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소와 무티스가 만났을 때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35
니나 레이든 글 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와~~ 이런게 창의성이구나! 어쩌면 요렇게 재밌는 그림책을 만들어 낼 수 있지?"
감탄이 절로 나왔었다. 초등 저학년이나 고학년 아이들과 수업을 해도 각자의 눈높이에 맞게 이해하는 게 최고의 장점이다. 특히 화가 피카소와 마티스를 아는 고학년들이 많이 열광했던 책이다.

며칠 전 경로당 어른신들과 미술활동을 하고 나서 이 책을 읽어드렸다. 보통은 책을 먼저 읽어드리고 독후활동을 하는데, 이 책은 데칼코마니를 하고 나서 읽어드렸더니 아주 재밌어 하셨다. 대부분 여든을 훌쩍 넘겼고, 두 분은 아흔이 넘었고 학교를 못 다닌 어르신도 몇 분 계시다. 글자를 배우지 못해 이름도 못 쓴다고 부끄러워하면서도 생전 처음으로 해보는 미술활동에 즐거워하셨다.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따라하기 일쑤인데, 데칼코머니는 내 맘대로 물감을 찍찍 짜서 하는 거라서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대체 어떤 모습이 될까 호기심 반짝이는 눈빛도 어여쁘시고 펼쳐진 그림을 보며 멋지다고 좋아하셨다. 흰 종이와 검은색 종이를 드렸더니 어떤 색의 물감을 해야 잘 보일지 판단해서 하셨다. 검은색 종이에 어두은 색으로 하신 어르신은 기어이 그 부분을 다른 색으로 바꾸기도 하시고.^^

 

 

 

데칼코마니를 두어 번 하더니, 늦게 오신 분들께는 선생님처럼 설명하고 가르쳐주며 즐거워하셨다. 어르신들도 아이들처럼 새로운 활동을 좋아하신다. 날마다 심심하니까 10원내기 화투놀이를 하시는데 내가 가는 날이면

"공부하자고? 오늘은 뭘 할건데... 맛난 음식 대접하는 사람은 있지만, 요런 걸 가르쳐주는 건 선생님 뿐이야."

라고 하시며 나를 이뻐하신다.ㅋㅋ 데칼코마니 작품이 마를 동안 사포에 크레파스로 그림도 그려보시라 했더니
"오늘은 생전처음 하는 걸 두 가지나 하네!" 하면서 열심히 그리셨다.

 

 

 

노래를 좋아하는 김0희 어머님은 줄줄이 노래를 부르면서 하셨다. 노래를 불러도 항상 2절 3절까지 다 부르신다. 흥도 좋으시지만 기억력도 좋으시다. 소근육 활동이 치매예방에 좋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겁게 사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자 치매예방약이 되리라 생각한다.

 

 

거실 바닥에 줄줄이 말려놓고 니것 내것 비교하며
"요건 뭘 그렸어? 나무인가 꽃인가?" 자네 그림도 이쁘지만 내그림도 멋지네!"
감상하면서 한바탕 즐거워하더니 "어이쿠~ 뻗친다!" 하시며 벌렁 드러누워버리셨다.ㅋㅋㅋ

 

경로당 어르신들은 서로 잘 했다, 멋지다 칭찬하셨는데, 이 그림책 주인공인 돼지 피가소와 황소 무티스는 상대방 그림은 꼴도 보기 싫다며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이사를 갔는데~~~ 책 이야기 들어보시렵니까?^^


노란바탕의 표지에 그려진 돼지와 황소 캐릭터부터 아이들을 사로잡는다. 속지와 본문에 펼쳐지는 그림은 이야기를 읽기도 전에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먼저 그림만 주루룩 넘겨보는 것도 재밌다. 좌우 페이지가 다르게 펼쳐지는 그림 스타일과 색채의 화려함에 현혹된다. 왼쪽은 모두 돼지가 주인공인 돼지그림, 오른쪽은 황소가 주인공인 황소그림의 절묘한 대비가 표현법과 색감으로 확실하게 구별된다. 오호~~ 피카소와 마티스 그림의 특징을 절묘하게 잡아낸 '니나 레이든'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하여간 참신함이 돋보이면서 다름을 이해하는 책으로, 님도 책을 보시면 나의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공감하실 것이다.

