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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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지역은 김용철 변호사 출신지인데, 어떤 사안에 대해 피해의식 같은 특수한 정서를 갖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했던 2007년에도, 특수한 정서가 작용해서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2008년 지승호씨가 김변호사 인터뷰를 한다고 했을 때, 이런 정서와 반응에 대한 질문을 부탁했는데 <아! 대한민국, 저들의 공화국>280쪽에 질문과 답변이 나와 있다.

 

작년에 이 책을 독서회 토론도서로 추천했는데, 읽고 싶지 않다는 회원들이 많았다. 그래서 김변호사가 양심고백 이후 책을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저자의 말을 인용하며 설득 끝에 7월 토론도서로 선정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비리 없는 기업이 어디 있으며, 삼성이 쓰러지면 우리나라 경제가 무너진다,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데 이건희가 돈 좀 쓰면 어떠냐?"는 말을 쉽게 했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에는, 결코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지도 않고, 삼성이 쓰러진다고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더구나 이건희 일가의 이익을 위한 비리와 비자금 등 상상을 초월한 불법에 경악했다. 책을 읽기 전 후의 반응은 엄청 차이가 났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 삼성에 대한 환상을 깨고 실체를 알고 싶다면 이 책과 더불어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권한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밝힌 김용철 변호사의 말이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려워 이 책을 썼다." (448쪽)

2010년 5월 27일, 조선대의 김용철 변호사 초청 강연에 갔었다. 강연장인 서석홀을 빌려주지 않아서 건물 앞 마당에서 강연이 진행됐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자본 권력에 알아서 기는 현주소를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했었다.

 

 

 

 

1부,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 양심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심정을 밝히는데, 읽을수록 심란하고 착잡해지는 책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광주일고를 거쳐 고려대 법대를 나왔고, 사법고시를 패스해 특수부 검사로 재직했다.1997년 여름 삼성에 입사해서 7년을 일하고 2004년 8월 퇴직하였다. 삼성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기 전, 호남인맥을 장악하기 위해 김용철 변호사를 스카웃 했고, 그의 협조로 1년 만에 호남인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는 삼성에서 법무팀과 재무팀에서 일했는데 삼성의 불법에 직접 개입하거나 돈 심부름을 했고, 그 대가로 많은 보수와 스톡옵션을 제공받았다. 삼성이 보내준 제주도 가족여행에서 3박 4일 호텔경비가 1,500만원이었다니, 일반인의 상식을 초월한다. 김변호사는 삼성 연수과정에서 공장 방문을 했을 때, 벨트에 묶여 일하며 두 시간에 한번 화장실을 가는 여종업원들을 봤으면서 그들의 처우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데 오히려 놀랐다. 자신은 근무하는 7년간 마음이 불편했다는 이야기가 거듭 나오는데, 솔직히 자기 변명같아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불편했다면 그들의 지시에 불법 시나리오를 작성하거나, 심부름을 거부했어야지... 그래서 누릴 거 다 누리고 배신이냐는 비난도 받는 거라 생각됐다. 더구나 강연회에서 질문자에게 '버럭'하는 걸 보고 많이 언짢았는데 '저런 성깔이니까 양심선언이 가능했구나' 좋은 쪽으로 이해했다. 어쩌면 자신이 매장되거나 죽을 수도 있는데, 삼성의 불법을 고발한 김변호사는 용기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물론 정의구현사제단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2부는 그들만의 세상. 대한민국을 왜 삼성공화국이라고 하는지 밝혀진다. 삼성의 구조본은 법조, 정치, 언론 등 특별관리대상자들에게 수시로 뇌물을 주고 자신들의 이익에 이용했다. 또한 이건희 일가의 재산을 늘려주고 비호하는데 이학수, 김인주를 주축으로 한 '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60여개 계열사는 자율권도 없이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이건희 부자의 잘못으로 발생한 손실을 메꿔주었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재용-에버랜드-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연결되는 순환출자구조로 돼 있는데, 이건희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 도입한 편법이다. 이재용 경영승계를 위해 1996년 에버랜드 CB(전환사채) 헐값 발행, 1999년 삼성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등 불법을 저질렀다. 2007년 10월 29일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삼성의 불법이 드러났음에도 조준웅 특검에선 차명계좌로 관리해 온 비자금을 이병철이 물려준 이건희의 재산으로 인정해줬다. 삼성의 특별관리대상인 법조계나 언론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따랐으니, 정의는 없고 오직 불법만 난무하는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다. 노무현 정권의 참여정부라는 명칭이 삼성연구소에서 나온 거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 노무현은 집권 기간 삼성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건희 생일 잔치를 공식행사라며 공식비용을 치렀는데, 이건희 가족은 프랑스에서 공수된 냉장 푸아그라(거위 간)를 먹고, 손님들은 냉동 푸아그라를 대접했다. 와인도 자기들은 천 만원짜리 페트뤼스 와인이고 손님은 훨씬 싼 와인을... 손님에게 좋은 것을 대접하는 우리 정서는 오간데 없는 왕족들의 만행이다. 대한항공에서 스카웃 한 최고의 스튜어디스가 이건희 헬기에서 무릎으로 기어와 시중 들었다는 증언은 현대판 노예를 보는 거 같았다. 삼성 왕족에게 불려가 노래 부르기를 거부한 나훈아는 정말 짱이다. 돈으로도 안 되는게 있다는 걸 보여준 자존심의 극치다. 짝짝짝~

 

나는 대중예술가다.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장 표를 끊어라(228쪽)

 

3부 삼성과 한국이 함께 사는 길.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다. 자본의 권력에 무릎 꿇은 법조계와 언론, 심지어 정부까지도 자유롭지 못했다는 건 과장이 아닌 것 같다. 현대사회는 자본의 노예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삼성의 온갖 불법은 결국 이건희 일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회사를 위해 수고한 종업원과 주주들의 몫을 도둑질하는 행위다. 또한 삼성의 뇌물에 길들여진 법조인들은 공정한 법을 집행할 수 없고, 언론은 그들의 잘못에 침묵하거나 그들을 옹호하는 시녀에 불과했다. 이런 불법이 판을 치는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게 부끄럽고 허탈하다. 피땀으로 일하는 연구진이나 기술진보다 비자금을 조성하는 자들이 더 우대받고, 썩을대로 썩은 삼성은 결코 글로벌 기업이 아니었다. 진정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투명한 회계집행과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거짓말 대마왕인 이건희는 '우리나라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나가던 소가 웃고, 개가 짖을 일이다. 도둑놈도 제 자식에겐 도둑질하지 말라고 가르치는데, 자칭 왕족인 이들의 하는 짓을 보면 그 아비에 그 자식일 뿐...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는 김용철의 고백과, 인용한 소설가 이병주의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말처럼, 온갖 비리와 특권으로 일군 달빛에 물든 삼성의 신화를 벗겨내고 햇볕에 바래어 역사가 되게 해야 할 때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삼성의 실체를 깨달은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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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1-12-2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밤새고 리뷰 쓰셨나요??????왠 리뷰를 이렇게나 많이?????ㅎㅎㅎㅎㅎ
나중에 천천히 읽어볼꼐요~.^^

2011-12-24 0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