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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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십 년도 더 전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 권 읽고 는 그저 ˝신 선생님˝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 언뜻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정신이 번쩍 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혹은 그래서 읽어봐야겠다 생각한 책.

단정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책 띠의 저자 사진만큼.
읽는데 오래 걸렸는데 한 자리에 앉아서 후루룩 마시듯 읽을 수는 없는 책이었다.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다. 이런 이야기라면 하루종일 듣고만 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저자는 듣고만 있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시겠지만.

나로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혹은 그동안 들으려 하지 않아서 못 들었던) ˝나˝ 아닌, ˝관계`를 중심에 놓고 변화와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책을 읽고 자신에게 변화가 없다면 그 책은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슷한 글을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내 삶에, 최소한 삶과 사람에 대한 자세에 변화가 없다면. 막막해지려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야 하는데.

이 세상에 계실 때 읽을 걸 그랬다. 사표師表를 잃었다는 허전함이 크다. 책이라도 남아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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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 인상파의 정원에서 라파엘전파의 숲속으로, 그림으로 읽는 세상 '근대편'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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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 때문에 읽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읽기 싫은 걸 억지로 읽은 게 얼마만인가 싶다. 그나마 종이책은 절판 상태라 e-book으로 읽었는데. 종이책 절판된 게 하나도 아쉽지 않다.

책 내용은 인문학자가 그림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혹은 그 역을 읽어 보여준다는 것인데.

일단 잘 쓴 글이 아니다. 책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무슨 말인가 싶을까봐 쉽게 설명하자면˝이라는 의도에 충실하느라 그랬는지 ˝비어卑語˝는 없어도 진부한 속어俗語 표현이 난무한다.
그런데 쉽게 설명하자는 사람이 또 툭하면 러스킨이니 루카치니 보들레르니 언급하면서 그들이 말했던 게 이런 뜻이다, 라거나 ˝내 생각에는˝ 그게 아니다, 라고 쓴다. 그들을 성실하게 인용하는 것도 아니다. ˝루카치가 어쩌구저쩌구˝, 정말 이렇게 쓰고 있다. 뭐 어쩌자고. 미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독자를 대상으로 쓴 것이 아니라고? 그러기엔 서문과 `말투`는 좀 아닌 것 같은데?
`문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냥 잘 아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에서, 책 몇 개 읽어서 좀 알게 된 형이 동생들 모아놓고 되고말고 떠든 것을 묶어낸 거 같다. 그 형은 또한 `나 잘난 좌파`임을 드러내지 않으려해도 어쩔 수 없이 배어나오는 그런 사람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싸가지가 없는` 책이다. 달을 가리키는 데 손가락만 본 것이면 나만 안 된 것이겠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논지에 신선한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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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간적인 인간
브라이언 크리스찬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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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The Most Human Human
Brian Christian (2011) / 최호영 역 / 책읽는수요일 (2012)

2016-3-17

헐. 사다놓은지 벌써 2년 반이나 되었어! 그 때 함께 산 책들 목록을 보니 일곱 권 중 겨우 한 권 (이 책까지 이제 두 권) 읽었네. 아니 버트런드 러셀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세돌과 알파바둑이의 대국에 어느 정도 충격을 받았는데 며칠 전 청소하다가 문득 책꽂이 한 구석에 모셔져 있던 이 책을 발견했다. 아마도 인공지능에 관한 좀 따분한 입문서이겠거니 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인공지능 기계로부터 거꾸로 인간다움의 조건 또는 특징을 찾아가는 흥미로운 에세이였다. (이로서 책을 일단 쌓는 나에 대한 변명거리 내지는 옹호의 근거도 하나 더 늘었다. 쌓인 책 중에 후회하게 만드는 책은 정말이지 거의 없다니까!)

