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격차 - 평등한 사회에서는 가난해도 병들지 않는다
마이클 마멋 지음, 김승진 옮김 / 동녘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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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꽂힌지 역시(흑ㅠ) 한참 된 책인데 이 시기에 끄집어내어 읽게 된 계기는, 좀 뜬금없는 것 같지만,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이다.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 방안의 하나로 제시한 의과대학생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의사들이 파업을 하고 의대생들이 의사국가고시 응시를 포기하는 등 정부와 의사 집단 간의 대치가 극에 달한 어느 날 뉴스에서 이분이, 지금은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정부의 입장을 브리핑하는 것을 보다가 문득 저분은 전문 분야가 뭐길래 저기서 저런 얘기를 하나 싶어 검색했다가 기사 하나를 찾았다 ( 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2595&replyAll=&reply_sc_order_by=I ). 기사에 소개된 바에 의하면, ‘부산의대 예방의학과 교수(그러니까 이분도 의사)로 부산지역 공공의료 기반 확충을 위해 노력해온 인물’로, 2018년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 공모로 복지부로 입성하면서 전문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하셨다는 말씀은 ˝지난 10년간 정체돼 흔들리는 공공의료의 기반을 탄탄히 다지고 저변을 확대하는 일을 가장 하고 싶다.˝ 연구실에 있다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직접 현실로 뛰어든 분이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의대생 정원 확대에는 반대하면(했으면..?)서도 공공의료 강화라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분을 보니 내가 공공의료란 걸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다 책장에 이 책이 있다는 걸 떠올렸고, 그리고 이렇게(어떻게?!) 되었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쓰인 글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상과 비전을 제시하고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을 실제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적절한 재치를 섞어 정연한 논리로 풀어 보여준다(<팩트풀니스>의 저자와도 아주 죽이 잘 맞을 것 같다). 그래서 펼쳐 놓은 다른 책들보다 먼저 한번에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읽는 것이 마냥 쉬운 건 아니었다. 이 책은 무엇보다 ‘행동’을 독려하는 책이다. 행동하려면 먼저 생각에서 냉소와 무기력(이라고 쓰고 게으름이라고 읽는다)을 솎고 걷어내야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골치아픈, 하기 어려운, (정직하게 말하면) 하기 싫은(=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의대생 때 정신과 실습 중 가난과 남편의 폭력으로 우울증을 앓게 된 환자에게 빨간 약은 그만 먹고 파란 약을 먹어보자, 라는 말밖에 해줄 것이 없다고 하는 선배 의사를 보며 ‘우리’는 누구이며 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저자. 나로 말하자면, 읽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성이야 열심히 했지만 여전히 내가 뭘 해야할지 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간단하다(이건 간단한 문장으로 줄인다고 무슨 오해가 생기는 건 아니다!). 돈, 권력, 자원의 불평등의 경사면은 건강을 해친다는 것. 경사면의 아랫쪽은 계속 깎여나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경사면의 기울기는 더 가팔라질 것이고 결국 맨꼭대기에 있었던 것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병을 치료하기 전에 환경을 개선해서 병에 걸리지 않게 하려면 경사면이 더 깎이지 않도록, 나아가서 기울기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의 삶의 모든 단계- 영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 장년, 노년기-에서 효과적이면서도 아주 어렵지는 않은 실행 가능한 대책들이 있고, 사회적으로 봐도 마을, 지역 공동체, 국가, 그리고 국제사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 기술적인 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떤 질병이든 치료법이 있기만 하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받을 수 있다(물론 비용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그러나 제도나 정책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 흠이(흠만?) 많다. 물론 미국처럼 의료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기대 수명은 낮은 지경은 아니겠지만. 나는 정부의 생색내기(건강보험료를 올리지 않기 위해 의료 수가를 낮게 유지)가 공급자와 수요자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공급자는 낮은 공급가 문제로, 수요자는 좁은 보장 범위 문제로) 열받아 싸우게 만드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미 글이 너무 길어져 나조차 지겨워지고(!) 있으니 그만 멈추겠다.

