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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포르
마리아 스트셸레츠카 지음, 이지원 옮김 / 북극곰 / 2024년 7월
평점 :
(그림책으로 수다 떨기) 『니키포르』
제가 직접 돈을 벌어 산 첫 번째 책은 “바리공주”였습니다.
많이 가난한 편은 아니었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모든 종류의 전집을 척척 사는 집도 흔치 않았고, 책도 비쌌어요. 도서관 지금처럼 멋지지 않았기에, 종종 큰맘 먹고 사주신 책들은 정말 “나달나달할 때까지” 읽었습니다. 언제인가 무척 덩어리가 큰 명작, 전래동화를 엄마 친구와 사서 한집은 1~40권, 한 집은 41~80권으로 나누어 가졌는데 (언젠가 다시 바꾸어보기로 하고), 하필이면 바리공주가 40권, 41권에 상·하로 나뉘어있었지 뭡니까. 그래서 저는 바리공주 '상'만 너덜너덜해지도록 읽었고 '하'는 한참이 지나서야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 바리공주 때문에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수십 가지 상상하며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비록 글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이렇게 평생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북극곰의 그림책, 『니키포르』를 읽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빈곤했기에, 그의 작품은 더욱 아름다웠지 않을까. 그의 재료들은 늘 부족하고 한계가 가득했지만, 그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그 한계를 넘어 날개를 훨훨 달고 날아가지 않았나 하고.
눈도 들리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이름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니키포르는 엄마의 일터 주변 다리 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말을 하는 법을 배울 수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지만, 보이는 것을 모두 그리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대는커녕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니키포르지만, 성당의 그림들에서 구도와 원근법 등을 터득할 만큼의 천재였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죠. 그는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그림을 소중히 대했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때때로 자신의 그림 속에, 여러 가지로 변한 자신을 그려 넣기도 하며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구걸하기도 하고, 도시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결국 결핵에 걸려 그림이 불태워지기도 하지만 그는 끝없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서도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냅킨 위에, 천국을.
물론 우리 대부분은 '사는 형편'을 따지자면 니키포르보다 훨씬 더 나을 겁니다. 바리공주 '하'를 읽지 못한 아쉬움을 떨치지 못했던 못난 저도, 지금은 월급의 5%가량은 늘 책을 사는 인터넷서점 상위 1%인, '책 좀 사는' 사람이 되었으니, 니키포르보다 훨씬 나은 형편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리의 형편이 니키포르보다 낫다고 하여 우리 삶이 그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넘는 사람으로 살고 있을까요?
그는 냅킨 위, 나뭇잎 위, 벽난로, 엽서 조각, 담뱃갑 등에도 그림을 그릴 정도로 궁핍했지만, 한순간도 손에서 그림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린 그 그림을 믿었어요. 자신이 창조한 것들이 '작품'이 되리라는 것을 믿었지요. 비웃음 속에서 그린 그림을 두고 “내 그림들은 내가 죽은 후에도 남을 겁니다. 이 그림은 다른 그림과는 다릅니다. 내가 그렸으니까요. 더 가까이 와서 봐주세요. 아무도 이렇게 그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자신이 한 어떤 것에 대해 이렇게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깊은 노력의 결론일까요?
오늘, 북극곰의 그림책 『니키포르』를 다시 읽었습니다. 글씨가 꽤 많아 아이가 두 번 정도 엉덩이를 꼼지락거리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마지막까지 귀를 기울였습니다. 길에서 그림을 그리며 웃는 그를 천천히 바라보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우리 아이도- 니키포르처럼, 우리의 하루하루를 더 성실히 살고, 그 성실함을 우리 스스로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그렇게 살도록 키워야겠다고.
엄마께 없는 형편에도 책을 사줘서 고마웠다고- 그때의 나는 행복했다고 말을 했습니다. 지금 읽을 책이 많은 우리 집을 보면서, 매일 책을 읽는 우리 모녀의 모습에, 엄마는 더 행복하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내 모습을 내가 더 많이 아껴주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되었든 부지런히 읽고 부지런히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