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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새는 울지 않는다 ㅣ 푸른도서관 46
박윤규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2010년 3월 31일 박윤규 작가님의 쪽지를 받고, 80년 5월 광주를 다룬 청소년 소설 <방울새는 울지 않는다>의 출간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표지는 그해 5월의 잿빛 현장을 배경으로 고수의 장단에 맞춰 고운 한복의 판소리 소녀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소설은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씨의 영혼결혼식이 진행되는 망월묘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윤상원 열사는 '서른 살 쯤 되어 보이는 곱슬머리 청년'으로 묘사되어, 사진으로 본 윤상원 열사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또한 내가 이용하는 도서관 공원에 임방울 기념비가 있어, 임방울 선생의 사랑이야기는 더욱 애절하게 다가왔다. 공교롭게도 윤상원열사와 임방울 선생은 내가 사는 지역구 출신이라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오월문학상을 수상했던 작가는 5년 전 망월묘역을 참배하고 방명록에 "방울새는 울지 않는다'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그때 동행했던 아들의 "어떻게 이런 짓을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아직도 잘 살고 있느냐?"는 질문에 선뜻 설명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을 짧은 말로 설명할 수 없어 자료를 모으고 판소리를 배우며 방울새가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5월 광주를 설명하기 어려운 어른이나, 광주의 진실을 알고 싶은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겠다.
표지의 소녀는 전국 어린이 명창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쥔 방울이다. 할아버지가 춘향가의 쑥대머리로 유명한 명창 임방울 선생을 좋아해서 지어준 이름이다. 방울이는 말문이 트일 때부터 쑥대머리를 부르고 판소리를 배우며 자랐다. 80년 5월, 방울은 어린이 명창이 되고 생일과 초경을 맞이했다. 방울이는 북장단을 맞추는 고수 민혁 오빠와 춘향이 같은 사랑도 하고 싶고 국창이 되는 꿈도 가진 조숙한 소녀였다.
하지만, 그해 오월 미처 꽃도 피우지 못하고 스러진 방울이는, 민혁 오빠가 선물한 방울새의 몸을 빌린다. 방울새가 된 방울이는 터미널과 학교 앞, 금남로와 도청지하실까지 날아들어 민혁오빠를 애타게 찾는다. 군인들은 왜 광주시민을 몽둥이로 때리고 총을 쏘아 죽이는지... 시민들은 왜 무자비한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하는지... 광주시민을 학살한 신군부세력과 전두환을 거론하며 오월 광주를 증언한다. 산자의 죄의식에 눌려 있던 민혁은 비로소 득음을 하고, 영령들의 한을 소리로 위로한다. 도입부 영혼결혼식의 노래극 <넋풀이-빛의 사람들>의 주제가 '님을 위한 행진곡'과 마지막 죽은자를 위한 <오월의 노래> 씻김굿 소리로 마무리 된다.
작가가 구사한 전라도 사투리는 광주살이 20년이 넘은 내겐 제법 익숙한 말이라 입에 착착 붙었다. 거론되는 지명도 어디쯤이고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충장사 길목은 선산이 있어 자주 오가던 곳인데, '작것'이란 별명이 붙게 된 '작고개'는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방울새가 울지 않는 이유는 새들은 눈물샘이 없기 때문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눈물샘이 없는 방울새처처럼 광주시민의 눈물샘은 이미 말라버려 울지 못하는 건 아닐까? 눈물은 흐르지 않아도 '키리키리 찐찐 찌릉찌릉...' 방울새 울음 소리를 듣는 사람은, 하늘과 땅 사방에서 들리는 광주의 통곡도 들을 것이다.
"아따 시상에 몰강스럽기도. 나가 일제 시대도 겪고 육이오도 치렀지만 요로코롬 독하지는 않았어라. 대명천지 사람 사는 시상에 뻔히 보는 데서 마구 찌르고 박살 내고. 이건 안 될 일이제. 암먼, 암먼."(90쪽)
"이번 사태의 발발 원인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일부 군부의 정권 욕심에 있습니다. 그들은 하극상 쿠테타인 12.12 사태로 군권을 거머쥐었고, 그때 이미 정권을 가로챌 기미를 보였습니다. 국민들은 이에 반발했고 정상적인 민주 정부를 세울 걸 요구했지요. 하지만 그럴 의도가 없었던 군부는 계엄을 확대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왜 하필 여기 광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광주는 군부에 대한 반발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가장 드높고, 또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다른 데로 확대될 가능성이 적지요. 그래서 광주의 민주화 요구를 눌러 본을 삼기로 작정한 듯이 보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직접 목격했듯이 계엄 군부의 하수인인 공수부대에 의해 수많은 학생과 시민이 무참하게 학살되었습니다.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 그리고 우리는 이 같은 만행에 맞서 봉기한 것입니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자신과 이웃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단순히 살기 어려워서 일어난 민중 봉기기가 아니라, 권력을 잡으려는 군인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항쟁입니다." (127쪽)
자주 쓰이지 않는 우리말 표현(소소리바람, 머슬머슬, 갈걍갈걍, 아슴아슴, 아령칙하다, 씨억씨억, 소마소마,시망스런, 이마지두, 두억시니, 어둑신한, 찜부럭거리다, 또랑광대, 몰강스런, 오소소, 꿈쩍꿈쩍, 야차, 우렁우렁한, 잠포록, 오살할, 비손...)과 판소리 용어(더늠, 추임새, 중중모리, 계면조, 청구성, 시김새, 비가비, 아니리, 발림, 중중몰이, 종모리, 자진모리...)는 작가의 수고로운 흔적으로 감지되었다.
작가는 후기에서 '서불진언(書不盡言) 언불진의(言不盡意)-글은 말을 다할 수 없고, 말은 마음을 다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 책으로 광주의 아픔과 역사의 진실을 안다면 작가의 부채감을 덜 뿐 아니라 산자들의 죄의식도 조금은 덜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80년 5월 광주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은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