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중학교를 졸업해서 엄마도 자동으로 학부모독서회를 졸업애야 맞지만,
중학교 도서실에서 빌려 온 책을 반납하고, 다시 빌려오느라 매월 독서모임에 나간다.
2009년부터 2년간 독서회 주관으로 작가초청 강연을 진행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중간역할을 하게 됐다. 

2009년엔 만화가 최규석, 2010년엔 김남중 작가를 모셨고
2011년엔 청소년 시집 <그래도 괜찮아>의 안오일 시인을 초청한다. 

일시: 2011. 7. 5. 오후 2 : 30
장소: 하남중학교 후관 2층 방과후공부방
대상: 하남중학교 신청학생과 학부모독서회원 

안오일 시인은1967년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7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으고,
2009년 제8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을,
2010년 중편 동화 <그래, 나는 나다>로 한국안데르센상 우수상을
2010년 단편 <올챙이 아빠>로 눈높이 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래도 괜찮아- 

기말고사 삼 일 앞둔 오늘 저녁
아버지는 또 술에 취하시고
집 나간 엄마 대신 꿀물을 타는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푸념을 늘어놓으시고
눈치 없는 귀뚜라미는
귀뚤귀뚤 울어 대고 

(중략)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내려다보는데
내 신발코가 불안하게 나를 쳐다본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문처럼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괜찮아......
나는 신발코를 만져 주었다
나를 어루만지듯  


-빵점 아빠 백점 엄마- 

엄마가 편찮으셔서
오랜만에 가게 문을 닫은 날 

엄마가 흰죽을 쑤고
후륵후륵 아빠는 드시고
엄마가 핼쓱한 얼굴로
보글보글 육개장을 끓이고
아빠는 쩝쩝 한 대접이나 드시고

"설거지는 조금 있다 내가 할 테니
건드리지 말고 꼭 쉬어요!"
뻥뻥 큰소리치고는
쿨쿨 푸푸 낮잠 주무시는 아빠

코고는 아빠 보며 
피식 웃다가
수화기 살짝 내려놓고 걸레질하는 엄마
달그락달그락 설거지하는 나 

엄마가 편찮으신 건지
아빠가 편찮으신 건지
  

 

-사랑하니까-

아파서 누워 있던 날
엄마가 곁에 누워 안아 줬어요

쿵덕 쿵덕 쿵덕 쿵덕
엄마의 심장 소리 들려왔어요

콩닥 콩닥 콩닥 콩닥
내 심장 소리 엄마도 들릴까요?

엄마도 나도
심장이 두 개가 됐어요. 


  -화려한 반란- 

닦아내도 자꾸만 물 흘리는 그녀
헐거워진 생이 요실금을 앓고 있다
짐짓 모른 체 방치했던 시난고난 푸념들
모종의 반란을 모의하는가
아슬아슬 몸 굴리는 소리
심상치 않다, 자꾸만 엇박자를 내는
그녀의 몸, 긴 터널의 끄트머리에서
슬픔의 온도를 조율하고 있다
뜨겁게 열 받아 속앓이를 하면서도
제 몸 칸칸이 들어찬 열 식구의 투정
적정한 온도로 받아내곤 하던
시간의 통로 어디쯤에서 놓쳐버렸을까
먼 바다 익명으로 떠돌던
등 푸른 고등어의 시간,
연하디연한 분홍빛 수밀도의 시간
세월도 모르게 찔끔찔끔 새고 있다
입구가 출구임을 알아버린
그녀의 깊은 적요가 크르르르
뜨거운 소리를 낸다, 아직 부끄러운 듯
제 안을 밝혀주는 전등 자꾸 꺼버리는
쉰내 나는 그녀 아랫도리에
반란이 시작되었다

 

올챙이 아빠   

난 문득 아빠가 그리워지면 컴퓨터를 켜서 정자 사진을 본다. 엄마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정자를 기증받아 나를 낳았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나면 그거라도 보는 거다. 꼭 올챙이 같아 기분은 썩 좋지 않다.

"뭘 보고 있니?"
"아빠."

엄만 얌체다. 나한테 미안해야 하지 않나? 내 허락도 없이 나를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결혼 같은 거 하기 싫었음 아기도 안 낳았어야지. 

"넌 좋겠다. 아빠 얼굴을 모르니 많은 얼굴을 상상할 수 있짆아. 네가 원하는 얼굴로 만들 수도 있고."
"그건 엄마 맞이 맞는 것 같아."

"그것도 네 맘대로 상상하면 되겠네. 의사, 변호사, 선생님, 작가, 화가, 사업가, 아니면 운동선수."
"아빠가 무슨 조립형 로봇이야? 내 맘대로 조립해서 만들게. 엄마는 참 못 말려." 

엄마가 아무리 등을 밀어줘도 목욕탕에서는 아빠처럼은 못한다. 같이 탕 속에도 못 들어간다. 서로 거기를 쳐다보며 크기를 재보지도 못하고 수염깎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한다. 

아빠가 없다는 거 가끔 아쉬울 때가 있지만 괜찮다. 엄마가 있으니까. 하지만 아빠와의 추억이 하나도 없다는 게 왠지 허전하다. 상우가 부럽다. 기억은 못하더라도 사진이라도 있다면... 

"오늘만, 딱 오늘 하루만 아빠 해 줄게, 추억 만들자."
"......."
"오늘 하루만 나를 아빠라고 불러. 알았지?"
"엄마."
"에헴! 엄마 말고 아빠라니까."

엄마랑, 아니 아빠랑 나는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고 놀이 기구도 많이 탔다. 사진 빼면 액자에 끼워 놓을 거다. 이 사진에는 아마 엄마가 빠져 있겠지?
나는 아빠가 없었지만 엄마 남편이 없었다. 언젠가 하루 날 잡아서 내가 딱 하루만 엄마 남편 노릇 해줘야지. 뭘 해 줄지 미리 적어놔야겠다.  (올챙이 아빠, 발췌 인용) 


예전에 허수경 혼자 정자은행을 이용해 아기를 낳았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아이가 아빠를 가질 기회를 원천봉쇄한 폭력이라고 심하게 분노했었다.
성인이 된 여자나 남자는 배우자를 선택할 권리를 갖지만 자식은 부모를 선택하지 못한다.
이제는 여자들이 정자은행을 이용해 혼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세상이라
아이는 부모를 선택하기는 커녕, 아빠를 가질 권리도 박탈당한다.
<올챙이 아빠>도 기증받은 정자로 시험관 아기로 태어난 아이와 엄마의 얘기다.
하지만, 동화에는 반전과 감동이 숨어 있다.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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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7-05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이 참 따뜻하네요. 빵점아빠, 백점엄마 재밌어요.
올챙이아빠도 쿨한데요~~~

순오기 2011-07-05 11:19   좋아요 0 | URL
중딩 아들을 둔 엄마 시인인데 시선이 참 따뜻하지요~
올챙이 아빠도 좋아요~ 허수경한테 분노했던 내 감정을 위로하듯 코드가 딱 맞았어요.^^

하늘바람 2011-07-05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챙이 아빠. ^^
네 대교 눈높이 당성작이지요 눈높이 상을 준비하고 맞이하느라 참 고군분투했던 게 떠오르네요

순오기 2011-07-06 04:23   좋아요 0 | URL
대교에서 고생한 하늘바람님~ 독자들이 그 수고를 알아주겠지요.
올챙이 아빠~ 잘 쓴 동화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