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단편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2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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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로의 연극 기획사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신청해서 1달 정도를 인턴으로 일하는 과정이었다. 연극을 보는 것은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그 분야에 관심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고, 방학 동안에 할 것도 없는데, 용돈이라도 벌어보자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의 동기가 인턴에 지원했는데, 실무적인 일을 하게 된 두 사람과는 달리 나는 사무실에서 여러 잡무를 처리해야만 했다.


연극에 크게 관심 있는 것은 아니어서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해서 좋지도 않았다. 대게 내가 하는 일은 서류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여러 잡일을 돕는 것뿐이었다. 나는 낯가림도 많은 편이었기에 사람들하고도 어색해서 점심시간이 되면, 따로 밥을 먹고 근처를 산책하거나 근처의 중고서점에 가서 책을 읽고는 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는 그런 날들 중에 구입하게 된 책이다. 처음 봤을 때는 디자인이 예뻐서 마음에 들었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것도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소설자체도 마음에 들어서 그의 다른 소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읽지는 않아서 그의 다른 대표작들을 몇 년이 지난 며칠 전까지 읽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단편집을 읽기로 결심한건 학교 도서관에 빌릴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민음사 판으로 나온 단편집은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얇아 보여서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헤밍웨이는 굵직한 장편들도 유명하지만, 그전에 단편 소설로도 유명한 작가다. 이 단편집에는 그의 단편들이 열편도 넘게 실려 있다. 작가가 10페이지 안쪽의 단편도 많이 써서 많은 단편을 이 책 한 권에 들어갈 수 있었다. 헤밍웨이의 유명한 캐릭터인 닉 에덤스가 등장하는 초기단편들도 실려 있다.

헤밍웨이 특유의 문체라고 할 수 있는 건조한 문체는 내 취향과 맞지 않았다. 이런 문체가 두드러진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말이 제시되고 그들의 심리상태는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 이런 식의 방식을 비평가들은 하드보일드혹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소설에서는 사건과 등장인물들의 대화만을 보여줌으로서 소설의 메시지와 의미를 독자가 알아서 도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연스럽게 도출하기에는 짧은 소설들이 많았고 억지로 쥐어짜낸다 하더라도 거의 창작 수준이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아직 독서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명한 킬리만자로의 눈이라던가 병사의 집’, ‘와이오밍의 포도주등은 마음에 들었고 뛰어난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세 작품은 그나마 묘사가 많은 편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헤밍웨이는 꽤나 남자다운(?) 삶을 살았다. 사냥과 투우를 즐겼고,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과 같은 전쟁터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아프리카로 사냥여행을 자주 떠났고, 그 와중의 비행기 사고로 중상을 입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그를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글로 쓰는 타입의 작가라고 평가했다. 그렇기에 스릴과 위험을 자발적으로 찾았던 것이라고 말한다.


취향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실망까지 한 것은 아니니 단편집 2권도 나중에 읽어 볼 생각이다. 작가에게 실망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내 책장에 꽂혀있는 그의 다른 책이 있다. 대표작 까지 읽고 나서 작가를 평가하는 것이 공평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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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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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상이 등단한 후 10년 이내의 신인들에게만 부여하는 문학상이라면 김승욱 문학상은 등단 10년이 지난 중견 작가에게 수상한 작가이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인 만큼 수상자의 면면은 이미 알 만큼 안 작품이어서 젊은 작가상 만큼이나 의외의 작가는 별로 없었다. 수록된 여섯 편의 작품 중 기억나는 것을 적어보겠다.

 

먼저 대상 수상작인 <포도밭 묘지>는 편혜영 작가 특유의 사회적 구조를 탈출하려는 인간과 그에 좌절하다가 끝내 고꾸라지는 모습을 그려나가는 소설이다. 고졸 출신 여성 은행원이라는 어찌보면 한국 소설에서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그려진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등장인물이 나오면 열에 아홉은 나이가 들어 직장에서 퇴직하거나 직장에서 만난 회사원과 결혼을 해서 애 낳고 사는 전개가 나온다. 이 소설에선 세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그 전개를 그대로 따라간다. 한국 소설 매니아인 나에게는 익숙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이 소설이 굳이 대상을 받을만한 것이 었나 싶기까지 했다.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최진영 작가의 <홈 스위트홈>은 건강과 병자에 대한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전복시키는 아이러니를 보여줘서 정말 좋았었는데 이 소설은 너무 자주 보이는 소재고 전개였던 지라 새로운 미학이나 전개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한아 작가의 <일시적인 일탈>은 소설가인 지인의 죽음으로 죽은 지인에게 빠져드는 를 그려나간다. 자아의 분열에 가깝고 그 일탈의 과정에서 뭐랄까. 정말 잔인하게 망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찔하게 느껴졌다. 작가가 등장인물을 이 정도로 망하게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한아 작가는 이걸 거침없이 해냈다. 그 거침없음이 유독 눈에 띄는 소설이었다.

