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이 안와서 읽을 책을 고르다가, ㄴ님이 보내 준 최진실 엄마가 쓴 책을 골랐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였고, 지금도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라는 정옥숙 여사의 프로필과 8 페이지에 이르는 사진을 보고 시작하는 글을 읽었다.
지난 5월 27일, MBC 휴먼다큐 '진실이 엄마'를 봐서 책 내용은 짐작이 되었지만, 사실 그녀가 언제 세상을 등졌는지 날짜는 잊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 10월 2일, 2010년 3월 29일'이라고 적힌 목차를 보는 순간 '아~ 10월 2일, 오늘이 그녀의 3주기구나!' 놀라운 우연에 머리털이 쭈삣했다.
그녀가 남기고 간 어린 남매에 대해 늘 짠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는데, 공교롭게 그녀가 떠난날 새벽에 이 책을 읽게 되다니... 어린 남매가 외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잘 자라는 것 같아 마음을 쓸어내렸다.
사랑하는 엄마를 잃고 삼촌마저 떠난 후 한동안 환희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환의에게 삼촌의 죽음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할머니, 나 물어볼 게 있어. 삼촌이 왜 안 보여?"
난감해하는 내 표정을 바라보던 환희의 표정은 금세 울음이 터질 것처럼 변했다. 저도 이상한 예감이 들었는지 엄마고 보고 싶다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환희를 안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는 하늘나라에 가서 천사가 됐어. 그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그냥 재미있게 또 살면 되는 거야."
"할머니, 삼촌은 술 먹고 자는 거야?"
"응, 술 또 많이 먹었나 봐."
환희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이 술을 많이 먹어서 깨어나지 못하는 거지?"
"응, 환희 말이 맞아, 삼촌이 술을 많이 먹고 그냥 안 깨어났어. 계속 그냥 잤어.
그래서 삼촌이 하늘나라에 갔어."
설마 하다가 저도 놀랐는지 얼굴이 싸늘해지면서 하얗게 질리는데, 뭐라고 아이를 위로해야 할지 당황스러우면서 나도 그만 슬퍼져서 눈물이 흘렀다. 환희는 나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호수처럼 깊은 슬픈 눈빛을 갖게 된 환희....
환희는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꼭 끌어안아주었다.
"삼촌이 환희를 많이 사랑했는데 이제 환희를 사랑해 줄 사람이 없어 어떡하지?"
"괜찮아, 괜찮아, 할머니하고 살면 되잖아."
환희는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기어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게 만든 환희, 이런 아이들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하루는 환희가 잠에서 깨더니 신이 난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아침부터 환희가 왜 저럴까 궁금해서 다가가니 간밤에 좋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할머니, 삼촌하고 엄마 꿈을 꿨어."
환희는 말할 때 조근조근 침착하게 설명을 잘한다. 어린아이지만 환희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가족이 모두 사우나에 갔어. 엄마가 내 때도 밀어주고, 그리곤 점심으로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는데 황금 스테이크가 나왔어. 엄마가 천사옷을 입고 스테이크를 썰어서 내 입에 넣어줬어. 밥을 먹고 한강에 바람을 꾀러 가서 연도 날리고 재미있게 놀다가 엄마가 이제 시간이 됐고 가야 한다고 했어. 그리고 나를 재워줬는데 눈을 떠보니 아침이잖아."
"그래? 그런데 왜 할머니는 한 번도 꿈을 안 꾸지? 할머니도 보고 싶은데."
환희는 다 방법이 있다면 내게 비법을 가르쳐주었다. 엄마와 삼촌 사진을 베개 밑에다 넣고 자면 꿈을 꾸니까 꼭 그렇게 해보라는 것이었다. 내가 환희 말을 잊고 깜박했더니 환희가 마못 심각하게 말했다.
"할머니, 엄마 사진하고 삼촌 사진을 베개 밑에 놓고 자라니까."
그러고는 액자에 끼워진 진실이와 진영이 사진을 빼서는 내 베개 밑에 넣어주었다.
내 이웃에 살던 그녀도 세상을 등진 후, 어린 딸의 꿈에 나타나 책도 읽어주고 같이 얘기도 한다고 그랬는데... 자식을 두고 먼저 간 엄마는 수호천사가 되어 아이 곁을 지키는가 보다. 어미로서 어찌 발이 떨어지겠는가...
그녀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 아이들에게 남긴 시가 있다.
사랑하는 환희,준희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구나!
그저,
사랑하는 내 아들, 내 딸
상처받지 말기를......
찡그리지 말기를......
아파하지 말기를......
울고 있지 않기를......
체념하지 말기를......
사랑받고 있기를.....
사랑하고 있기를......
그리고, 사랑할 수 있기를......
너희들밖에는 안길 수 없는 엄마의 품을 잊지 말기를.
그동안 엄마의 사랑으로 자랐고, 지금도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는 남매가 엄마가 남긴 시처럼 자라기를......
검색해보니 엄마의 묘에 간 아이들의 사진이 올라 있다. 3년이 흘렀으니 아이들도 제법 자랐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634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