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좁은 아빠 푸른숲 어린이 문학 23
김남중 지음, 김무연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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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 인생 단면을 보는 것처럼 여러가지로 감정이입이 된 작품이다. 
딱 요렇게 한 줄 썼는데, 고1 막내가 돌아와서 잠시 밀쳐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어제 이 책 제목 보면서 그저 그런 뻔한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빨려들어가 단숨에 읽었어. 현주 아빠가 우리 아빠랑 겹쳐져서 제대로 감정이입이 됐달까?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다른지 실감했어." 
"흐흐~ 너도 그랬냐? 엄마도 완전 감정이입했잖아. 술고래 현주 아빠 정대면씨처럼 아빠가 술 먹고 주사를 부리지는 않지만 '에라 모르겠다, 술이나 먹자'는 소통부재의 아빠를 보는 것 자체가 지옥이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 
"그래, 아빠 술 마시면 엄만 엄청 싫어했지."
"특히 아빠가 보해 대(大)ㅅ병을 식탁 옆에 세워두는 걸 끔찍히 싫어했지. 자식은 본대로 배운대로 한다고... 엄마는 술병이 안보이게 장식장에 넣고, 아빠는 술병을 꺼내서 마시고 또 식탁 옆에 세워두고.... 그거 때문에도 진짜 많이 싸웠다. 아빠는 엄마가 안 키웠으니까 책임질 수 없지만, 너희는 엄마가 키우니까 술 먹는 거 보고 자라는 거 정말 싫었어. 술 먹는 대물림을 너희대에서 끝내고 싶었거든." 
"맞아, 엄마. 그런데 현주 아빠의 술버릇을 고치려던 작전이 진짜 위암을 발견한 것처럼, 우리 아빠도 어딘가 고장나 있는 거 아닌가 겁난다."
"엄마도 그래......  그런데, 엄마는 아빠 뱃속까지 다 본 여자다.ㅋㅋㅋ"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세 살때, 아빠가 맹장수술을 해서 너랑 둘이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엄마를 들어오라는 거야."
"왜?"
"맹장수술 하려고 배를 열었는데, 게실염이라고 대장 돌기에 염증이 있어 그냥 두면 암이 될 수도 있다며 잘라내야 한대. 그러면서 뱃속을 보여주더라. 그땐 아빠가 잘못될까 봐 이 남자만 살려주면 뭐든 다 할 거 같았는데.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참 많이도 싸우며 살았다.ㅋㅋㅋ"
"그런 일이 있었어? 난 몰랐네...."
"넌, 어려서 생각나지 않겠지만....  엄마가 완전 경직돼서 수술실에서 나왔을 때 네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엄마 기도하자!" 그러는데, 아~ 이건 애가 하는 말이 아니구나 싶더라. 위암수술하는 아빠를 살려달라고 기도한 현주처럼, 너도 엄마에게 힘을 주던 보석같은 아이었어."
"아~ 내가 그랬다는 걸 왜 이제 말해? 그리고 '보석같은 아이였어'라니 왜, 과거형이야? 내가 지금은 보석이 아니란 말이지?"
"예전에 이 얘기 여러번 했는데,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언니는 엄마가 이 얘기하면, 머리끝이 쭈볏~ 전율이 인다고 했어. 엄마도 그렇고... 흐흐흐, 넌 지금도 여전히 엄마에게 빛나는 보석이야. 네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지, 정말 사는 맛이 안 났을거야."
"아~ 그렇구나. 난, 정말 잘해야겠어. 다시 정록의 자리를 찾아야지. 금욜부터 기말시험인데 공부도 열심히 하고...... " 
"우리, 아빠가 술먹는 얘기하다 아주 바람직한 결론이 나왔네.ㅋㅋㅋ."   

 여기까지 우리 모녀 한밤의 생생 토크다.^^

"양심보다 돈! 사랑보다 돈! 사람보다 돈! 돈이면 다 되는 이 더러운 세상! 정말 싫다! 정말 싫어!"
 귀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저 혀 꼬인 소리가 정말 싫다. 정문 슈퍼 앞 인도에 내놓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남자가 보였다. 와이셔츠 자락이 허리띠 위로 다 빠져나온 배불뚝이 아저씨. 아빠였다. (10~11쪽) 

