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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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수상한 책을 한번 읽어 본적이 있다. 군대 진중문고로 들어온 책이었는데, 제목은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었다. 책의 내용보다 이 상을 수상한 작가의 나이가 열아홉 살이라는 것이 더 유명한 소설이었다. 광고 문구 때문은 아니겠지만 상당히 실망스러운 소설이었다. 그렇게 한번 데이고 나니 아쿠타가와 문학상 수상작들은 그다지 손이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었던 건 아마 광화문에 광고가 걸려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 책을 읽은 시점과 리뷰를 쓴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후루쿠라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서른여섯의 여인이다. 여기까지만 썼는데도 위화감이 생기지 않는가?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는 그렇다 치지만 그 뒤에 서른여섯이라는 말이 붙으니 비정상적 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가? 이 소설은 그런 생각에 대한 소설이다. 소설의 전반부 50페이지 까지는 후루쿠라라는 여인이 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묘사한다. 이 묘사는 직접적으로 쓰여 진 게 아니라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서 보여 주기에 쉽게 읽혀지며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후루쿠라는 타인과의 공감이 거의 불가능하고 무엇보다도 욕심이 없는 텅 빈 인간이다. 욕심이 없는 게 무슨 문제라는 말도 있겠지만, 욕심이 없다는 것은 일과 연애를 할 필요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의미도 된다. 그런 인간을 현대사회에서는 루저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런 루저들은 심한경우에는 문제가 있는 인간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후루쿠라는 이러한 현실에 공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노력의 일환이 바로 편의점이다. 편의점 안에서는 후루쿠라라는 문제가 있는 인간은 사라지고 편의점 점원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바로 편의점 인간의 탄생이다. 편의점의 울타리 안에서 후루쿠라는 주변 인간들의 특징을 흡수하고 흉내 냄으로써 타인의 의혹에 찬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들은 다시 의혹에 찬 시선을 보낸다. 이제는 나이도 적지 않는데, 왜 결혼도 하지 않고 계속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느냐는 식이다. 이에 후루쿠라는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어떻게 하면 이들의 시선을 피하고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시라하씨.


시라하도도 후루쿠라만큼 독특한 인물이다. 독특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비슷한 인물이다. 나이도 후루쿠라와 비슷하고 상황도 비슷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바로 세상에 대한 대응방식일 것이다. 후루쿠라가 세상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세상에 대응한다면, 시라하는 세상에 반항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그 반항이 건전하다면 나름 멋지다는 생각도 들 탠데,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입에는 불평불만만 쏟아내니 현실에서 본다면 진심으로 경멸할만한 인물이다. 편의점이라는 매개로 만나게 되는 두 사람은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으로 꾸미게 된다. 후루쿠라에게는 이 사기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심에서 벗어나 평범한 인간으로 존재하려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좋은 결말로 끝이 나지는 않는다.


이 소설의 작가는 소설 속의 후루쿠라처럼 편의점에서 18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왔다고 한다. 후루쿠라와의 차이점은 작가의 경우는 작가로서의 경력도 상당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인지 소설을 읽으면서 모범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 50페이지 까지는 후루쿠라라는 인물의 디테일을 쌓아 올리고 그 다음부터는 쌓인 디테일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 와중에 불필요한 묘사와 장면을 제외함으로서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고 동시에 재미도 있다. ‘편의점 인간이라는 상징도 다면적인 해석이 가능하게 해 독자에게 고민시키는 재미도 준다.

 

일본에서는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이 뜬금없이 작가로 등장하기도 한다. 개그맨이 소설을 써 아쿠타다와 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이 소설의 저자도 편의점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경우에도 소설을 쓰기 전에는 엔지니어로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에서의 독서층이 넓다는 증거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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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연 - 앤솔러지 소설집 -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
정세랑 외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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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연>이라는 주제로 쓰인 이 책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홍보 단계에서는 기획자가 정세랑 작가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도 그 문구가 흥미로워서 구매했다. 하지만 책을 펴보니 국가가 다른 작가들의 원고는 일본 쪽 출판사에서 수집하고 일본어로 번역한 후, 한글로 번역한 것 같다. 책은 한국, 일본에서 동시 출간되었다고 한다.

 

아시아 각국에 거주하는 작가들의 소설 중에 <절연>이라는 키워드에 맞는 작품을 찾아서 수록하거나 그에 맞는 소설을 창작한 것 같다. 수록된 작가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일본, 싱가포르, 중국, 홍콩, 대만, 태국, 티베트, 베트남, 한국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수록했다. 작가들은 절연이라는 키워드에서 세대를 떠올리기도 관계의 단절을 떠올리기도 했다. 수록된 작품이 많아서 기억나는 작품들 위주로 적어본다.

