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거 말고 다른 건 안 필요해?물건을 계산할 때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어 놀란다그 사람과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 P79
나에게도 지키고 싶은 것은 있다. - P87
이 시에서 당신은 저것들을 떼어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시 아닌 곳에선 붙여놓고 싶어 할지도마음에 드는 구절만 가지고 싶다면 - P91
나는 소설이 더는 궁금하지 않은데그래도 읽는다.끝이 있는 이야기가 필요해서.믿음하라고애인이나씩 지그렇게 - P104
평가도 주목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와중에 지켜야 할 것이 분명해진다. 기준이없으면 어떤 말은 독이 되고, 어떤 건강을 놓쳐버리면 사랑 앞에서 무능력자가 된다. - P41
삼십 대에 접어들면서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내 나이의 엄마를 떠올리며 나와 엄마를비교하는 것이다. - P63
성소수자의 존재는 찬성과 반대를 나누는 영역이 아니므로, 두 글은 애초 주장에 심각한 오류가 있을 뿐 아니라 논리도 빈약했다. - P81
어긋남과 엇갈림은 비단 인간관계만의문제는 아니다. 영화와도 시차를 겪는 일이 부지기수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것,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던 것이 존재하다 보니 어떤 영화는 태어나고 한참 지나서야 내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 P61
나는 꽤 오랫동안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비밀의방 앞을 서성이듯 울프에게 거리를 두고 멀어지지도가까워지지도 않았다. 그건 아직 내가 열지 않은 내 안의 여성성에 거리를 두는 것과 비슷했다. - P88
알았거나 몰랐거나 말했거나 침묵했거나 우리는 모두 우리의 몸이 불행의 근원이 되지 않도록 고군분투했으므로. - P121
엄마, 당신은 어떤 여성입니까?이제 엄마, 당신이 대답해 주길. 당신이 자유로움을 느끼는 순간, 오롯이 혼자인 순간, 그때 당신이 느끼는 감정, 누군가와 연대하고 있다는 기분, 당신이 추고 싶은춤, 당신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부르는 노래. 엄마를 제외한, 아니 엄마를 포함한, 그러나 그보다 더 커다란 엄마의진짜 이야기를. - P123
나를 안전한 사람으로 여기고 커밍아웃한 친구들이 있어서 나는 차별에 더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휠체어를 타는 친구들을 사귀고 보니, 전에는 차별인 줄 몰랐는데 알고 보니 차별인 것이 너무 많았다. 어떤 의미에서 차별은날마다 새롭게 발견된다. 그것을 바로잡을 때 세상은 날마다 평등에 가까워진다. 지금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각자 다른 길로 내게 왔고, 서로 합쳐지고 새롭게 해석되는 데는십수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역시, 이 정도로 실망한다면내가 너무 건방지다. - P213
가슴을 찢어놓는 것은 언제나 행복의 낱말들이다. - P216
언젠가 한 어린이가 책을 읽다가 장례식은 왜 3일이나하는 거냐고 물었다. "시간을 두고 슬픔을 나누는 거야"라고 설명했더니 다시 물었다. - P217
차연은 부쩍 과거에 했던 어리석은 일들이 떠올랐고 그럴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밥을 먹고 햇볕을 쬐고 텔레비전을 보는 일상만 반복되다보니 자꾸 옛날 생각을 하게 되었다. - P253
"어머. 몇시니.""빨리 가. 일찍 안 가면 오래 기다린다.""너는 언제라고?" - P257
내일과 내일모레의 일을 생각하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러다보니 저절로 살아졌지. - P257
결국 버너를 켜고 압력밥솥에 밥을 지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밥솥 추를 보고 있는데 양 겨드랑이 사이로 하얗고 마른두 손이 불쑥 들어왔다. 수진이었다. 수진은 차연의 등에 뺨을댄 채 말했다. 엄마, 우리 다신 마당 있는 곳 살지 말자. 차연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그래 그러자 했다. - P261
"저는 아침에 눈이 안 떠졌어요.""피곤해서?""아니요. 그냥 눈꺼풀이 올라가지 않아요.""아이고. 다 늙어서 산다구 아등바등 힘들어. 그치?" - P263
"거기 가면 친구도 만나고 노래도 부르고, 시간 가는 줄도모르는데 물건 좀 사는 게 어때서." - P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