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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빛 김만덕 ㅣ 푸른숲 역사 인물 이야기 1
김인숙 지음, 정문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2월
평점 :
창비 중학교 1-1 국어 교과서 첫 단원에 실린 '제주의 빛 김만덕'의 원작도서다. 교과에 실린 요약된 글만 읽는 것보다 전체를 보면 김만덕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김만덕은 객주를 차려 성공한 사업가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사람이고, 5만원 권 화폐 주인공으로 신사임당과 경합을 벌였을 만큼 위대한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사임당보다는 김만덕이 5만원 권 화폐의 주인공이 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덕이 사임당보다 덜 알려졌기 때문이지 사임당보다 훌륭한 인물이다. 자기 것을 아끼지 않고 나눌 줄 알았던 김만덕은, 우리시대 부자들이 본받아야 할 룰모델이 아닐까. 이렇게 이타적인 삶을 산 사람들이 진정한 위인으로 추앙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작년에 드라마로 방영됐던 거상 김만덕에서는 한양에서 유배 온 선비의 딸로 그려졌지만 사실과 다르다. 이 책에선 그의 출생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데 <아름다운 위인전>에는 육지와 제주를 오가며 장사를 하던 아버지 김응렬과 어머니 고씨 사이에 태어났다고 기록되었다. 또한 <한국사 전>에서는 "김만덕(1739~1812)은 정조 20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양인 신분의 만덕은, 열두 살에 풍랑에 아버지를 잃고 콜레라로 어머니마저 여의고 고아가 되었다. 오빠 만석은 동생 만재를 데리고 남의집살이를 떠났고, 만덕은 이웃의 대정할머니의 보살핌을 받다가 기생 설향의 수양딸이 된다. 설향은 만덕에게 부엌일 대신 기예를 가르치고 열일곱에 관아의 기적에 올렸다. 양인이면서 천인인 기생의 신분으로 살아야 했던 만덕은 제주 목사에게 기적에서 빼줄 것을 부탁한다. 엄격한 신분제를 따르던 조선은 병자호란 이후 돈으로 양반을 사는 등 신분제도가 흔들리고 세금을 내던 양인의 수가 줄어들었다. 부모 가운데 한쪽이라도 노비면 그 자식은 당연히 노비가 되는 종부 종모법을 따랐지만, 양인의 수를 늘리기 위해 1731년 노비 종모법으로 바뀌었다. 즉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신분이 세습되므로 아버지가 노비여도 어머니가 양인이면 그 자식들은 노비가 되지 않는 제도다.
나이 스물이 넘어 양인의 신분을 되찾은 만덕은 객주집을 차려, 눈 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물건만을 거래하여 거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 책에서 '자냥'이란 말이 여러번 나오는데, 아끼고 절약하는 걸 이르는 제주말이다. 만덕은 어려서부터 몸에 밴 '자냥'하는 삶이었다. 거상이 되었어도 소박한 밥상과 검소한 옷을 입으며 재물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백성을 도우며 살겠다던 만덕은 1792년부터 시작된 기근에 자신의 재물을 털어 죽어가는 제주민을 먹여 살렸다. 객주 앞에 솥단지를 걸고 죽을 쑤어 주린 백성을 먹였으며, 곡물을 사재기 한 이웃 객주의 농간에 속수무책 당할수 없어 뭍으로 사람을 보내 곡물 오백 석을 구해왔다. 그 중 오십 석은 사람을 먹이는 일에 쓰고, 사백 오십 석은 관아로 보내 주린 백성에게 나누어주게 했다. 제주 목사 유사모가 만덕의 공덕을 조정에 알리자 감동받은 정조는 만덕의 소원은 무엇이든 들어주라 명을 내렸다.
"다른 소원은 없습니다. 오로지 서울에 올라가 임금이 계시는 궁궐을 우러러 뵙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둘러보는 것이 소원입니다."(129쪽)
당시엔 '월해금법'이 있어 여자는 절대로 바다 건너 뭍으로 나갈 수 없었다. 만덕은 쉰여덟, 정조 20년(1796년)에 한양에 가서 좌의정 채제공을 만나고 '의녀 반수'의 벼슬을 받아 정조를 배알한다. 벼슬이 없는 여자는 임금을 뵐 수 없으니 내의원 의녀 가운데 수석 의녀의 벼슬을 받은 것이다. 정조는 만덕의 손목을 잡고, 죽어가는 백성의 목숨을 구한 귀한 손이라며 칭찬하였다 한다.
만덕은 이듬해 봄 꿈에 그리던 금강산을 구경하고 제주로 돌아오는 길에 채제공이 만덕의 덕행을 기록한 '만덕전'을 받아 온다. 제주 백성 모두가 만덕을 환영하며 한양과 금강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존경의 뜻을 담아 '만덕할머니'로 불렀다. 만덕은 일흔네 살이던 1812년(순조 12년) 10월 22일 세상을 떠났고, 그 뒤 1840년 제주로 유배 온 추사 김정희는 만덕의 이야기를 듣고 나무판에 '은광연세(恩光衍世)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번진다' 는 글을 새겼다.
책 뒤에는 제주의 역사와 생활 및 관습에 대한 자료와 사진이 실렸는데, 정작 김만덕에 관한 자료는 실리지 않아서 아쉽다.
네이버 검색만 해도 모충사의 김만덕 기념관이나 만덕제, 채제공의 번암집에 실린 '만덕전'도 나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