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는 뛰어난 외야수였다. - P120

"누나가 날 참 사랑했지."
그 말을 듣고 나는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애가 그 사실을 알아줬기 때문이라든지, 보상을 받은 기분이라든지,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그 시절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야구를 사랑해.‘ 그 문장을 매일 적고 또노려보기, 그것이 야구를 사랑하기에 정말 괜찮은 방식이었나. - P119

나는 작은 공을 노려보았다. 작은 공은 손의 온기 때문에 더 작아지고 있었고, 내리쬐는 햇빛이 작은 공의 어떤부분을 환하게 표백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오래오래 바라볼수록작은 공은 더 희어 보였고 나는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그것이 희고 빛나는 새로 오해되고, 이윽고 낯익은 그 손을 마주하게 될 때까지. - P122

꿈속은 컴컴한 오렌지밭, 흑백 영상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색을보여주고자 하는 크기가 크고 당도가 높은 멋쟁이 오렌지. 사사키는 한 팔을 편 채 걷기 시작한다. 자기 손이 오렌지 나무들을 아무렇게나 건드리게 둔 채로 허기질 때까지. - P124

"데이트해?"
남자애가 히데오에게 물었다. 만약 그 순간 히데오가 나에게눈길을 줬다면, 그 눈길 속에 아주 작은 질문이라도 들어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든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 P149

마침내 환한 빛이 어둑한 소극장 가득 번쩍여서 저절로 눈이감겼을 때, 눈꺼풀 안쪽에 박힌 빛의 파편이 망막을 파고들었을때, 나는 머리 위로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그리고 환한빛 속에서 히데오를 만났는데, 그 사람은 히데오가 아닌 히데오, 언젠가 히데오가 내게 말해준 또다른 히데오였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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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은 해 질 녘까지 이어졌다. 함양읍내에 집합해 간단한 브리핑을 받은 뒤 몇시간을 내리 쉬지 않고 산행했다. 앞으로얼마나 더 산을 타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 P7

한 가지는 분명했다. 영주만이 아닌 거다. - P19

1999년 여름의 어느 날 수도 서울이사슴의 손에 넘어갔다. 노스트라다무스가예언한 지구 종말이 싱거운 농담으로 판명나기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었다. 두 번째서울시장 임기를 지나고 있던 고건 씨조차눈치챌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막후에서진행됐다. 전격적인 권력 이양이었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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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내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깊게 생각한 적도, 진정으로 원한 적도 없지만, 어쩌다 보니 우연히 이곳에 있다. - P179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원통 모양의장난감이 네모난 구멍에도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처럼 우리의 기질에 맞는 자리 역시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 있다. 때때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장소에 맞춰 들어가기 위해, 새로운 공간에 자신을 내어놓기 위해, 우리의 삶을한 바퀴 돌려보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 P180

호텔 방에서는 "그 누구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는것은 섬이나 오두막이 아니라 이 땅에서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매번 새로워지는 유목민의 삶이다. 장소들이 지나치게 친숙해질 때모든 의무에서 벗어나 사라지는 것 아무도 모르는 존재가 되어 이방인으로서 사는 것이다. 정체성도 과거도 없는 익명적인 존재가되기 위해서, - P183

"어떤 사유가 자리 옮김을 무시할 수 있을까? 제자리에멈춰 있는 사유만이 그럴 것이다.
그것은 사물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존재하길 바라는 사유, 감각적 세계의 다의성이 지닌 무한한 풍요로움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않은 사유일 것이다."
-J.-B. 퐁탈리스, 『그림자 횡단』 - P189

들뢰즈가 일러주듯 영토는 무엇보다 소리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곳,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에서 나는 자리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나를 위한 자리를 만들며, 그것을 쟁취해 낼수 있게 된다. - P192

떠난다는 것은 다른 지평선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며, 자신의목숨을 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떠난다고 해서 지정된 자리에서의 탈출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노스탤지어에 관한 에세이에서 철학자 바바라 카생이 말하듯, "우리는 오디세우스 이래로모든 오딧세이아가 정체성 할당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고 있다."292 - P196

그러나 나는 내 안에 타인을 위한 자리, 그들의 경험과 사고방식과 감정을 위한 자리를 남겨둘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베르그송이
"마음의 예의"라고 부른 것의 심원한 의미이며, 이는 상대에게 모든 자리를 내어 주는 재량이자 겸허함이다. 304 이처럼 타인의 자리에서 그의 관점을 취해 보는 것은 단순한 관대함의 제스처를 넘어선다. 우리는 멀리 있는 바깥의 존재이길 그치고 가깝게 감지할 수있게 된 타인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배가시키고 수천의 삶을 살수 있게 된다. 그것이 곧 나의 삶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타인의 자리에 서서 그를 더 잘 이해하고, 지지하고, 돌볼 수 있게 된다. 내가 그 자리에 서 보았기 때문에, 혹은 보다 정확히 내가 그 자리를내면화했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일인칭으로 실험해 본 모든 자리에 그의 자리가 덧붙여지기 때문에, 그것은 나를 침범하거나 어지럽히기보다는 풍요롭게 한다. 산 사람이건 죽은 사람이건, 현실의사람이건 허구의 사람이건, 타인의 삶이 우리 안에서 제자리를 차지하면, 이러한 동일시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삶은 보다 깊이를 갖는다. - P200

그렇다면 각자에게는 하나의 적합한 자리가 있을까, 여러 자리가 교체되며 이어질까? 제자리에 있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는행운과 끈기,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어느 정도무의식적인 부분일 수 있다. 자리 게임의 체스판에는 우리가 놓치는 움직임들이 있고, 말들을 쓰러뜨리는 돌풍이, 말들을 쓸어가버리는 분노가 있다. 그러나 앞으로, 대각선으로, 혹은 뒤로 이동하는 자리 옮김이 없다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회나 갈림길이 없다면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자리는 그 자체로 이러한 내적 운동들, 일시적인 충동, 집착의 동요와 충격을 모두 담는 곳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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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사람이 보상에 따라 행동하고, 제재에 따라행동을 억제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선 사례들이보여주는 것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 P65

그렇기 때문에 증여를 타인에게 패스하지 못합니다.
내 패스에 의미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 P71

그래서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길 원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그관계 때문에 지치고 맙니다. - P75

우리는 무언가를 받고 그에 대한 답례를 하지 않은 채로있으면 왠지 안절부절못합니다. 증여는 보낸 사람의 의도와상관없이 받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부채의식을 안깁니다.
그리고 그 부채의식이 또다시 증여를 일으키죠. - P81

게임 내부에서 모순이 발생했는데, 게임 바깥으로 나가는것(소통에 관해 소통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상황.
이중 구속은 바로 그런 상황을 뜻합니다. - P93

무의미한 것에는 아무런 힘이 없지만, 모순에는 강력한 힘이있습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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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앞선 다른 삶들의 꿈을 실현하는것이다. - P138

이와 같은 사랑의 외유는 우리가 경험해 본 적 없는 내밀한교류의 모습을 띤다. 그것은 내면의 타자성을 발견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깊은 이해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친밀함이다. 이러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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