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요 바빠 - 가을 도토리 계절 그림책
윤구병 글, 이태수 그림 / 보리 / 200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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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엔 이 더위가 언제 끝날까 싶었는데, 어느새 가을이 왔다.

가을 풍경은 생기 넘치던 초록 물결을 갖가지 색깔로 바꾸어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보리출판사의 '도토리 계절 그림책' 시리즈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를 섬세한 세밀화로 보여주는 사랑스런 그림책이다.

 

가을을 담아낸 <바빠요 바빠>는 사진보다 더 가을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기에 친숙한 농촌 풍경은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즐거움을 선사한다.

마당에 농작물을 베어다 깔고 도리깨질을 하는 풍경은,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놀이였다.

김을 매거나 마당 귀퉁이에 떨어진 콩을 줍는 건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도리깨질은 좋았다.

엄마가 잠시 볼일로 도리깨를 내려놓으면 쏜살같이 달려들어 도리깨로 콩타작을 거들었다.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지만 박자를 딱딱 맞추는 리듬감과 도리깨로 탁탁 치는 소리가 좋았다고 기억한다.

 

 

한 해 농사를 거두어 들이느라 바쁜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서

일손을 돕거나 놀이에 빠진 마루의 모습에서 유년기의 나를 보는 듯 감정이입이 되었다.

 

 

 

 

어릴 때 시골집에 있던 꽃들과 들판의 풀들은 지금도 만날 때마다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추억을 더듬게 한다.

마당가에 핀 맨드라미와 채송화, 유난히 시골집에 많았던 나리꽃은 우리집 화분에서도 철따라 꽃을 피운다.

꽃송이 하나로 행복했던 유년기를 추억하는 게 좋아서 화분이라도 살뜰하게 키운다.

 

  

 

 

고추 말리는 이 장면은 언제 봐도 정겹다.

할머니는 고추 말리느라 바쁘고, 마루는 닭을 쫒느라 바쁘다.

 

 

지난 8월 경전선 여행길 삼랑진에서 만났던 고추 말리는 모습도 반가웠다.

 

 

 

들판에 누렇게 익어 가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연이 그려낸 풍경화는 세계의 어떤 화가가 그린 작품보다 뛰어나다.

참새들은 낱알을 쪼아 먹느라고 바쁘고

허수아비는 참새를 쫒느라고 바쁘다.

책 제목처럼 '바빠요, 바빠'를 운율처럼 반복하며 가을걷이로 바쁜 농촌 일상을 그려낸다.

 


 

바빠요, 바빠!

바빠요, 바빠!

한 장면마다 '바빠요, 바빠'를 반복하는 바쁜 일이 무엇이고, 누가누가 바쁜지 그림을 보면

사람만 바쁜 게 아니고 동물들도 겨울채비를 하느라 바쁘다.

알밤이 떨어지면 마루는 밤을 줍느라 바쁘고, 다람쥐랑 청설모는 밤을 나르느라고 바쁘다.

아빠는 감을 따느라 바쁘고, 까치도 홍시를 쪼느라 바쁘다.

마루네 식구는 무와 배추를 뽑느라 바쁘고, 들쥐랑 두더지는 달아나느라 바쁘다.

아빠는 무 구덩이를 파느라고 바쁘고, 하늘에는 기러기들이 날아가느라고 바쁘다.

 

 

 

 

좋은 그림책은 그림만 보아도 이해가 되는 책이다.

이 그림책은 농촌생활 경험이 없는 도시 아이들과 어른들이 세밀화만 봐도 농촌생활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림책은 너무 세밀하게 그리면 상상하는 즐거움을 앗아 갈수도 있는데,

화면을 가득 채운 섬세한 그림은 보는 재미와 상상의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다.

 

그림책은 보는 독자의 관점에 따라 이해가 다르고 주제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는 작가의 생각이나 의도를 알고 싶고 찾으려 한다.

이 책은 가을걷이에 바쁜 농촌생활 뿐 아니라,

자연이 주는 먹을거리와 혜택을 사람과 동물들이 같이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넌즈시 알려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사람만을 위한 곳도 아니고, 사람만이 주인인 곳도 아니다.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과

사람이나 동물도 자연 질서에 따라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일상을 세밀화로 보여준 멋진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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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9-24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답게 그리는 그림책은
서로한테 아름다운 이야기
베푸는구나 하고 생각해요.

순오기 2013-09-26 22:38   좋아요 0 | URL
답글이 무지 늦었네요.
아름다운 그림책, 특히 자연 그림책은 더 맘에 듭니다!

수퍼남매맘 2013-09-24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쁘다 바뻐>로 공개수업 하려고 준비중이에요.
이 책을 님 서재에서 보니 많이 반갑네요. ^^
추석 잘 보내셨지요?

순오기 2013-09-26 22:39   좋아요 0 | URL
2학기 공개수업 준비하시는군요.
가을 수업하기에 딱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