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장례식을 병원에서 하면 송장 치우는 느낌이라 집이나 편한 장소를 빌려서 하고 싶다. 만약 집이 안 된다면 어디가 좋을까? 사전 장례식을 떠올린 다음부터는 좋은데 보면 여기가 내 장례식 하기 괜찮을지 따져 본다. 괜찮다 싶은곳이 나타나면 곤충채집 하는 아이처럼 목록에 적는다. 고로건강할 때 어딜 많이 다녀 보고 경험해 봐야 내 취향에 맞는장소를 찜할 수 있다. - P63
그런데 혹시 비명횡사라도 하면 이 모든 계획이 아무 소용 없다. 그때 가능한 장례식장으로 가야 할 텐데, 장례식장에서는 연간 용기류 1.3억 개, 접시류 1.1억 개, 식기류 1.3억개의 일회용품이 사용된다. - P64
환경부는 장례식장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일회용품사용 금지 업종을 ‘조리시설 및 세척시설‘에서 ‘세척시설‘로개정할 계획이었다. 조리된 음식을 빈소에서 담기만 하면 일회용품 사용 금지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정책이 후퇴하면서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 P66
한 가지 다행이라면 내가 대기업에 다니거나 전문직 종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다니거나 변호사나 의사처럼 전문직의 경우 장례 소식이 뜨면 자동으로회사 이름 등이 인쇄된 일회용품이 지급된단다. 개인이 거절해 봤자 소용없다. 일회용 장례식의 컨베이어 시스템이 돌아가면서 상조 회사는 공짜로 일회용품 받아서 좋고, 회사나협회는 생색내서 좋고, 이렇게 쓰고 버리는 시스템이 착착굴러간다. 이걸 끊어 내는 일을 살아생전에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 P67
하지만 정말 죽고 싶어서 늘 죽음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몽테뉴가 생각한 것은 죽음을 통해서 더 극명하게 와닿는 삶이었다. "인생은 그 자체로 목적이고 목표여야 한다. 죽음은 분명히 끝이지만,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그는 죽음을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삶을 온전히 실현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 P69
결혼도 안 하고 혈연관계가 아닌 친구와 사는 나는 나답게 죽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원 가족은 세상의 상식에따르는 사람들이라 ‘근본 없이‘ 죽기를 원하는 내 방식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유언장 성립 요건을 찾아보며정확하게 작성하려고 노력했다. - P70
유언장은 일정 형식을 갖춰야 인정된다. - P70
만약 제가 사전 장례식을 거행했다면 장례식 없이 시신 처리 절차를 밟아 주세요. 만약 사전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다면 아래와같이 장례를 치러 주세요. 유언자는 따분하게 남의 눈치대로 살지 않았고, 생의 마지막 절차도 마음대로 고집스럽게 치르고 싶습니다. - P73
과거를 받아들이자. 삶을 의미 있게 해 주는 친구를 사귀고, 타인의 생각이나 평가에 신경 쓰지 말자. 호기심을 일지 말고,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사회적·정치적·지적·창의적 작업을 추구하자. 인생에서 모든 것을 최대한 많이, 오랫동안 즐겼으므로 때로는 모든 일을 멈추고 쉬는 한때를 보내자. 내가 끝마치지 못한 일은 다음 세대가 끝마쳐줄 것이다. - P76
매일의 시시한 과제, 사소한 습관이처음으로 늙어 보는 시간을 견디며자신의 길을 찾아갈마음의 근육을 키워 준다. - P79
지금은 거꾸로다. 워낙 혼자 지내는 시간을 즐기다 보니점점 만나는 사람이 줄어들고 연락이 뜸해진다. 계속 이렇게살다 가는 고립된 외톨이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슬며시 찾아온다. 관계 속에 있을 땐 혼자 있고 싶어지고, 혼자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연결되고 싶어 하는 이 마음은 그저변덕일까.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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