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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수의 탄생 일공일삼 91
유은실 지음,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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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실 작가가 전작에서도 이런 글쓰기를 했나? 앞 뒤 문장이 대비되는 재미난 글쓰기에 새삼 놀랐다.

책날개 작가소개에는 '책을 엄청 적게 읽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책을 엄청 많이 읽는 어린이 이야기를 써서 동화 작가가 되었다.'고 쓰여 있다. 어린 시절 작가가 책을 적게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책을 엄청 많이 읽는 어린이 이야기는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주인공 비읍이다.^^ 2010년 12월 광주대에서 만난 작가는 솔직함이 그대로 느껴졌었다. 자신의 성장비화를 진솔하게 들려주어 눈물나게 했고, 내가 저지른 언어폭력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했는데....

 

 

'일수의 탄생'에서 느껴지는 문장 유머에 숨겨진 작가의식을 새롭게 맛보는 즐거운 독서였다.두 번을 읽어도 여전히 대비되는 문장의 맛이 살아났다. 첫 페이지부터 대비되는 문장의 향연을 잠시 맛보자면...

 

부부가 사는 마을은 예로부터 물 맑고 인심이 좋았다는 얘기가, 구청 홍보 자료에만 있었죠. 마을 개천은 공장 폐수로 오염이 되었고, 인심은 개천 물만큼이나 더러웠어요.(9쪽)

 

남편은 아내의 잘록한 허리가 마음에 쏙 들었어요. 입을 손으로 가리고 수줍게 웃는 걸 보고는,

  '이 사람과 결혼해서 날마다 저 못븡르 봐야겠다.'

하고 다짐했어요. 하지만 함께 산 다음부터 아내의 수줍음이 사라졌어요. 입을 크게 벌리고 손뼉을 치며 웃었죠. 아내는 무럭무럭 살이 쪄서 결혼한 지 오년 만에 완벽한 항아리 형으로 변신했어요.(10쪽)

 

  '저 사람이 정말, 내가 사랑했던 깔끔한 남자?'

부인은 코를 쥐고 괴로워했어요.

  '이게 정말, 첫눈에 반했던 그녀의 허리인가?'

남편은 부인 똥배를 보고 한숨을 쉬었고요. 그렇다고 허구헌날 싸운 건 아니에요. 둘은 그럭저럭 사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부부로 살았어요.(11쪽) 

 

이혼도 불사할 만큼 싸우긴 하지만, 그럭저럭 살아가는 우리네 부부들 모습이 리얼하게 그려져 완전 감정이입하며 박장대소를 했다. 2010년에 작가님은 신혼이었고 남편이 광주까지 함께 와서 부부애를 과시했는데, 이제는 한 오년차 부부가 되었을 테니 그럭저럭 사는 부부의 삶을 체감하고 있을까?^^

 

첫 눈에 반해 결혼한 이들 부부가 15년 만에 얻은 아들에게 거는 기대는 '황금색이 수북히 쌓인' 태몽과, '7월 7일 0시 4분'에 태어나 행운의 수 7이 겹친 출생일과, '일등할 때 일(一), 수재할 때 수(秀)의 '일수'라는 이름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땅의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좋은 태몽과 출생일이나 이름 짓기의 설레임을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을 두 번을 읽고도 어린이보다는 어른을 위한 동화로 생각됐다. 부모들이 자식에 거는 기대와 말과 행동을 어찌하는지 돌아보게 되고, 그럴싸하게 잘난 어른이 나오지 않는 평범한 우리네 사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어른을 위한 동화로 읽혀졌다. 

 

완벽하게 중간이어서 어느 것 하나 잘하는 게 없는 일수는 엄마를 실망시키면 슬프고, 엄마가 자랑스러워하면 기뻐하는 보통의 아이였다. 언젠가는 돈방석에 앉혀줄거라는 엄마의 기대에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을 느끼지만, 그렇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먹는 일수의 모습은 평범한 어른들의 성장기를 보는 것 같았다. 내 부모도 나에게 거는 기대가 있었고, 때론 분수에 안맞는 꿈을 꾼다며 소망을 꺾어버리는 언행도 하셨다. 그렇게 자라서 엄마가 된 나역시 내 아이들에게 기대하면서도 아이의 꿈을 저버리는 짓도 했다는 걸 깨닫게 한 책읽기였다.

 

평범한 아이 일수에게도 '쨍'하고 해뜨는 순간이 왔다. 어설픈 붓글씨로 가훈을 써주고 번 돈 '62만 5천원'을 넣은 돈방석에 엄마를 앉게 했으니.^^ 수년 간 하고 많은 가훈을 써주었지만 정작 자기 집엔 가훈이 없었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자'를 좌우명으로 삼았지만, 정작 너의 쓸모는 누가 정하느냐는 명필선생의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한다. 비로소 나이 서른이 넘어 자기 삶을 고민하고 정체성에 흔들리는 사춘기를 맞으며 집을 떠난다. '아들 백일수'가 자신의 인생관이라는 어머니를 혼자 남겨두고....

 

어찌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던 일수가 자아찾기 여행을 떠났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발전이다. 다행히 무늬만 친구였던 일석반점의 '일석'이와 진정한 친구가 되어 여행을 떠났다는 게 위로가 되었다. 일수네 문구점과 일석이네 중국집엔 석달 째 이런 쪽지가 붙어 있다는 마무리는 싱긋 웃게 한다.

 

당분간 가훈 못 써드립니다.

당분간 일반짜장, 짬뽕, 탕수육만 됩니다. 

 

 

'일수의 탄생'에서 발견한 또 하나는 자기 생각을 말할 때 '~같아요'를 쓰면 안된다는 걸 확실히 알려준 것!

많은 사람들이 습관처럼 붙어 있는 '~같아요'라는 말의 쓰임새는 초등 교과서에도 나오지만, TV 인터뷰나 프로그램에서 잘못 쓰는 '~ 같아요'를 수없이 듣게 된다. 나는 그런 방송을 볼 때마다 구시렁거린다. "아니, 왜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 '~ 같아요' 라는 거야! 방송에서 저렇게 나오니까 모두들 습관적으로 쓰고 있잖아. 심지어 전문방송인들조차도 저렇게 말하다니...." 혀를 끌끌 차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유은실 작가도 같은 느낌이었는지, 일수의 언어습관을 '~ 같아요'라고 그려내 콕 짚었다. 엄마들의 주문에 휘둘리는 아이들, 마치 로봇이 된 듯 엄마가 시키는대로만 하는 아이들이 소신이 있어도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일수가 자기 생각을 말할 때도 '그런 것 같아요' 라고 말해도 다그치치 않는 선생님도 나오지만, 많은 이들의 잘못된 언어습관을 일수를 통해 보여줌으로 바로잡는 계기를 주어서 좋았다. 또한 서현 그림작가의 리얼한 그림도 책읽는 즐거움을 더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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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2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4-01-23 08:2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꿀꿀페파 2014-01-22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순오기 2014-01-23 08:26   좋아요 1 | URL
수고가 많으십니다!^^

마노아 2014-01-23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수가 ~같아요를 남발할 때 얼마나 답답하던지요. 맘 같아선 꿀밤을 한대 때려주고 싶었어요.^^ㅎㅎㅎ

순오기 2014-01-26 09:57   좋아요 0 | URL
동감이요!!^^
나는 방송인들이 '~같아요'라고 할 때 특히 쥐어박고 싶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