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장꽃 - 김환영 동시집
김환영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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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지역도서관에서 다 읽은 책 2권 가져오면, 안 읽은 책 2권으로 바꿔주는 행사에 참여해서 건진 책이다.
김환영씨는 우리가 익히 아는 '마당을 나온 암탉' 삽화를 그렸고, 종이밥, 과수원을 점령하라 등 따뜻한 느낌의 삽화로 기억되는 화가다. 깜장 꽃 제목 옆에 작게 쓰인 '김환영'이라는 이름을 본 순간 '화가인 줄 알았는데 동시도 쓰는 시인이었어!' 라는 속말을 읊조리며 망설임없이 낙점했다.^^ 

시골에 살면서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는 시인이 부럽고, 화가의 시집이라 멋진 삽화를 감상하는 횡재도 즐겁다. 
고흐의 밀밭이 떠오르는 첫 그림, 시골집 변소와 눈높이를 낮춘 민들레가 정겹다. 금대교회가 보이는 금대리 풍경화도 좋다.

 
 

삽화를 감상하다 맛난 첫째로 수록된 '봄'에 빵~~~ 터졌는데, 이건 시골집의 푸세식 변소를 경험한 시골 출신이라야 제대로 공감하겠다. 난 중학교 2학년까지 충청도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짧은 세 줄의 동시에 박장대소하며 엉덩이가 움찔!ㅋㅋ 



똥을 눴다.
똥물이 엉덩이까지 튀어 오른다.
똥에도 봄이 왔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예쁜 표제작 '깜장 꽃', 절로 내고향 풍경이 떠오르는 시, 앙증맞고 깜찍한 시,
한 편 한 편 시를 읽으며 고향에 온 듯, 유년으로 돌아간 듯 마음이 푸근하고 따뜻해진다. 

깜장 꽃

작약꽃 봉오리가 동골동골 맺혔습니다 

꽃소식 들은 개미들이 물빛 같은 길을 따라 깨물깨물 줄을 지어 올라갑니다. 

작약은 발등이 간지러워 모가지가 간지러워 고개를 잘랑잘랑 흔들어 봅니다. 

분홍 꽃도 피기 전에 몰려든 손님들로 깜장 꽃만 간질간질 피었습니다.
 


날고, 기고 

말벌은 말벌 집 둘레를 붕붕거리며 날고, 

우리는 말벌 집 지날 때마다 벌벌거리며 기고 


악어 지퍼 

내 바지엔
악어가 산다 

고추를 한 번 물면
안 놔준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모음도 좋고, 오뎅 파는 아줌마의 이야기는 세상 모든 부모와 자식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자식 

오뎅 파는 아줌마가 놀러와서는,
"자식은 전생이 빚쟁이래요. 그래서
에미 애비 얼굴만 보면 맨날 맨날
돌 달라 돈 달라 하는 거래요." 

이야기를 듣던 우리 엄마가,
"이 세상에 자식 아니었던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는 아줌마는 자식 아니가메?
어디 보자.
배꼽이 있나, 없나?" 

그러면서 엄마가
오뎅 파는 아줌마 치마를 들추려니까
아줌마가 깜짝 놀라 도망가면서
배꼽을 쥐며 웃는다
엄마와 함께
깔깔깔 웃으신다.
 


옳은 말씀이다. 이 세상에 자식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나? 자식이 부모되고, 그 부모 또한 자식이었거늘...ㅋㅋ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3 

아무리
가까운
동기간에도 

굴뚝과 굴뚝
보일락 말락 

아무리 가까운 
동무 사이도 

밥 짓는 연기
보일락 말락
 


1.2.3.4부로 나뉜 짧은 시편과 삽화에 잠시 마음을 빼앗겨도 좋을 동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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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9-23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저기서 이 책 소개를 자주 보고 있어 눈에 찜 해두고 있는 상태입니다.
악어 지퍼...ㅋㅋㅋ 기억했다가 오늘 아침 먹을 때 아이에게 들려줘야 겠어요.

순오기 2011-09-23 13:00   좋아요 0 | URL
김환영이란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눈에 띌 책이죠.
악어 지퍼~ 다린이에게 들려주셨나요?^^

수퍼남매맘 2011-09-23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가 미처 보지 못하고 반납했어요. 지난 번 북 콘서트에 뵈었는데 인상이 참 좋으셨어요. 뭐랄까? 예술가의 포스가 느껴지면서도 순수해 보이셨어요. 한 잔 한듯한 빨간 코가 인상적이었답니다.

순오기 2011-09-24 00:53   좋아요 0 | URL
오~ 김환영 화가를 보셨군요.
빨간 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