 사진 등을 고루 사용하여 아이들이 더 쉽게 내용을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아이에게 이 책을 보여주면서 과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려나 걱정했지만, 책 구성이 워낙 재미있고 쉬워서 나보다 능숙하게 우리말을 사용하더라. 

 

그 외에도 요즘 아이들이 접하기 어렵거나 틀리기 쉬운 여러 어휘를 재미있고 알차게 풀어주어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무척이나 알찬 독서가 되었다. 또 책의 뒤편에는 색인을 넣어두어 언제든 궁금한 어휘를 찾아볼 수 있어 무척 유용하다. 

 

요즘은 우리말은 고사하고 자주 사용되는 '사흘'이나 '금일' 등의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아이들도 많다고 하니 어휘력학습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국어 천재가 된 철수와 영희의 우리말배틀』 같은 어휘력 향상도서는 '초등필독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더욱이 국어 천재가 된 철수와 영희의 우리말배틀』은 국어 천재가 된 철수와 영희의 배틀』시리즈 중 하나로, 고사성어, 관용어, 맞춤법 등 다양한 '국어 천재'시리즈가 있다. 책 한 권으로 다양한 어휘, 비슷한 말, 연관어휘, 사용법 등까지 알차게 익힐 수 있는 시리즈이기에 많은 어린이가 꼭 만나보길 추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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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박물관 붉은 박물관 시리즈 1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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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관장님이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건의 진상이 뭐든지 간에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 경찰관의 사명이니까요.” 

(...)사토시는 그때 처음으로 관장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어색하긴 해도 그것은 진짜 미소였다. 고마워.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p.99)

 

 

지난 2015년 문예춘추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붉은 박물관』이 문고본으로 새로운 옷, 더욱 탄탄해진 스토리로 독자들을 다시 찾았다. 당시의 나는 이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지만,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어야 하는 임산부였던 터라, 지금에서야 『붉은 박물관』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붉은 박물관』의 소감? 말해 뭐해! 완전 쫀득하고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이라는 것에 대공감! 그러면서도 인간의 어두운 면을 모두 본 것 같은 기분에 씁쓸함과 안타까움도 가득한, 그야말로 진짜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풍덩 빠졌다 나온 기분이다. 

 

『붉은 박물관』은 지난 형사사건의 증거품과 서류를 보관하는 공간인 『붉은 박물관』을 배경으로 설녀같은 관장 히이로 사에코와, 수사1과에서 승승장구 하다 한순간에 미끄러져 이곳으로 좌천당한 데라다 사토시가 지나간 증거품과 수사서류를 보며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스토리. 사건 자체가 과거형이다 보니 사건이 주는 긴박함이 없는데도 치밀한 추리와 여러 복선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책을 읽는 내내 사토시가 되기라도 한 듯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현재진행형의 추리 소설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 덕분인지, 온전히 이성에 초점을 두고 사건의 실마리를 찾고 싶어지더라. 때로는 사건을 예상해보기도 하고, 전혀 상상하지 못한 전개에 허를 찔리기도 하며 책을 읽다 보니 주말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솔직히 말해 일본소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붉은 박물관』은 읽는 내내 이야기에 심취해있었고, 『붉은 박물관』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나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질 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붉은 박물관』은 빵의 몸값, 복수일기, 불길 등의 5개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소설. 각각 다른 사건을 다루기에 지겨워질 틈이 없었다. '복수일기'는 중반부부터 범인과 사건의 방향을 맞추어서 더 재미있게 읽었고, '죽음에 이르는 질문'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전개로 흘러 깜짝 놀랐다. 각각의 사건마다 특징적인 전개가 있어 인상 깊었는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할 문제들을 하나씩 던져주어, 소설을 읽었는데도 꽤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불길'은 다소 뻔한 삼류드라마에 섬세한 복선을 깔아 인간의 추악함은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하게 만들더라. 