 

문직혁 작가의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의외의 작품이었고 가장 좋은 소설이었다. 문지혁 작가는 원래 SF를 쓰던 작가였는데 민음사에서 <초급 한국어>를 출판한 이후에는 뉴욕에서 유학한 시절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을 문학적으로 풀어냈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말 그대로 우리가 다리를 건너는 내용으로 논문을 준비하면서 다리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가 등장한다. 다양한 사건과 지식이 혼재되지만 그를 감안 해서도 형식적으로도 재미 면에서도 새롭고 뛰어난 소설이었다.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볼 생각이다.

 

그 외의 작품으로는 김연수 작가의 <진주의 결말>, 김애란의 <홈파티>, 그리고 백수린 작가의 <아주 환한 날들>이 있었다. 이들 작품은 다른 문예지나 소설집을 통해서 미리 읽어본 상태라 뭔가 후 순위로 느껴졌다. 그렇다해서 이들 소설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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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기다리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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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우 작가는 그의 전 작품집인 <우리는 같은 곳에서>에 수록된 빛과 물방울의 색을 읽고 팬이 되었다. 그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구매를 했다. 전작에도 작가가 퀴어 소설로 분류될 작품을 쓴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은 그 색이 더 진해졌달까. 이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들은 퀴어 특유의 정체성의 규정에 대한 문제와 사회와의 갈등과 일명 헤테로라고 불리는 정상성애자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파열음이 중요한 소재라고 하겠다.

 

여기서 잠깐 요즘 중요하게 활동하는 퀴어 작가들을 간단하게 비교해보겠다. 먼저 이 분야에서 가장 인기있는 박상영 작가는 MZ세대의 발랄함과 고단함을 적당하게 잘 섞고 퀴어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차이 혹은 파열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앞에서 말한 발랄함이랄까. 친숙한 특징이랄까 하는 부분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게 해주었다.

김병운 작가는 <아는 사람만 아는 공상표>라는 소설을 발표한 이후 본격적으로 퀴어 소설을 써온다. 클로짓으로 오래 살아왔고 그만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경험 덕분인지 그의 소설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과 고민이 주요한 소재이다.

 

박선우 작가의 소설은 위 두 작가에 비하면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소설이다. 그 관계는 엄마와 나일 때도 있고, 사랑하는 존재와 나일 때도 있다. 친구와 나일 때도 있다. 그 관계에는 언제나 하나의 벽이 쳐져 있으며 그 벽을 넘어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지도 모른다. 나와 너는 벽을 넘기 전에 한쪽이 사라지거나 관계가 단절, 혹은 이별을 겪는다. 벽은 성소수자에게 숨쉴 틈을 주지 않는 이 나라의 사회이기도 하고 그 사회과 만들어낸 협소한 상식과 관계에 대한 정형성이기도 하다.

 

작가가 꾹꾹 눌러쓴 문장들은 읽어 나갈 때마다 잠시 멈칫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소설이었다. 비교적 짧은 분량이었지만 힘들여 쓴 문장을 접할 때마다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조금은 멈칫거리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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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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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출판된지 오래된 소설로 장강명 작가가 자신의 글쓰기 책에서 <블랙 달리아>를 지침으로 썼다고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다. 한국에서 이런 느낌의 소설이 나왔다는 게 놀라웠다. 동시에 즐거운 독서이기도 했다. 진부한 말이지만, 읽는 내내 손을 놓지 못할 정도로 재밌었다.