아무튼 이 책이 의대생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때 읽지 않으면, 일단 환자들을 대하게 되면, 의사는 ‘질병’ 자체에 쉽게 압도되고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경험에 비추어 보면).

다음은 사족:
1. 저자가 말하는 건강한 생활습관 - 가공육을 적게 먹고, 인스턴트 음식과 설탕이 과다하게 들어간 음료수를 피하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고, 금연하고,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하는 등등- 중 대부분을 나는 싫어한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선 나쁜 결과가 올 것을 알고 감수하기로 하면서 그 반대를 선택할 수 있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겠지.
2.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제외한 아시아의 이야기는 거의 앖고 제시된 많은 통계자료(주로 OECD 국가의 자료)에도 일본만 간혹 보일 뿐 우리나라 이야기는 거의 없는데 딱 하나 우리나라 자료가 있다. 엄청나게 높은 노인 빈곤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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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9-11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나게 높은 노인 빈곤율... 우리나라 보건은 기술에 비해 넘 떨어진 거지. 아울러 노인에 대한 관심은 제로에 수렴.
 
배를 엮다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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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일본적인 ‘힐링’이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외에 많이 읽은 일본 작가는 없지만 오쿠다 히데요의 <공중그네>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책들도 떠오르고. 태풍이 도시를 지나가던 날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중에 제법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면서 중간중간 혼자 낄낄대기도 하고 나중에는 흐뭇하기도 했다.

1. 외골수라는 것. 어떤 분야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겠다는 야망 따위 없이, 단지 좋아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해서 당연히 헌신할 수밖에 없다는 듯 하나만 물고 늘어지는, 그 밖의 세상일에는 그만큼 서투른, 그렇게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경원시되지만 나중에는 중심좌표로 인정되는 사람. 이 사람이 주인공 마지메. 한편 이건 이것대로 재밌고 저건 저것대로 재밌어서 또는 무언가에 지나치게 빠진다는 것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그저 주어진 만큼 피해가 안 갈 정도로 일을 하며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끼면서 사는 그 외 평범한 사람. 이 사람은 주변 인물 중 하나인 니시오카. 세상에는 니시오카는 흔하디 흔하고 마지메는 드물다. 외골수의 관심 분야만 놓고 보면 마지메 들이 니시오카 들보다 빛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니시오카 들이죄다 마지메 들을 부러워할까? 이 소설 속의 니시오카는 그랬다. 나는 그게 맘에 들지 않고, 이 소설도 얼마간은 뻔한 소리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사전 만들기에서 마지메의 외골수는 훌륭하다. 존경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부러워할 것까지야. ‘부러워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내가 잘못 알고 있을까봐 사전(!)을 찾아봤는데, 이 단어는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어하다’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외골수의 정열을 잠깐은 부러워할지언정 그 부러움은 5분을 못 넘길 거다. 왜냐하면 우리(!) 니시오카 류의 사람들은 마지메 들이 모르는 즐거움도 많이 알고 있고 얕을지언정 다양한 관심사를 기웃거리며 나름대로 인생의 만족과 균형을 찾기 때문이다.

