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엮다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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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일본적인 ‘힐링’이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외에 많이 읽은 일본 작가는 없지만 오쿠다 히데요의 <공중그네>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같은 책들도 떠오르고. 태풍이 도시를 지나가던 날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중에 제법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면서 중간중간 혼자 낄낄대기도 하고 나중에는 흐뭇하기도 했다.

1. 외골수라는 것. 어떤 분야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겠다는 야망 따위 없이, 단지 좋아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해서 당연히 헌신할 수밖에 없다는 듯 하나만 물고 늘어지는, 그 밖의 세상일에는 그만큼 서투른, 그렇게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경원시되지만 나중에는 중심좌표로 인정되는 사람. 이 사람이 주인공 마지메. 한편 이건 이것대로 재밌고 저건 저것대로 재밌어서 또는 무언가에 지나치게 빠진다는 것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그저 주어진 만큼 피해가 안 갈 정도로 일을 하며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끼면서 사는 그 외 평범한 사람. 이 사람은 주변 인물 중 하나인 니시오카. 세상에는 니시오카는 흔하디 흔하고 마지메는 드물다. 외골수의 관심 분야만 놓고 보면 마지메 들이 니시오카 들보다 빛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니시오카 들이죄다 마지메 들을 부러워할까? 이 소설 속의 니시오카는 그랬다. 나는 그게 맘에 들지 않고, 이 소설도 얼마간은 뻔한 소리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사전 만들기에서 마지메의 외골수는 훌륭하다. 존경받을 만하다. 그렇다고 부러워할 것까지야. ‘부러워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내가 잘못 알고 있을까봐 사전(!)을 찾아봤는데, 이 단어는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어하다’ 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외골수의 정열을 잠깐은 부러워할지언정 그 부러움은 5분을 못 넘길 거다. 왜냐하면 우리(!) 니시오카 류의 사람들은 마지메 들이 모르는 즐거움도 많이 알고 있고 얕을지언정 다양한 관심사를 기웃거리며 나름대로 인생의 만족과 균형을 찾기 때문이다.

2. 말과 사전에 대해. 이 책은 대학 선배의 페북에서 보고 알게 되었는데 읽어보겠다 싶을 만큼 흥미가 동한 것은 ‘사전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라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자기 생각을 전하고 남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그러니까 요즘 말로 ‘소통’하기 위해 말을 만들어 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가 처음에 전하고자 하던 진실을 부옇게 하고 거기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나는 그 이유를 사람마다 마음 속에 각자의 사전을 품고 미묘하게 다른 뜻으로 단어들을 골라서 쓰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말만 봐도, 백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는 사랑이 다 다르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데 너는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속 터지는 상황이 도처에서 수시로 터진다. 이런 상황에 대해 나는 사실 어느 정도 포기하게 되었다. 표정으로, 행동으로 보여줘서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말은 오해만 덧붙일 뿐이라고도 생각한다. 아니 애초에, 아예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것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로서의 사전, 마음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말과 그 거울의 일그러짐을 최소화하려는 사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사람이 문자화되고 표준화된 사전에 등재된 뜻으로만 단어를 사용한다면 말이 정말 괜찮은 이해의 도구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도, 애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고 말로만 표현하려고 하다 보면, 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냐 왜 그렇게 말을 하냐 하는 오해는 해결될 수 없을 거다. 결국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할 것.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말하기 전에 최선을 다해 잘 구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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