 

첫 작품인 무라타 사야카의 <()>는 딱 읽자마자 무라타 사야카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가 기괴한 작가만의 작품. 일본 호러 만화나 소설을 볼 때마다 느끼고는 하는 음습한 기분이 생경하다. 이런 느낌은 비단 나만 느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기괴함이 현실의 어떤 모습을 본뜻 것 같기도 해서 더 흥미롭게 느껴진 소설이었다.

 

알파안 사이트의 소설인 <아내>는 싱가포르의 무슬림이라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일반적으로 싱가포르인이라면 중국계 인사를 떠올리기에 더욱 생경하게 느껴진 소설이었다.

 

하오징팡은 국내 SF소설의 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로 SF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휴교상을 수상한 <접는 도시>의 작가다. 접는 도시 때도 느낀 거지만 이 작가는 장면 묘사를 잘한다. SF소설은 기본적으로 현실과는 다른 풍경을 묘사하다 보니 모호한 표현을 지양하는 편이다. 그리고 하오징팡은 장면 묘사와 이야기를 통한 스토리 전개를 잘 하는 작가이다. 이 소설에 수록된 <긍정 벽돌>은 그런 특징이 잘 드러나며 나는 마지막 장면이 참 좋았었다.

 

위왓 럿위왓웡사의 <불사르다>는 내가 난생처음 읽은 태국 소설이다. 5월에 태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기에 이 소설에서 묘사된 태국의 풍경이 반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소설은 좀 난해하게 느껴졌다. 태국은 정치적인 의사 표현을 거의 안 하는 것이 문화로 자리잡았다. 태국인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은 조용하게 투표를 통해서 표현되거나 한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보이는 것이 그러한 모습을 소설화 한 것은 아닐까 한다.

 

홍라이추의 <비밀경찰>은 코로나 시기를 바탕으로 고양이와의 만남을 그린다. 위의 <불사르다>처럼 좀 난해하게 느껴진 소설이었다.

 

라샴자의 <구덩이 속에 설련화가 피어 있다>는 티베트 청년들의 애환을 담으면서도 헬조선담론처럼 채념하는 것이 아닌 희망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집에서 가장 좋게 느껴진 소설이었다.

 

베트남 작가인 응우옌 응우 뚝의 <도피>는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어머니상을 배반하는 결말이 좋았다.

 

대만 작가인 롄밍웨이의 <셰리스 아주머니의 에프터눈 티>는 대만 작가가 배경이면서 카리브 해의 세인트 헬레나 섬이 배경이어서 좀 당황스러웠다. 대만적인 특성은 잘 안 끄져지고 이민자 가족이 주인공인 디아스포라 문학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은 한국의 정세란 작가의 <절연>이다. 자신의 제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시도하는 남성에게 권력을 준 사람들이 주인공과 친한 선배들이라는 사실에 사실상 절연을 하는 내용이다. 키워드를 가장 피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할까? 정세랑 작가의 작품이니 읽는 맛이야 있었지만은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여러 번 본 내용이고 구도이기도 해서 익숙하게 느껴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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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수로 투명인간을 죽였다
경민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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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전개에 소재가 빛을 잃었다-

 

유독 제1K스토리 공모전 수상작들과 자주 만난다. 대상작인 <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책들의 부엌>을 읽었다. 악마의 계약서는 설정이 재밌지만 소설로써는 그저그랫고, 책들의 부엌은 요즘 유행하는 힐링물의 정석 그 자체라 읽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새롭지가 않으니.

 

<나는 실수로 투명인간을 죽였다>는 제목부터 꽤 흥미로운 소재였다. 대상작이나 우수상을 수상한 다른 작품이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기 시작했는데 금방 후회하고 말았다.

 

어느 날 잘 연락되지 않았던 친구에서 연락이 오고 그 친구는 주인공에게 투명인간의 시신을 매장하는 걸 도와달라고 한다. 그런데 곧 친구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한다. 스릴러 영화에서 잘 보여지는 구성이며 주인공이 의문의 사건에 휘말린다는 설정은 정석적이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으니 바로 인물의 성격들이다. 주인공은 일하는 것도 잘 풀리지 않으며 늦은 나이에 연기에 도전을 한다. 속으로 곪기 딱 좋은 배경 설정이며 그 때문에 자격지심도 굉장히 크다는 설정이다. 다 좋다... 문제는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감정 쓰레기통 정도로 여긴다.