 

직접 『붉은 박물관』을 읽어보니 왜 이 책이 드라마화되고, 여러 분야의 미스터리 상을 휩쓸었는지 공감되었다. 잔인한 장면의 묘사나 다양한 대화문도 없이 이어지는 덤덤한 문체인데도 엄청난 몰입감이 들었으니 말이다. '미스터리 거장'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은 긴장감 넘치는 소설이었다. 

 

그나저나 작가님! 사에코가 의문을 품었다던 혈연관계는 언제 알려주실 건가요? 붉은 박물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라는 『기억 속의 유죄』에 나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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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말고 5000만 원 더 벌기 - 돈 모으기 광인의 야물딱진 생활밀착형 재테크 습관
강희연(돈 모으는 벤꾸리)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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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약간의 여유가 주는 달콤함이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씀씀이를 늘리기 시작하니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처음에는 친구들을 한 번 더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는데, 계속 만나다보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이 입고 있는 옷, 들고 잇는 가방, 누가 명품 가방을 샀네? 누가 호캉스를 갔네? 비교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한껏 불어난 주식계좌가 옆에서 속삭였다. “너도 돈은 넉넉한데 왜 갖고 싶은 걸 못사니? 그냥 지르면 안돼?” 넉넉해진 생활비에서 오던 만족감은 어느새 돈을 더 써야만 치유될 부족감으로 바뀌어있었다. (p.42) 

 

 

『연봉말고 5000만원 더 벌기』는 인스타그램에서 재테크툰으로 유명한 '돈모으는 벤꾸리'의 비법을 담은 재테크 책이다. 나 역시 인스타그램에서 벤꾸리의 재테크툰을 본 적이 있기에 이 책이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여러 리뷰에서 쓴 적 있지만, 내가 가장 읽지 않는 분야의 도서가 경제서인데도 이 책을 읽은 까닭은 쉬워서다. 눈에 익은 심플한 만화체의 일러스트, 인스타툰답게 10장으로 이루어진 만화, 쉽게 풀어쓴 내용 등 덕분에 기존의 재테크책보다 훨씬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던 것. 

 

혹시 나처럼 어려운 용어나, 거부감이 들만큼의 자신감 등이 버거워 경제서를 읽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만화를 읽듯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연봉말고 5000만원 더 벌기』를 추천해본다. 

 

『연봉말고 5000만원 더 벌기』는 사회초년생 벤꾸리가 연봉말고 5000만원을 모아보자는 목표를 달성해가는 과정을 그대로 담은 책이다. 그래서 책이 첫 장 '다지기'에는 벤꾸리의 실패담, 혼돈에 빠진 통장 등에 대해 읽을 수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우리가 했던 실수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과, 차이는 만회했냐 그렇지 않냐에 달려있음을 느꼈다. 두번째 파트는 '아끼기'. 

 

사실 사회초년생이던 시절 나도 꽤나 소금으로 살며 알뜰히 저축을 했기에 아끼는 것은 이력이 나있다 생각했는데, 벤꾸리의 절약팁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만약 재테크라는 거창한 목표를 가지지는 않았더라도 경제적 개선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연봉말고 5000만원 더 벌기』 안의 '아끼기'편만이라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 안에는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절약팁이 잔뜩 들어있어 '쌈지돈'을 지키기 좋다. 나는 최종보스라는 '고정비'를 차마 건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차차 벤꾸리를 따라잡는 날까지 절약팁들을 실천해볼까 생각 중이다. 

 

세번째 장은, 가장 많은 팁이 방출되던 '불리기'편이었다. 단순히 절약하는 것만으로는 돈을 모으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 벤꾸리는, 씨드머니를 바탕으로 돈 불리기를 시작한다.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과제는 아니지만, 비교적 단시간에 도전할 여러 과제들이 포함되어있어 돈 모으기를 목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더라. 

