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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나라의 어린이 ㅣ 푸른숲 역사 동화 8
김남중 지음, 안재선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4년 4월
평점 :
선거의 계절이다. 후보들마다 공약을 쏟아내고 목청 돋운 선거유세에 피로감이 쌓인다. 그럼에도 관심을 갖고 TV토론을 지켜보는 것은 좀더 나은 후보를 선택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힘과 권력, 부와 권력이 함께 따른다는 것을 이미 몸으로 익혀온 우리들이다.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은 우리의 바람과 다르게 흘러간다. 허나 그런 사회를 만들어낸 것도 우리들이고 그 폐해를 겪는 것도 우리들이다.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국민에게 있음을 보여주자고 선거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쥐지만,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한 죄가 세대를 이어 대물림되고 있다. 법과 정의는 가진자의 편이 되고 없는 자에겐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원죄를 잉태한 친일파 문제를 제대로 알려주고자 머리끈 질끈 동여맨 동화가 나왔다.
『새 나라의 어린이』란 제목을 보니, 동요 하나가 떠오른다.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이 노래는 광복 후 처음으로 창작된 동요로 광복의 기쁨과 다짐이 담겨 있다. ‘새 나라의 어린이’는 요즘엔 잘 부르지 않지만, 과거 우리가 꿈꾸던 새 나라 모습이라 할 수 있다.『새 나라의 어린이』는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이 버무려진 역사동화다. 1945년 일제치하에서 해방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이후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한 반민특위 활동을 어린이 눈높이로 풀어냈다.
부모를 여의고 당숙네 가게에서 심부름하며 춥고 배고픈 설움을 견디는 열세 살 노마가 주인공이다. 노마는 일제강점기 징용에 끌려간 형 정식이 돈을 많이 벌어 돌아오면 고생이 끝날 거라 믿는다. 하지만 남루하게 돌아온 형은 친일파 앞잡이였던 야마다(노칠득)를 잡으러 쫒아 다닌다. 형과 배고프지 않게 살기를 바라는 노마와 친일파 처단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형,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돈만 벌면 된다는 당숙의 갈등이 그려진다. 친일파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청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꿈을 꾸는 이들은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한다.
‘해방 뒤 서울은 곳곳이 싸움터로 변했다. 좌익은 소련을 지지했고 우익은 미국을 지지했다. 좌익은 우익을 ’민족 반역자‘라 불렀고 우익은 좌익을 ’빨갱이‘라 부르며 서로 피 터지게 싸웠다.’ (14~15쪽)
일제강점기 친일파로 부와 권력을 누렸던 이들은, 남한의 독립된 정부에서도 요직을 차지했다. ‘반민특위’가 거물급 친일파를 잡아들여 곧 친일청산이 이루어질 거라 기대했지만,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친일파와 이승만 정권의 결탁으로 반민특위가 해체되고 친일파 척결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민족의 숙원이었던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 활동을 중심으로, 위험에서 노마와 만난 앨리스와 미군정의 딘 중위, 앨리스 가족의 뒤를 봐주며 또 다른 욕심을 채우려는 최남수 사장, 정식이 찾는 첫사랑 순희 등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의 삶과 진실이 드러난다. 노마는 친일파 순사에서 경찰로 변신한 노칠득에게 잡혀 허물어진 형을 보면서, 친일파보다 힘센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는 거 같다고 느낀다. 친일파를 건드리면 다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사회를 배우며 어른이 돼 가는 노마의 생각이 정말 옳은 것일까? 친일파 청산도 사라져 올바른 역사세우기도 할 수 없는 사회가 과연 우리가 꿈꾸던 새 나라인지 되짚게 된다.
앨리스 일기장은 답답하고 안타까움에 한숨짓던 독자에게 반전을 선사한다. 앨리스는 미국인이 아닌 프랑스인이라며 친독파를 철저히 심판했던 프랑스 얘기를 들려준다. 신분을 숨기고 비겁하게 숨어 살아 온 진실을 밝히고 죗값을 치르기로 결심했다는 앨리스 고백은, 노마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깨닫게 한다. 비록 반민특위 해체로 친일파 청산은 실패했지만, 정식이 형이 꿈꾸었던 정의가 바로서는 새 나라를 만들어 갈 과제가 남은 것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붕괴, 서해 카페리호 사고에서 얻은 교훈을 망각한 우리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만들고 세월호 침몰로 고귀한 생명들을 수장시켰다. 총체적 부정과 부패한 사회를 만들어버린 우리의 죄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잘못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직도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나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애국지사의 후손들은 가난하고 타국에서 살게 하는 나라가 새 나라인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새 나라를 세워갈 수도 없다.
노마와 같이 만들어야 할 새 나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고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한 나라가 우리들이 꿈꾸는 새 나라다. ‘새 나라의 어린이’ 노래로 각인된 새 나라는 이미지가 고착되었지만, 우리들이 꿈꾸며 날마다 만들어갈 새 나라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진정한 의미의 ‘새 나라’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런 새 나라를 이끌어 갈 어린이들이 진짜 ‘새 나라의 어린이’가 아닐까?
부록으로 실은 ‘동화로 역사 읽기’에는 ‘반민특위’에 관한 정보와 사진 등 친일파 청산 배경과 의의를 담아 ‘새 나라의 어린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