 

자격지심이 심한 주인공도 그런 건 마찬가지다.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건 남들이 그러는 것의 반발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그나마 친구의 형? 정도가 남들보다 인격이 나은 정도지만 주인공이 자격지심을 느끼고 그것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는 장면이 여럿 나온다. 서로를 모욕하고 뭐... 그러다보니 주인공의 캐릭터에 깊이나 매력이 없었다. 1차원적인 욕구를 추구하며 성장이라곤 하나도 없다. 결말 부분에서 뭔가 변하나 싶었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그건 뭐 작가가 사회를 보는 관점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아니 근데 그놈의 일제강점기 때 생체실험 한다는 이야기는 안 나오면 안 되나? 731부대 때문에 그런 연구부대가 있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너무 자주 사용된 만큼 너무 진부하게 느껴졌다. 한국 영화 감독 중에는 어린 시절의 미스테리 책에서 나오는 음모론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고는 하는데, 인체 실험 부대나 야마시타 금광 같은 이야기는 요즘 관객이나 독자의 입장에서 왜 이런 걸 봐야하나 싶다. ...

 

초반에는 흥미로운 소재로 꽤 재미있는 스릴러가 되려나 싶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한숨만 나온다. 매력없는 인물, 개연성 없는 전개, 소재를 풀어나가는 방식의 올드함... 좋은 평을 해주는 독자들이 있으니 이런 리뷰가 하나쯤은 나와도 상관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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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 오베르쉬르우아즈 들판에서 만난 지상의 유배자 클래식 클라우드 30
유경희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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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반 고흐 전기


아르테 출판사에서 발매하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에세이 아무튼시리즈와 더불어서 꼬박꼬박 구매하는 책이다. 물론 가끔 신간 출간을 놓쳐서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가급적 구매하는 편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특징은 특정 인물을 하나의 작가가 전담하여 일종의 전기를 써나가는 것이다. 주인공이 되는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구성 덕분에 어떤 책은 여행기처럼, 어떤 책은 전기처럼 느껴진다. 이런 클래식 클라우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예술, 그중에서 화가를 다루는 편이다. 2만원 대라는 비교적 비싼 값의 책임에도 수록된 그림의 삽화가 너무 뛰어난 화질을 자랑해서 미술에 관심이 없더라도 소장하고 싶을 정도다.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은 빈센트 반 고흐다. 당시 살았던 화가나 작가들이 그러하듯 아니 그중 유독 격정적인 인생을 산 탓에 유독 인지도가 높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그림이 오늘날 많은 사랑을 받고 반 고흐를 모르더라도 그의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흐는 생전에 단 한 점밖에 그림을 팔았을 뿐이다. 당대의 사람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아이러니함이 고흐의 그림과 삶에 사람들이 매료되는 이유일 것이다.

 

클래식 클라우드의 형식은 기본적으로 자유롭다. 이 책 <반 고흐>는 기본적으로 고흐의 인생역정을 다룬다. 그의 불행한 가정환경과 그로 인해서 사회와 불화하게 된 고흐의 인생을 그려나간다. 하지만 나는 그 과정을 읽어 나갈수록 내가 너무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흐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잘 알려져 있기에 생긴 부작용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의 수준 높은 그림 일러스트에 눈이 즐겁기는 하지만 그를 설명해주는 텍스트에서는 그다지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이 책의 주인공인 고흐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대다수의 문장은 ‘~것이다.’와 같은 가정형의 문장이었다. 이런 가정형의 문장은 저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글의 힘을 빼놓은 부작용을 낳게 된다.

 

무엇보다도 전기는 완성된 이야기를 새로이 편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작가는 주인공인 고흐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삶과 공명하는 지점이 있는지를 찾아야 했으며, 그 지점을 중심으로 우리 시대에 고흐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 지를 말해야 했다. 이 책은 그점에서 미진했다. 세계와 불화하던 고흐의 대중화된 이미지를 그려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우리가 왜 고흐를 좋아하는지를 말해야 했다. 심하게 말해서 책을 위해 수집한 자료를 재배치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또한 고흐의 기행이나 비사회적인 태도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도구로 사용해 해석하려는 대목이 눈에 밝혔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러한 해석은 정신분석학을 도구로 사용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작가의 의견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기는 대상이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새로이 편집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정신분석학을 도구로 사용한 해석은 그러한 시선을 드러내는데 오히려 해가 된 것 같았다.