2. 말과 사전에 대해. 이 책은 대학 선배의 페북에서 보고 알게 되었는데 읽어보겠다 싶을 만큼 흥미가 동한 것은 ‘사전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라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자기 생각을 전하고 남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그러니까 요즘 말로 ‘소통’하기 위해 말을 만들어 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가 처음에 전하고자 하던 진실을 부옇게 하고 거기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나는 그 이유를 사람마다 마음 속에 각자의 사전을 품고 미묘하게 다른 뜻으로 단어들을 골라서 쓰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말만 봐도, 백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는 사랑이 다 다르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데 너는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속 터지는 상황이 도처에서 수시로 터진다. 이런 상황에 대해 나는 사실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었다. 표정으로, 행동으로 보여줘서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말은 오해만 덧붙일 뿐이라고도 생각한다. 아니 애초에, 아예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것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로서의 사전, 마음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말과 그 거울의 일그러짐을 최소화하려는 사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사람이 문자화되고 표준화된 사전에 등재된 뜻으로만 단어를 사용한다면 말이 정말 괜찮은 이해의 도구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도, 애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고 말로만 표현하려고 하다 보면, 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냐 왜 그렇게 말을 하냐 하는 오해는 해결될 수 없을 거다. 결국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할 것.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말하기 전에 최선을 다해 잘 구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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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그림 3 - 위험한 진실의 명화들 무서운 그림 3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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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를 읽듯 머리를 비우고 쓱쓱 읽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다는 귀도 레니(추정)의 <베아트리체 첸치>를 직접 보고 싶다. 이런 그림이 있는 줄 알았다면 10년 전 로마에 갔을 때 기를 쓰고 찾아봤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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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그림 2 - 매혹과 반전의 명화 읽기 무서운 그림 2
나카노 교코 지음, 최재혁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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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고 거의 1년이 지나서 2권을 읽었다. 당연히(?) 1권에 무슨 그림이 있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1권도 물론 재밌게 읽었었는데 말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그림을 볼 때는 너무나 많은 그림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눈으로 훑고 지나게 되니 첫눈에 뭔가 강력한 인상을 주지 않는 그림은 아 뭘 그렸구나 하고는(추상화는 이마저도 불가하겠지), 다음 그림에 눈이 가기도 전에 잊는다. 사실은 봐야 할 그림의 수나 주어진 시간이 짧은 것보다 어디를 어떻게 봐야 할지 전혀 소양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고 유홍준은 썼다(누구를 인용한 거라고 했는데 나중에 잘못 인용한 거라고 정정했으니 유홍준의 말이라고 해도 되겠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면 전과 다르게 보게 되고 그러면 사랑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무서운 그림’들이기에 원작을 본다 해도 사랑할 수 있을까 싶지만. 무엇보다 원작을 보게 되었을 때 전에 읽은 적이 있는 그림이라고 기억이 나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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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손자병법 1
정비석 지음 / 은행나무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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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이 1984년. 64쇄 찍고 1993년 2판, 1995년 3판, 2002년 4판. 그 42쇄 찍힌 책을 읽다. 이 정도면 준- 고전이 아닐까? 아빠의 책장에 꽂혀 있던 걸 읽은 것이 대학에 들어가기 전이었을 것 같은데 그 책은 초판일 거고 집에 아직 있는지 모르겠다. 처음 읽은 후로 달달한 과자 같은 간식을 찾듯 두세 번은 더 읽었는데 마지막 읽은 건 적어도 15년은 더 되었겠다. 삼국지 이전 중국 역사에 관련된 이야기 중 내가 아는 거라곤 이 책의 이야기가 거의 전부. 최근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떠올렸다. 이야기와 읽을 때의 재미와 즐거움을.

30년이 지났는데도 재밌네. 그런데 실소도 난다. 주로 영웅호색적 부분. 적자생존이 약육강식과 동의어로 간주되는 이유도 모르겠고. 여자들(아내나 어머니)이 남자들(남편이나 아들)의 앞날을 도모하는데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죽어버리는(돌에 머리를 박고 나무기둥에도 머리를 박고 목을 메기도 하고) 일이 많다는 것도 새삼 눈에 들어오고(계백 장군 부인의 선례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다 어렸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쓱쓱 넘겼을 것들인데 지금은 좀 짜증이 나네. 옛날 사람이 쓴 더 옛날 얘기니까 더는 잡지 않으마. 근데 요즘 시대에 이런 책을 들이대며 ‘가르치려는’ 사람은 없겠지?

아무튼 주연들 중 오자서의 고난이 거의 끝나고 또 한 명의
주연인 오왕 합려가 이제 등장했다. 히로인인 서시는 다음 권에 나오겠지?

다시 생각해 보니 단순히 오랜 세월 많이 찍었다고 고전 대접을 해줘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니, 과거에 정면교사였던 것을 현재에는 반면교사로 쓸 수 있다면, 그런 식으로 세월 속에 살아남은 것도 역사이고 고전일 수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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