 

미리 말해두지만, 『연봉말고 5000만원 더 벌기』을 읽는다고 누구나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진짜 '0원'에서 '그래도 살만한 만큼'의 돈을 모은 이야기이기에 더 실질적이고 그럴듯하게 와닿는다. 원래 부자들이 '돈으로 돈먹기' 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을 가장 강조하고 싶다. 가진 것이라곤 건강함 몸뚱이 뿐이지만, 조금 더 나은 경제를 꿈꾸는 이들, 특히 젊은이들이 꼭 한번 읽어보시라고 말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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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기 좋은 시간
김재진 지음 / 고흐의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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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나무 이파리가 윤슬에 반짝일 때

가을엔 외로움도 눈부시다. (p.46 '가을 미술관에서' 중)

 

 

언제인가 그의 시에서 “당신이 만약 혼자라서 외롭다면 외로움의 크기만큼 당신은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수록 '혼자라고 느낄 때' 중에서)”라는 문장을 읽고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일이 있다. 사실 그때까지도 나는 철없이, 외로움은 타인이 '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문장을 읽은 후 사실 외로움은 내 내면의 일이구나, 느꼈던 것 같다. 몇 년이 흘러, 다시 만난 그의 시집 『헤어지기 좋은 시간』은 나에게 그런 고민을 또다시 던진다. 사람과의 '이별'은 참으로 작은 한 부분이며, 사실은 추억이나 시간, 사물, 자연 등과도 잘 이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번 시집, 『헤어지기 좋은 시간』에는 칠십 여천의 시가 담겼다. 3페이지에 달하는 시도 있고 50여 글자의 짧은 시도 있다. 그러나 역시 시는, 분량과 관계없이 읽는 사람에 따라 깊이가 다르게 읽힌다. 나 역시 학창시절 내내 시를 쓰던 사람이지만, 또 한 번 시만큼 '읽는 이'의 입장에서 읽히는 문장들이 또 있던가 생각하게 된다. 문득, 시는 세상 모든 것의 노래이고 이야기임을 깨닫는다. 『헤어지기 좋은 시간』을 통해 나는 김재진이라는 사람의, 바람의, 시간의, 달력의, 고양이의 시를 들었다. 사실은 나의 언어도. 시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시를 즐기는 나의 팁을 나누자면, 그저 노래라고 생각하라는 것. 우리가 가요를 흥얼거리며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시도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면 그 문장들이 알아서 나만의 이야기로 읽혀줄 것이다. 

 

김재진의 시집 『헤어지기 좋은 시간』 역시 그저 편안하게 넘기다 보면, 내가 추억과 헤어지는지, 과거와 헤어지는지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의 시가 좋은 이유는 참 많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영상 같은 문장'을 꼽고 싶다. 이번 『헤어지기 좋은 시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 “바람은 몸이 없어 꽃 지는 소리나 창문을 두드리는 손가락 예쁜 저녁의 발자국에 얹혀서 온다('바람의 시 1' 중)” 역시 꽃잎이 지고, 땅거미가 넘어가는 장면이 절로 떠오른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다. 넘치는 수식이 없어 오히려 내 머릿속 어느 장면을 쉬이 꺼내게 만든다. 

 

그가 기록한 '최선을 다해 죽는다'라는 말이 오히려 최선을 다해 산다는 말보다 절실히 느껴진다.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게 깨달았기에 나도 마지막을 향해 성실히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문장들은 이렇게 무슨 말인지 다 알 것 같다. 아니, 그가 어떤 의도로 말했든 나의 마음, 생각 어딘가 딱 필요한 곳으로 잘 배달된다. 무릇 시는 이렇게 쉬이 읽혀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그에게 감히 질투를 느낄 엄두도 내지 못했다. 

 

『헤어지기 좋은 시간』을 덮은 후 문득 내다보니, 아, 진짜 가을이구나! 

그래, 가을은 꽤 많은 것들과 헤어지기 좋은 시간이다. 그러나 어떤 시에서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름의 마지막 날은 가을의 첫날이라고 했다. 과거를 떨치는 마지막 날은 다시 새로운 날임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지. 어쩌면 김재진 시인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아팠어도 다시 새로운 날이라는 것 아니었을까. 그래서 『헤어지기 좋은 시간』을 다시 고쳐 써본다. 시작하기 좋은 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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