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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박물관 ㅣ 붉은 박물관 시리즈 1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9월
평점 :

“아뇨, 관장님이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건의 진상이 뭐든지 간에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 경찰관의 사명이니까요.”
(...)사토시는 그때 처음으로 관장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어색하긴 해도 그것은 진짜 미소였다. 고마워.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p.99)
지난 2015년 문예춘추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붉은 박물관』이 문고본으로 새로운 옷, 더욱 탄탄해진 스토리로 독자들을 다시 찾았다. 당시의 나는 이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지만,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어야 하는 임산부였던 터라, 지금에서야 『붉은 박물관』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붉은 박물관』의 소감? 말해 뭐해! 완전 쫀득하고 흥미진진한 추리 소설이라는 것에 대공감! 그러면서도 인간의 어두운 면을 모두 본 것 같은 기분에 씁쓸함과 안타까움도 가득한, 그야말로 진짜 이야기꾼의 이야기에 풍덩 빠졌다 나온 기분이다.
『붉은 박물관』은 지난 형사사건의 증거품과 서류를 보관하는 공간인 『붉은 박물관』을 배경으로 설녀같은 관장 히이로 사에코와, 수사1과에서 승승장구 하다 한순간에 미끄러져 이곳으로 좌천당한 데라다 사토시가 지나간 증거품과 수사서류를 보며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스토리. 사건 자체가 과거형이다 보니 사건이 주는 긴박함이 없는데도 치밀한 추리와 여러 복선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책을 읽는 내내 사토시가 되기라도 한 듯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현재진행형의 추리 소설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 덕분인지, 온전히 이성에 초점을 두고 사건의 실마리를 찾고 싶어지더라. 때로는 사건을 예상해보기도 하고, 전혀 상상하지 못한 전개에 허를 찔리기도 하며 책을 읽다 보니 주말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솔직히 말해 일본소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붉은 박물관』은 읽는 내내 이야기에 심취해있었고, 『붉은 박물관』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나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질 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붉은 박물관』은 빵의 몸값, 복수일기, 불길 등의 5개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소설. 각각 다른 사건을 다루기에 지겨워질 틈이 없었다. '복수일기'는 중반부부터 범인과 사건의 방향을 맞추어서 더 재미있게 읽었고, '죽음에 이르는 질문'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전개로 흘러 깜짝 놀랐다. 각각의 사건마다 특징적인 전개가 있어 인상 깊었는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할 문제들을 하나씩 던져주어, 소설을 읽었는데도 꽤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불길'은 다소 뻔한 삼류드라마에 섬세한 복선을 깔아 인간의 추악함은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하게 만들더라.
직접 『붉은 박물관』을 읽어보니 왜 이 책이 드라마화되고, 여러 분야의 미스터리 상을 휩쓸었는지 공감되었다. 잔인한 장면의 묘사나 다양한 대화문도 없이 이어지는 덤덤한 문체인데도 엄청난 몰입감이 들었으니 말이다. '미스터리 거장'이라는 단어가 무색하지 않은 긴장감 넘치는 소설이었다.
그나저나 작가님! 사에코가 의문을 품었다던 혈연관계는 언제 알려주실 건가요? 붉은 박물관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라는 『기억 속의 유죄』에 나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