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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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손현주, 처음 만난 작가지만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단편으로 등단해 2009년엔 문학사상사 신인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 평사리문학대상과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까지 수상한 검증된 작가(?). 이 작품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지루하지 않고 술술 읽힌다. 불량한 가족을 주재료로 다양한 양념을 곁들여 제대로 한상 차린 가족이야기다. 막장드라마 같은 불량한 가족 이야기를 유쾌하게 요리한 레시피로 식상한 결말이 아니라서 작가의 역량이 짐작된다.

고등학교 1학년 여울이는 도덕 수행평가를 위해 가족을 중심으로 자서전을 써야 하지만, 솔직하고 진지하게 쓸만큼 가족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없다. 일본에서 여학교까지 나왔지만 아들과 손주들 치닥거리에 골병든 여든 셋의 할머니, 채권추심 하청일을 하는 쉰넷의 불곰아빠, 다발경화증으로 스물한 살에도 기저귀를 차는 전문대생 오빠, 여울이만 보면 욕을 해대는 뚱땡이 고3 언니, 주식에 올인하다 뇌경색이 된 쉰 가까운 삼촌까지 그야말로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불량한 인생들이다.

 

가족임에도 서로 으르렁대며 욕이나 해대는 관계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꼴은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 남보다 못한 인간관계다. 더구나 배다른 삼남매의 엄마들은 모두 '독사 같은 년들'이라는 말로 대체되는 형국이고, 삼촌과 형식상 이혼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 작은엄마는 삼촌에게 연락하지 않는다. 다들 집나간 엄마들이지만,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할머니가 집나간 엄마들의 자리를 채워주는 유일한 엄마다.

참담한 환경과 현실에 어긋나거나 문제아로 전락하기 쉬운 청소년기에 우울하지 않고 담담하게 가족 이야기를 풀어가는 여울이가 신기하다. 코스튬플레이를 즐기기 위해 용돈을 모으고 때론 할머니와 아버지 지갑에 손을 대지만, 이런 탈출구가 있었기에 여울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사는 게 싫어 가출하려고 돈을 모으는 여울이를 제치고, 이해받거나 사랑받지 못한 가족들-오빠, 언니, 삼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을 떠난다. 결국 아빠는 채권추심 정보 유출로 감옥에 가고 할머니와 여울이만 남는다. 지긋지긋하던 가족이 해체되어서야 비로소 가족의 온기와 사랑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결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천명관의 '고령화가족'이 떠올랐다. 고령화가족이 인생 실패자로 늙어가는 자식을 거두는 늙은 어머니의 한없이 품는 모성애와 집밥의 힘을 얘기한다면, 이 책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스스로 해답을 찾고, 가족이란 무엇인지 의미를 새겨보는 가족 이야기다. 두 편 다 막장드라마 같은 가족 이야기지만, 현실은 이보다 더한 참담한 가족도 많을거라고 생각한다. 험한 세상에서 언제나 내편이 되어 주는 가족은,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진화하는 인간들의 특성으로 얻어지는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가족이란 '집밥을 같이 먹는 사이, 차마 남에게 내보일 수 없는 치부를 공유하는 사이'
라고 정의한다면, 여울이네 불량한 가족도 조금은 이해되지 않을까?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는 관계지만, 기운 빠진 어머니를 위해 순대국을 사오고 홍삼엑기스를 건네오는 아들과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위해 설렁탕을 사식으로 넣는 딸, 쓰러진 할머니를 위해 흰죽을 쑨 손녀의 마음 씀씀이가 바로 가족이라고 느끼는 따뜻한 온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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