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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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날, 겸허한 마음으로 읽으려고... 내게는 삶을 바꾼 만남이 있었는가, 앞으로 있을 것인가도 생각하는 책읽기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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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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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지역은 김용철 변호사 출신지인데, 어떤 사안에 대해 피해의식 같은 특수한 정서를 갖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했던 2007년에도, 특수한 정서가 작용해서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2008년 지승호씨가 김변호사 인터뷰를 한다고 했을 때, 이런 정서와 반응에 대한 질문을 부탁했는데 <아! 대한민국, 저들의 공화국>280쪽에 질문과 답변이 나와 있다.

 

작년에 이 책을 독서회 토론도서로 추천했는데, 읽고 싶지 않다는 회원들이 많았다. 그래서 김변호사가 양심고백 이후 책을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저자의 말을 인용하며 설득 끝에 7월 토론도서로 선정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비리 없는 기업이 어디 있으며, 삼성이 쓰러지면 우리나라 경제가 무너진다,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데 이건희가 돈 좀 쓰면 어떠냐?"는 말을 쉽게 했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에는, 결코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지도 않고, 삼성이 쓰러진다고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더구나 이건희 일가의 이익을 위한 비리와 비자금 등 상상을 초월한 불법에 경악했다. 책을 읽기 전 후의 반응은 엄청 차이가 났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 삼성에 대한 환상을 깨고 실체를 알고 싶다면 이 책과 더불어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권한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힌 김용철 변호사의 말이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려워 이 책을 썼다." (448쪽)

2010년 5월 27일, 조선대의 김용철 변호사 초청 강연에 갔었다. 강연장인 서석홀을 빌려주지 않아서 건물 앞 마당에서 강연이 진행됐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자본 권력에 알아서 기는 현주소를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했었다.

 

 

 

 

1부,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 양심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심정을 밝히는데, 읽을수록 심란하고 착잡해지는 책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광주일고를 거쳐 고려대 법대를 나왔고, 사법고시를 패스해 특수부 검사로 재직했다.1997년 여름 삼성에 입사해서 7년을 일하고 2004년 8월 퇴직하였다. 삼성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기 전, 호남인맥을 장악하기 위해 김용철 변호사를 스카웃 했고, 그의 협조로 1년 만에 호남인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는 삼성에서 법무팀과 재무팀에서 일했는데 삼성의 불법에 직접 개입하거나 돈 심부름을 했고, 그 대가로 많은 보수와 스톡옵션을 제공받았다. 삼성이 보내준 제주도 가족여행에서 3박 4일 호텔경비가 1,500만원이었다니, 일반인의 상식을 초월한다. 김변호사는 삼성 연수과정에서 공장 방문을 했을 때, 벨트에 묶여 일하며 두 시간에 한번 화장실을 가는 여종업원들을 봤으면서 그들의 처우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데 오히려 놀랐다. 자신은 근무하는 7년간 마음이 불편했다는 이야기가 거듭 나오는데, 솔직히 자기 변명같아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불편했다면 그들의 지시에 불법 시나리오를 작성하거나, 심부름을 거부했어야지... 그래서 누릴 거 다 누리고 배신이냐는 비난도 받는 거라 생각됐다. 더구나 강연회에서 질문자에게 '버럭'하는 걸 보고 많이 언짢았는데 '저런 성깔이니까 양심선언이 가능했구나' 좋은 쪽으로 이해했다. 어쩌면 자신이 매장되거나 죽을 수도 있는데, 삼성의 불법을 고발한 김변호사는 용기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물론 정의구현사제단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2부는 그들만의 세상. 대한민국을 왜 삼성공화국이라고 하는지 밝혀진다. 삼성의 구조본은 법조, 정치, 언론 등 특별관리대상자들에게 수시로 뇌물을 주고 자신들의 이익에 이용했다. 또한 이건희 일가의 재산을 늘려주고 비호하는데 이학수, 김인주를 주축으로 한 '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60여개 계열사는 자율권도 없이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이건희 부자의 잘못으로 발생한 손실을 메꿔주었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재용-에버랜드-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연결되는 순환출자구조로 돼 있는데, 이건희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 도입한 편법이다. 이재용 경영승계를 위해 1996년 에버랜드 CB(전환사채) 헐값 발행, 1999년 삼성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등 불법을 저질렀다. 2007년 10월 29일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삼성의 불법이 드러났음에도 조준웅 특검에선 차명계좌로 관리해 온 비자금을 이병철이 물려준 이건희의 재산으로 인정해줬다. 삼성의 특별관리대상인 법조계나 언론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따랐으니, 정의는 없고 오직 불법만 난무하는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다. 노무현 정권의 참여정부라는 명칭이 삼성연구소에서 나온 거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 노무현은 집권 기간 삼성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건희 생일 잔치를 공식행사라며 공식비용을 치렀는데, 이건희 가족은 프랑스에서 공수된 냉장 푸아그라(거위 간)를 먹고, 손님들은 냉동 푸아그라를 대접했다. 와인도 자기들은 천 만원짜리 페트뤼스 와인이고 손님은 훨씬 싼 와인을... 손님에게 좋은 것을 대접하는 우리 정서는 오간데 없는 왕족들의 만행이다. 대한항공에서 스카웃 한 최고의 스튜어디스가 이건희 헬기에서 무릎으로 기어와 시중 들었다는 증언은 현대판 노예를 보는 거 같았다. 삼성 왕족에게 불려가 노래 부르기를 거부한 나훈아는 정말 짱이다. 돈으로도 안 되는게 있다는 걸 보여준 자존심의 극치다. 짝짝짝~