작가는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 소설의 앞부분에 몇 페이지를 할애해서 이 소설의 배경을 간단하게 소개해준다. 근 미래에 북한의 김씨 왕조가 무너지고 남한은 현재 대북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나리오로 통일을 이룩한다. 중국과 미국의 간섭은 최대한 배제되고 남한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에 의해서 북한이 통제되며, 대규모 난민이 남한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은 상황이다. 적어도 남한의 입장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의 인생을 지배했던 사회체제가 무너진 북한 인민들에게도 이 시나리오는 이상적인 시나리오일까? 장강명 작가는 소설가다운 방식으로 이 질문에 대답한다.


북한의 옛 군인들이 모여서 하나의 단체를 만든다. 조선해방군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졌지만, 조선해방보다는 마약판매를 통해서 부를 축적하는 군벌이자 마피아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커다란 부를 안겨줄 작전을 추진하고 개성에 인접한 장풍군의 폭력단체와 연계하여 그 작전을 추진하고, 방해되는 것들을 하나 둘 씩 제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던 작전은 장리철이라는 인물이 장풍군에 등장하면서 큰 위기에 빠지게 된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러하고 장강명 작가의 속도감 있는 문체와 어우러지면서 흡입력이 대단하다. 사건이 뻥뻥 터지는데, 혼란스러운 북한의 사회를 입체감 있게 묘사하면서 그 사건들도 충분한 개연성을 획득한다. 장리철이라는 캐릭터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전직 북한 특수부대 출신으로 투박하고 단순한 인간인 이 남자는 체제에 충성을 다하면서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마저 교육받지 못했지만, 소설 속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서서히 인간성과 윤리의식을 가지게 된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과정이 점진적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갑자기 등장한다는 점이다. 장리철이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마약조직원들을 처단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에서 그의 심리상태를 작가의 직접적인 묘사로 표현한 것은 옥의 티라고 느껴진다.


스릴러물에 취향이 없어서 딱히 찾아서 읽지는 않지만, 서점가 스릴러물 코너에 국내 작가의 이름이 거의 없는 것쯤은 알고 있다. 장르문학의 풀이 옅은 국내 문학계에 장강명이라는 작가는 소중한 이름일 것이다. 단순히 재미있는 스릴러물만 써도 칭찬받을 만한데, 평소에 사회비판적인 글을 쓴 작가이기에 독자들이 고민할 수 있게 만드는 재미마저 준다. 잘 찾지 않았던 작가였는데, 앞으로는 한 번쯤은 더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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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트리플 15
이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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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들의 세계>

 

이유리 작가의 전작인 <브로콜리 펀치>는 독특한 설정과 그에 파생되는 인간관계를 그려나가는 소설인지라 참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 덕분에 이유리 작가의 팬이 되었다.

 

<모든 것들의 세계>는 일종의 귀신 물이다. 한국에서는 유독 현실을 둥둥 떠다니는 귀신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구소현 작가의 <시트론 호러>도 생각나며 귀신에 대한 상상력을 절묘하게 비튼 이산화 작가의 <증명된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설정이 그렇게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역시 소설을 잘 쓰는 작가라 그런지 재밌게 느껴지긴 했다.

 

<마음 소라>는 누군가의 마음을 들려주는 소라가 등장한다는 소설인데. 참 재밌고 씁쓸한 작품으로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 제일 좋았다. 누군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상황임에도 그것을 듣지 않는 사람과 그 마음을 간절하게 듣고 싶은 사람의 대비가 재미있던 소설이었다. 이유리 작가가 잘 쓰는 씁쓸한 연애 소설이었다.

 

마지막 작품인 <페어리 코인>은 전세 사기를 당한 부부가 세상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서 마찬가지로 사기를 친다는 내용이었다. 대를 이어 키운 페어리에 대한 묘사가 참 귀여웠다. 뭔가 마지막 부분에서 인물에게 잔인하지 못하는 작가의 마음이 비쳤다. 한국 소설의 특징은 망하는 이야기인데 망하긴 하는데 그래도 수습이 되는 결말인지라 이 작가 특유의 마음 씀씀이도 잘 보였다고나 할까.

 

자음과 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세 편의 단편을 엮어서 책을 낸다는 기획이다. 그 가벼운 분량 덕분에 나도 가볍게 사서 읽는다. 이유리 작가의 특징 때문일까. 그 기획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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