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 나에게로 온 안오일 시인의 두번째 청소년 시집 <나는 나다>
시인의 첫번째 청소년 시집 <그래도 괜찮아>를 공감하며 읽어서 이 시집도 기대가 됐다.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풀어낸 시에서
나와 우리 아이들 모습을 발견하며 '그래, 맞아 맞아!' 끄덕이며 읽었다.
어쩌면 제 하고 싶은 걸 하겠다며
14학번이 된 큰딸에 대한 복잡미묘한 심정이 널뛰던 때라 구구절절 공감을 더 했을지도...
1부 내 마음속에 사는 피카소
2부 내가 쏜 화살
3부 좀 어때
4부 나는 살았어
요렇게 나뉘어 수록된 57편의 시에서, 엄마가 보이기도 하지만 청소년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기소개서 -안오일-
나를 소개하란다
한동안 나를 들여다보는데
참 낯설다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어떤 꿈들을 키워 왔는지
알 수 없는, 데자뷔 현상처럼
언젠가 설핏 봤던
나였는지 모를 나만 있다
내가 잡아 주었던 친구들의 손은
아직도 내 손의 온기로 남아 있는데
난 한 번도 내 손을 잡은 기억이 없다
나를 바라볼 시간 없이
나를 데리고 다녔던 나는
세상을 얼마큼 살았을까
텅 빈 자기소개서가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웃으며 말한다
우리
악수해 볼까?
정말 나를 돌아보거나 살펴볼 새도 없이 나를 끌고 다닌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된 거겠지만,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부모 등쌀에 떠밀려 살고 있는 청소년도 많을 거다. 가정 경제를 생각하느라 '교대' 말고는 꿈도 꾸어보지 못했다던 큰딸이 이제라도 제 하고 싶은 걸 하겠다던 말이 절절하게 얹혔다. 내 가슴에....
명찰 -안오일-
명찰을 잃어버렸다
벌점 10점이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
내 이름
에잇, 짜증이다
벌점 30점이면 엄마를 학교로 부른다는데
부글부글 속 끓이고 있는 내게
동건이가 다가와 말한다
야, 김민혁!
너는 너를 어디다 흘리고 다니냐?
내 명찰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명찰을 받아 다는데
너를 어디다 흘리고 다니냐는 동건이 말이
묘하게 가슴에 얹힌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
당당하게 못 하고 그냥 휩쓸려 갈 때가 많았다
그렇게 나를 흘리고 다닐 때가 많았다
종종 나를 잃어버리는 내게
나는 벌점 얼마를 주어야 할까
시인은 청소년 자녀를 키우고 있어 그네들의 이야기와 심리를 잘 아는 듯. 우리 딸들이 기숙사로 고시텔로 가고 난 후라 시집을 함께 나누지 못해 아쉽다. 이제 대학생이 되었지만 청소년의 마음과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딸들의 감상이 궁금하다. 인생의 그림을 충실하게 그려가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시집을 부모가 먼저 보고 슬며시 건네주어도 좋겠다.
내 그림 -안오일-
엄마가 1000조각 퍼즐을 내민다
세계 지도다.
하나하나 맞춰 가니
점점 모양이 드러난다
태평양, 대서양, 아시아, 아메리카......
지도책에 있던 모양대로
오대양 육대주
달달달 외웠던 위치대로
이때 끼어드는 엄마의 말
인생도 이 퍼즐 조각 같은 거야
이렇게 하나하나 맞춰 가는 거지
그러니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마
순간 어디선가 스틱이 달려들어
내 마음을 두들겨 팬다
쿵쾅쿵쾅 퍽!
이미 만들어진 조각으로 맞춰 가는 거
누군가 그려 놓은 그림을 완성하는 거
이게 내 인생이라니!
맞춰 가던 퍼즐 조각을 모두 흩뜨려 버렸다
내 퍼즐 조각은
내 그림으로 완성할 거다
아메리카를 아시아 밑에 갖다 불이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