 

지난해에 베스트 샐러가 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앞서 내가 말한 과정을 훌륭하게 성취한 책이다.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는 그러한 지점에 보이지 않아서 아쉽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반 고흐가 세계와 불화하면서도 끝없이 그림을 그려낸 생산성에 대해서 언급한다. 저자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가 마음의 평안을 얻었을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나는 거기에 한마디 의견을 더 얹고 싶다. 빈센트 반고흐는 자신이 사회와 불화하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무능한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그림을 그리기를 선택한 이유는 자신이 그림을 통해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고흐의 동생인 태오도 마찬가지였을 거로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고흐의 삶과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이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꿈을 향해 전진하는 청년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불확실한 미래에 무모하게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야망이 있으며 야망이란 자신의 실패에 불안하면서도 그보다 더욱 성공을 확신할 때에 지닐 수 있었다. 고흐는 자신이 그릴 때 유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고흐에게는 야망이 있었고 그것을 성취하기 직전에 죽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불일치에 아이러니를 느끼며 그의 존재에, 그의 그림에 더욱 큰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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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문윤성 SF 문학상 중단편 수상작품집 (특별보급판)
이신주 외 지음 / 아작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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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회째를 맞은 문윤성 SF문학상 단편 수상집이다. 대상 부분과 단편 부분이 나누어져 있는데 대상은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 우수상은 <조선 사이보그전>이다. 단편 부분의 대상 수상자는 이신주 작가의 <내 뒤편의 북소리>이다. 이신주 작가는 지난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가로 그때도 상당한 필력을 느낀 작가였으나 2, 4회 수상자인 김초엽, 황모과 작가가 수상한 이후 SF분야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잡는 동안 이상하게 이신주 작가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문윤성 문학상에 단편 부분이 새로 생기자마자 소설을 제출했고 바로 대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내 뒤편의 북소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멸망한 지구를 우산과 닮은 촉수 외계인이 방문하고 그들의 멸망 이유를 사유한다는 스토리다. 독특하고 개성적인 문체는 유머러스하지만 야유를 보내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문체는 과하면 소설의 분위기를 깨버리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문체자체가 하나의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성공한 케이스다. 지구에 닥쳐온 위기와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역으로 지구를 멸망시켰다는 아이러니가 제시되는데 그 멸망의 이미지가 이전(소설 속에서 제시한 여러 멸망의 이미지)에 다른 매체에서 답습한 이미지와는 완전히 생소하고 낯설다. 흔히 시간은 모든 것을 무로 만든다고 하는데 그 ()’를 이미지화에 성공한 것만으로 이 소설의 성취는 놀라울 만하다.

또 개인적으로는 대상 수상작인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와도 결이 비슷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쪽도 작가 특유의 문체가 인상적인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백사혜의 <궤적잇기>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광대한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그 때문에 어슐러 르귄의 소설들이 생각났다. 시력을 잃은 대신에 파동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트라피스트인인 아빠와 기존의 지구인처럼 생활하는 화성인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의 시점에서 이어진다. 나는 혼혈아이기에 두 세계의 중간자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이 소설은 합쳐지려던 두 세계가 끝내 어긋나다가 멀어지는 이야기로 그 과정에서 소수자로 세상을 본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융합해낸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메시지만 본다면 대상 수상작보다 더 훌륭하며 단순히 PC적인 소재나 설정만으로 그러한 메시지를 달성하려고 하는 게으른 작품과는 상이한 훌륭한 작품이다.

 

<한밤중 나타난...>은 앞의 두 소설보다는 조금 일상적이고 SF치고도 소프트하지만 그 때문에 재미있던 소설이었다. 육아를 다루는 두 시선은 크게 축복저주일 것이다. 그러한 간극이 너무 크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어느 쪽에 시선을 둬야할지 모르는 난감한 마음만 생긴다. 현실의 육아란 두 간극 사이의 외줄타기로 처음 부모가 되는 젊은이들이 그러한 간극을 메워나가는 과정을 그려나가며 그러기 위해선 대단한 조언이 아닌 를 살펴주는 세심한 시선에서 시작됨을 시사해준다. 최근에는 인간이 인간성을 잃어간다면 AI가 인간성을 지키는 존재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는 하는데 그러한 시점에서 봤기 때문인지 더 재밌었던 듯하다.

 

마지막 작품인 <신의 소스코드>는 이 소설집에서 가장 큰 스케일의 세계관을 지닌 소설이며 SF작품으로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었다. 신에 대한 믿음과 세계를 건너뛰는 세계관이 결합 된다. 후반부까지 주인공이 애타게 찾는 대상인 쥬시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이 소설의 진행을 끝까지 견인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대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수상까지는 주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작품의 작가인 존 프롬은 한국과학문학상에서도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최근에는 소설집도 출간하였는데 나도 필히 구매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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