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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동백꽃 (양장) ㅣ 클래식 보물창고 6
김유정 지음 / 보물창고 / 2010년 8월
평점 :
2010년 국정교과서가 검인정으로 바뀌기 전, 중학교 2학년 2학기 생활국어에 발화의 예시문으로 <동백꽃>이 수록되었다. 하지만 올해는 2학년도 검인정 교과서로 바뀌기 때문에 어느 출판사의 교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수록 작품이 달라진다. 교과서 수록여부를 떠나 중학생이면 이런 정도는 읽어야 한다. 물론 유정의 생애 및 작품 배경이 된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상황을 알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된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우리 농촌을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식민지 조선의 피폐해진 농촌을 들여다볼 수 있다. 김유정은 도시하층민이나 농촌의 가난한 소작인들을 대상으로 한 그의 소설에서 걸직한 구어체의 문장으로 해학적인 효과를 두드러지게 한다. 당시는 3%의 부농과 27%의 자작농을 제외하면 70% 이상이 소작농이었다고 한다. 유정은 농촌의 피폐성을 뻔히 알기에 슬쩍 던져 놓음으로 풍자와 해학성을 드러낸다.
김유정은 1935년에 '소낙비'를 들고 나와 1937년 사망하기까지 2년이라는 짧은 기간 작품활동을 했지만, 이 시기의 어떤 작가보다도 사랑받고 기억되는 작가다. 명창 장녹주를 향한 그의 짝사랑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으며, 금광을 했던 매형 밑에 있었던 경험이 '금따는 콩밭'이나 '노다지' 같은 작품으로 나타났다. 그는 중학교 때 하모니카의 명수였으나 후에는 결핵으로 두 절을 따라가기도 숨이 차서 쩔쩔맸다고 한다.(모던수필/방민호/ 향연 258~263쪽 참조)
표제작인 봄봄과 동백꽃은 같은 이름의 '점순'이란 여자애와 머슴살이 하는 '나'와, 또 다른 '나'를 주인공으로 비슷한 상황의 서로 다른 이야기다. 봄봄의 열여섯 살 점순이와 동백꽃의 열일곱 살 점순이는 마름의 딸로 감정을 표하는 적극성을 보면 동일인물 같아 연작소설로 봐도 좋을 듯하다.^^
<봄봄>은 딸 점순이가 자라면 성례를 시켜준다며 머슴살이를 시키는 장인(봉필)에게 속아 일만 하는 쑥맥같은 나가 주인공이다. 3년 일곱 달을 죽어라 일해도 성례를 시켜줄 생각도 안하는 장인에게 대들지만, 아직 덜 자랐다는 말에 번번히 당하고 만다. 열여섯 살 점순이는 이런 '나'가 답답해 방법을 알려주지만, 결정적일 때 장인 편을 든 점순이 때문에 속절없이 매타작을 당한다.
<동백꽃>은 열일곱 살 점순이가 좋아하는 '나'의 닭을 괴롭히며 관심을 끌어보지만, 끝내 점순이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는 '나'를 알싸한 동백꽃 향기속으로 쓰러뜨린다. 봄봄의 '나'와 마찬가지로 동백꽃의 '나'도 순진하고 우직해서 영악한 점순의 마음을 알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여기 나온 동백꽃은 남쪽에 피는 붉은 동백꽃이 아니라, 산수유 같은 노란 생강나무를 이르는 강원도 말의 '동박꽃'이다. 노란 생강나무라고 했다면 많은 독자들이 동백꽃을 오해하거나, 노란 동백꽃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동백꽃이라 불리는 생강나무와 산수유는 같은 노란 꽃이지만 꽃 모양과 꽃피는 게 조금 다르다. 산수유는 줄기에서 나온 가지 끝에 꽃이 피고, 생강나무는 줄기에서 바로 꽃이 핀다. 위 사진은 산수유, 아래는 생강나무니까 비교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생강나무는 알싸한 생강향이 난다고 생강나무라 부른다.
<어떤 음악회>는 음악을 좋아했던 김유정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고, <두포전>은 여태 못 읽은 김유정 작품이라 반가웠다. 강원도 장수바위에 얽힌 이야기로 다른 작품들과 달리 현대어로 쓰여 김유정 특유의 글맛을 느낄 수 없어 아쉬웠다. 각 편의 주석도 맨 뒤에 모아 싣는 것보다 해당 쪽 아래에 각주로 달았다면 독자들이 보기에 좋지 않을까. 청소년들은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낱말이 많아 뒤에서 찾아가며 읽는다는 건 불편하고 짜증날 수도 있겠다.
2부에 실린 <땡볕, 금 따는 콩밭, 노다지, 만무방>은 일제와 지주들에게 수탈 당한 가난한 농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농사를 지어 소작료를 주고 나면 먹을 게 없는 소작인들, 농사짓던 사람들이 금광에 휩쓸려 거덜나거나 떠돌이가 되는 현실은 그저 웃기에는 참담하다. 1930년대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김유정은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는 이름이 되었다.