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씹으면서 읽어야 할 책이다. 기억의 진실성(혹은 곧이곧대로의 사실성?)과 자아의 관계를 다룬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이 가장 맘에 들었고 평행세계의 자기의 다른 자아들과 통신할 수 있는 세상을 다룬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도 괜찮았다. 사실 다 훌륭하다. 중편 단행본도 갖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만큼은 지루했지만. 내가 무언가를 ‘키운다’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디지털 캐릭터도 마찬가지고. 테드 창의 작품들은 대체로 정교한 사고실험이다. 이런 SF를 한번 읽으면 아무 생각 없이 책장만 술술 넘어가는 책들을 읽기가 어렵다.
‘몸’이 있고 ‘정신(인격)’이 있다. ‘몸’은 클로닝으로 복제해내면 된다(이건 정말 근미래의 일일 것이다). 그 다음에 ‘정신(인격)’은 ‘마인드맵’이란 데이터로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다. 몸이 여러가지 이유로 죽게 되면 복제한 몸에 마인드맵의 최신 백업을 다운로드하면 된다. 복제된 몸은 항상 이십 대 초반의 몸이라 영유아기와 사춘기를 겪지 않는다. 정신(인격)은 말할 것도 없이 데이터가 추가되기만 하면서 영원히 존재할 수도 있다. 이번 생이 망한 것 같으면 스무 살 짜리 몸에서 다시 깨어나 새롭게 살아볼 수 있다. 몇 번을 거듭해서. 한 마디로 시간은 더이상 부족하지 않다. 나라면 사서 쌓아놓은 책들을 다 읽는데 한 세 개 쯤 클론을 쓰고, 여러 나라의 말을 배우는데 한 세 개 쯤 클론을 더 쓰고...그런데 이 ‘마인드맵’이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는 형태의 데이터로 변형이 되면 당연히 해킹할 수도 있다(‘몸’이 복제될 때 DNA 수준에서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예측가능한 범위의 미래의 일이고). 몸이 수정되는 것, 예를 들면 심각한 유전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이상을 교정한 클론은 정체성의 문제-적어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본 수정된 사람의 정체성-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가 마인드맵, 즉 ‘정신(인격)’에 수정을 가했다면? 겁이 많은 성격을 지워 버리고 익스트림 스포츠를 열망하게 된다거나 연인의 바람기를 지워버린다거나 정치적 성향을 바꿔버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아니면 그냥 그런 것이 가능하도록 변한 또 하나의 세상인 걸까?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 영향을 주었다는 에드 맥베인을 처음 읽다. <87분서 시리즈>라고 한다. 시리즈는 하나를 읽기 시작하면 몽땅 읽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은근 느끼는데... 이 소설은 그렇게 강한 압박을 주지는 않는다. 찜통 더위가 주요인물처럼 한몫 하는 바람에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