꼼꼼하게 긴 글의 독후감을 쓸 만한 책이다. 그런데 그런 독후감은 `써야` 하지,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일단 두 개의 엄지 손가락만 쓰기에는 양이 무척 많을 테니까. 특히 작가가 `장소적합성`이라고 이름붙인 것에 관한 4장과 정보 엔트로피와 압축, 예술에 관한 고찰인 10장은 기억해두고 싶다. 나는 `인공` 지능을 가진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므로 뭐, 언젠가는 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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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브라더
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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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리버스터 정국에서 읽어보기로 한 책. 
소설 본문을 다 읽은 것은 책 잡고 이틀만이었는데 뒤에 붙은 해커들의 짧은 에세이를 오늘에서야 읽었다. 
휴고상 최종심까지 올랐다니 SF 라고 불러도 되나? 그것보단 영어덜트 모험 소설류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장르가 중요한 게 아니고.
2. 디스토피아적 상상이라기엔,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현실적이라고. 더 많이 더 넓게 더 세게 막고 가두려고 할수록, 그 반동으로 스스로 뛰쳐 나가거나, 부지불식 간에 밀려 나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것은 멀쩡한 사람들을 모두 범죄자로 낙인 찍는 결과밖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즉 테러방지법이란 누군가 말했듯 “테러리스트 조장법˝이 되는 것이다.
3. 위양성(false positive)의 역설을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의료현장에서 여러 가지 스크리닝 테스트의 정확도를 나타내는 개념이 위양성도와 위음성도, 양성예측율과 음성예측율, 민감도와 특이도 같은 것이다. 상대적으로 흔한 질병에 대해서라면 위음성률이 낮은 검사가 더 유용할 것이고, 드문 질병에 대해서라면 위양성률이 낮은 검사가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개별 결과에서는 위양성으로 나오는 것이 위음성으로 나오는 것보다, 즉 실제로 나에게 병이 없는데 있는 것처럼 나오는 것이, 위음성보다, 즉 실제로 병이 있는데 없다고 나오는 것보다 낫다. 없는데 있다고 나왔다면 다른 종류의 검사를 더 해서 정말 없는 것인지 확인하면 되지만, 있는 걸 없다고 보여준다면 병을 더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질병˝을 ˝인간-테러리스트˝로 대치한다면 어떨까? 실제로는 게임과 컴퓨터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인데 그를 여러가지 ˝데이터˝로 환원시켜 ˝테러리스트 고위험˝이라고 본다면? 99%의 정확도로 잡아낸다고 해도 몇십 몇백만 사람들 중에서는 수천 수만 명이 걸리게 된다. 질병이나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이란 말이다.
4. 그러나 실제로 현재 세계 곳곳에서 테러는 발생하고 있다. 사실 테러의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도시는 없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테러의 위협에 맞서려면, 즉 안전을 확보하려면 시민들 각자가 자신에게는 의심할 만한 것이 없다고 스스로, 먼저 자신의 정보를 드러내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다 그런다면 오픈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쉽게 공격할 수도 있다. 뭐가 켕기는 게 있으니까 숨겼겠지 라고. 그런 사람들에게 넬슨 제독의 차티에서 없어진 보석을 찾기 위해 모두 자신의 몸수색을 허용했을 때 그것을 거부하고 그냥 자리를 떠남으로써 의심을 사고 만 어떤 장교의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싶다. 보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왔고, 나중에 그에게 미안해진 넬슨 제독이 그를 찾았을 때 그는 가난한 집에서 가족에게 먹일 음식 몇 가지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기에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주머니를 보여주지 않았다는 거다.
한편, 그렇게 사생활을 내주고 얻는 안전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생활이 없다면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정체성이 없는, 모두와 같은, 자기자신이 없는 ‘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 삶은 삶이 아니라 생존이다. 그저 숨 쉬니까 생존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인간에게 어느 정도나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사생활과 안전은 하나를 얻는 댓가로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그런 상호배타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저것 하다가 생각나면 쓰다보니 삼일째 쓰고 있고 좀 지겨워졌다… 아무튼 결론은 ˝테러방지법˝이란 ”(법에 의한) 테러리스트 양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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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저넌에게 꽃을
다니엘 키스 지음, 김인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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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Flowers for Algernon
Daniel Keyes (1966) / 김인영 역 / 동서문화사 (2판, 2006)

프랑스어 펜팔을 위해 프랑스어로 된 한국어 교재를 찾으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FNAC.com에서 ˝당신 인생에서 꼭 읽어야 할 책 20권˝ 쯤 되는 리스트에서 발견한 책. 설마 했는데 한글 번역판이 있었다!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것이라 역간 망설이긴 했지만 (번역의 질이 미덥지 않았고 책의 생김새는 촌스럽다...) 2006년에 재판 찍은 것이 아직도 절판되지 않았다니 (나름 SF를 많이 구경했다 생각했었는데 처음 들어본 책으로서) 뭔가가 있는 거겠지.

그리고, 정말 뭔가가 있었다. 긴 소설은 아니지만 아무튼 간만에 읽다가 밤 샐 뻔. 플롯 자체는 60년대의 상상력이니 21세기에는 오히려 익숙하고 진부한 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화자[話者]가 지능의 극단을 경험하면서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지적 심리적 변화를 관찰하여 보고하는, 이를테면 ˝자기고백˝의 형식은 플롯에 상관 없이 읽는 이의 마음을 직접 두드리는 무엇이 있다.

인생에서 지능보다 중요한 건 많다. 당연하다. 또한 이 말이 지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닌 것도 당연하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랑˝ -나 아닌 타인과의 유대, 연대로 확장될 수 있는-이라고 한다. 동의한다. ˝모든 것˝(무엇이든 간에)에서 ˝사랑˝을 빼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까지. 그러나 인생은 사랑 외에도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공기, 햇빛, 자유, 기타 등등, 물론 지능도 포함되고. 부족하거나 없어도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생존˝과 ˝삶˝은 다르다. 그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를 나는 기꺼이 이해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겠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이 곧 삶의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조차 할 수 없는 삶을, 꺼내놓고 고르란다면 고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 이야기의 끝이 좋을 수 없는 것은 현재 인간의 지식과 기술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인데 한계가 어디인지를 알려면 저질러볼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불완전함이다. 이런 불완전함을 묻는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SF˝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역자 후기를 보니 이분은 아마도 이 소설이 SF란 걸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지능이 과연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영혼의 순수함, 이런 걸 얘기하는 걸 보니 이 이야기를 지능 대 순수함에 대한 우화 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심지어 초판 때 한국어 제목은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나날들˝이었단다. 절대 찾지 않았을 제목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이야기는 미래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는 이를 현실화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보의 영혼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것보다 그가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그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일이라 믿기 때문일 거다. (물론 바보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찰리가 똑똑해져서 자기의 인격을 드러내보이지 않았다면 그를 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걸핏하면 잊었겠지. 그래서 그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어도 진정한 인간 동료로 대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읽는 동안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로버트 드니로와 로빈 윌리엄스의 <사랑의 기적 Awakening>이 떠올랐다. <사랑의 기적>은 다시 보고 싶다. 로빈 윌리엄스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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