 

나는 대중예술가다.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장 표를 끊어라(228쪽)

 

3부 삼성과 한국이 함께 사는 길.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다. 자본의 권력에 무릎 꿇은 법조계와 언론, 심지어 정부까지도 자유롭지 못했다는 건 과장이 아닌 것 같다. 현대사회는 자본의 노예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삼성의 온갖 불법은 결국 이건희 일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회사를 위해 수고한 종업원과 주주들의 몫을 도둑질하는 행위다. 또한 삼성의 뇌물에 길들여진 법조인들은 공정한 법을 집행할 수 없고, 언론은 그들의 잘못에 침묵하거나 그들을 옹호하는 시녀에 불과했다. 이런 불법이 판을 치는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게 부끄럽고 허탈하다. 피땀으로 일하는 연구진이나 기술진보다 비자금을 조성하는 자들이 더 우대받고, 썩을대로 썩은 삼성은 결코 글로벌 기업이 아니었다. 진정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투명한 회계집행과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거짓말 대마왕인 이건희는 '우리나라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나가던 소가 웃고, 개가 짖을 일이다. 도둑놈도 제 자식에겐 도둑질하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자칭 왕족인 이들의 하는 짓을 보면 그 아비에 그 자식일 뿐...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는 김용철의 고백과, 인용한 소설가 이병주의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말처럼, 온갖 비리와 특권으로 일군 달빛에 물든 삼성의 신화를 벗겨내고 햇볕에 바래어 역사가 되게 해야 할 때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삼성의 실체를 깨달은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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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1-12-2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밤새고 리뷰 쓰셨나요??????왠 리뷰를 이렇게나 많이?????ㅎㅎㅎㅎㅎ
나중에 천천히 읽어볼꼐요~.^^

2011-12-24 0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양장) I LOVE 그림책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버나뎃 로제티 슈스탁 글,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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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 세번째 쓰는 리뷰다. 처음엔 막 아기를 키우는 부모를 위해서, 두번재는 동생을 보고 질투를 키워 나갈 맏이를 위해서 썼는데, 세번째는 늦둥이를 보게 돼 새삼스러울 늙은(?^^)엄마를 위해 쓴다. 그래서 카테고리도 부모가 봐야 할 책이다.

 

몇 년 전에 독서회원이 서른아홉에 임신을 해서 여름내 입덧하면서 모임에도 못 나왔는데, 초등1학년인 외둥이 아들 생각에 노산이 걱정되지만 더 늦기 전에 임신하길 잘했다며 뿌듯함에 글썽거렸다. 셋을 낳아 이제 다 키운 나는, 무조건 잘했다며 이 책을 선물로 주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어느새 네 살이 된다며 내년에 어린이집 보내면 독서회에 다시 나온다고 전화했다. 이웃에서 아기를 낳으면 이 책을 빼놓지 않고 선물했으니, 이 책은 임신과 출산한 가정에 필독 도서가 된 지 오래다.

 

힘든 육아기를 겨우 벗어났는데, 그 일을 다시 겪는다는 건 보통 용기 아니면 쉽지 않을 일이다. 얼결에 둘째 셋째를 낳은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어른들 말씀이 '아이도 키울 때 키워야 한다'고 하셨다. 나도 삼남매를 낳아 키우느라 고스란히 10년 세월을 바쳤지만, 그 막내가 이제 고1이라 친구처럼 지내며 행복을 곱빼기로 누린다. 저희들 셋이 뭉쳐 놀거나 대화가 통하는 걸 보면, 내가 살면서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이 삼남매를 둔 일이라고 자부한다. 예전에 막내가 소록도 문학기행을 가서 

