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거였다. 단순히 안타깝고 불쌍하기만 해서는 안 됐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품위가 필요했다. 돈이 만들어주는품위가 그것만 있으면, 너무도 쉽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 P68

엄마는 백부의 말에 맞장구만 치고 있었다. - P68

백부가 웃으며 말했다. 빨갱이 물을 어떻게 뺄 수 있는 건데요?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되나요? 백부는 샤인머스캣을 한 움큼집어 입안에 넣었다. 나도 백부를 따라 샤인머스캣을 입에 넣었다. 여전히 끔찍하게 향긋하고 달콤했다. 과연, 이런 걸 매일 먹으니까 사람이 죽는 일 정도는 신경도 안 쓰이는 거구나 싶었다. - P69

‘행위가 실재했는지‘와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행위가 적법한지 위법인지‘ 이 세 가지는 한몸을 이루지를 않고 각기 다르게 움직이며 겹치기도 하고 비껴가기도 하는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
특히 2025년에 저 세 가지가 서로 충돌하는 사건들을 많이 목격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 - P74

사실 나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도를 한다면 이렇게하려 한다.
그 밖에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죄까지도 모두 벌하여주소서. - P76

다주는 시장의 자원으로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과 맞닿아 있다.
"위험은 더이상 기회의 어두운 면이 아니며 오히려 시장기회"라는 말처럼, 현대사회에서 위험에 관한 지식은 곧 부의 분배와 직결된다. - P81

어린 시절 숙모네 집에서 자랐는데 그녀가 아들을 끔찍이 사랑해서 나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숙모 아들은 나와 전혀 다르게 생겼지만 그애를 내가 낳은 것처럼 아끼고 보살피는 게 좋았다. 그애를 내 아들처럼. - P97

나는 한참을 얼어붙어 있었고, 살아 있는것이 그렇게 오래 침묵할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시간이 얼마나지났을까. 조심스레 다가가 엎어져 있는 아들을, 그 따뜻한 몸을꼭 안아보았을 때, 아들이 갑자기 내 가슴통이 울릴 정도로 크게울어대기 시작했다. 죽었다가 다시 막 낳아진 아이같이. 나는 어쩔 줄 몰라서 그 작은 몸을 민희에게 넘겼다. 민희가 그 몸을 꼭안아주었다. 우리는 작은 몸을 꼭 안아주는 짓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나 한 번, 민희 한 번. 크림을 입에 잔뜩 묻히며사이좋게 빵을 나눠 먹듯이. - P105

민희는 할아버지가 땀을 뻘뻘 흘리며 트랙을 몇 번이고몇 번이고 달리는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민희가 할아버지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려 한다고 생각했다.
"기도 같은 거야."
민희는 소설에 대해 그렇게 설명했다.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거야." - P105

느린 것 중 가장 난폭한 건 눈.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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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모든 매장과 애도의 절차를 마무리한 뒤 할아버지와 두 손녀는 종묘원을떠나려 한다. 그런데 그 순간 남자의 시체를 묻은 자리 너머로 세개의 별이 떨어진다. - P47

백모는 이삭 오빠의 이름으로 보육원에 천만원을 기부했다. - P51

"안 그래도 방금 택배 왔다 갔거든. 정리부터 해줄래?" - P53

"어쩜 이렇게 이쁠까."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샤인머스캣 한 알을 집어 입에 넣었다. - P55

"무슨 다큐멘터리 찍는다고 쏘다닐 때는 빨갱이 물이 들었나했지. 지금은 정신 차린 거 같다만." - P61

"이거 치워."
백모가 콩자반이 담긴 접시를 가리켰다. 뭘 하려는 거지? 백모의 의중이 짐작되지 않았다. 엄마가 눈치를 보며 접시를 가져갔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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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것이 소설이 결코 긍정해서는 안 되는 명제라는 점에서 발생한다. 섣부른 일반화가 될 수밖에 없겠지만, 소설은 차라리 묻혀 있는 누군가를 파헤쳐서 그에게 무엇인가를 끊임없이물어보는 장르였다. 눈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무덤 앞에서, 소설은 언제나 죽은 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의 억울함을 소명하고, 마침내 어떠한 진실을 파헤쳐서, 그것을 이야기의 형태로 전달했다. 그것이 소설의 몫이었고, 소설의 형태로만 접근할수 있는 정의였다. 그러나 김채원의 소설은 이 모든 공준소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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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만약 내게 마지막으로 한 번의 오독이 허락된다면, 나는 이 떨어짐을 어떤 고마움의 표현으로 새기고 싶다. 방금 무덤위로 떨어진 별의 모습을, 소설의 첫 장면에서 화자의 머리 위로떨어진 모과의 모습과 겹쳐 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유령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나를 묻어줘서 고마웠다고. 정말로수고했다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그들에게 건네는마지막 인사처럼 반짝이는 별똥별과 향기로운 모과를.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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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일이 어떤 일인지 잘 몰랐다. 잘 몰라서 소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이라는 열린 방에 들어가 며칠이고 앉아있는 날이 많았다. 궁금해서, 잘 몰라서, 이해해보고 싶어서. 소설은 나를 내쫓거나 몰아세우지 않고 그렇다고 말을 걸지도 않고계속 앉아 있게 내버려두었다. 가끔은 방안으로 환한 빛이 들어와 나와 함께 머물렀다. 그 빛이 내 손목에 올라타거나 발등을 덮으면 제법 어색하고 무겁고 따뜻했다. 나는 이것이 소설이라고,
단지 그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일매일앉아 있어야지 다짐하고서 정말로 매일매일.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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