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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 - 모든 파도는 비밀을 품고 있다 ㅣ Short Story Collection 1
남궁진 엮음, 아서 코난 도일 원작 / 센텐스 / 2024년 8월
평점 :

결국, 우리는 세 명의 선원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나무 상자를 들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나, 목수, 앨런다이스는 그 줄무늬 상자를 바닷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얀 물거품이 일었고, 그것은 금세 사라졌다.
만약 누군가 혹시라도 그 오래된 상자를 발견하고, 그 상자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위해 슬퍼할 것이다. (p.179)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시작점을 따지자면 너무 옛날이고 나의 기억보다는 부모님이나 언니의 증언에 기대어야 하니 접어두고, 내가 가장 왕성히 책을 읽었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면 거기엔 산더미처럼 쌓인 아서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들과 “토지”, “태백산맥” 등이 있다. 남들은 입시공부에 미쳐있었을 고등학생 시절, 나는 소설에 미쳐있었다. 그런 나에게 다가온 낯선 아서 코난 도일이라니! 이것을 읽지 않고는 팬으로서의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출간과 동시에 읽기 시작했다.
『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은 '셜록홈즈'로 추리소설의 대가가 된 아서 코난 도일의 단편 모음집 “해적과 푸른 물 이야기”, “선장의 거래 & 해적의 신화” 등의 제목으로 1920년대에 출간되었던 책이지만, 한국어로 공식 번역된 것은 그로부터 100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처음이다. 즉, 대부분의 국내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야기일 것이기에 표지를 열기 전부터 두근두근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게다가 표지는 왜 이렇게 고급스러운 오렌지색이며, 표지의 배는 그 자체로도 비밀이 가득할 것 같이 생긴 건데? 전국의 아서 코난도일 팬들! 지금이에요! 어서 100년간이나 기다린 아서 코난 도일의 선상 미스터리를 만나러 와요.)
『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은 선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미스터리를 다룬 이야기와 전설적인 해적 샤키 선장의 모험을 다룬 이야기가 함께 모여있다. 앞쪽 선상 미스터리는 셜록홈즈를 읽을 때처럼 함께 고민하고 추리하며 단서를 뒤쫓느라 바빴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어찌나 특색있는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항해했다. 뒤쪽의 샤키 선장 이야기는 그동안의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과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전설의 해적 샤키 선장이 벌이는 액션이나 잔인함 등은 마치 '캐리비안의 해적'처럼 짜릿하기도 했고, 이야기의 뒤에서는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이라는 한 권으로 엮어두었지만, 전혀 다른 두 가지 매력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어, 또 한 번 “역시 아서 코난 도일!”을 외치는 책이 아니었나 싶다.
오랜만에 만난 아서 코난 도일의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의 책이 나란히 꽂힌 책장 앞에서 서성였다. 그 시절의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고, 내가 또 무엇인가에 그렇게 심취할 날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아서 코난 도일에 심취했던 이들은, 나처럼 어느새 좀 나이를 먹지 않았을까. 여고생이었던 내가 어느새 초등학생을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난 아서 코난 도일의 오랜 팬들이 더더욱 『아서 코난 도일 선상 미스터리 단편 컬렉션』을 읽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이 책은, 그때처럼 가슴이 뛰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