 "엄마, 나도 동생 있으면 좋겠어, 동생 하나 낳아 줘!" 라고 말해서

 "엄마가 쉰둥이를 낳을 수는 있지만 아빠의 생산라인이 가동을 중단했는데, 애인이라도 만들까?"라고 했었다.ㅋㅋ

아직 생산라인 이상 없으신 분들은 좀 더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각설하고 책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배를 불뚝 내밀고 곰돌이 인형을 치켜들고 있는 겉표지부터 녀석에게 끌린다. 내 아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있겠는가만 ‘사랑해’를 세 번이나 반복한 제목부터, 세상에 하나뿐인 아기를 맞이한 부모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겨우 버티고 앉은 모습과 엉덩이를 치켜들고 '까꿍'하는 모습은 누구라도 웃지 않을 수 없다. 앙증맞고 사랑이 넘치는 이 녀석을 보는 독자에게, 정말 깨물고 싶은 원초적 본능을 불러일으킨다. 행복할 때나 슬플 때, 말썽이나 심술을 부릴 때일지라도 사랑스럽지 않은 순간이 있을까마는, 부모가 돼봐야 제대로 부모 마음을 알게 된다.^^


글자의 내용보다 그림에 먼저 미소가 떠오르고 내 아기를 키우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래~ 이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 구석구석을 사랑하면서 키웠지! 천진한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펼쳐질 때마다 너무 사랑스럽다. 그림을 보고 또 봐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한다는 고백을 숨길 수 없는 사랑스런 책이다. 아기가 말귀를 알아듣기 전이라도 엄마가 책을 보여주고 읽어주며 사랑을 나누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된 조카에게도 이 책을 선물했더니 아주 좋아했다. 특히나 아침마다 책꽂이로 달려가 '사랑해' 책을 빼어든다는 조카며느리의 문자는 선물한 내 마음을 더욱 기쁘게 했다. .

'이모 말처럼, 애기가 누는 똥도 예뻐!'라며 감탄하는 초보엄마 조카도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둘째는 내년 5월에 돌인데, 한참 이쁜 짓을 많이 할텐데 아직 이모할머니는 알현을 못했다.ㅜㅜ 둘째도 엄마와 같이 책을 보고 또 보며, 새록새록 사랑을 키워내리라 믿는다. 또한 임신한 엄마들도 태중의 아기에 대한 사랑을 불러올거라 의심치 않는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자식'을 키워내는 일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책을 덮어도 그림속의 고 녀석이 눈에 아른아른 삼삼하게 떠오른다. 우리 애들은 다 컸지만, 10년 이쪽저쪽이면 요녀석 같은 손주들을 보게 되리라 행복한 그림을 그려본다!


아기와 부모, 혹은 출산 전의 임산부에게 선물해도 딱 좋을 책이다. 

세상에 생명을 낳아 키우는 일보다 값진 일이 또 있을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오늘도 애쓰며 사랑을 듬뿍 표현할 엄마 아빠들에게도 사랑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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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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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대를 위한 인생선배의 조언이라 엄마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오~ 이 책 완전 대박이다. 생물학적 청춘의 자녀를 둔, 정신은 청춘인 부모가 읽어도 공감하고 도움이 될 책이다. 이 책 좋다고 입소문이 나서 10월에 중학교 엄마들이 토론도서로 정해 같이 읽었고, 오늘은 막내 고등학교 독서회 토론도서였다. 또 다른 초.중학교 독서회에 소속된 엄마들도 이미 토론도서로 이야기를 나눴다니, 역시 좋다는 입소문이 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8월에 구입한 책이 423쇄였으니 백만부가 팔렸다는 계산인데, 지금은 몇 쇄를 찍었는지 궁금하다. 알라딘에서 올해의 책으로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와 경합을 벌이는데, 워낙 카가의 도움이 커서 '닥치고 정치'한테는 역부족이다.ㅠㅠ 그래도 백만부 이상 팔렸다는 말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선배의 조언과 위로가 얼마나 절실한지 반증하는 숫자다.

우리아들은 20대의 문턱에 올라서려 까치발을 딛고 있다. 며칠만 지나면 20대에 성큼 들어서게 되는데, 지난 주 이 책을 읽고 짤막한 감상을 남겨서 일부 인용한다.

