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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 글로벌 거지 부부 X 대만 도보 여행기
박건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하나 남은 마른 양말을 신는 기쁨은 젖은 신발을 신으며 비극으로 끝났다.
오늘 나선 방향은 일본의 식민지 시절 건물이 남아 있는 옛 일본인 마을이다.
미키는 과거 자국민들의 삶이 궁금했던 건지 관심도 없는 나를 적극적으로 끌고 갔다.
역사를 아픔으로 배워온 나로서는 식민지 유물을 보러 간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그나마 미키는 역사 인식이 뻔뻔하지 않은 일본인이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동행해주었다.
만약 나였어도 옛 한국인의 마음이 있다면 찾아가 봤을지도 모르니. (p.123)
사실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는 그냥 팔자 좋은 부부의 여행기라고 생각했고,
이 책을 읽은 초반에는 그냥 떠도는 삶을 사랑하는
나와는 다른 (나는 전형적인 집순이다.) 삶이구나, 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읽을 즈음에는 달랐다.
누군가 했던 말처럼
책은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하는 독서라는 말이 머리에 확 떠올랐고,
그들은 서재가 아닌 길 위의 독서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대만에 대해 사전 정보가 많지 않았다.
펑리수. 망고젤리. 카스텔라 등 먹는 것들만 잔뜩 떠올랐고
아주 오래전 동남아 패키지여행에서 비 오던 눅눅한 나라만 떠올랐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한 인식이 좀 달라졌다.
소박하고 친절한 시골동네 사람들 같은 느낌.
물론 요즘의 시골동네는 옛날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우리가 떠올리는 그 시골인심, 그 생각이 불현 듯 났다.
아마 저자가 그런 따스함을 담고 글을 적었기에, 내게도 그런 마음이 닿았겠지.
그러고 보니 도보 800km를 돌파했다.
한창 뜨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거리다.
대만을 걷기 7주 전에 산티아고를 다녀온 나는
그로부터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시기에 800km를 두 번째 걷고 있다. (p.282)
문득 웃음이 나왔다. 예전 아빠가 한참 건강하시고 백두대간을 돌파하러 다니실 무렵,
나는 참 부지런히도 걸었다. 아빠가 아가씨가 발 못 생겨지게 왜 자꾸 걷냐 할 때, 나는 말했다.
산티아고를 갈 생각이라고. 거기서 내 삶을 돌아볼 거라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아직도 산티아고를 걷지 못했는데,
오히려 나는 요즘 진짜 내 삶을 사는 것 같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걸으면 집 앞 공원길도 산티아고라는 아빠의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어디를 걷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마음으로 걷는지가 중요할 뿐.
만약 저자가 조금 더 금전계산에 능한 사람이었다면 그 핫한 산티에고를 걸을 때에 책을 냈을 것이다.
대놓고 대문짝만하게 산티아고 도보여행기, 이런.
그렇지만 이 책은 대만 도보여행기 조차도 코딱지만 하게 적었다.
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말만 큼지막하게 적은 걸 보면,
그저 걷는 것 그 자체를 사랑해서 걷는 것이다. 누가 보라고 걷는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위해.
요즘은 남들 보라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남들이 보라고 책을 읽고 남들 보라고 옷을 사고 남들 보라고 사진을 찍는다.
물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본인만을 위해 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서, 내가 즐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이 책의 뒤표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서로 과소평가하던 인내심이 결코 부족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고.
나는 이 말이 마음을 깊게 울렸다.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던 부부는 살다보면
서로의 무능을, 서로의 문제를, 서로의 단점을 먼저 찾게 된다.
언제 우리가 사랑했었냐는 듯 “내가 내 발등을 찍었구나” 라는 진심어린 불평을 하기도 한다.
가족도 그렇다.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때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남보다 못한 사이처럼 살 때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내 곁에 있는 그 모든 사람들 -배우자나 부모형제, 자식, 친구까지 합쳐서-도
나의 거울이라는 것을.
내가 웃는 얼굴로 바라보면 그들 역시 웃는 얼굴로 날 볼 것이고,
인상 쓴 얼굴로 바라본다면 그들도 나를 그렇게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사랑하는 이들을 서로 과소평가하기보다는 응원하고,
힘을 주자. 한번이라도 더 웃어주자.
그러면 그들도 나를 응원하고, 힘을 주며 웃어 줄 테니.
분명 여행기를 읽었는데 심리서적처럼 내 스스로를,
사랑하는 이들을 더 소중하게 느끼는 것은 그들의 여행이 따뜻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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