자~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피가소라는 돼지는 남들은 진흙에서 뒹굴며 노는데 아주 이상한 그림만 그렸고, 무티스라는 황소도 씨름을 하지 않고 매일 그림만 그렸다. 크고 화려하고 대담하게! 둘은 곧 유명해졌고 모두들 피가소와 무티스를 만나고 싶어 시장통처럼 시끄러운 돼지마을과, 법석대는 황소마을이 되어 둘은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났다. 공교롭게도 둘은 조용한 마을의 이웃이 되었고, 사이좋은 친구로 지내던 이들은 서로의 그림을 흉보기 시작했다.

무티스는 피가소 그림이 ‘엉뚱한 돼지, 두 살짜리 그림, 진흙색’이라고 비꼬았고,
피가소는 무티스 그림이 ‘날뛰는 황소, 야수 같은 그림, 물 장난감’ 같다고 소리쳤다.

마침내 둘은 엉망이 되도록 싸웠고, 서로 뿌려댄 물감은 마치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것 같다. 정말 이 부분이 압권이다. ㅎㅎㅎ~아이들은 자기들도 이렇게 맘껏 물감을 뿌리며 놀고 싶어 했다.

 

둘은 그림으로 소리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둘은 자기 집에 어마어마한 그림을 그렸고, 서로 다른 그림이 보고 싶지 않은 돼지와 황소는 커튼을 닫아 버렸다. 서로의 그림이 보기 싫어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둘은 사이에 큰 담장을 만들었고 비로소 평화롭게 자기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서로가 보고 싶어졌고, 상대편의 그림이 나쁘지 않다며 인정하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화해의 방법으로 자기의 담장에 그림을 그렸다...... 서로의 그림이 궁금해 달려간 그들은 서로 배꼽을 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웃고 또 웃었다. 왜 웃었냐고요? ㅎㅎㅎ 그림을 보시라! 짠~~~~



             둘은 '피가소가 무티스를 만났을 때', '무티스가 피가소를 만났을 때'라고 제목을 붙였다.



                               하지만 모두들 그 작품을 '영원한 걸작'이라고 불렀다!

서로 다름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그림과, 굵은 글씨로 강조하는 글은 화가 피카소와 마티스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준다. 책의 끝에 '피카소와 마티스의 진짜 이야기는 이래요'라는 페이지에선 20세기 가장 뛰어난 입체파 피카소와 야수파 마티스의 생애와 우정을 알려주며 마무리한다. 내겐 창의성이 무엇인지 무릎을 치게 했고, 미래의 꿈나무들이 기발한 착상을 한 수 배울 수 있는 그림책으로 별 다섯을 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책이다. 

어르신들은 틀린 게 아니고 서로 다른거라고, 그걸 인정해주면 싸움 날 일이 없다고 잘 아신다. 그러면서도 속없이 내일 반찬할 묵을 양념장해서 먹자고 한 순자 어머니를 흉보셨다. 물론 순자 어머니가 가시고 난 다음에...^^ 일흔을 갓 넘은 어머니들 다섯이 하루씩 식사당번이 돼서 스무 명이 넘는 분들의 점심을 준비하신다. 그래서 누군가 빈찬이 될 만한 걸 뭘 가져오면 아꼈다가 다음 날 반찬하려는데, 자꾸 간식으로 먹자고 하면 속상하다고 하소연하셨다.

그림의 세계도 다름을 인정하고 어르신들의 생각이나 마음 씀씀이도 다르다는 걸 인정하시면 좀 기분이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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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9-22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기요, 흰색과 빨강색으로 데칼코마니 하신 어머님이요, 독특해서 눈에 확 들어오네요. 그러고보니 보라색 스카프 하신 것도 멋지시고...
오른쪽 맨 아래 사포 그림엔 국화를 어쩜 저렇게 잘 그리셨나요.
그림들이 대체로 밝아서 보는 사람 마음도 밝아지네요.
저 책도 물론 재미있겠지만 어르신들 그림도 재미있어요.

순오기 2012-09-23 23:17   좋아요 0 | URL
그 어머님이 노래를 잘하시는 분이에요. 즐거우면 노래가 줄줄이 줄줄이 흘러넘쳐요.
hnine님이 좋다하신 오른쪽 맨아래 사포그림도 바로 그 어머님이 그린 거고요.^^

2012-09-24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2-09-25 00:0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수퍼남매맘 2012-09-2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가소와 무티스라? 이름이 무지 재밌네요. 이 그림책 소장해야겠어요.
열심히 배우시는 어르신들 모습에 숙연해집니다. 보라색 스카프 하신 어르신의 미적 감각이 남다르시네요.

순오기 2012-09-27 17:11   좋아요 0 | URL
이 그림책 의미가 참 깊어요,
어머님들은 뭐든지 열심히 잘 하시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