수능도 끝나고 잉여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을 보고 나의 잉여스러운 나날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중략)

수능도 망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는데, 책을 보고 생각이 달라졋다. 내가 하고 싶고, 키우고 싶은 능력들,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운동 등등 내일부터가 아니라, 오늘부터 해야겠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부터 하겠다고 작심한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우리아들의 '작은삼촌'은 안녕하신지 확인해봐야겠다.ㅋㅋ
본인 표현대로 '수능도 망해서' 벼르고 있던 스마트폰 사달라는 소리도 못 꺼내고, 날마다 바쁘다고 설거지도 팽개쳐 둔 엄마 대신 설거지도 곧잘 한다. 한두번 하다 말겠지 싶었는데, 한달이 지난 지금도 설거지가 쌓여 있으면 알아서 한다. 이런 아들이라면, 대학교에서 선배들에게 사랑받고 직장에서도 눈에 들고 더 훗날 사랑받는 남편이 되지 않을까...ㅋㅋ
 

어쨋든 녀석은 대학입시로 나름 아픔을 겪었다. 본인이 희망했던 '심리엔학과'가 너무 높아 수시를 정외과로 접수했고, 1차 합격하고 면접을 봤는데 대기 9번이라 크게 기대하지 못한다. 담임샘은 가,나,다 3곳을 찍어서 생각해보라고 하셨지만, 꼭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수도권에 진입하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선뜻 원서를 내기도 어렵다. 어떻게든 수도권에 진출시키려는 뭇 부모와 달리, 우리는 가정경제를 고려할 때 국립대 아니면 어렵다고 못을 박았고, 그도 안되면 군대를 가야 한다는 현실적인 얘기를 농담처럼 했으니 내심 속도 상하고 경제가 곤란한 부모가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다행이 대기 9번이어도 합격했다는 통지받고 오늘은 예치금을 넣었으니, 이젠 빼도 박도 못할 정외과 대학생이 되는 거다. 큰딸도 그랬지만 우리 애들은 수시 딱 한 군데 넣어서 대학을 갔으니, 그것도 복이라면 복이다 싶어 고맙다. 물론 성적에 맞춰 들어갈 수 있었을 사립대를 대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대로 저희 나름의 아픔을 겪었다. 그래서 김난도쌤의 말을 빌려 위로하자면
"그래,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고 말할 수 밖에 다른 위로의 말을 찾기는 어렵다.

대학 졸업반이 된 큰딸은
"지금까지 뒷바라지해줘서 감사하고, 이제 진짜 성인으로 내손으로 밥벌어 먹어볼게요!"
11월 12일 문자를 보내왔고, 12월 9일에는
"삐딱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결핍을 견디며 산 경험이 큰 자산이라고 생각해오고 있어"
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문자를 받고 전화를 해보니, 임고를 앞두고 실패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친구들은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는 등 엄청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고생들을 했단다. 우리딸은 까짓거 임고 실패하면 또 다른 길이 있겠지... 초연하게 아무렇지 않아서 결핍의 경험이 자산이라는 걸 실감했단다. 그런 딸에게 엄마로서 해 준 말이다.

"00야, 네 인생에 처음으로 쓴맛을 본 임고 실패지만, 코 빠뜨리고 처져있지 마라, 인생 길게 보면 오히려 값진 경험이 될 거다. 너 하고 싶은 일 해봐. 엄마는 결혼 전 독립을 하릭받지 못해서 지금도 독립하고 싶은 욕망이 있잖아~ㅋㅋ. 엄마가 너한테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진짜 네 인생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일 해보라는 거야~~~"

큰딸은 제가 살만큼의 돈벌이만 하는 선에서 이미 직업(장)을 구했고, 이달 말에 서울 00도서관 앞으로 이사할거라고 말했다. "무슨 돈이 있다고 이사야, 고시텔로 가는 거야?" 했더니, 자기 돈이 조금 있다는데 알바할 때 저축했거나 1년동안 보내준 용돈을 아꼈는지 알수가 없지만 잘 살아가리라 믿는다.

그대 좌절했는가? 친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그대만 잉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잊지 말라.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라.(34쪽)

난도쌤은 이렇게 멋진 말로 20대를 위해 조언하지만, 지천명의 엄마가 읽어도 좋은 책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만나는 수많은 학생들의 사례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의 불안과 두려움, 막막하고 암담한 미래와 흔들림까지 감싸 안는다. 바로 그런 고민들은 청춘이기 때문에 맞이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어른들은 다 겪어봐서 하는 말이지만 그 당시에는 잘 모른다. 불행하게도 다 지나봐야 알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해답이라는게 인생의 아이러니다.

 

저자는 건전지를 넣지 않은 탁상시계를 책상에 두고, 해마다 생일이면 18분씩 시계바늘을 앞으로 옮긴다고 한다. 인생을 하루 24시간으로 설정하고, 평균수명을 80으로 셈할 때 1년이 18분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란다. 저자를 따라 셈한 내 인생 시계는 현재 오후 3시 26분이다. 아침형 인간보다 심야족인 내게는 충분히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인생에 너무 늦었거나, 혹은 너무 이른 나이는 없다는 말이 절절하게 실감된다.