술만 마시면, 세상 고통을 다 짊어진 듯 허세 부리는 우리들의 아버지다. 현주는 온 동네 구경거리가 되는 아빠가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현주 아빠 배불뚝이 아저씨의 모습까지 닮은, 내 남편과 헤어지는 것이 최선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논술 과외를 하는 현주 엄마 진정란 씨 모습에 내가 겹쳐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현주 엄마처럼 남편을 달래고 어르며 다독거리지 못한다. 아내들은 남편을 '큰애기'라 생각한다는데, 내 남편은 하마만큼 커서 '큰애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말을 내 딸들에게 종종 했었다.^^ 날마다 술먹는 남편에게 진저리치는 현주엄마에게 1차 감정이입이 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먹어 댄 술 때문에 위암수술을 받은 현주 아빠와, 어린 나이에 암이 재발돼 항암치료를 받지만 씩씩한 척 현주 남친을 자처하는 선우가 안쓰러웠다. 암으로 돌아가신 친정아버지와, 여섯 차례의 항암치료로 머리칼이 다 빠지고 음식을 먹지 못하던 시어머니, 위암수술로 젓가락처럼 빼빼 마른 큰동서 모습이 떠올라 2차 감정이입이 됐다. 

특히 수술 후 괄약근 조절이 안돼 어린 딸 앞에서 바지에 똥을 묻히고 아내만 찾는 현주 아빠는, 환자복에 실례를 하고 며느리에게 씻김을 받으며 한없이 무너지던 시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우리 어머님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걸 정말 못견뎌 하셨다. 가족이란 남에게 보이지 못할 온갖 치부를 공유하면서, 서로 힘이 되고 응원하며 든든한 뿌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다고 다 이기는 건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야 이길 희망이 있는 거야. 너희들, 잘 봐 두어라. 아빠가 어떻게 싸우는지, 어떻게 이기는지, 혹시 지더라도 어떻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지 말이야. 새 목표가 생겼어. 그게 너희한테 보여 줄 수 있는 전부라도 괜찮아. 어떻게든 난 멋진 아빠로 기억되고 싶어."(140쪽)  

"너희가 내 뿌리야. 아빠는 그걸 깜빡 잊고 있었어. 이제는 절대 잊지 않을게. 고맙다, 얘들아. 나도 너희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 줄게."(160쪽)

스무 살의 아들을 어둠 속에서 바라보던 아버지, 먼저 말하지 못하고 아들이 불러주기를 기다렸을 아버지. 친해지거나 화해할 기회조차 없어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들들이 아버지를 기억하며 울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에도 감정이입이 된 독서였다. 일정 부분 작가의 체험이 녹아 들어 독자들도 공감하지 않을까.... 

지난 주말, 아버님은 여든 셋의 생신을 맞으며, 7년 전 앞서가신 어머니가 곁에 없음을 많이 아쉬워 하셨다. 살아계실 땐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은 양반이 혼자 7년을 보내고 어머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생겼나 싶어 짠했다. 부부 사이든 부모 자식간이든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라는 대중가요 노랫말은 진리다.^^


'어린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동화가 그런 어린이를 자라게 하며, 우리가 관심을 가지면 전쟁, 폭력, 배고픔, 차별, 가난, 질병을 대부분 없앨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세상 모든 것이 동화가 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가족 사진이 정겹다. 미모가 돋보이는 엄마와 한 눈을 찡끗한 작가 아빠, 팬티를 둘러 쓴 익살스런 아들 둘, 아이들 어릴 때 이런 사진을 찍어두는 것도 재밌겠다.ㅋㅋ  

*165쪽 아래에서 8째줄~ 그 그렇고 ==>그건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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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30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6-30 21:56   좋아요 0 | URL
쌩유~^^

수퍼남매맘 2011-07-0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의 리뷰를 보니 이 책이 무지 읽고 싶어지네요. 전혀 부부싸움 안 하실 것 같았는데...

순오기 2011-07-01 20:59   좋아요 0 | URL
어우~ 말도 마세요, 우린 정말 끔찍히도 많이 싸웠어요~ 오죽하면 이혼하려고 서류 다 만들고 법원까지 갔겠어요.ㅋㅋ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재밌어요, 꼭 읽어보세요. 내 리뷰에는 잘 나타나지 않았지만, 현주의 자칭 남친 선우와 현주 이야기는 아이들도 좋아할 거에요.^^

2011-07-02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7-04 00:51   좋아요 0 | URL
님 서재에 답글과 문자로 확인하셨죠.^^

희망찬샘 2011-07-03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남중님의 작품이군요. 기대가 되는걸요.

순오기 2011-07-04 00:51   좋아요 0 | URL
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