저자는 스무 살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살고만 있는 나이'라고 정의한다. 20대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좋든 싫든 공감할 문장이다. 뚜렷한 목표나 방향도 없이 휘청이고 흔들리는 나이,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서 별볼일 없는 스펙을 쌓느라 죽을 고생하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갖고 도전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자신을 보여주는 건 스펙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전 경험으로 경력을 쌓는 일이 더 실용적이라 말한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 가득한 책, 수없이 밑줄을 그으며 곱씹어 볼 책, 인간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는 진정한 선생님이고자 애쓰는 저자의 조언을 젊은 아들딸에게 들려주자! 특별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보다 큰 꿈을 꾸는 것이 과욕을 부리는 것처럼 생각됐을 우리 아이들에게 난도쌤의 말을 전한다. 경제적인 성공만을 최고로 치는 세상이지만...

돈보다 소중한 것, 그것은 바로 그대의 미래다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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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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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손현주, 처음 만난 작가지만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단편으로 등단해 2009년엔 문학사상사 신인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 평사리문학대상과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까지 수상한 검증된 작가(?). 이 작품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지루하지 않고 술술 읽힌다. 불량한 가족을 주재료로 다양한 양념을 곁들여 제대로 한상 차린 가족이야기다. 막장드라마 같은 불량한 가족 이야기를 유쾌하게 요리한 레시피로 식상한 결말이 아니라서 작가의 역량이 짐작된다.

고등학교 1학년 여울이는 도덕 수행평가를 위해 가족을 중심으로 자서전을 써야 하지만, 솔직하고 진지하게 쓸만큼 가족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없다. 일본에서 여학교까지 나왔지만 아들과 손주들 치닥거리에 골병든 여든 셋의 할머니, 채권추심 하청일을 하는 쉰넷의 불곰아빠, 다발경화증으로 스물한 살에도 기저귀를 차는 전문대생 오빠, 여울이만 보면 욕을 해대는 뚱땡이 고3 언니, 주식에 올인하다 뇌경색이 된 쉰 가까운 삼촌까지 그야말로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불량한 인생들이다.

 

가족임에도 서로 으르렁대며 욕이나 해대는 관계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꼴은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 남보다 못한 인간관계다. 더구나 배다른 삼남매의 엄마들은 모두 '독사 같은 년들'이라는 말로 대체되는 형국이고, 삼촌과 형식상 이혼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 작은엄마는 삼촌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다들 집나간 엄마들이지만,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할머니가 집나간 엄마들의 자리를 채워주는 유일한 엄마다.

참담한 환경과 현실에 어긋나거나 문제아로 전락하기 쉬운 청소년기에 우울하지 않고 담담하게 가족 이야기를 풀어가는 여울이가 신기하다. 코스튬플레이를 즐기기 위해 용돈을 모으고 때론 할머니와 아버지 지갑에 손을 대지만, 이런 탈출구가 있었기에 여울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사는 게 싫어 가출하려고 돈을 모으는 여울이를 제치고, 이해받거나 사랑받지 못한 가족들-오빠, 언니, 삼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을 떠난다. 결국 아빠는 채권추심 정보 유출로 감옥에 가고 할머니와 여울이만 남는다. 지긋지긋하던 가족이 해체되어서야 비로소 가족의 온기와 사랑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결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천명관의 '고령화가족'이 떠올랐다. 고령화가족이 인생 실패자로 늙어가는 자식을 거두는 늙은 어머니의 한없이 품는 모성애와 집밥의 힘을 얘기한다면, 이 책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스스로 해답을 찾고, 가족이란 무엇인지 의미를 새겨보는 가족 이야기다. 두 편 다 막장드라마 같은 가족 이야기지만, 현실은 이보다 더한 참담한 가족도 많을거라고 생각한다. 험한 세상에서 언제나 내편이 되어 주는 가족은,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진화하는 인간들의 특성으로 얻어지는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가족이란 '집밥을 같이 먹는 사이, 차마 남에게 내보일 수 없는 치부를 공유하는 사이'
라고 정의한다면, 여울이네 불량한 가족도 조금은 이해되지 않을까?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는 관계지만, 기운 빠진 어머니를 위해 순대국을 사오고 홍삼엑기스를 건네오는 아들과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위해 설렁탕을 사식으로 넣는 딸, 쓰러진 할머니를 위해 흰죽을 쑨 손녀의 마음 씀씀이가 바로 가족이라고 느끼는 따뜻한 온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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